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빙고가 알려준 나의 몸 나의 권리

지난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Global Training for Trainers – SRR’(성과 재생산 권리를 중심으로 트레이너를 위한 글로벌 트레이닝 워크숍, 이하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26개국*에서 온 국제앰네스티 직원과 활동가 53명이 모여, 성과 재생산 권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이 자리에 참가한 한국지부 간사님들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첫번째 글 보고 오기

*조지아, 파키스탄, 콩고공화국, 아르헨티나, 칠레, 부르키나파소, 덴마크, 프랑스, 핀란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케냐, 레바논, 멕시코, 모로코, 네팔, 페루, 필리핀, 폴란드, 남아프리카, 한국, 스웨덴, 스위스, 튀니지, 영국, 미국

이번 Global Training for Trainers는 어떻게 하면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유스Youth 참가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가는 자리였습니다. 사실 청소년들에게 ‘성과 재생산의 권리’이라는 말을 꺼내면 대부분 “너무 생소해요”, “성차별이요? 나는 경험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임신? 출산? 그건 여성의 고민이라서 잘 모르겠어요” 라는 반응을 먼저 보이곤 합니다.  (아무래도 ‘성’과 ‘재생산’이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서일까요..ㅠㅠ)

국제앰네스티는 왜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알리는 주요 대상을 유스Youth로 두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요즘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사건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들 혹은  제대로 된 피임법조차 알지 못한채 성관계를 가졌다가 임신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게 된 사례는 이제 익숙할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얼마 전 있었던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만 봐도 ‘성’에 대해 우리사회가 청소년들을 얼마나 배제하고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5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중에는 학생은 임신 또는 출산,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라는 항목이 있는데요, 이것을 두고  “임신, 출산을 조장하고, 동성애를 양산하게 될 것”이라 반대하여 첨예한 대립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 연합뉴스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집회 © 연합뉴스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 방향을 이끄는 진행자가 되라

성과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한 시기임에도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청소년들. 캠페이너로서 그들에게 잘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Global Training for Trainers 에서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선생님’이 아닌, 참가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방향을 끌어주는 진행자(Facilitator)가 되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권리 교육’이라는 것은 사실 이론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이니까요.

 

<성과 재생산 교육자료집>을 미리 경험하다

이번 워크숍을 위해 국제앰네스티 각 지부에서 온 다양한 스텝들과 유스 활동가들은 내년 발행을 앞둔 <성과 재생산 교육자료집 RESPECT MY RIGHTS, RESPECT MY DIGNITY – Module 3>의 내용을 직접 경험해 보고, 프로그램의 적절성과 현실성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교육자료집에 담긴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종교, 문화, 젠더, 국가 등의 배경에서 진행하기에 적절한지를 살펴보고,  진행과정에서 발생할 참가자들의 에피소드와 장단점을 추려보기도 했지요. 앞으로 우리들이 사용할 교육자료집이기에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더욱 꼼꼼히 체크하고 수정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 날의 피드백이 반영되어 더욱 내실있는 내용의 자료집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 Amnesty International

어떤 프로그램이 있었는지 궁금하시죠? 몇 가지만 맛보기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내년에 <성과 재생산 교육자료집 RESPECT MY RIGHTS, RESPECT MY DIGNITY – Module 3>이 발행되면 보여드릴께요. 기대해 주세요! :)

 

[성과 재생산 교육자료집 맛보기①] 서로 알아가기 – 다양성 빙고 DIVERSITY BINGO!

Diversity Bingo Card © Amnesty International

다양성 빙고 카드(Diversity Bingo Card) © Amnesty International

다양성 빙고? 네, 어릴 때 다들 한 번씩은 해봤던 네모네모에 대각선 긋는 빙고, 그 빙고가 맞습니다. 단, 16개의 빙고 칸에는 숫자가 아니라 ‘두려워했던 것을 극복한 사람’, ‘외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 ‘나와 똑같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 등 ‘어떤 사람’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지요. 게임이 시작되면 각 내용에 적합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 그가 이런 사람인지 물어보고, 맞다고 하면 이름을 적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빙고 카드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름이 채워지게 되지요.

빙고 칸에 적혀 있는 내용들의 경우, 어떤 문화권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질문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실례가 되거나 의미 없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 게임에 참여한 파키스탄의 유스 활동가는 ‘나와 젠더가 다른 사람’이 적힌 빙고 칸에 대해 “파키스탄에서 성소수자라고 밝힐 경우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 젠더 정체성을 밝히는 경우가 거의 없을 거에요.”라고 털어 놓기도 했습니다. 제게는 평범해 보였던 ‘나와는 다른 종교나 신앙을 가진 사람. 어떤 신앙?’이라는 질문이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일랜드 지부에서 온 스텝은 “국교가 지정된 나라에서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런 질문이 실례가 될 수 있다”며 참가 집단의 특징이나 국가에 따라 질문을 재구성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Diversity Bingo! © Amnesty International

여기 빙고 하나 추가요~ © Amnesty International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지는 다양성 빙고는 처음 만난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도록 하는 게임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내재한 편견을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와 젠더가 다른 사람’을 찾는 질문에 외모만 보고, 그 사람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이름을 기재하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히잡을 쓴 한 참가자는 “내 국적은 영국인데,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중동 국가에서 왔다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랍사회의 특징인 확대가족(조부모, 삼촌, 숙모 등)과 함께 사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성과 재생산 교육자료집 맛보기②] 내 안의 성과 재생산 권리 찾기 – 앞으로 나가기 STEP FORWARD

이번에는 생소한 언어의 ‘성과 재생산 권리’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렬로 나란히 선 참가자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진 진행자의 질문에 따라 내가 해당할 경우에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했습니다.

Step Forward © Amnesty International

진행자의 질문에 해당하면 한 발짝 앞으로. Step Forward © Amnesty International

“당신의 외모, 옷차림, 행동 등에 대해 지적당하거나, 차별받은 적이 있다”

“성(sex), 섹슈얼리티(sexuality), 임신, 출산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접한 경험이 있다”

“자녀 계획, 출산 시기 등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경험이 있다”

 

진행자의 질문이 하나씩 던져질 때마다 나이, 성정체성, 국적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움직였습니다.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성차별을 받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갈 정도로 일상적인 권리 침해에 무뎌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 있는 진행 과정에서는 참가자 개인의 상처를 들춰낼 수도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성과 재생산 권리 교육에서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안심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답하지 않고 참여하지 않을 권리도 존중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성과 재생산 교육자료집 맛보기③] 남녀평등? 젠더 탐구하기 EXPLORING GENDER

이제 ‘남녀평등’이라는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남과 여는 똑같은 대접을 받고 있을까요? 이번에는 성별에 따라 사회에서 정의하고 있는 개념과 기대하는 역할, 선입견은 무엇이며 이는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논의해 보았습니다.

Exploring Gender © Amnesty International

벽면 가득히 적힌 젠더의 개념과 역할, 선입견 © Amnesty International

‘남성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는 ‘외향적인, 힘, 영웅, ‘가장’, 마초, 리더, 강함, 성에 능숙한(잘하는..)’

‘여성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엄마, 모성애, 수줍음, 처녀성(?!), 남성에 대한 존중, ‘참함’, 보수적인’ 등이 있었습니다.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높은 국가에서부터 성별역할이 보수적인 국가까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나’를 중심에 두고 원으로 정리한 성차별 개선 방향  © Amnesty International

그렇다면 성별에 대한 이런 선입견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만연한 인식 차이를 개선하기는 할 수 있을까요?  남녀에 대한 인식 차이를 확인한 후, 우리는 성별 불평등과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을 단계적으로 한 번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가운데에 나를 적고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과 지역사회의 순으로 원을 그린 후 각자가 생각한 개선방향을 단계적으로 정리해보니 막막하기만 한 성차별에 대처하는 방법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과 재생산의 권리,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다양한 종교, 국적, 나이, 성정체성 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문화적 배경에서 일어날 예측불허의 가능성을 모두 정리하기에 사실 3박 4일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성과 재생산의 권리’란 누구에게나 해당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어려운 주제임을 다시 한 번 공감하며 워크숍을 마무리했습니다.

‘성평등’은 누구나 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성소수자)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과 성과 임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 또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더욱 폐쇄적이고 갑갑합니다.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을 위한 활동도 중요하지만, 인권침해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는 노력이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몸에 대한 권리를 알고,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오늘 이야기한 성과 재생산의 교육 활동처럼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지난 상반기, MY BODY MY RIGHTS 캠페인 활동의 일환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과 재생산 권리 입문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내년에 공개될 <성과 재생산 권리 교육자료집 RESPECT MY RIGHTS, RESPECT MY DIGNITY – Module 3>에는 오늘 맛보기로 소개한 프로그램들처럼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다 쉽고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자료집과 앞으로 더욱더 풍성해질 한국지부의 성과 재생산 권리 교육활동, 많이 기대해 주세요!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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