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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가정을 하나 해봅시다. 당신은 오늘 길을 걷다가 왠지 묘하게 기분 나쁜 남자를 마주쳤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명확하게 적대적이거나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당신은 괜히 그 남자의 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왠지 당신을 흘깃흘깃 훔쳐보고 흘겨보는 듯한 찝찝한 느낌도 듭니다. 물론 그냥 기분 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낯선 그 남자가 당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당신의 가족, 친구, 심지어 당신 자신보다 당신에 대해 세세하게 꿰뚫고 있다면? 당신이 지난 주말 어디에 갔었는지, 뭘 먹었는지, 뭘 검색했는지 모두 알고 있다면.

하지만 그러한 당신의 민감한 정보들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주체가 기업이나 국가라면 그건 어떨까요. 수상한 남자가 아니니까 상관없을까요? 이를테면 페이스북이나, 대한민국 정부가 이 정보들을 취급한다면, 당신은 그들을 믿고 꺼리낌없이 얼마든지 당신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나요? 혹시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아까 그 수상한 남자가 그 정보를 취급하고 있는 기업이나 기관의 직원이라고 한다면.

Rene Magritte

Rene Magritte

2014년 10월, 한국사회의 키워드를 하나 꼽자면 ‘감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검찰이 카카오톡 사용자들의 대화내용을 사실상 마음대로 들여다보았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카카오톡의 위기일까요? 혹시 사용자들의 민심을 잃고 카카오톡이 망해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대다수의 사용자는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안 위험보다는 이모티콘 같은 익숙하게 쓰고 있던 환경에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텔레그램 가입자가 200만명을 넘어서며 세계 사용자 1위로 한국이 올라서면서 ‘사이버 망명’이라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이 기세로 카톡을 넘어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것은 카카오톡의 위기가 아니라 여전히 사생활의 위기, 언론자유의 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특별히 대한민국 정부가 인권의식이 떨어지고, 카카오톡이 고객의 개인 정보보호의 의무를 소홀히한 탓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에 따르면,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거대 IT기업들이 모두 미국 정부에 이메일 내용, 검색기록 등을 제공하고 막대한 뒷돈까지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알카에다나 ISIS 같은 테러단체를 추적하기 위해서 아주 한정적으로만 정보에 접근한 것도 아닙니다. 미국에서 파티를 하며 즐겁게 놀거라는 의미로 친구에게 “미국을 부숴버리겠다(destroy)”라고 비유적인 농담을 트위터에 올린 한 아일랜드인은 공항에서 입국을 거절당하고 5시간이나 조사를 받아야했습니다. 조 리브리라는 미국의 코미디언은 애플스토어에서 4시간을 기다리다 집에 돌아와서 화난 기분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영화 <파이트 클럽>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해서 썼지요. 그는 이사한 집주소의 전입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정말 애플스토어에 총을 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경찰특공대가 그의 집을 덮쳤습니다. 영국에서는 왕실 결혼식날 고작 5명이서 (결혼식과 전혀 상관없는) 좀비 코스프레를 기획했던 영국 여성이 이들이 결혼식에 어떠한 위협이나 테러를 가할 거라는 우려로 인해 경찰에 구금되었습니다. 영국 경찰이 이들의 통신 내용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자유의 나라” 그리고 가장 발달한 민주주의 나라라는, 영국과 미국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북한의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되었던 박정근씨의 사례가 있지요. 정부는 당신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에서 뭐라고 떠들고 있는지 전부 지켜보고 있습니다.

눈치채셨나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감시의 대상이 특별한 사람들의 특정한 내용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조직하고 있는게 아니더라도, 딱히 내세울 것도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얼마든지 유출되고 감시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휴일근로수당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가 징계를 당한 버스운전사가 될 수도, 호텔에 묵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 선수도 될 수 있고, “가만히 있으라” 시위가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는데 그 시위에 참가한 사람의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침묵시위’ 제안한 대학생·지인 600여 명 카톡도 털렸다 :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남에게 숨기고 싶은 일은 아예 하지 않는게 좋다”고 말했지만, 여태까지 나의 잠자리 상대가 몇 명이었는지, 나의 구남친, 구여친이 어떻게 나를 당황시켰는지, 지난밤 내가 친구에게 받은 사진은 어떤 것인지, 어제 점심시간 동료와 주고 받았던 직장상사 뒷담화 같은 내용도 여기에 포함시키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세상에 숨기고 싶은 정보가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디지털 정보혁명이 도래하기 전, 정보기관들의 첩보 방식은 아주 고전적인 것이었지요. 잘 훈련된 요원, 즉 스파이를 심어 은밀하게 감시하고 비밀리에 도청장치를 설치해야 했습니다. 잊지마십시오. ‘워터게이트’의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이유는 바로 도청장치가 발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청은 세계 최강의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마저 낙마시킬 정도로 중대한 범죄행위로 취급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지금은 너무 손쉽게, 너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4년의 스파이들은 미행을 하고 위장을 하는 대신, 노트북 앞에 앉아 당신의 페이스북과 이메일을 뒤져볼 것입니다. 대단히 뛰어난 해킹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동의한 약관에 따라 기업들은 얼마든지 정부에 당신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당신이 공짜로 사용하는 대신 감수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스파이가 당신을 불순분자라고 판단한다면, 그는 정보를 얻기 위해 당신을 고문실에 앉혀놓고 손톱을 뽑거나 물고문을 하거나 전기를 흘려보내는 대신 그냥 간단하게 당신의 페이스북 친구목록을 뒤져보고 ‘파도타기’를 할 것입니다. 스파이하기 참 쉽죠?

"몇 년 동안 대중을 몰래 감시한 저희로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거주지와 종교적, 정치적 견해, 순서대로 정리한 친구 목록,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자신이 찍힌 수백 장의 사진, 현재 하고 있는 활동 정보까지 공개하니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CIA로서는 꿈에 그리던 일이죠." 크리스토퍼 사틴스키 CIA부국장

“몇 년 동안 대중을 몰래 감시한 저희로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거주지와 종교적, 정치적 견해, 순서대로 정리한 친구 목록,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자신이 찍힌 수백 장의 사진, 현재 하고 있는 활동 정보까지 공개하니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CIA로서는 꿈에 그리던 일이죠.” 크리스토퍼 사틴스키 CIA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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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사회의 위험성을 경계한 텍스트들은 일찍이 존재해왔습니다. 1995년작인 <네트>와 1998년작인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2002년작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러한 범주에 들어가고 <본 얼티메이텀>에도 디지털화된 정보가 얼마나 개인의 생활과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줬죠. 그 유명한 조지 오웰의 <1984>나 <감시와 처벌>의 미셸 푸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조차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은, 감시와 통제가 오로지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업에 서비스 편의를 제공받는 대신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제공한 정보에 의해서 그 효율성이 극대화되었다는 점이겠지요. 조지 오웰과 미셸 푸코가 만약 현 시대를 살았다면, 그들도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카카오톡을 이용했을까요? 그렇다면, 단순히 사용하지 않거나 ‘사이버 망명’을 떠나는 것만으로 거대 감시망의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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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의 처음으로 돌아와 다시 카카오톡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가카의톡” 소리까지 들어가며 위기감을 느낀 카카오톡측은 실정법을 어길 각오를 하면서까지 정부에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구글과 페이스북이 그럴 수 없었던 것처럼 한 나라의 사법체계 안에서 기업이 정부의 의지에 거역하기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카카오톡의 문제가 아닙니다. 카카오톡이 그런 압박을 받게 된다면 네이버, 다음, 밴드, 라인, 네이트, SKT, KT, LG U+ 등 우리가 아는 모든 통신 서비스와 심지어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외국계 서비스조차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카카오톡측은 기술적으로 감청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것도 일설에 의하면, “기술적으로 감시가 불가능한 것은 없다”라는 입장이 존재합니다. 어느 것이 진실이든, 이 사건의 논점이 기술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정책적인 문제이며, 인권의 문제, 자유와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기업에 감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기술을 만들라고 하거나 정부에 대항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 정부에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내 사생활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요. 결국, 이 역시도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나설 수 밖에 없는 일이 아닐까요. 여태까지의 모든 변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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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제가 이런 정보를 폭로했는데도 미국이 전혀 변하지 않을까하는 점입니다”

– 에드워드 스노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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