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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갈라놓는 통곡의 장벽, 영화 ‘오마르’

오는 2월 4일(수요일) <앰네스티 수요극장> 상영작은 ‘오마르’입니다. 여자친구 ‘나디아’를 만나기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장벽을 수시로 넘나드는 팔레스타인 제빵사 ‘오마르’. 민족적 대의명분을 앞세워 개인의 소소한 일상따위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것이 당연시 되어버린 현장에서 우리는 그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까요? 영화가 궁금하시다면 앰네스티 수요극장에서 함께 나눠요! *스포일러 없습니다 :)

국가와 개인의 행복은 닭과 달걀의 딜레마로 접근해 볼 수도 있다. 국가 없이 개인의 행복이 존립할 수 있는가? 성조기 혹은 태극기 등을 정신의 의복으로 꽁꽁 휘감은 각국의 애국자들은 국가 없이는 국민도 없다고, 시민의 안녕과 행복 따위는 안정과 질서의 두 발로 지탱하고 있는 국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설파해왔다. 나라 없이 수천년을 떠돌다가 가스실에서 참혹하게 스러졌던 유태인의 예를 보라, 그리고 지금 팔레스타인의 예를 보라, 아니, 일제에 수탈당했던 우리의 역사를 보아라. 나라 없는 국민이 겪는 설움과 고통은 비할 데가 없다. 이들은 닭이 없으면 달걀은 누가 낳냐고 화를 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국가의 지속적인 유지와 번영을 위해 개인은 어디까지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가? 현대 국가가 시민의 행복추구와 안녕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굳이 거기에 존재 가치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시민은 사적인 행복추구를 포기하면서까지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충성해야 하는가? 그것은 온당한 일인가? 온다온다하면서 도무지 언제 올지 기별조차 없는 ‘선진국 반열’이나 ‘낙수효과’를 위해? 미래세대를 위해? 그러는 사이에 달걀은 다 깨질테고, 달걀이 깨지면 닭도 없다.

영화 <오마르>의 주인공 오마르는 이 닭과 달걀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팔레스타인 청년인 그에게 반이스라엘 활동은 선택이라기보단 당위에 가까운 애국적 행위이다. 거기엔 민족적 대의명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인 개인으로서 오마르가 가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 또한 존재한다. 그저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괴롭힘과 총알세례에 노출되어야만 했던 청년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그러나 그가 이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투신하는 순간 평범한 한 개인으로서 그가 가질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은 모조리 박살날 수 밖에 없다. 좋아하는 한 여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 한 청년의 이 소박한 꿈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라는 거대하고 지난한 태풍 앞에 그저 한 줌 촛불일뿐. 비극의 지점은 그 촛불이 곧 꺼져 버릴 것이란 점이 아니라 그것을 신경 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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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오마르>는 팔레스타인은 피해자이고 이스라엘은 가해자라는 프레임으로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이스라엘인 감독에 의해 그려진 오마르는 팔레스타인 독립투사도, 반이스라엘 테러리스트도 아닌 분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청년이다.

오마르가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족히 10미터는 되어보이는 벽을 맨몸으로 넘어가야한다. 그 위로는 이스라엘군의 총알세례가 쏟아진다. 스마트폰에 wifi만 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 연인과 언제든 영상통화를 하고 실시간으로 메세지도 주고 받을 수 있는 지금 세상에도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벽을 넘어야하는 것이다. 영화 <오마르>가 허구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아니므로 오늘도 누군가는 영화 속 오마르처럼 소소한 목적 때문에 목숨을 걸고 벽을 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솔로몬왕이 세웠다는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 서쪽에 있지만 그 이름은 이제 팔레스타인을 가둔 벽에 양보하는게 더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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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슬람국가(IS)에 의해 목숨을 잃은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씨의 부친은 아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나 관계자들에게 (자식의 일로)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CIA 고문보고서에는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미국에 의해 행해진 충격적인 고문실태가 담겨있었다. CIA는 물고문이나 180시간 동안 잠을 재우지 않는 등 전통적인 고문방법 외에도 항문에 음식물을 집어넣는 모욕적인 고문도 서슴치 않았다. 이런 고문을 당한 수감자는 만성출혈과 직장(直腸) 탈출 등의 고통을 겪었다. 이 일이 밝혀지자 존 브레넌 CIA국장은 “국가를 안전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항변했다. 달걀이 깨져도 닭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 달걀이 아니거나, 달걀은 충분히 많으니까 몇 개쯤 깨져도 상관없거나. 어느 쪽이든 달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인다.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이 역학관계는 여전히 너무나 일방적이다.

오늘도 신의 이름으로,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고문이 행해지고, 개인의 삶이 파괴되고, 살인이 정당화되고 있다. 발전이 시급한 것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평화와 인권’이다. 벽 하나 조차 허물지 못하는 세상에 달리 무슨 진보가 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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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다.”

(Palestine is now the world’s largest open-air prison)

거리화가 뱅크시가 팔레스타인 벽에 그려놓은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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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Guerrilla Artist Decorates West Bank Bar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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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 경찰의 살인을 묵인하지 않고 맞서 싸우다 / 샤켈리아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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