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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한 장으로 뒤바뀐 그녀의 삶”_앰네스티 후원회원 사형폐지운동가 김혜원 인터뷰

그녀가 주부우울증에 허덕이던 한 때, 세상은 희대의 살인마라 불리는 김대두로 떠들썩 했었다. 그러나 그가 남편과 동향출신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를 유대감을 느끼게 했고, 그녀는 별 기대 없이 편지를 써내려갔다. 뜻밖에 돌아온 답장은 그녀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고 그 일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다양한 곳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의 ‘촛불’을 더하는 앰네스티 회원을 찾아가는, 무작정 인터뷰 2탄!! 사형폐지 운동가 김혜원 후원회원님의 생생한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철장

30여년간 교화활동을 해오신 사형수들의 대모, 김혜원 회원님 ©private

국제앰네스티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정확히 한국지부 후원회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2010년도지만 그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어요. 93년도 우연한 기회에 국제앰네스티 영국지부를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죠. 김지하, 김성만 양심수 구명활동을 할 당시였는데 그 때 앰네스티가 보여준 활동력이 참 인상 깊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힘은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사형폐지운동을 하는 저로서는 뜻을 같이하는 단체이기에 후원회원으로 활동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영어교사로 재직을 하다가 사형수 교화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나요?

큰 열정을 가지고 교사가 되었어요. 그러나 현실은 열정만 가지고는 되지 않았어요. 당시 교육현실은 너무나도 열악했기에 수업료가 없는 아이들에게 자퇴를 권유했어야만 했던 시절이었어요.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고 내적 갈등은 점점 더 심해졌었어요. 그래서 셋째아이를 가졌을 때 사직을 결정했죠.

하지만 아이들이 크고나니 또 다시 내적갈등이 찾아왔어요. 요즘 흔히들 말하는 주부우울증이 와서 1년을 앓았어요. 아무런 의욕이 없었고, 젊었을 때 야망이 사라진 것 같단 생각에 또 다시 자괴감에 빠졌어요. 그러던 중 교회모임에 나가면서 점점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던 중 17명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 김대두의 사건을 신문에서 접하게 되었어요. 그 사건은 너무나도 참혹했어요. 하지만 그가 남편과 같은 고향출신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를 유대감을 느끼게 했고, 그 일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를 위해, 한편에서는 나를 위해 편지를 쓰자는 마음에 편지를 보냈고, 기대치 못한 답장이 돌아왔어요. 그 답장에서 저는 희망을 보았고 계속 그 희망을 쫓았던 거죠.

30년이 넘게 사형제도폐지 운동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연유로 사형제도폐지 운동을 고집하신 건가요?

물론 그들은 나쁜 짓을 했죠. 그런데 우리 공동의 책임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흔히 훌륭하다고 우러러 보던 사람들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리는데, 그들 역시 범죄자가 아닌가요? 자신의 출세 길을 위해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사람들 많잖아요.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나는 깨끗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다 공범자인 거죠. 분배구조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니 약자들은 악순환의 고리 속에 빠져들어 범죄까지 이르게 되는 상황이 그 사람들만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힘들죠. 국가의 세금으로 그 나쁜 놈들 밥은 왜 먹이느냐? 라고 하지만 그건 공동의 책임이니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그들도 그 안에서 노동을 해요.

사형제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제일 큰 요지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극형을 내려야 더 이상의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논리가 대부분이에요. 그러나 실질적으로 극형이 있다고 해서 범죄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 그건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없어요. 물론 그들은 흉악범이니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해요. 그렇지만 목숨만을 빼앗는 극형만이 벌인가요? 종신형, 300년형 등의 형벌을 적용할 수도 있잖아요. 우리는 흉악범들을 위한 대체 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국가가 끝까지 교육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죠. 보복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사형제도는 우리 안의 증오심을 증가시킵니다. 하지만 사형을 시킨다고해서 마음의 증오심이 사라지진 않아요.

많은 사형수들을 떠나보내야 했을 텐데, 그때 마음은 어떠셨나요?

굉장히 회의감이 들었어요. 이렇게 제멋대로 살아온 사람이 어떠한 계기로 새 사람이 되었는데, 구태여 이렇게 새 사람이 된 사람을 죽여야 하나… 조금 더 기회를 주어 인품이 자라게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성적인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이성을 잃었을 때 흉악한 마음이 생겨 인간을 죽이는데… 국가라는 올바른 이성이 그리고 정의를 지향하는 인간을 죽이면서 ‘죽이는 건 나쁘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건 또 다른 사형이에요. 죽이는 것이 목적은 아니잖아요. 목적은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죠. 사고가 발생하면 그들을 오히려 보호하고 더 연구하여 더이상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방법을 강구해야죠. 사람을 죽인다고 범죄가 사라지나요? 흉악범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 사형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형제도폐지는 치열한 찬반론을 가지고 있는 주제죠. 김대중 전대통령 재임기간부터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고,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폐지국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때부터 노무현 전대통령 재임기간까지 10년간 사형집행이 되지 않자 국제앰네스티에서도 한국은 실질적 사형폐지 국가라고 발표했고, 지금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어요.

©Amnesty International Korea

그간 몸소 겪은 경험들을 차분히 들려주고 계신 김혜원 회원님 ©Amnesty International Korea

살인사건이 터지면 메스컴이나 사람들은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집중하는 현실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들려주세요.

제가 사형수 교화를 하다가 피해자의 유가족을 만난 적이 있어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독실한 불교신자가 된 한 사형수가 자신의 아이들은 어떤 스님이 잘 거둬 학교를 보내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해요. 헌데 자신이 목숨을 빼앗은 사람의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른다며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독지가를 구해달라고 국선변호사에게 부탁했고, 저는 변호사의 부탁으로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봤어요. 역시나 그들은 힘들게 살고 있었어요. 막상 가보니 만나줄 것 같지않아 신분을 감추고 다가갔고, 시간이 어느정도 흘러 그녀에게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독지가가 한 분 계시는데 어떠냐고물어봤더니 자기는 절대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며 거절하는 바람에 도움이 성사되지는 못했어요.

그 후 저는 사형집행을 막기 위해 헌법소원도 하고 탄원서도 모으며 그녀에게 제 신분을 감춘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고, 결국은 그녀에게 고백했어요. “사실 나는 교화원이고 당신 남편을 숨지게 한 사람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었다”라고 말하자 갑자기 그녀가 눈물을 엄청 흘리더라고요. 하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사람을 위해 탄원서에 서명을 했고 그가 정말 교화되어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아요. 어쨌거나 제가 유족들을 찾아가기 전, 그들의 삶은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그냥 내팽개쳐져 있었어요. 당시에 온갖 매스컴들은 가해자의 악행과 처벌에만 집중하느라 유족들은 거의 잊고 있었죠.  남편과 아빠를 잃은 유족들의 삶이 등한시되는 현실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무의탁 출소자 시설인 ‘사계절의 집’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운영하고 계신가요?

무의무탁한 사람들, 특히 재소자들은 갈 곳이 없더라고요.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죠. 김대두가 떠나기 전 유언을 남겼어요. “출소자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출소자들도 꿈이 있습니다. 다시 잘 살아보겠다는 꿈이 있지만, 사회가 너무 냉대를 하니까 꿈이 좌절됩니다. 다시는 저 같은 불행한 놈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얘길 듣고 출소자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라는 마음에 ‘사계절의 집’ 설립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고 여러곳에서 후원을 받아 설립했어요. 하지만 2년 정도 지났을 때 집값이 엄청 올라 비우게 되었고, 근처에 공터를 빌려 비닐하우스를 지어 생활하다가 현재 ‘금성의 집’으로 발전됐어요. 지금은 특별히 관여하고 있지 않아요.

엉뚱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정말 ‘교화’가 가능한가요?

돈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살던 사람이 김대두씨였어요. 자기를 괴롭히고 수모를줬던 사람들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해요. 그는 돈보다 더한 가치를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는 변화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죄를 아주 깊이 뉘우쳤어요. 그는 내가 넣어주는 얼마 안되는 영치금을 편지지나 치약을 사지 못하는 다른 재소자들을 위해 사용하며 선행을 베풀다 갔어요.

선생님에게 인권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인권은 책임이자 의무이죠. 우리는 존중 받아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할 책임이 있어요. 내가 당당하게 요구하고 또 내가 당당해질 수 있는 위상을 갖춰야죠. 아무렇게나 살면서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어요. 인권에는 언제나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돼요.

선생님에게 사형수란 어떤 존재인가요?

사형수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예요. 밉고 증오스럽지만 다른 한 편으로 뒤집어보면 이 사회가 만들어낸 희생자일 수도 있죠. 그래서 증오의 대상인 동시에 연민의 대상인 거예요.

마지막으로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젊은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후원을 열심히 해야죠. 여담으로 자식들에게 제가 세상을 떠나거든 그간 후원하던 단체들을 적어도 1년이상은 지속해 달라고 유서에 적어놨는데, 잘 지켜주겠죠?^^ 세상은 점점 좋아져야 하는데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고 좌절하게 되는 상황만 보여지니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정의롭고 정직하게 살아라, 준법정신을 지켜라’라는 말도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샘물은 어딘가에 항상 흐르고 있으니 희망을 가집시다.

©Amnesty International Korea

인터뷰가 끝나고 김혜원 선생님은 집에 좋아하는 초가 있다며 앰네스티의 상징인 노란 촛불을 밝혀주셨다. 감사합니다^^  ©Amnesty International Korea

사진, 글 _ 고권금 회원사업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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