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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인권 보기 : 무채색의 삶에 색을 더하려면

Human Rights X Arts

이 글은 서울시 자원봉사센터 http://svcblog.seoul.kr 에 기고된 글입니다

무채색의 삶에 색을 더하려면 : 미술로 인권 보기

나는 더 이상 남자가 책을 읽고 여자가 뜨개질하는 장면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숨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인간을 그릴 것이다.

에드바르트 뭉크

인권의 개념을 설명할 때 종종 로빈슨 크루소의 비유가 사용되고는 합니다. 무인도에 혼자 사는 로빈슨 크루소에게도 인권이 있을까요? 답은 ‘없다’입니다. 인권, 즉 인간다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려면 그 권리를 존중해주고 충족시켜줄 의무를 진 상대방, 일반적으로 국가나 사회로 상정되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혼자서 무인도에 사는 사람에게는 평등도, 차별도, 억압도, 자유도 없는 셈이니까요.

절규 (마분지에 유채물감∙템페라∙파스텔, 91×73.5㎝, 오슬로 국립미술관, 1893년작)

절규 (마분지에 유채물감∙템페라∙파스텔, 91×73.5㎝, 오슬로 국립미술관, 1893년작)

에드바르트 뭉크의 유명한 걸작 절규는 의사소통 부재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한 인간의 실존적 아픔을 담아낸 절규는 태양과 바다마저 꿰뚫고 휘감지만, 소실점 뒤에 그려진 타인들은 아무도 그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거나 관심 갖지 않습니다. 그의 괴로움에 자연마저 공명(resonance)하지만 정작 같은 사람끼리는 알아주지 않는 것이지요. 그것이 <절규>가 끔찍하고 무서운 이유입니다.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는 절망 뿐입니다.

예술가의 작업물에는 그의 삶과 경험, 관심사가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어머니와 누나, 동생 등 가족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고 그 자신도 류머티즘, 열병 등의 질환과 환각증세 등 정신적인 고통까지 받았던 뭉크의 그림들은 대부분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현대미술의 시작, 현대미술의 그 자체인 피카소는 어떨까요? 그는 비교적 단기간에 어려운 생활에서 벗어나 다른 화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일찍 부와 명예를 얻었습니다. 특히 친구의 자살 이후 4년간 우울한 파란색만 사용했던 ‘청색시대’가 지나가고 사랑하는 여인들을 만나고 삶에 색채를 더해가면서 그의 그림도 덩달아 밝아집니다. 그렇다면 피카소의 그림들은 대부분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만약 피카소가 극히 이기적으로 자기 삶의 안락만 추구했다면 아마도 그랬을겁니다. 하지만 피카소에게는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대단히 정치적이고 의식적인 화가였습니다.

게르니카 (캔버스에 유채, 349.3 x 776.6 cm, 1937년작, 마드리드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

게르니카 (캔버스에 유채, 349.3 x 776.6 cm, 1937년작, 마드리드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 (캔버스에 유채, 349.3 x 776.6 cm, 1937년작, 마드리드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 는 스페인 내전 중 나치에 의해 폭격 당한 작은 도시 게르니카의 참혹상을 그린 작품입니다. 1936년 스페인에서 선거를 통해 좌파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되자 우파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3년 간의 내전으로 스페인 전 국토가 파괴되었고 최소 50만 명 이상이 숨진 걸로 추산됩니다. 히틀러의 나치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프랑코의 승리 이후 처형당한 사람만 해도 3만 명에 달합니다. 이들은 위협이 되지 않는 민간인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학살했는데, 그 중 가장 끔찍한 만행은 나치가 게르니카에 퍼부은 4시간 동안의 폭격이었습니다. 이 폭격으로 1654명이 사망하고 889명이 다쳤습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노인, 어린아이, 여자를 포함한 민간인이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피카소가 폐허가 된 게르니카의 사진을 보고 그린 작품이 <게르니카>입니다.

파리를 점령한 나치 장교가 피카소에게 찾아가 게르니카에 대해 이야기하며 “당신이 그렸나?” 라고 묻자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니, 그걸 그리게 한 사람들은 바로 당신들이야”

dog

‘짖는 개’ 그림으로도 유명한 키스 해링은 이름보다 그의 그림들로 더 잘 알려진 예술가입니다. 그의 이름은 앤디 워홀과 더불어 팝아트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데, 앤디 워홀이 가벼운 주제(마릴린 먼로, 코카콜라, 통조림 깡통)를 심각하게 표현하는 반면 키스 해링은 무거운 주제(반핵, 반전, 인종차별 반대, 문맹퇴치, 에이즈 지원)를 밝게 표현한다고 평가 받을 만큼 자신의 메시지를 대중적인 그림으로 녹여내는 데에 천부적인 능력을 보인 예술가였습니다.

키스 해링은 예술가의 책임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민과 인식을 갖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술이 좀 더 대중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길 바랐고, 예술과 낙서의 경계를 무너트린 그의 시도 덕분에 현대미술은 피카소 이후로 또 한 번 전복되었습니다. 뉴욕의 지하철에 낙서처럼 그리기 시작한 그의 그림은 베를린 장벽과 피사의 성당을 비롯해 오늘날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 니스, 마드리드, 함부르크, 도쿄, 보르도, 몽트뢰 등 세계의 곳곳에서 벽화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피사에 있는 키스 해링의 벽화

이탈리아 피사에 있는 키스 해링의 벽화

키스 해링은 그 스스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서, 동성애 차별에 반대하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용감히 싸웠으며 에이즈 의식증진에도 앞장 섰습니다. 단순하고 굵은 선과 강렬한 색채로 이루어진 그의 그림 속에는 자유, 평화, 그리고 사랑의 메시지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키스 해링의 이미지를 좋아하면서 동성애를 혐오하거나 전쟁을 옹호한다면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지는 셈입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에게도 키스 해링의 작품을 즐길 자격이 있다면, 오로지 예술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원한 키스 해링의 뜻 때문일 것입니다. 31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그는 수많은 작품을 통해 세상과, 사람들과의 소통을 꿈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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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은 “나는 예술가로 타고났고,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으며 “가능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릴 생각”이며 “그림은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고 일기에 적었습니다. 예술의 책임이란 무엇일까요? 생각해보면, 그 어떤 작품도 학살, 차별, 억압 등의 ‘악한 것’들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평화를 바라는 마음들이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인류보편적인 선한 의지들이 한 개인에게 집약되어서 분출되는 것이 작품으로 표현되고 살아남아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닐는지요.

인권은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 정치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람답게 행복하고 존엄하게 살고 싶은 것과 정확하게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무시받고 차별받고 억압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인권도, 인권침해도 너와 나 우리, 그들이 없으면 발생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절규 뿐인 지옥이 되느냐, 아니면 그 사이에서 예술이 피어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느냐는 이 작은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일상에 잠식되어버린 무채색의 삶이 보다 풍요로워지길 원한다면 미술관에 가세요. 그리고 타인의 존엄한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세요. 그렇게 예술이 시작되고 삶이 흐릅니다.

 

 + 덧붙이기

1)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전한 헤밍웨이가 이때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며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보도사진으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도 스페인 내전에 종군해 작품을 남겼다.

2) 피카소는 한국전쟁(6.25)을 소재로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en Corée>도 그렸다. 제목 그대로 한국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의 참상을 그린 작품이다. 학살의 주체가 미군인지 북한군인지 그림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1980년대까지 반입금지 예술품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3)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키스 해링의 작품 자체가 “아티스트의 의지의 서명”이기에 해링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스쳐 지나는 사람이라도, 그의 어휘는 바로 알아차릴 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강승훈/아시아경제)

오노 요코 ‘앤디 워홀은 가벼운 주제를 무겁고 심각하게 표현한 반면, 키스 해링은 정반대로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밝게 그려낸다’

4) 키스 해링의 ‘짖는 개’ 그림은, 키스 해링과 마찬가지로 거리에서 활동하며 처음에는 낙서 취급을 받다가 이제는 뉴욕과 런던의 명물로 자리잡았으며 자본주의 비판과 반전 등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예술가 뱅크시(Banksy)에 의해 재탄생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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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키스 해링의 일기는 ‘키스 해링 저널’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어 있다. 이 텍스트와 연결시킬 수 있는 그의 기록들은 다음과 같다.

“대중에게도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 예술은 만인을 위한 것,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예술을 고집스레 추구하는 건 자기를 과시하는 허튼 수작일 뿐이다”

“예술이란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세상은 더 멀리 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

“나는 예술가로 타고났고, 따라서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 책임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다른 예술가들의 삶을 연구하고, 세상을 연구하면서 배웠다.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살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그림은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림은 마법처럼 존재한다.”

6) 에이즈는 동성애자만의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집단의 질병으로 볼 수는 없다. 감염경로가 이성애에 의한 것이 동성애에 의한 것보다 높다는 통계자료도 있으며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이 동성애자가 훨씬 높기 때문에 보호기구 등으로 예방하는 데에 적극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내에서 동성커플의 HIV 감염률은 이성커플의 감염률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에이즈 감염을 동성애의 결과로만 보고 죄악시하는 풍조는 잘못된 것이다.

7) 2012년 5월 4일, 키스 해링 탄생 54주년 구글 두들

http://www.google.com/doodles/keith-harings-54th-birthday

2013-10-22

8) 예술에 대한 윤리적 도덕적 논의와 접근은 복잡한 것이고, 한국 근대 예술가들의 친일 행적 논란이나 나치를 찬양한 다큐멘터리이지만 너무 잘 만들어서 예술적 경지에 이른 <의지의 승리> 같은 작품에서 보듯이 예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정치적으로 악용된 그 어떤 작품들조차 학살이나 차별 등 ‘악덕’을 권장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지금 하는 일이 ‘옳고 정의로운 일’이라는 착각을 조장하기는 해도. (전쟁을 미화하는 것은 가능해도 살인을 찬양할 수는 없다.) 따라서 예술은 다만 선을 말할 뿐 악을 말하는 것이 예술이 될 수는 없다.

9) 참고 자료

네이버캐스트 : 에드바르 뭉크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1&contents_id=2406

네이버캐스트 : 파블로 피카소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551

네이버캐스트 : 키스 해링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1&contents_id=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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