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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인권ㅣ 2013 들숨날숨, 인권과 호흡하기 3강

3강. 표현의 자유와 인권

인권입문과정 3강에서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님을 모시고 <표현의 자유, 통신의 자유>라는 주제로 강의를 열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특정한 나라, 시대에 비추어 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인권에 비추어 보아 우리 사회에서 지적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다음은 강의 내용을 큰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것입니다.

 

<명예훼손 형사처벌>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많은 나라에 명예훼손 형사처벌 폐지를 권고했다. 명예훼손 형사 처벌은 검찰이 기소하게 되어 있는데 검찰 인사나 예산은 행정부의 수반이 집행하는데 이 때문에 행정부는 검찰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로 명예훼손 형사처벌이 있는 국가들은 이것을 권력자에 반대 또는 비판하는 사람이나 문헌을 탄압하는 데 근거 규정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이처럼 명예훼손 형사차별이 탄압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근거하여 유엔인권위원회는 제도 폐지를 권고했다. 유럽인권재판소에서는 최근에 명예훼손 형사처벌에 대해 가장 많은 재판결을 내렸다. 즉, 유죄 판결된 사건들의 선고를 파기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해 미치고 있는 엄청난 위협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전 세계에서 명예훼손으로 감옥에 간 사람들의 28%는 한국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 법리를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 법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훼손 법리가 권력보위의 도구로 남용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시 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 관련 형사처벌이 있다. 피디수첩이 광우병과 관련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농림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 당했다. 이 기소의 논리 구성만 보아도 농림부 장관의 명예훼손 때문이라기 보다는 국가 정책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기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재판부가 알았던 걸까, 결국 1심, 2심, 3심에서 피디수첩은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중앙일보

ⓒ중앙일보

피디수첩이 기소를 당했던 것처럼, 정부의 주장에 대해 반박을 했을 뿐이며 또 그것이 부정확한 사실이라고 형사처벌을 한다면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주저할 것이며, 주장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정부의 언론 탄압으로 인해 ‘방송이 연성화’ 되었다. 방송의 연성화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위축 되는 것이다. 피디수첩 사건을 지켜보며 방송가에서는 자기검열이 시작되었다.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며 합법적인 말을 했다가 오히려 부당한 제재나 보복을 당할 것을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위축 효과라고 하는데, 표현의 자유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편, 자신의 명예가 과연 자신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명예는 타인이 나 자신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이다. 타인이 나에 대해 내린 평판이나 평가를 처벌할 수 있는 것일까?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생각할 때, 처벌이 아닌 그에 대한 반박이나 진실을 호소하는 방법 등으로 그것을 회복할 수는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명예훼손을 처벌할 뿐만 아니라,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하기도 한다. 이것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언론사의 ‘익명’ 보도다. 언론사에서는 명예훼손을 우려하여 김 모씨, 이 모씨 등등으로 기사화하는데 지자체 의원이나 공무원도 모두 익명으로 보도한다. 또, 분유에서 멜라민이 검출 되었는데 어떤 분유인지, 어떤 회사의 제품인지는 전혀 보도하지 않고 그 사실 자체만 보도하는 편이다. 역명 보도의 문제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분유파동’, ‘만두파동’ 때 유관업종 전체가 타격을 입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누군가의 평판을 저하시킨다고 해서, 그 말을 하지 못하게 해서 보호되는 것이 진정한 명예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제도는 서로 불리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지켜주자는 약속인가? 이것은 진정한 명예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위선이다. 사람들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회피하도록 권장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타인에 대해 불리한 진실이지만, 그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는 타인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게 하고, 진정한 명예/평판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형사처벌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사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알리고 싶지 않은 병 등이 알려진다든가 하는 사생활 침해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최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아들과 관련한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데, 친자가 아니라면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 또는 친자라면 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 놓고 볼 수 있는 섹스동영상의 유포는 명예훼손이 아닌 프라이버시 침해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상대방의 동의 없는 촬영, 배포를 처벌하는 성폭력특별방지법이 있다.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사건에 있어서 허위의 입증 책임은 검찰이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진실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형국이기에 판사들이 진실과 허위 입증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정봉주씨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하여 허위사실유표죄로 수감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는 주가조작 의혹이 ‘허위’인지 아닌지를 밝혔어야 한다. 즉, 허위사실유표죄로 수감이 되었다면 재판 과정에서 허위를 입증 했어야 한다. 그러나 재판에서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진실 명예훼손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허위임을 입증하지 못해도 진실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으므로 사건의 진위여부에 대해 대체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이처럼 허위를 처벌하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어려워 진다.

허위사실유포죄로 기소되었었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와 정봉주 ⓒ연합뉴스

허위사실유포죄로 기소되었었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와 전 국회의원 정봉주     ⓒ연합뉴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환율정책비판 사례도 허위사실유표죄로 기소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네르바는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사용하여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중소기업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가 썼던 약 280개의 글 중에는 2개의 부정확한 사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금융당국이 환율 유지를 위해 환전거래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썼는데, 공문을 쓰지 않고 전화로 지시했기 때문에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를 적용 받았다. 다른 한 건도 이와 유사한 수준이었는데 이 정도의 부정확한 사실이라면 사람들은 살면서 모두 한 번쯤은 처벌 받아야 하지 않을까.

허위사실유포죄 역시, 유엔인권위원회가 폐기하라는 권고를 한 적이 있다. 이 죄목은 명예 형사처벌과 비슷하게 권위주의 정부의 반대파를 숙청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진실된 비판에 대해서도 허위로 간주하여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제인권기구들은 ‘진실은 명예훼손에 대한 항변이 되어야 한다’며 진실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유신헌법에 따라서 만들어 졌던 긴급조치1호는 유언비어죄였는데, 이는 허위사실유포죄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아직도 독재자가 있는 짐바브웨 대법원에서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해 위헌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는 점에 비추어 보아, 우리도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점들이 많다.

그렇다면 ‘허위’는 보호해 주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유사한 ‘가설’은 어떨까? 온실가스, 지구온난화.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을 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현재 광우병 감염 가능성의 높고 낮음의 기준은 발표된 바가 없다. 검찰의 기준도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동설’을 주장했다 화형 당한 브루노라는 수도사가 있었다.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지동설이 인정받는 추세였다. 그러나 교회가 무서워서 아무도 그것을 말하지 못했다. 브루노도 허위사실유포죄로 화형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허위사실유포죄는 가설조차도 처벌해야 한다는 빌미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조항인 것이다.

 

<모욕죄>

모욕죄는 최대 징역 1년이나 벌금 30만원을 선고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모욕’을 피하고 살 수 있을까? 국가가 모욕을 평가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지 말라는 처사와 같다.

우리가 어떤 말을 전달할 때에 표현의 양식이 내용보다 중요할 때도 많다. 언어는 감정을 표현하며, 어떤 감정을 전달할 때는 특정한 표현이 필요하다.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징병에 반대하는 사람이 ‘Fuck the draft’라고 적힌 옷을 입어 기소되었으나 ‘어떤 감정을 전달할 때는 특정한 표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반해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모욕죄는 얌전하게 표현하라는 법인가?

징병제에 반대하는 포스터

징병제에 반대하는 포스터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심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부당한 모욕감을 주는 것은 처벌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또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모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같은 말이라도 듣는 입장에 따라서 달라진다. 모욕죄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의 체면이나 명예를 보호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욕죄의 기준은 사회적 지위로 판단되기 마련이다. 모욕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데 이에 반하는 모욕을 들었다고 해서 적용하려 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조항의 경우 듣는 사람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은 무리다.

표현과 물리적인 행위는 다르다.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언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표현은 물리적으로 명백하고 임박한 위험이 있을 때만 처벌해야 한다. 인종, 성별, 국적 등과 관련해 혐오적인 발언을 내뱉는 것에 대해 혐오죄를 적용한 처벌은 가능하나 모욕죄는 없어져야 한다. 허위로 누군가의 평판을 저하시킨다거나 하는 위험이 있을 때만 제재를 가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표현’ 자체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하도록 만든다. 표현에 있어서는 ‘위축효과’라는 것이 관건이다. 말이라는 표현은 위축효과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부당한 대우, 탄압을 두려워 표현하지 않는 것 또한 인권침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권침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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