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그 때의 나를 사랑해주고 싶어서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2014년 6월 29일, 글로벌 캠페인 My Body My Rights의 연장선에서 회원 및 지지자 10분과 함께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를 관람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6월 29일 관객과의 대화 모습 @광화문 인디스페이스 ⓒ자, 이제 댄스타임

6월 29일 관객과의 대화 모습 @광화문 인디스페이스 ⓒ자, 이제 댄스타임

걔네들은 그러죠 애 그렇게 쉽게 생기는 거 아니라고
콘돔 끼라고 여자가 그러잖아, 임신될까봐. 그러면… 껴달래!
차라리 내가 피임약 먹는게 훨씬 빠르겠다, 그게 덜 불안해서 내가 그냥 먹는 편이어서 남자친구가 아주 편해했죠
비난하고 비웃을거 같았거든요. 뭐 똑똑하다고 잘났다고 다니더니 별 수 없네 그런 말이나 들을 거 같고
그 때는 어린 나이라 ‘콘돔 끼고 해야 돼’ 이런 말도 못했던 거 같애

임신 여부와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임신 여부와 시기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나와 내 파트너가 동등하게 선택할 수 있을까.

성과 재생산에 대한 정보와 관련 의료서비스, 피임에 대한 접근이 시대를 거듭할수록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같은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편견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콘돔을 사면 문란하다, 낙태는 윤리적인 타락이다..

영화 스틸컷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스틸컷

‘낙태’라는 단어를 접할 때 내 머리에 스치는 것은 그저 ‘찬성한다, 반대한다’이다. 그 단어를 꺼내자마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토론이 시작되고,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저 제3자의 위치에서 신념과 논리의 늪에 빠지곤 한다.

… 입법자들이 너무나 태어나지 않은 태아와 동일시를 잘하는 것 같습니다… 왜 우리 모두가 엄마가 될 수 있어, 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는 거죠… 여성의 입장에 한번도 서보지 않은, 한번도 자기 자신을 여성의 몸으로 임신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없는 주체가 이 법의 입법 목적이나 해석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 양현아 교수 / 2010헌바402 형법 제270조 제1항 위헌소원 공개변론 중에서

나 조차도 ‘낙태’는 토론의 주제거리이자 내가 혹은 내 주변에서 직접 마주치지 않을 경험이라고 생각했었다.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플라이어를 보았을 때, 무언가 쿵 했던 것은 비교하자면 억지스러울지 모르겠으나, ‘내 주변엔 성소수자가 없는 것 같아’라고 여겼던 지난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것인데,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말해도 되나 안되나 이런걸 되게 고민했던거 같애.
친한 친구들한테도 말 하면 안 되는거 같은 느낌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거 같애.

영화 스틸컷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스틸컷

영화에서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의 인터뷰 장면이 흐릿할 때까지만 해도, 시사다큐를 보는 것 같았고, 여전히 나와 마주치지 않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여겨졌다. 그러다 흐릿한 화면이 선명해지면서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여성들은, 뭐랄까. 전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생활하는 주변 공간은 내게도 익숙한 시장이고, 골목이고, 학교였다.

2차 시험을 앞둔 고시생,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대학원생, 아이를 키우기엔 너무 어렸던 21살, 결혼을 앞두고 예비신랑의 아이를 가졌지만 주변의 수군거림이 무서웠던 예비신부, 임신을 지속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두 아이의 엄마, 임신한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남자친구를 둔 20대 여성

낙태를 경험한 여성이 영화에 직접 등장해 주어이자 주체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들이 말하는 낙태의 경험은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도, 자신의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다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 스틸컷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스틸컷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을 본 관객들이 꼽는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초반부에 나오는 설렁탕집 이야기이다. ‘낙태를 하고 병원을 나서는데 너무 허기가 졌다… 병원건물에 있는 설렁탕집이 눈에 들어왔다… 설렁탕을 먹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설렁탕집 주인은 그전에도 혼자 설렁탕을 먹다가 울고 간 여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여성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아… 나 같은 여자들이 또 있었구나

영화상영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한 출연자는 영화를 여러 번 보고서야 왜 제목이 ‘댄스타임’인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자기 이야기를 하는 영상이 영화가 되고, 그것을 보는 관객들이 있어서, 정말 이제는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다고.

여성들을 옥죄는 낙태 경험은 어디에다 털어 놓기는커녕 단어를 꺼내는 것 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인터뷰에 응한 한 여성은 “그때의 나를 사랑해주고 싶어서” 인터뷰를 한다고 말한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나’인데, 그때의 ‘나’를 모른척하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

정말 기억에서 지워진 일 있잖아요? 되게 어렵거나 힘든,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들 가끔 그런게 있는데, 그 기억이 그래요

영화 스틸컷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스틸컷

그리고 조세영 감독이 당부하는 한 가지는 낙태가 오로지 (이성애자) 여성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낙태를 경험한 사람들을 수소문 할 때 남성지원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낙태는 파트너로써 남성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경험이었을 테다.

자, 이제 (모두) 댄스타임!

 

[공식블로그] 자, 이제 댄스타임

[캠페인소개] My Body My Rights

http://youtu.be/jZfRXyTeR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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