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사형에 대한 이유있는 반대② 세계가 기억하는 사형수

1849년 12월 21일 러시아 세묘뇨프 광장, 영하 50도의 추위 속에 반체제혐의로 체포된 스물여덟살의 사형수가 죽음 앞에 섰습니다. 그에게 최후의 5분이 주어졌습니다.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데, 2분은 삶을 되돌아보는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데 쓰고 싶다”

‘이제는 끝이구나’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는 순간, 멀리 흰 수건을 흔들며 한 병사가 형장으로 달려왔습니다. 사형대신 유배를 보내라는 황제의 전갈이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가까스로 사형수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형수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20년이 지난 뒤 소설 ‘백치’에서 형장의 경험을 그만의 예술적인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만일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만일 생명을 되찾게 된다면 어떨까, 그것은 얼마나 무한한 것이 될까, 그리고 그 무한한 시간이 완전히 내 것이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는 1분의 1초를 100년으로 연장시켜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1분의 1초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한 순간도 헛되어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사형수이자 노벨평화상 후보였던 스탠리 투키 윌리엄스

스탠리 투키 윌리엄스(Stanley Tookie Williams)

스탠리 투키 윌리엄스(Stanley Tookie Williams)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경험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사형수 도스토예프스키가 있다면, 죽음을 기다리며 글을 통해 삶을 참회했던 사형수 스탠리 투키 윌리엄스(Stanley Tookie Williams Ⅲ)도 있습니다. 그는 미국내 최대 갱단 크립스(Crips)의 두목으로,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4명을 살해한 혐의로 1981년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사형수 감방에 수감된 후에도 7년 동안 갱단 사건과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았고, 그로 인해 1988년부터 1994년까지 6년 동안 독방에 감금되었습니다.

스탠리는 스스로 속죄의 시간이라고 표현한 이 기간 동안, 갱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흑인 청소년들에게 갱단에 가입하지 말라는 내용의 동화책 8권을 썼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끊임없이 오디오테이프를 통해 반폭력 메세지를 전파하며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의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의 반폭력 활동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조지 부시 대통령이 감사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죽기 전 사형대기 감방으로 옮겨진 뒤에도 수동 타이프라이터로 계속 글을 썼다고 교도관들은 전했습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탠리 윌리엄스 덕에 15만명의 아이들이 갱단에 가입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를 위해 진정서를 쓴 한 고등학생은 “그가 죽는다면 사람들은 그의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윌리엄스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5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4차례 올랐지만 26년전 무고한 시민 4명을 살해한 죄를 끝내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주교, 영화배우 제이미 폭스 등 많은 사람들이 그의 구명운동에 나섰지만 2005년 12월 13일 0시 1분, 그는 사형침대 위에 누워 독극물 주사를 맞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12번째 집행된 사형이었습니다.

스탠리 윌리엄스의 장례식에는 래퍼 스눕 독 외 루이스 파락한 등 저명한 인권운동가와 동료들, 수천명의 조문객이 함께 했다

스탠리 윌리엄스의 장례식에는 래퍼 스눕 독 외 루이스 파락한 등 저명한 인권운동가와 동료들, 수천명의 조문객이 함께 했다

사형을 면한 16살 소년, 변호사가 되다

사형수에서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오른 스탠리 윌리엄스처럼 사형수에서 변호사가 된 한 남자의 사연도 있습니다. 하페즈 이브라힘(Hafez Ibrahim)이 총살형을 앞두고 있었던 것은 2005년이었습니다. 하페즈는 예멘 교도소 작은 공터로 끌려가서, 일렬로 소총을 든 사형 집행관들 앞에 섰습니다. 가슴에 담아둔 유서는 자식의 죽음에 충격 받을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하페즈는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감방으로 다시 돌려보내졌습니다.

하페즈 이브라힘이 2010년 자신의 사형 사면 소식을 실은 신문을 들고 있다. © Amnesty International

지인의 결혼식에서 싸움에 휘말려 총이 발사됐고, 살인죄로 처벌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워서 숨어 지내던 하페즈는 결국 두 달 뒤 자수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짧은 재판이 끝나고 판사는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때 하페즈의 나이는 16살이었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 하페즈는 타이즈 중앙교도소로 끌려가 40명의 다른 죄수들과 함께 쓰는 작은 감방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성인이었습니다. 어렵게 국제앰네스티 영국지부 전조사관인 람리 치루프(Lamri Chirouf)에 연락이 닿아, 하페즈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교도소장이 절 부르더군요. 수감자들은 모두 그 날 이후로 다시는 절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교도소장은 저를 보자 축하한다고 말했어요. 앰네스티에 내 삶을 빚졌습니다. 지금부터 사형에 반대하고 인권의식을 증진시키는 활동에 헌신하며 살 것입니다.”

결국 하파즈는 2007년 10월 30일 석방됐습니다. 올해로 29세가 된 하페즈는 이제 변호사가 되어, 예멘에서 사형수로 복역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돕고 있습니다.

사형이 폐지되면 흉악범죄가 늘어날까? 

2014년 한 해 전 세계에서 최소 2,466건 이상의 사형이 선고됐고, 607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최근 들어 안보와 치안에 대한 위협을 막겠다는 이유로 사형제도를 악용하는 경향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7년 마지막 사형이 집행되어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지만 현재까지 최소 61명의 사형수가 남아있습니다.

사형제도의 존속으로 흉악범죄를 줄일 수 있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형제는 법치주의의 실패”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18개주에서 사형을 폐지했고, 나머지 32개주는 사형제도를 존치하고 있는데 사형을 폐지한 주의 살인범죄율이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사형제도 폐지 후 살인범죄가 44%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사형은 정의의 이름으로 보복성 살인을 정부에서 주도하는 것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지난 2월 13일 피지공화국에서는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제도를 폐지했습니다. 99번째 사형폐지국이 된 것입니다. 100번째 사형폐지국 탄생 앞두고 대한민국도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길 기대해봅니다.

 

사형에 대한 이유있는 반대 3회 연재

① 세계 최장기 사형수, 하카마다 이와오

② 세계가 기억하는 사형수

③ 교수대로부터의 탈출 “나는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다”

터키: 모든 LGBTI 행사를 금지하다
온라인액션 참여하기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 싸웁니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