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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동안의 기다림: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에게 정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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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거기에 있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가 없어. 나는 내 과거에 대해서 아무도 몰랐으면 했어. 그래서 모든 것을 감췄지. 술집에서 일했었는데 결혼을 하려고 했지. 그런데 남자들이랑 관계맺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거야. 성병 때문에 아이도 가질 수 없었어. 내 나이 13살 때 자궁을 들어냈거든. 두 번째 결혼 때 아들을 하나 입양했지.

어느날 뉴스를 보는데,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는거야. 뉴스를 보다가 내 며느리가 내 과거에 대해서 알게되었고, 정대협에 연락해보기로 그 때 결심했어. 그 때까지 난 수치심 속에서 살았거든. 일본 정부는 모든 ‘위안부’ 피해여성이 죽으면 모든 것이 잊혀지고 묻힐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 우리 다음세대가 이걸 알고 있는 이상, 이 일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아.

난 수요집회(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에 나가. 초등학생들부터 대학생들까지, 젊은 학생들이 매주 수요집회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이상 이 일은 끝나지 않을거야. 거기서 젊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 내가 아플 때도 거기 나가는 건, 다 그런 이들 때문이야.”

– 길원옥(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

‘위안부’로 알려진 수천명의 여성들은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0년을 전후해 일본정부에 의해 일본군 성노예로 강제징발되었다.

일본군 성 노예제로 잘 알려진 ‘위안부’ 제도 아래서 여성들은 납치, 강간, 폭력에 시달리고 일본군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성노예제의 전체 규모는 일본정부에 의해 공개되지 않았으나, 20만명 이상이라고 여기진다.

일본정부는 이러한 범죄에 대한 공식적인 책임인정을 부인하고 있다.

‘위안부’는 강제적 군 성매매체계로 일본군은 집단 강간과 강제 낙태 등의 성폭력을 자행했고 이는 20세기의 가장 광범위한 인신매매 행위로 묘사된다.

피해 여성들 중 다수는 인권 유린의 결과로 인해 지속적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일부는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정의를 요구하는 캠페인에 용감하게 나서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위안부’ 피해 여성을 위해 정의를 요구하는 결의안들이 통과되고 있어 일본 정부에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2007년 미 하원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캐나다 의회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일본 정부의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연달아 채택되었고, 유럽의회, 한국, 대만에서도 역시 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지금 전세계 곳곳에서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져가고 있다.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정의를 요구하는 편지를 쓰자.

탄원 대상: Prime Minister Naoto Kan
이메일: info@japanem.or.kr
주소: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146-1 이마빌딩 7층

간 나오토 일본 수상에게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공개적인 사과, 피해여성들에게 완전한 배상을 실시하라고 편지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