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군인들

LGBTI와 한국 군대

침묵하는 군인들

LGBTI와 한국 군대

 

전세계에서 LGBTI 인권 지평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동성 간 성관계에 최고 징역 7년을 구형하던 보츠와나는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이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판결을 내렸다. 5월에는 대만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여 아시아 LGBTI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20년 전 약 50여 명으로 시작했던 한국의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오늘날 15만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자긍심을 드러내며 축하하는 장이 되었다. 더 이상 LGBTI 인권은 서구문화의 전유물도, 전통윤리에 거스르는 잘못된 윤리관도 아니다. 전 세계가 나아가고 있는 새로운 방향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며, LGBTI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곳이 한국에 있다. 게다가 이곳은 특별한 곳도,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경험하는 곳이 아니다.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2년의 동안을 살아가야 하는 곳, 사람들의 생각과 일상에 깊숙히 스며들어 사회의 방향과 흐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그곳은 바로 대한민국 군대다 

군형법 제92조의6

 

군형법 제92조의6(추행) :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군인 또는 군인에 준하는 자)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지난 2017년, 20명 이상의 군인이 육군중앙수사단에서 조사를 받았다.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상대가 동성이라는 것이 수사의 이유였다. 성인 두 명이 사적인 시간/공간에서 서로 합의 하에 관계를 가진 것이 수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육군중앙수사단은 일부 수사대상자에게 ‘어떤 체위로 관계를 가졌느냐?’, ‘어디에 사정했느냐?’ 같은 모욕적인 질문을 던졌고, 핸드폰을 디지털 포렌식하고 개인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이용해 다른 수사대상자를 추적, 색출하기까지 했다. 결국 조사를 받은 일부는 기소되어 징역 및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다.

놀랍게도 군대에는 이렇게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조사를 합리화하는 ‘법적인 근거’가 있다. 바로 군형법 제92조의6이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동성 간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범죄화하는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동성애자 군인이 휴가 중에, 자신의 집에서 합의 하에 자신의 동성 연인과 성관계를 가져도 처벌될 수 있다.

성인들이 합의 하에 갖는 성관계는 사생활의 영역이다. 이를 범죄화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처벌하는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며 개인에 대한 사법 당국의 사생활 침해를 허용하는 것이다. 이런 사생활 침해는 법 앞에 평등할 권리 및 차별 받지 않을 권리 등 다른 인권에 악영향을 미친다.

군형법 제92조의6 QnA

  1. 군형법 제92조의6이 없어지면 동성 간 성폭력을 처벌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군형법 제92조에는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준강제추행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이미 있으며 군형법 제92조의6이 사라지더라도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강간 등의 문제는 똑같은 기준으로 처벌할 수 있다. 오히려 군형법 제92조의6은 조항에 명시된 ‘추행’이라는 단어를 기반으로 어떠한 행위가 추한 것이고 추하지 않은 것인지 국가가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처벌할 수 있게 한다.

  1. 전투력 보존을 위해 동성 간 성 행위는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국제앰네스티는 국방부에 전투력 보존과 동성 간 성행위 사이의 상관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국방부에서는 ‘이 둘 사이의 상관 관계에 대해 다룬 연구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1. 한국이 전시 상황이라는 점, 그에 따른 한국군대의 특수성 등을 보았을 때 군형법 제92조의6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국제인권규범에 따르면 차별 받지 않을 권리, 고문 받지 않을 권리는 전시 상황에서도 적용 면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는 민간인과 군인에 대한 법에 모두 적용된다. 또한 정부는 전시든 평시든 동일하게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1. 미국에도 같은 법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2003년, ‘로런스 대 텍사스 사건’의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간 성관계를 비정상적 성관계로 규정하고 처벌하던 미국의 ‘소도미’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군 검사가 ‘자신이 범죄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차마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습니다.”

2017년 육군 색출 사건 피해자 김여준(가명)

 

2017년 육군 색출 사건은 피해자들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색출 사건의 피해자 ‘김여준’은 성공적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던 육군 간부였다. 그러나 그가 수사 대상이 되면서 그가 그간 쌓아올린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군중앙수사단에게 조사를 받고 있는 LGBTI 병사

2017년 3월, 대한민국 육군중앙 수사단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만나자는 연락을 했습니다. 그들은 헤어진 지 1년이 넘은 전 애인 ‘준서’를 아는지부터 물었습니다. ‘아니오’라고 답하자 수사관들은 소리치며 저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사관들은 준서와 그의 핸드폰을 압수한 준서의 지휘관에게 영상 통화로 전화를 걸어 저와 연애한 적이 있다는 준서의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결국 저는 육군중앙수사단에 준서와 연인 관계였다고 인정했습니다. 이후 수사관들은 “어떤 체위로 관계를 가졌느냐,” “어디에 사정했느냐”와 같은 모욕적인 질문들을 쏟아 부었고 저의 핸드폰을 디지털 포렌식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입건되었습니다. 군 검사가 “자신이 범죄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차마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92조의6 위반을 인정했고, 기소는 유예되었습니다.



LGBTI 인권과 군대

군형법 제92조의6이라는 비상식적이고 차별적인 법률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LGBTI를 향한 차별, 괴롭힘, 폭력의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게다가 군대 특유의 위계 문화는 이런 차별과 폭력을 처벌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일반 병사 사이에서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LGBTI 병사들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관리하고 그들을 관심병사로 대우하고,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등, 군 시스템은 LGBTI 병사들을 전혀 동등한 군인/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다.

김명학이 게이인 것을 알고 있었나? 그가 불편하다면 다른 부대로 보내겠다.”

“김명학”(가명)을 부대원들에게 아웃팅한 중대장

 

아웃팅, 폭력과 차별

군대에서 개인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관한 정보는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개되어 비전문적이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렇게 알려진 성적 지향은 군대 내 동성애 혐오적 문화와 합쳐져 동성애자들을 향한 폭력과 처벌, 괴롭힘으로 이어진다.

김명학’은 군대 내에서의 동성애혐오적 경향, 원치 않는 ‘아웃팅’, 상관의 차별적인 발언 등을 경험했다.

동성애자인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LGBTI 병사한 번은 정기 건강검진에서 객관식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가?’라는 문항에 ‘매우 그렇다’를 선택했습니다. 군대 내 상담사에게 저의 성적지향을 밝히고, 흔히 말하는 남성적인 스타일이 아니라서 군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관심병사’로 분류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 성적지향을 알고 있었던 후임이 저를 모욕하려는 목적으로 장난을 쳤습니다. 후임이 민간인인 제 애인의 번호를 알아내어 저인 척 하고서는 군용 시설의 회선으로 전화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20통이 넘게 보냈습니다. 놀라서 전화를 건 제 애인에게 그는 ‘더러운 새끼’라고 욕을 했습니다.이 통화 건에 대해 알게 된 중대장은 같은 방을 쓰던 부대원에게 “‘김명학’이 게이인 것을 알고 있었나? ‘김명학’의 성적지향 때문에 불편하다면 ‘김명학’을 다른 부대로 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중대장은 저에게 그 후임이 왜 그랬는지 이해한다고 했고, 다른 부대원들도 그 후임 편을 들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간부들은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저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예비역 “유”(가명)

 

위계와 불처벌

한국 군대는 엄격한 위계 질서가 극도로 강조되고 있다. 그 때문에 위계 안에서 낮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학대와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군대에서 요구하는 성별 규범에 맞지 않는 일부 LGBTI는 따돌림, 괴롭힘, 폭력에 더욱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군대 내에 만연한 불처벌 문화는 그들을 더욱 위협에 노출시키고 있다.

약 10년 전에 군복무를 한 ‘유’는 ‘여성스러워’ 보이거나 군대의 전통적인 성별 규범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언어적, 신체적 학대, 성폭행, 모욕, 폭력, 위협 등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지로까지 내몰렸다.

위협적인 군화발 사이에 있는 LGBTI 병사

하루는 한 병사가 성적 학대를 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병사가 저항하자 선임병이었던 가해자는 그 병사를 심하게 폭행하기 시작했고 변기에 있는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며칠 뒤 학대를 당한 병사는 이 사건을 신고하기로 마음 먹고 저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선임병은 이 사실을 알고 “신고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때까지 패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선 세 시간 동안 신체적 폭력과 모욕을 당했습니다. 제가 목격한 학대 피해자와 구강 및 항문성교를 하라고 강요받았고, 선임병은 “여자 같은 남자랑 성관계를 하고 싶지 않냐?” 등의 발언으로 조롱했습니다.

결국 이 성폭력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간부들은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저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고 저와 다른 피해자를 ‘변태적 성관계’를 한 ‘더러운’ 사람들인 것처럼 피했습니다. 가해 선임병은 그 이후에도 제 동기를 성적으로 학대했습니다. 저와 동기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저희는 결국 정신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가해자는 1개월간 군교도소에 보내졌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간부들은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군대여서 다행인 줄 알아라. 감옥이었으면 강간당했을 거다.”

제람의 가해자

 

차별을 제도화하는 시스템

부대관리훈령제256조(차별금지)에 따라, 군은 동성애자에 대한 구타·가혹행위·모욕·욕설·성희롱·성폭력등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군의 시스템은 차별금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군은 LGBTI를 관심병사로 분류하고 필요시 그들을 격리하거나 강제입원시켰다.

제람은 군대에서 가장 계급이 낮은데다 부대에서 다소 ‘여성스럽다’고 여겨져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몇몇 선임들과 부대원들은 제람을 반복해서 주무르고, 그의 목에 입을 맞추고 속옷을 끌어내렸다.

내무반 침상에 누워 천장을 공허히 바라보고 있는 LGBTI 병사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처음에는 성폭행에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저항하기 시작하자 가해자는 제가 잠을 잘 수 없도록 불규칙적인 시간대에 야간근무를 배정했고, 정화조 청소를 하도록 시켰습니다. 가해자들은 “군대여서 다행인 줄 알아라. 감옥이었으면 강간당했을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바로 기절했습니다.

제가 겪는 문제가 점점 커지자 한 부사관이 와서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저는 저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제가 성소수자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아침 점호 때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대대장은 저를 지목하며 “어젯밤에는 누구를 꼬셨냐?”와 같은 발언을 하곤 했습니다.결국 저는 군 정신병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저에게 ‘복무부적합’ 판정을 내리려고 했고 제가 전역조치를 받을 수 있게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연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겪은 후 저는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LGBTI 커플 액자가 올라가 있는 관물대

 

다르지 않습니다

LGBTI 군인들 역시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군인이다. 그들 모두 사생활권, 자기결정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동일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원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추억을 쌓아갈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차별과 폭력, 처벌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군대의 문화를, 그 안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이런 문화와 시스템을 바꿀 첫 걸음은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하는 것이다. LGBTI 군인들을 위협하고 군대 내 차별과 폭력을 제도화하는 법을 없앴을 때 군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LGBTI 인권을 존중, 보호, 실현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에게 요구합니다.

  •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관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하십시오.
  • 군대 내 LGBTI에 대한 괴롭힘과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조치를 강화하고 이러한 혐의에 대해 신속하고 공정하며 철저한 조사를 보장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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