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인터뷰

“인권은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_영화배우 김의성 인터뷰

어떤 사람들이 국제앰네스티의 회원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어떻게 앰네스티를 알았고,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을지 저희도 무척 궁금했습니다.

다양한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의 ‘촛불’을 더하고 있는 앰네스티 회원을 찾아가는, 무작정 인터뷰!

제 1탄은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을 비롯해 <관상>, <살인의뢰> 등으로 최근 왕성하게 스크린을 누비고 있는 배우 김의성님 입니다. 영화배우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범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통념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김의성 회원님의 시원시원했던 인터뷰, 지금 시작합니다.

국제앰네스티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고등학교 시절 같은 교회를 다닌 지인을 통해 알게 됐어요. 제 지인들은 대학 때부터 꾸준히 활동해왔지만 저는 특별히 앰네스티를 후원하거나 지지할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앰네스티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세상이 어렵게 돌아가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불편한데 ‘한가하게’ 편지쓰기를 해야 하나, 젊은 마음에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 지난 대통령 선거 중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 누가 선거에 이기는가 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시민사회를 만들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힘이 됐죠. 꾸준히 앰네스티에서 활동하는 두 지인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Amnesty International Korea

ⓒAmnesty International Korea

앰네스티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후원도 시작하게 됐나요?

90년대 초반 운동권 ‘주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가능한 한 자유롭고 고립된 개인으로 살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지난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면서 한 개인으로서 세상을 관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깨어있는 사람들, 혹은 깨어있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개인과 개인으로서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후원을 시작하게 됐죠. 아직까지 통장에서 돈 나가는 것 외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 않지만, 후원을 한 이후부터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앰네스티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는 잘 봤어요.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는 시민들에게 일상에서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앰네스티 가입을 권했더군요.

사실 70~80년대에는 앰네스티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시국이 불안하고 흉흉하다 보니 편지 한 통이 큰 힘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이제는 우리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편지를 써야 하는 입장이 됐죠. 아무래도 눈 앞에 있는 국내사안들과 거리가 있는 단체로 보이니까 세간의 관심이 적은 것 같아요.

‘뭐라도 하려고’ 시작한 1인 시위, 시민 참여로 100일간 자리 빈 적 없어

지난해 12월 13일부터 100일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굴뚝농성을 벌인 해고노동자 이창근, 김정욱씨를 응원하기 위해 광화문에서 연대 1인 시위를 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특별한 건 아니고, 작은 계기들이 엮어지면서 만들어진 것 같아요. 2013년이었던가 전국 7~8개 철탑에 사람들이 올라갔던 적이 있었어요. 변영주 감독의 소개로 만난 김선우 시인이 철탑 위에 있는 사람들이 심심하고 외로우니까 시를 읽는다든지 노래를 한 곡 부른다든지 책을 읽어서 밤에 들을 수 있도록 소리편지를 보내더라고요. 그 때 저도 책을 3~4권 정도 읽었어요. 그 파일들을 올리면서 처음 이창근 씨를 알게 됐죠. 그 후 트위터로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됐고, 술자리에서 2번정도 만났어요. 촬영 내려가는 김에 평택에 들려서 음료수 좀 가져다 드리고, 김밥 쌀 때 친구들 몇 명이 같이 가서 싸고 하는 아주 가벼운 것들이었어요.

헌데 지난 겨울에 이창근씨가 굴뚝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접했어요. 왜 하필 이렇게 추울 때 올라가서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괴롭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화가 막 났었는데, 마지막에 든 생각이 오죽하면 그랬겠냐 싶었던 거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도 불리하게 나고 워낙 오래된 문제라서 저렇게 올라가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지도 않았고…. 뭐라도 해야겠다 마음 먹었는데, 마침 그때 시간적 여유가 있었어요. 먼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고, 외롭고 추울 그들에게 우리가 지켜보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화를 했죠. “춥지? 그럼 내일부터 내가 같이 추워 줄게”라고요. 이틀 뒤부터 함께 하기 시작했어요.

영화에서와는 달리 평소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Amnesty International Korea

영화에서와는 달리 배우 김의성은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Amnesty International Korea

유명세 덕분이었는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어냈어요.

대개 1인 시위는 이름 있는 사람이 나오면 언론사에서 취재 나오고, 그렇게 한 번으로 끝이 나잖아요. 헌데 이효리씨가 SNS에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이야기를 언급한 게 계기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어요. 처음 시작할 때 굴뚝에서 내려올 때까지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때 잘못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웃음) 대신 지나친 의무감으로 하진 말고, 일 있으면 나오지 말고 일 없으면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죠. 재미있는 사실은 1인 시위가 진행된 100일동안 단 하루도 그 자리에 팻말이 안 서있던 적이 없어요. 제가 바쁘면 다른 분이 나오고 그렇게 100일이 채워졌죠.

지난 1월 11일 하루 동안 집과 가까운 기차역 또는 지하철역 앞에서 “이창근, 김정욱이 만드는 티볼리를 타고 싶어요”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굴뚝데이’를 직접 기획하셨어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평소 광화문에서 집회를 했을 때 경찰 추산 1만명이면 실패, 5만명이면 성공이란 듯이 개인의 결심이 숫자로 판가름 나는 게 안타까웠어요. 사실 집회 현장까지 나가는 것도 개인에게는 힘든 결심이고 또 나가면 당해야 하는 불편들도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그냥 자신의 결심만으로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 자기 집 앞에서, 방안에서 ‘지금 우리가 이걸 하고 있다’라고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하게 된 거죠. 심지어 얼굴을 가려도 되는 그런 걸 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 얼굴이 어떤 식으로든 알려졌을 때 가정, 직장에서 불편한 경우가 생길 수 있어 참여하기가 꺼려지거든요. 흔히들 목숨을 걸고 운동을 하던 때도 있었는데 뭘 그러냐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런 경험을 한번이라도 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처음 1인 시위에 나갔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혼자 서있는 경험이 오히려 좋았거든요. 그리고 저를 대신해서 나왔던 사람들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고 고맙다고들 얘기했어요.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바뀌는 게 아닐까요? 처음 ‘굴뚝데이’를 기획했을 때 사진 50장 정도만 모이면 되겠다 싶었는데 10배 이상이 모였어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이창근씨는 굴뚝에서 내려온 후 만나보셨나요?

안 만났어요. 사실 연락도 안 했어요. 저는 내려와서 끌어안고 그런 상황이 연출될까 어마어마하게 걱정했어요.

“젊은 세대여, 제발 자기 탓 말고, 조상 탓 사회 탓하라!”

좀 전에 얼굴을 가려도 좋다고 했는데, 혹여 취직하는데 불이익을 당할까 자신의 소신을 밝히거나 의견을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청년들이 더 많아지면서 젊은 세대가 더욱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 세대에게 한 마디 한다면?

원래 취직은 안 되는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스펙은 다 거짓말이에요. 스펙이 부족해서, 태도가 안 좋아서 취직이 안 된다고 어른들이 속이는데 사실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거죠.

속된 말로 대기업에서 쳐주는 학교는 5개도 안 될걸요. 나머지는 다 똑같아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느냐, 서울과 가까운 대학을 가느냐,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가느냐는 어차피 중요하지 않은 거죠. 마치 자신이 부족해서 안 되는 것 같아 쓸데없이 조심하는데 오히려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해보려고 하고 작은 행동에 동참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젊은 세대를 우리 때와 비교해서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개개인들의 역량도 뛰어나고, 개인의 자유에 있어서도 훨씬 더 발전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던 폭력적인 획일성도 많이 줄었다고 생각하고요. 젊은 세대가 자기 탓을 하지 않고 남 탓을 했으면 좋겠어요. 조상 탓, 사회 탓을 하라는 것이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경쟁할 대상이 아니라 사실은 같이 낙오된 동지들이거든요. 같이 살 길을 찾아야지, 혼자서 아등바등하기에는 확률이 너무 낮아요. 무모한 얘기지만 한 구멍을 파서 좁은 문을 만드는 것 보다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게 오히려 더 확률이 높은 게임이라 생각해요. 정말 밥 벌어 먹고 결혼해서 살 확률조차 낮으니 답답해 죽겠어요.

최근 출연했던 영화 ‘살인의뢰’에서는 97년이후 사형집행이 중단돼 실질적으로 사형폐지국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 사형제 부활에 대한 논의를 제기했다고 보는데요. 개인적으로 사형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려운 문제라 생각해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간사해서 이성적으로는 사형제 존치에 대한 수많은 문제를 알고는 있지만, 과연 끔찍한 악행을 죽음 말고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하는 마음도 동시에 들거든요. 이성은 사형제도 폐지를 외치지만,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스스로 부족하고 단순히 말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라 생각합니다.

‘살인의뢰’에서 짧게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격렬한 액션신도 선보이셨는데, 촬영 중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고생만 무지 했어요. 세달 동안 정말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영화 속 목욕탕씬이 있어서 저도 다 벗어야 하는 줄 알고 2달 동안 술도 안마시고 운동만 죽어라 했어요. 영화 감독을 만났는데 왜 이렇게 말랐냐고 물어봐서 목욕탕씬 때문에 운동했다고 하니 벗고 찍는 게 아니라 입고 찍는 거라 하더군요. 해서 술을 다시 먹기 시작했지요.(웃음)

영화 ‘북촌방향’에서는 베트남에서 사업하다 망해서 다시 돌아온 배우로 나오던데…

홍상수 감독은 촬영당일 대사를 직접 써서 주는데, 그 대사 자체가 그대로 제 자신이었어요.

영화 데뷔도 홍상수 감독과 함께 했고 복귀작 역시 홍상수 감독 작품이었는데요.

다시 배우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잠깐 한국에 들렀는데 심심하면 나와서 하루 이틀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이 들어와서 고민하다 찍게 됐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감독님도 다시 배우를 하는 게 어떻겠냐 권하고 몇 가지 계기가 합쳐지면서 다시 연기를 하게 됐어요.

영화 '자유의 언덕'에서 모리(카세 료)에게 구경시켜주던 경리단길은 실제 그가 살던 동네 ⓒAmnesty International Korea

영화 ‘자유의 언덕’에서 모리(카세 료)에게 구경시켜주던 경리단길은 실제 그가 사는 동네, 친숙한 카페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Amnesty International Korea

약자에 대한 관심은 본인이 약자의 입장에 있어보지 않으면 생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본인이 약자였던 경험이 있었나요?

상대적으로 그랬던 것이지 사회 전체적으로 어마어마한 약자의 입장에 서 본적은 없어요. 굳이 생각해보면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항상 올바른 일에 대해서 생각하라 말씀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특별히 무엇을 하지는 않더라도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신경쓰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직업적으로도 불안한 아들이 이런 일에 나서는 게 걱정되실 텐데 내색도 안 하시고 옳은 일, 옳지 않은 일로 나눠서 생각해 주시는 게 고맙죠. 올해 81세인 어머니는 시사에 매우 밝으세요. 세상 돌아가는 얘길 많이 하는데, 주로 어머니께서 제가 모르는 걸 설명해 주시고 저는 “아 그래요?”라고 대답하는 편이죠.(웃음)

세월호 얘기를 빼 놓을 수 없는데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우리 사회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회는 잘 모르겠고 제 자신은 국가에 대한 불신이 확실하게 생겼어요. 단지 정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특히 국가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게 됐죠.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인지 세계가 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 나라 시스템에 대해서는 불신하게 됐습니다.

“인권은 곧 안전, 자신을 위해 타인의 인권도 지켰으면”

앰네스티에서 인권을 이야기하다 보면 늘 어렵고 진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권으로 재미있게 다가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인권은 안전’이라 생각해요. 최악의 순간에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장치라고 할까요? 어느 선까지 안전하게 지켜주는가는 사회적 인권 수준이 되겠죠. 헌법에 명시된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인 표현에 자유에 대해 말하자면,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을 때 경찰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때리고 잡아간다면 그 사회는 안전하지 않은 것이죠. 실제로 제가 그 상황에 처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 자체로 제 안전이 심하게 위협당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쪽이 권력이 없는 쪽을 일방적으로 괴롭힐 수 없게 만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바로 인권 아닐까요?

만약에 우리가 인권을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한다거나 특히 남을 위해서 행동한다면 그 역시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전 인권 운동이 누구를 위한 시혜나 도덕적인 행동이 아니라 ‘이기심의 승화’라고 보거든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멀리 전선을 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 전선이 바로 내 앞에 있다고 하면 너무 위험하니까 가능한 멀리 쳐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인권운동이 아닌가 생각해요. 가장 근본적으로 인권이 자신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자신을 위해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국제앰네스티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앰네스티는 오랜 역사와 딱딱한 원칙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 알고 있어요. 남들이 한계를 지닌다고 얘기할 때도 그 원칙을 변함없이 지켜온 것이 앰네스티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가능한 한 천천히 변하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사회 변화에 맞춰가다 보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흔들리는 때가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가치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더욱이 한국 사회는 굉장히 빠르게 변하다 보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죠. 원칙을 현상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에 대해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면 될 것 같아요. 원칙을 바꿀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변함없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 아닌가요? (웃음)

김의성 회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절대 사무처 간사들이 강제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회원님, 감사합니다ㅠ)ⓒAmnesty International Korea

김의성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간사가 강제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김의성 회원님! 감사합니다ㅠㅠ) ⓒAmnesty Internation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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