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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마다 이와오 석방, 기회를 놓치지 말자

글로벌 콘텐츠 프로듀서 시로미 핀토(Shiromi Pinto)가 일본지부 와카바야시 히데키(Wakabayashi Hideki) 사무국장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2014년 5월 시즈오카에서 (왼쪽부터) 하카마다 히데코, 와카바야시 히데키, 하카마다 이와오. © Amnesty International

 

46년 동안 사형수로 복역했던 하카마다 이와오가 지난 3월 마침내 석방되었다. 와카바야시 히데키 국제앰네스티 일본지부 사무국장에게 하카마다의 석방은 무엇보다 감격적인 순간이었지만,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와카바야시 히데키 사무국장은 하카마다 이와오의 석방 소식을 들은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저는 당시 기자회견장에 있었습니다. 2014년 3월 27일 오후, 국제앰네스티의 2013년 사형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었죠.”

당시 그는 일본 국회의사당에서 수많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 때, 한 기자분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어요.”

질문 도중에 기자는 하카마다가 방금 석방되었다는 언급을 했다. 히데키 국장은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랐다.

“정말 아연실색했죠. 너무나 예상 밖의 일이라 기자가 한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후 히데키 국장은 TV 뉴스에 하카마다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하카마다 씨는 아무런 도움 없이도 무사히 교도소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어요. 직접 보고서도 그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꿈만 같았어요.”

46년 동안 사형수로 복역했던 하카마다는 지방법원으로부터 원심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으므로 재심을 허가한다는 판결을 마침내 받게 되었다. 1968년에 사형이 선고된 이래 하카마다는 세계 최장기 복역 사형수로 알려져 있다.

 

활동에 영감을 주다

히데키 국장은 2011년 국제앰네스티 일본지부의 사무국장으로 취임한 이후 하카마다를 위한 캠페인을 계속해 왔다.

“하카마다가 경찰과 검찰, 법원으로부터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알게 되고 충격과 분노에 빠졌습니다. 국제앰네스티에서 활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관계자들을 신뢰하고 있었는데,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자 거의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경찰과 검찰은 일본 국민을 위해 진실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히데키 국장이 하카마다 사례에 사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도 하카마다의 누나, 하카마다 히데코에 대한 존경 때문이었다.

“히데코 씨는 정말 조용하고도 강인한 지도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예요. 하지만 그녀 역시 이 상황의 피해자입니다. 일말의 지지를 얻기 시작하는 데만도 10년이 걸렸습니다. 지난 48년 동안 동생을 지지했고, 여기에 평생을 바쳐왔어요.” 히데키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히데코 씨가 국제앰네스티의 활동을 고맙게 여겨 주신 덕분에, 바쁘고 고령으로 힘드신 와중에도 직접 말씀을 나눠 볼 수 있었죠.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하카마다 이와오가 2014년 5월, 명예 세계챔피언 벨트를 수여받고 있다. © Amnesty International

독방에서의 46년

히데키 국장이 하카마다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5월, 전직 복싱 선수였지만 이제는 78세가 된 하카마다가 명예 복싱 세계챔피언 벨트를 수여받는 자리에서였다.

“수여식이 시작되기 전에 하카마다 씨와 대화를 나눠 보려고 시도했지만,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습니다. 46년 동안 독방에 수감되어 사형이 집행될지도 모른다는 위협 속에서 살아온 탓에, 하카마다 씨는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었어요. 수감 생활이 그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되어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하카마다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교도소 내부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운동을 하는 것만이 그에게 허락된 전부였다. 히데키 국장은 이 작은 공간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저는 독방과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히데키 국장이 말했다.

“’운동실’ 이라는 곳은 옥상에 있었는데, 길이가 5m, 너비가 2m 정도였습니다. 수감자들이 오고 가는 것을 간수가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듯이 지켜보고 있었죠.”

수십 년 간의 독방 수감 생활은 하카마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쳐, 마침내 만나게 된 누나 히데코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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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마다 이와오가 사형수로 복역할 당시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이 보낸 수많은 편지들 중 일부. © Amnesty International

6상자의 편지

하카마다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된 개인 소지품 중에는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이 보내 온 것이대부분인 편지 6상자도 있었다. 하지만 하카마다는 사형수였기 때문에 편지를 받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석방된 것에 벅찬 나머지 하카마다는 이 편지들을 아직 읽지 못했다. 하지만 누나 히데코에게 이 편지들은 큰 힘이 되어 주는 것이었다.

이제 80세가 된 히데코가 없었더라면 하카마다를 위한 캠페인은 절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히데코는 국제앰네스티가 아니었다면 하카마다의 사례가 전세계로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고,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하카마다의 조건부 석방으로 이어진 재심 허가 판결이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에서 하카마다 캠페인을 주도했던 히데키 국장에게 이 편지들이 갖는 의미는 크다.

“이러한 연대는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전세계 각지에서 온 편지가 매일같이 하카마다가 수감 중인 교도소로 도착했습니다. 하카마다를 전세계가 지지하고 있다는 표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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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마다 이와오가 2014년 5월 27일 도쿄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48년 만에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 Amnesty International

하지만 투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만약 재심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하카마다는 다시 수감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하카마다 사례를 통해 여론이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는지 여부도 미지수다.

“오심은 잘못된 것이며 막아야 하는 것이라고 누구나 말하지만,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혀 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카마다 사례를 통해 마련된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사형제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사형제도 폐지로 여론을 이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공정재판을 위한 하카마다 이와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제앰네스티 일본지부는 하카마다에 대한 즉각적인 재심을 요청하는 탄원서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참여하고, 하카마다 이와오가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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