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앰네스티의 여름④ 인권운동과 방관자의 책임 사이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교보문고와 함께 하는 ‘엔젤북캠페인’의 일환으로 8월 한달간 [앰네스티의 여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차가운 음료 한 잔에 선풍기 한 대, 그리고 재미있는 책이 있다면 캬~ 그 곳이 바로 피서지가 아닐까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간사들이 추천하는 책과 영화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사들이 직접 추천하는 도서 릴레이, 그 마지막 편입니다. 우연히 만난 영화와 책이 앰네스티의 ‘시작’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는 고백부터 한 여름 더위를 식혀 줄 추리소설, 그리고 방황하던 오춘기를 달래줬던 책과 음악이 이어졌던 8월 한달이 어느 새 막바지네요.

엔젤북캠페인과 함께 하는 ‘앰네스티의 여름’ 마지막 편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김희진 사무처장님입니다.


침묵 | 엔도 슈사쿠 著

침묵2인권운동을 하다보면 ‘이게 정말 그 사람을 위한걸까’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얼마전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든요. 고압 송전탑은 건설되지 말아야 하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할머니들이 투쟁의 핵심에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할머니 개인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싶은 거에요. 젊은 사람도 힘든 움막 투쟁부터 경찰의 폭력까지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과연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더’ 옳은 일일까 하는.

 

일본의 엔도 슈사쿠가 지은 ‘침묵’이라는 책에도 비슷한 고민이 나와요. 처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 왔을 때, 박해를 받았듯이, 본격적으로 포교가 이루어졌던 17세기 일본에서도 종교 탄압이 심했어요. 개혁적인 성격에 새로운 문물이 소개됐던 천주교를 하층민들은 환영했지만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에도 막부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폈죠.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도 한 포루투갈 신부님의 포교는 계속됐고, 많은 민중들의 도움과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붙잡히게 돼요. 이 때 심문관은 함께 잡힌 신자들의 죽음을 담보로 그에게 배교할 것을 요구합니다. 신부님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사실 ‘정석’대로라면 배교를 거부하고, 순교하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신부님은 배교를 선택합니다. 전통적인 종교관에서 배교는 곧 신에 대한 ‘배신’과 다르지 않겠지만, 그는 죄없는 민중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생명을 앞에 두고, 배교 선언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것이죠.
서점에서는 기독교 서적으로 분류가 돼 있지만 꼭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내용인 것 같아서 추천합니다.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 왜 국가와 사회는 인권침해를 부인하는가 | 스탠리 코언 

국가대중2인권 침해를 저지른 사람을 만나보면 정말 ‘진심으로’ 자기는 가해자가  아니라고 할 때가 있는데,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 이 모든 문제는 사건 현장의 문제인 것이지 자기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부정하고 있잖아요, 진심으로. 만약에 사건의 책임을 인정한다면, 그 후로 닥쳐올 일들이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이라는 책에서도 인권침해가 반복·심화되는 이유는 ‘부인의 논리’ 때문이라고 해요. 보통 인권침해가 일어나면 ‘문제의 인정→책임자 처벌→해결’로 마무리를 하게 돼요. 그리고 나서 또다른 인권침해가 생겨나는데,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마무리가 안되고, 점점 더 심각해지는 형태로 치닫게 됩니다.

 

제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봤던건 ‘방관자의 책임’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인권침해가 일어나면 보통 가해자인 정부나 기업의 책임만 얘기하는잖아요. 하지만 방관자의 책임도 중요하다는 거죠. 저도 인권활동을 하고 있지만 솔직히 퇴근하고 집에 가면 TV에서 하는 시사 프로그램 잘 안보게 되거든요. 하루종일 부정적인 사건만 접하고 있다 보니까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잘못된 것을 계속 회피하고, 문제적 상황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종국에는 가해자 편을 들게 되는것이죠.

 

사실 이런 얘기가 책에 나올 정도니 정부나 기업들도 대중들의 이런 심리를 잘 알아요. 길게 가면 갈수록 분노와 행동이 무뎌지고, 방관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더 질질 끌고 갑니다. 몇 년째 끝나지 않고 있는 밀양이나 강정처럼요.

 

결국 운동하는 단체 입장에서는 이 문제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새롭게 접근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요즘 가장 큰 이슈인 세월호만해도 집회가 반복될수록 참가자 수가 조금씩 줄고 있거든요.’방관자’가 늘어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8월이 끝나가던 어느 점심시간, 처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마음 속 어딘가가 쿡 찔려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드위치는 남김 없이 먹어치웠지만..=_=)

매일매일 답답하고 슬픈 소식만 벌어지는 요즘입니다. 매 사안사안에 느껴지는 격한 분노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이 걸려도, 20년이 걸려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놓지 않는 국제앰네스티의 활동을 새삼 돌이켜 보며 시간이 오래 걸려도, 회피하고 싶어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지지와 요구의 행동에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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