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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의료지원이 필요한 단식 투쟁 중인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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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이름: 마지드 타바콜리(Majid Tavakkoli)

이란 학생이자 양심수인 마지드 타바콜리(Majid Tavakkoli)는 테헤란의 에빈 교도소 (Tehran’s Evin Prison)에서 복역 중이며, 지난 5월 22일부터 시작한 단식 투쟁으로 긴급한 의료 치료가 필요하다.

수감 중인 이란 학생 지도자 마지드 타바콜리(Majid Tavakkoli, 24세)는 테헤란의 에빈 교도소에 서 독방 감금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항의로 지난 5월 22일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그 달 27일 그의 형제와 다른 이들은 마지드가 말하는 능력을 상실했으며, 그가 구금된 이래로 계속 악화되고 있는 호흡기 질환 및 내출혈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는 긴급 의료지원이 필요하다. 국 제앰네스티는 에빈 교도소의 의료시설이 그것을 제공하기에 적절한지 아닌지 확인하지 못했다.

마히드 타바콜리는 2009년 12월 7일 한 학생집회에서 연설한 후 체포되었다. 2010년 1월에 진 행된 재판에 그의 변호사는 참석을 금지 당했다. 타바콜리의 형제 알리에 따르면 타바콜리는 ‘불법 집회에 참가한 혐의’로 5년, ‘체제에 대항하는 선전을 한 혐의’로 1년, ‘최고지도자를 모욕한 혐 의’로 2년, 그리고 ‘대통령을 모욕한 혐의’로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또한 그는 향후 5년간 정치적 활동에 가담하거나 해외로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마히드 타바콜리는 양심수이다.

지난 5월, 마히드 타바콜리의 부모는 대법원장 앞으로 보낸 서신에서 그의 아들이 받은 처우에 대 해 실망을 표현했다. 그들은 ‘단순한 시민 모임 참여로 이렇게 비싼 대가를 치르다니 놀랍기 그지없 다’고 썼다. 또 이란 헌법은 ‘이슬람의 토대’를 와해시키지 않는 한 집회의 자유를 허용한다고 강조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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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히드 타바콜리(Majid Tavakkoli)는 테헤란의 아미르 카비르 대학교(Amir Kabir University, 조선술을 공부함)의 이슬람대학생협회(Islamic Students’ Association) 회원이다. 2007년 5월 그는 이슬람을 모욕했다고 알려진 학생 출판물과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세 명의 학생들과 함 께 체포되었다. 체포된 학생들은 그들이 위조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금 중 고문당했으 며 ‘체제에 대항하는 선전물’과 ‘지도자에 대한 모욕’으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항소 후 구형 은 30개월로 줄었고 그는 2008년 8월에 풀려나 남부 이란에서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허락 받았 다.

타바콜리는 2009년 2월, 1979년 2월 혁명 이후 최초로 임명될 국무총리 메흐디 바자르간 (Mehdi Bazargan)의 삶을 기리는 행사에 참여한 뒤 스무 명 가량의 학생들과 함께 다시 체포되었 다. 거의 대부분이 곧 풀려났지만 마히드 타바콜리 외 3인은 보석으로 풀려난 2009년 6월까지 재 판 없이 갇혀 있었다.

마히드 타바콜리는 그가 마지막으로 체포된 날인 2009년 12월 7일에 폭행을 당했다. 그는 이란 학생의 날을 기념해 연설한 뒤 테란에 위치한 아미르 타비르 기술대학교를 나서던 중이었다. 이 날 은 페르시아력으로 아자르(Azar, 양력 기준 아홉 번째 달) 16일인데 1953년 치안부대의 손에 죽 은 세 학생들을 위한 추모일이기도 하다. 수십 명의 학생 및 참가자들이 전국의 도시들에 걸처 발생 한 12월 7일 시위를 기해 붙잡혔다. 국제앰네스티는 다수가 풀려났다고 보고 있으나 미지수의 구금 자들은 여전히 갇혀 있으며, 그들 가운데 몇몇은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으로 보인다.

타바콜리가 체포된 다음날, 혁명수비대(Revolutionary Guards) 및 사법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 는 파르스 통신(Fars News Agency)은 그의 여성복 차림 사진들을 게재하고, 그가 발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체포 당시 사진과 동일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웹사이트 등은 체포 당시 타바콜리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그때 그는 문제의 의상을 입고 있지 않았으며, 대신 그가 체포된 후 그에게 굴욕감을 주기 위해 강제로 그 렇게 입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복 차림의 타바콜리 사진을 본 많은 이란 남성들은 ‘우리가 마히드이다’고 쓰인 팻말을 들고 머 리를 가린 채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타바콜리의 석방을 촉구하는 연합 운동을 벌였다. 일례: http://www.facebook.com/event.php?eid=198929939029#/photo_search.php? oid=198929939029&view=all

2010년 1월 19일, 타바콜리의 어머니는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가 제공하는 페르시아 어 방송(미국 정부가 지원하여 전세계에 소식을 전송하는 라디오∙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다음과 같 이 말했다: ‘5년이 흘러 나는 지쳐 버렸다. 그가 있을 곳은 감옥이 아니다. 그의 문제는 감옥이 아 닌 학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그는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3년 동안 그들은 우리를 개 줄로 묶어놓았다. 우리는 늘 아들을 걱정한다. 그는 열심히 공부한 죄밖에는 없다. 그는 오직 비판적인 논 평을 했을 뿐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나는 마히드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내 아들을 만나면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어머니에게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젖은 눈시울과 쓰린 가슴으로 기다리기는 어렵다. ’

학생들은 논란을 유발한 2009년 6월 대통령 선거 결과를 항의하는 데 앞장서 왔다. 또한 당국이 시위를 금하고 시위자들을 폭력을 이용해 강력하게 탄압하는 등의 인권 침해에 대해 계속해서 항의 해왔다. 치안부대가 과도한 무력을 사용해 스물네 명 정도가 숨졌고, 수천 명이 자의적으로 체포되 었으며, 많은 이들이 고문이나 기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다수가 불공평한 재판에 처했으며 일부 는 대중 공개 재판을 받기도 했다. 여든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한 사람은 사형 을 징역형으로 감형 받았으나 최소한 열두 명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처형되었 다.


• 마지드 타바콜리(Majid Tavakkoli)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당국에 그가 교도소 밖의 완전한 장비를 갖춘 병원에서 제공하는 것과 같은 즉각적이고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도록 촉구하고;

• 이란 당국에 단지 표현과 결사 및 집회의 자유의 권리의 평화로운 행사를 이유로 갇혀있는 마지드 타바콜리와 2009년 12월 7일 즈음에 있었던 시위와 관련되어 체포된 후 갇혀있는 다른 이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 당국에 그 사이에 마지드 타바콜리를 독방에 구금 하지 말 것을 요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