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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남아있을 자유 – 영화 ‘프랭크’

매월 첫째주 수요일 저녁, 작은 영화관 필름포럼 과  함께 <앰네스티 수요극장>이 회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 동안 책이나 강의로 인권을 ‘공부’ 해 오셨다면, 극장에 앉아 영화 속에 숨겨진 인권의 이야기를 직접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앰네스티 수요극장>의 첫번째 영화 프랭크 Frank 에 대한 최한별 회원의 리뷰를 소개합니다.

* 글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사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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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무리가 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소론프르프브스’라는 이름을 가진 이 밴드에서는 각자의 특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연주가 모여 아름다운 화음을 빚어낸다. 그리고 완벽하게 균형 잡힌 이 밴드 무리에 들어가고자 하는 평범한 남자 존이 있다. 그는 조용하고 청결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점심을 챙겨주는 부모님이 있는 작은 박스 같은 마을의 집에 산다. 마음 속으로는 늘 뮤지션이 되고 싶은 꿈을 꾸지만, 재미없고 시시한 현실은 도무지 창의성과 예술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혹 가다 ‘이거다’ 싶은 악상이 떠오르지만 직접 연주해보면 상상했던 멋진 음악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은 우연한 기회에 소론프르프브스에서 키보드를 담당하게 되어 음악의 기쁨을, 예술에 다가간 희열을 맛본다. 하지만 이 괴짜 예술인들에게 다가가 그들 화음의 일부가 되는 것은 쉽지가 않다.

© 영화사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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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존의 행동을 설명하는 한 가지 키워드는 단연 ‘인정(recognition)’이다. 영화 초반부터 그는 다양한 SNS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나 여기 있어요’ 라고 말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중반부에서는 밴드 멤버들로부터 자신도 예술을 할 수 있는 사람임을, 그들과 같은 자격을 가진 동료임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후반부로 가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 한다.

그가 인정을 받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은 대상이 원하는 것에 자신의 모습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노력들은 시종일관 잘못 끼운 단추처럼 조금씩 어긋나고, 어딘가 어색하다. 우리가 존의 노력에서 ‘웃픔’을 느끼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소위 예술성 넘치는 밴드의 구성원이라는 모습으로 인정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과도해질 때 발생한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가 아닌, 어떻게든 ‘잘 보이려는’ 모습은 슬픔을 자아낼 만큼 우스꽝스럽다. 무대에 오르기 전 한껏 꾸민 프랭크처럼.

© 영화사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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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의 행동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기 자신을 꾸며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대중의 입맛에 맞게 교정하는 것을 자신 뿐 아니라 타인, 즉 밴드 멤버들에게까지 강요한다. 존이 대중의 인정을 받으려면 밴드 구성원들 중에서도 특히 천재성이 빛나는 프랭크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싸고 있는 프랭크의 특수한 외형과 어딘가 불안한 행동은 대중이 좋아하지 않을 모습이기 때문에 이는 존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된다. 그러나 ‘정상이 아닌’ 프랭크의 특수성(condition)을 의미하는 가면을 제거하려는 존의 시도는 결국 존과 프랭크의 관계 단절을 가져오고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쉽게 존의 욕심을, 그의 폭력적인 태도를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존과 다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동성애는 선택이니 바꿔야 한다고, 빈곤은 게으름 탓이니 고쳐야 한다고, 우리 사회, 우리문화는 ‘원래’ 이렇고 이게 ‘정상’이니 너희는 여기에 따라야 한다고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심지어 우리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근저에는 끝없이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고자 하고, 그를 통해 사회의 인정을 획득하려는 사람들의 불안함이, 혹은 착실한 사회인의 지위를 획득한 자신에 대한 만족감과 우월감이 있다.

각자의 모습을 지금 이대로 사랑할 것. 내 모습도, 타인의 모습도. 인권의 기본이 여기에 있다. 영화 마지막에 밴드 소론프르프브스가 함께 부른 노래는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우스꽝스러운 벽지도, 냄새 나는 화장실도, 역한 담배냄새도, 프랭크는 이 모두를 사랑한다고(I love you all) 노래한다. 음정도 박자도 불안한 그의 외로운 목소리 위로 기타가, 드럼이, 마지막으로 테레밈 연주가 얹어지며 근사한 음악이 완성된다.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계에 화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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