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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한국 최초의 동성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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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김조광수

9월 7일,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은 ‘당연한 결혼식’을 올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동성부부가 되었다. 동성결혼에 대해 누군가는 “게이 침공의 날”이 온다며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말했지만

모두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누군가의 특별한 삶이 새로 시작되었을 뿐이다.

김조광수 감독과 성공회 신앙 안에서의 성소수자 차별과 그것을 끌어안아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을 함께 관람하고 앰네스티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간담회 내용과 더불어 가진 인터뷰를 정리했다. (사진 제공:김조광수 감독)

 

호모포비아, 혐오에 대하여

“동성애는 질병이다”라고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는데 정신의학계에서 이제 어느 누구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1] 동성애를 질병으로 간주하고 고치려고 생체실험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죽거나 자살한 사람이 많으며 결국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성적지향은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로 남았습니다.

모르고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알고 나서도 여전히 동성애를 범죄로 생각하고 고치고 성적지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혐오’입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무데서나 섹스하려는 상대만 찾는다”며 동성애자는 사랑을 모르고 육체적으로 성욕을 채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저처럼 한 사람이랑 살겠다고 결혼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들에게 ‘살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 아닙니까.

이성애자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반면 동성애자는 ‘왜 태어났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며 스스로 사는 것에 대한 수많은 고민을 하는데,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혐오입니다. 동성애자로 살면 안 된다는 혐오만 걷어낸다면, 상식적인 선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이 단순한 혐오 때문에 논의가 되지 않습니다. 몇 십 년 전 흑인에게, 그 전에는 여성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혐오의 시선을 벗고 혐오의 시선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것이 혐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소통이 가능한 사회로 한발 다가가지 않을까요.


[1] 세계보건기구(WHO)는 1990년 5월 17일 동성애를 국제질병분류에서 삭제했다. 매년 5월 17일을 ‘세계 동성애혐오 반대의 날(IDAHO)’로 정해 이것을 기념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두 분의 삶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일단 결혼을 한 첫째 이유는 일단 저희가 행복하려고 결혼한 거에요. 운동하려고 결혼하나 보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것도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두 번째 이유이고 중간에 정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만이라면 안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첫째로 너무 결혼이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변화는, 커플끼리 지내다 싸울 때가 있잖아요. 그 전에 다툼이 있었을 때는 헤어지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이렇게 다툼이 크면 이번에는 헤어져야 하나?’ 이런 것이 기본적으로 있는 거에요. 결혼하고 나서 이런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싸우고 마음이 좋지 않아도, 헤어진다는 생각보다는 이걸 어떤 식으로 화해할까, 이런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런 긍정적인 변화 같은 것들이 저한테도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아 결혼이라는 걸 하니까 이렇게 사람이 변하는구나’ 저는 사실 이성애자 여자들이 ‘왜 결혼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결혼하면 여자들한테 불리한 게 너무 많은데 왜 결혼을 해?’ 그랬었는데 이런 자기 변화가 있어서 결혼을 하고도 행복하게 사는 여성들이 많구나, 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저희는 동거를 오래했었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을 줄 알았는데, 결혼식을 올리고 난 후에는 양가의 가족들이 이제 정말 가족으로 생각하시더라고요. 그 전에는 그냥 당신의 아들이랑 같이 사는 사람, 당신의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 이런 가족은 아니라는 그런 뭔가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있었습니다. 오늘 김승환 씨 어머님 친구분의 아드님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그 전 같으면 부담스러워 하셨을 텐데 지금은 당연히 가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그런 변화들.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진정한 일원이라고 생각해주시는 그런 소중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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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반향이 작지 않습니다

조카가 동성결혼에 대해 학교에서 토론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물었습니다. “좋은 얘기 나왔니?” 조카가 대답했지요. “아니 애들이 혐오했어”

그래도 그 아이들이 학교에서 그런 얘길 할 수 있는 자체가 좋아 보입니다. 조카는 삼촌이 어떤 사람인지 애들이 얘기할까봐 두려웠나 봅니다. 그래서 조카는 삼촌이 TV에 자꾸 나오는 게 싫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삼촌을 욕 하는 게 자기는 싫은 거지요. “어제 그 호모새끼 나와서 또 이렇게 했대” 누군가 그러면 멱살잡고 싸우고 싶지만 “너 호모 조카야?”라고 할까봐 말도 못하고 결혼한다고 해서 조카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결혼식에 조카도 왔었고요, 조카가 학교로 돌아갔을 때 여전히 혐오하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긍정적인 얘기를 하는 애들도 예전보다 많아졌다고 하더군요. 언제 “나는 김조광수의 조카에요” 라고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겠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꿔나가야 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해야한다면 그걸 깨달은 사람이 시작하는 게 맞고, 주변에 알리는 게 맞습니다.

저는 커밍아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편입니다. 준비된 커밍아웃은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커밍아웃을 하면 저도 너무 행복하지만 가족들, 가까운 사람들이 변화합니다.

제가 여동생이 둘이 있는데 여동생들도 커밍아웃 해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제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곰곰이 생각해봤다고 합니다. 나는 혹시 오빠한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 없이 던진 “오빠는 왜 여자 같아” 이런 이야기. 아니면 동성애에 대해서 생각 없이 던진 어떤 이야기 “호모들 다 그렇잖아” 이런 얘기를 무심코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거지요.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이후에는 그런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주변에 얘기하기 시작한 거에요. 누가 동성애 혐오 발언하면, “우리 오빠 동성애자니까 그런 얘기 하지 마시라”고요. 그러면 적어도 그 사람은 제 동생 앞에서는 그런 말은 하지 않겠죠. 그 전에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여러 가지 이미지와 이야기들만 갖고 혐오했다가 자기가 아는 친구의 오빠가 동성애자래. 그럼 그 사람들도 변화할 수 있겠죠.

언론에는 우리를 지아비 부 지아비 부를 써서 다른 부부지만 부부(夫夫)라고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어떤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법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되어 있지는 않지만, 동성결혼을 아예 할 수 없는 것과, 뭔가 불편하고 힘들지만 할 수 있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는데, 요즘 기자들이 대부분 그렇게 써주시더군요.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가 어떤 행사에 참석했다. 어떤 말을 했다” 지금 당장 확 변하지는 않겠지만, 차츰차츰 우리의 결혼을 계기로 변화해 가겠구나, 그런걸 느끼고 있습니다.

lim769월 7일에 결혼하시면서 그 사이 추석이 있었습니다. 부부의 첫 명절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트위터에 ‘우리는 따로 간다. 각자의 집으로 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성애자 커플과 달라서 그런점이 좋다’ 라고 했다가 “오 정말 좋아요”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역시 이성애자 동성애자를 떠나서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 똑같아”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반응을 접하면서 ‘아 역시 나는 남자구나’ 라는걸 또 느끼긴 했어요. 저희는 아들과 아들이어서 각자의 집에서 ‘아들이니까 당연히 각자의 집으로 온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내가 만약에 김승환 씨 집에 먼저 간다, 그러면 우리 집에서는 너무 섭섭해 할 것 같고, 저쪽에서도 마찬가지. 도리어, 저는 차남인데 그쪽은 외아들이거든요. “아니 왜 내 아들이 그 집에 먼저가”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그냥 우리는 각자 가자. 그런데 각자 가도 저희가 좋은 것은 그걸 섭섭해하지 않아요. 상대방의 부모는 내가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 아들인데 당연히 거기 갔겠지’ 그런데 만약 오면 너무 좋아하는 거죠. 앞으로 변화가 있다면 이를테면 설날에 김승환 씨 집에 먼저가면 추석에는 저희 집에 먼저 가는 식으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저희 형수님이 저보다 2살이 많은데 26살에 결혼을 했어요. 그러니까 지금 51세인데 26에 결혼을 했으면 정말 25년을 혼자 며느리로 지낸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동성애자인걸 모를 때는 도련님 빨리 결혼해달라고, 그랬는데 이제 그래서 형수가 원하는 ‘어떤 결혼’을 하긴 했는데, 이건 며느리가 생긴 게 아니라 입만 하나 더 늘어난 거잖아요, 형수 입장에서는. 근데 이제 형수님 같은 경우엔 여성의식이 그렇게 높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여자니까 당연히, 며느리니까 당연히’ 스트레스는 분명히 있을 텐데 표현을 잘 안 했던 분인데, 지난번 저희 아버지 기일에 혼자서 제사상을 준비한 거에요.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음식을 준비하지 않은 거죠. 형수 입장에서는 입이 이렇게 나올 수 밖에 없는 게, ‘쟤는 며느리라고 불러야 될지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지만, 이른바 며느리라는 비슷한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이 와서 일도 안하고 먹기만 하는 거니까’ 그런데 갑자기 저희 어머니가 제사를 지내다가 “환이도 와서 절해야지” 하니까 형수는 “쟤는 절까지 하는 거야?” 이렇게 된 거죠. 일도 안 했는데 절까지 한다. 남자라는 이유로.

그전에 저희 형수는 그냥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여성이었어요. 일만 하는 중년 여성. 그런데 이제 이른바 남자 며느리가 들어와서 어떤 변화를 겪으시는 거죠. 그래서 다음부터는 우리도 준비하고 엄마도 준비하고 각자 나눠서 준비하고 형수도 절하고, 그런 변화가 생겼습니다. 형수가 이야기를 하지 않고 꿍하고 있었으면 도리어 불화가 생겼을 텐데, 이야기를 해주면서 변화가 생긴 거죠. ‘동성애자들의 결혼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줄 수도 있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김조광수 감독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 중에도 비혼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 분들이 굳이 왜 결혼이 필요하냐고 묻지는 않았는지요.

우리의 평등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려는 결혼은 이성애자 결혼의 답습이 아닐 거다(비혼자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순적 결혼제도로써의)’ 분명히 저는 그런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확인하는 시간을 겪으면서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격한 반응으로는 ‘(동성애자 중) 비혼도 많은데 네가 그렇게 공개적으로 결혼하면 동성애자들이 다 결혼하고 싶어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공개적으로 결혼하지 말라’ 이런 얘기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건 이를테면 비혼 이성애자들이 결혼하는 이성애자들한테 ‘네가 결혼하면 이성애자는 다 결혼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할거니까 결혼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은 겁니다. 그것은 내 권리인 거죠.

또 하나는 성소수자의 다른 이슈들을 (동성결혼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그런 측면이 당연히 있겠죠. 우리 사회에서 없었던 일이니 당연히 관심을 가지겠지요. 그러면 이걸 통해서 다른 이야기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이게 빨아들일 것 같으니까 ‘하면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저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고 너무 소극적인 생각인 거지요.

결혼 후 호칭에도 변화가 있나요?

호칭문제는 고민입니다. 서로 간에 부르는 호칭에는 변함이 없고, 누군가 당사자를 부를 때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되니까. 그런데 누구에게 소개할 때, 예를 들면 저의 파트너를 저의 어머니가 다른 분에게 소개할 때, 그냥 그 전에는 ‘그 광수랑 사귀는~’ 이러면 되는데 이제 결혼을 했잖아요. 그런데 며느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뭐라고 해야 되지? 그렇다고 “우리 아들이랑 결혼한 사람이야” 이것보다는 뭔가 다른 호칭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새아들’이라고 얘기해보자고 했는데 아직은 낯설어서 그 말이 잘 안 떨어지시나 봐요. 이런 것도 이성애자 중심의 결혼제도 밖에 있어서 생기는 문제인데, 좀 다른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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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네스티 대학생네트워크의 청원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연애’와 ‘애인’의 정의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언어나 관습적인 면에서 아직도 변화가 필요한 것은 많습니다. 가장 시급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나요?

일단 ‘결혼’이 제일 그렇죠. 사랑이 바뀌고 결혼은 안 바뀌었잖아요. 여전히 ‘남녀의 결합’으로 되어있으니까. 그것만이 결혼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가족’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족이 예전에는 혈연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벗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이미 혈연 중심이 아닌 가족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입양은 혈연이 아닌데 가족인데, 근데 그냥 아버지의 성을 따르면서 마치 혈연인 것처럼 포장하지요.

어떤 사람은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허용하면 동물과의 결혼도 허용해야 된다”고 말도 안 되는 혐오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가족을 핏줄, 혈연, 섹스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혐오를 만듭니다. 외국의 경우 어린 나이에 독립을 하면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집안의 경제적인 지원이 전혀 없이 가족과 멀어지게 되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나이 든 동성애자 중에 주거공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공동체로서 이런 친구들과 같이 살며 가족으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섹스를 하지 않는 ‘가족’은 실제로 많습니다.

동물도 마찬가지로 가족의 결합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이해하지만 법적으로 그것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의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낱말의 뜻뿐만이 아닌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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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김승환 결혼식 날 청계천에 나가 캠페인을 펼친 앰네스티 F2F 캠페이너들

동성커플은 이해할 수 있지만, 동성커플의 입양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의견에 대하여

몇몇 나라들은 이미 그 논쟁들도 많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동성결혼뿐만 아니라 아이의 입양도 합법적으로 허용된 나라가 많습니다. 그 나라들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라들에서는 그런 우려들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밝혀졌습니다.

동성커플이 입양하면 그 환경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허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선후(先後)가 잘못된 것입니다.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면 상처를 주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 때문에 아이를 입양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미혼모의 아이, 편부모의 아이, 이주노동자의 아이, 다문화가정의 아이, 우리나라에선 혐오 받고 차별 받잖아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까요? 장애인의 아이에 대해 “장애인이 애를 제대로 키우겠어?” 라는 생각이 있는데 그럼 장애인은 아이를 낳을 수 없나요? 이혼한 가정은 이혼하지 않은 가정으로 아이를 보내야 하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동성커플이 아이를 키웠을 때 ‘사회적인 편견과 혐오 때문에 아이가 받을 상처’라는 것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편견과 혐오는 지금 이미 발생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아이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그 환경에 놓여있지 않도록 사회제도를 바꿔야지, 허용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성커플이 기르는 아이가 이성커플이 기르는 아이에 비해 불행할거라 생각하는 것이 편견입니다. 그 아이들은 “나는 아버지가 둘이었을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4살, 7살에 입양된 아이들이 아버지가 둘인데 행복하게 성장했습니다. 이성커플이 키우면 다 행복할까요? 이른바 ‘정상가족’이라고 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모두 행복할까요? 어떤 가정인지가 중요하지,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외국에 가면 게이 퍼레이드를 하잖아요. 지난 6월에 샌프란시스코 퍼레이드 갔습니다. 100만 명이 모인다는데,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침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샌프란시스코 중심도로 끝에서 시청까지 하루 종일 사람이 바뀌어가면서 걸어갑니다. 인도에도 그들을 축하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계속 바뀌어가는걸 보니 정말 100만 명이 되겠더군요.

저는 동성애자 가족들과 같이 퍼레이드를 했습니다. “나는 아빠가 둘이에요, 엄마가 둘이에요.” 미국은 이미 그런 아이들이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청소년, 성년이 된 사회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난 아빠가 둘이어서 행복해요” 라고 말하는 애들 대부분은 이성애자입니다. 아빠가 게이,엄마가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그 아이들이 동성애자로 키워지지는 않아요. 그 아이들이 아빠가 게이여서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그런 사회가 된 거죠

만약 제가 아이를 기르고 싶다고 하면, 내 아이가 받을 상처에 대해서 저보다 남의 걱정이 더 클까요? 저도 고민이 많아요. 저는 특히나 알려지고 드러난 동성애자 커플이잖아요. 안 알려진 커플이어도 상처를 받을 텐데, “너네 아빠 김조광수였어?!”라고 한다면. 조카도 삼촌이 동성애자인걸 숨기고 살려고 하는데 아이가 그걸 어떻게 스스로 해결할까 하는 고민이 많지요.

부모가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행복감을 줄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저는 아직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제가 자신이 없는 건 내 문제인 거지 사회가 그렇기 때문은 아닙니다. 저는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 출퇴근이 불분명하고 외국에도 자주 나가고 그럴 때마다 누구한테 맡길 환경도 아니고…… 그런 저런 것 때문에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입양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요즘 LGBT 청소년을 많이 만나는데 부모한테 버림 받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부모가 가진 종교적인 이유로 성소수자인 아이를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버려졌다고 표현하면 안되는데.. 하여간 부모랑 떨어진 그런 아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성소수자 청소년들 중에서도 신앙을 갖고 있는 친구들은, 예를 들면 교회에서도 “차별금지법 반대한다고 서명해라, 동성결혼 반대한다고 서명하라”고 하면 ‘주님도 나를 허락하지 않는 거야’라고 내몰리게 되는 거지요. 그런 청소년들을 입양할까, 후원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을까 그런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LGBT 청소년을 위한 상담센터를 정해신 박사님과 같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친구사이 홈페이지에 오면 교사지침서(http://chingusai.net/xe/library/152458)라는 게 있습니다. LGBT 청소년을 대할 때 선생님들도 교육이 필요해요. 그래서 성소수자 청소년을 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선생님의 경우에도 그런 게 있다고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에 동성애를 검색하면 이른바 섹스 상대를 찾는 그런 곳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더 취약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기 스스로를 혐오할 수도 있어요. 그 사람들 중에서도 좋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잘못 되면 그런 어른들한테 성적인 대상으로만 아이들을 생각하는 어른들한테 이용만 당할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때 인권단체가 필요한데, 같은 고민을 했던 선배들이나 동성애자 인권연대 같은 경우 청소년들의 활동이 굉장히 활발하거든요. 이야기와 고민을 함께 나눌 친구를 사귀는 게 중요합니다.

 

양성애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등, 성소수자(LGBT) 안의 차별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LGBT 안에서의 차별과 혐오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것은 사회 전반적인 문제와 일맥상통합니다. LGBT라고 다들 진보적이지 않습니다. LGBT지만 인권의식이 떨어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주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고, 게이 남성 중에서도 중산층 이상이 많고, 사회적으로 기득권이 많을수록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 안의 혐오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게이들 안에도 여성혐오가 있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웨딩사진 찍을 때 턱시도도 입었지만 웨딩드레스도 입었잖아요. 그것에 대해서 게이들 사이에 극도의 혐오가 있었습니다. ‘왜 너희가 그렇게 여성성을 드러내서 사람들이 가뜩이나 게이에 대해서 혐오하는데 더 혐오하게 만드냐’는 거죠. 물론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다라는 것을 우리도 알고는 있죠. 그렇지만 남자가 치마 입는 게 왜 혐오야? 그건 정당한 것이 아니잖아요. 자기들도 혐오를 받고 있으면서, 혐오를 받고 있는 존재가 어떤 특정한 다른걸 혐오한다는 것은 더 나쁩니다. 이성애자 혐오보다도 더 나쁜 거라고 저는 이야기하는데, 인권의식이 없으니까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정말 계속 싸워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누구를 짓밟는 싸움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싸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공감대가 LGBT 안에서도 차츰차츰 넓어지고 있습니다.

 

‘게이는 잘 생기고, 매너 좋고, 요리 잘하고, 감각적이다’ 라는 식의 미디어가 만들어낸 정형화(Stereotype) 된 게이의 모습이 불편하지는 않나요?

그런 거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자가 없는 것처럼, 아예 언급도 안 하는 것보다는 어쨌든 긍정적인 효과는 있다고 봅니다. 게이를 다 일반화시키는 부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있기 때문에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이제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자꾸 등장시켜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 문제는 다양성의 차원에서 이후에는 해결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그런 식으로 소비되면서 어떤 오해들을 만들어 가는 게 분명히 있지만 이후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좀 더 확산되고 넓어지면서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등장하는 매체들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미국 같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영화나 드라마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들은 주로 그런 것들이 들어올 테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도 어떻게 보면 한정적입니다. 예를 들면 멜로 중심이기 때문인데, 멜로는 예쁜 사람이 주인공일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이성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애 멜로도 선남선녀가 나오지 예쁘지 않은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진 않습니다. 멜로는 약간의 판타지가 필요하니까. 그것은 멜로라는 장르가 가진 어떤 한계이고, 다른 장르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되겠죠. 외국 같은 경우에는 퀴어 코메디, 퀴어 액션, 퀴어 호러 등 정말 다양한 영화들이 많거든요. 그런 영화들에는 정말 다양한 모습의 게이들, 레즈비언들, 트렌스젠더들이 등장합니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조금씩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15살 때부터 30살까지 스스로를 혐오하면서 살았다고 하신 바 있습니다. 자기혐오의 과정을 어떻게 이겨내고 극복하셨는지요.

행복감으로 느끼려면 스스로를 긍정해야만 합니다. 소수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수자는 느낄 수 없는걸 금방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냥 생물학적 남성으로, 영화 감독, 영화사 대표 이렇게 살았으면 나도 모르게 가졌을 이성애자 남성의 권위 의식 같은 게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어릴 때는 너무 몰라서 혐오했습니다. 주변에서 동성애자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이야기할 때,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상대를 찾고 그냥 단지 성욕만을 해결한다는 식으로 동성애자를 이야기했습니다. ‘화장실에서 상대를 찾는 사람들’ 딱 그런 틀로 저한테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모르면서 너무 혐오한 거죠. 나도 저렇게 살겠구나. 꿈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단지 섹스할 대상을 찾기 위해서 화장실 뭐 이런 데를 전전하겠구나. 그러니까 저도 제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웠습니다.

대학에 가서 또 다른 문제로 혐오를 했는데, 제가 학생운동을 했던 곳이 NL그룹이었습니다. 거기에서는 “동성애는 미제의 썩은 문화가 잘못 유입된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속한 그룹에서 저를 혐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성애자인 것을 부정하고 싶고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극복하려고 여자를 사귀어본다거나 하는 등의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이성애자로 살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동성애자로도 살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서른살 무렵에 우연히 어떤 형을 만났는데, 그가 자기는 스웨덴으로 이민 갈 것이라면서 하는 말이 “스웨덴에 가면 우리 같은 사람들을 게이라고 부른다. 호모도 아니고 동성연애자도 아니고” 그리고 단체도 만들고 인권운동을 한다는 거에요. 저는 그때까지 운동과 동성애는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운동과 동성애가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안거에요. 그걸 알게 되면서 동성애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었고, 사회가 나를 혐오하니까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나를 혐오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나면서 저는 정말 달라졌습니다. 저는 사춘기 전까지 정말 밝고 명랑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사춘기 이후에는 근원적인 우울함이 있었습니다. 그 근원적인 우울함을 고친거죠. 그 때 어떤 생각을 했냐면, 내가 왜 지금까지 나를 혐오해 왔을까. 첫째는 ‘자기 꿈을 실현하는 동성애자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커밍아웃해서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여주겠다. 그래서 내 뒤에 오는 사춘기를 겪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나처럼 모르면서 혐오하지는 않게 해야 되겠다’ 그것이 첫 번째 결심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앞으로 이 운동과 나의 삶을 잘 결합시켜서 스스로 행복한 동성애자로 살면서 사회도 변화시키는 일들을 열심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성애 인권운동에 대해서 조금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성애자들한테도 이런 얘기들을 전달해주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갖고 있는 어떤 것을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왜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까? 왜 나는 이런 지역에서 태어났을까? 왜 나는 여성으로 태어났을까? 왜 나는 장애를 갖고 있을까? 이것을 극복하려고 하니까 괴로운 것입니다. 극복할게 아닙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게 자기 잘못도 아니고 여성인 게 뭐 어때서. 그러나 여성으로 태어나서 자기가 받는 불이익을 먼저 생각하니까 그걸 극복하고 싶은 건데, 그러나 여성이 남성이 될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사회를 바꿔야죠. 자기 문제가 아니고 사회의 문제인데, 자기 문제라고 생각해서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겪고 있던 어떤 문제라는 것을 ‘나는 극복한 게 아니라 그걸 인정하면서 행복해졌으니까, 여러분도 인정하고 행복해지세요’ 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동성애자들한테는 동성애자들한테 대로, 이거는 그냥 인정해야 될 문제지 극복해야 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 혐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이성애자들에게도 자기가 갖고 있는 어떤 문제라는 것을 극복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자기 자신을 안아주라고. 저는 딱 그 과정을 겪었습니다.

보통은 ‘나의 안 좋은 점’을 더 크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의 문제지. 그런데 특히 신자유주의는 그걸 개인의 문제로 돌리잖아요. 예를 들면 실업이 만연하고 있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는데 그것을 개인에게 돌려서 ‘스펙이 부족한가봐’ ‘더 열심히 뭔가 스펙을 쌓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좌절하게 만들죠. ‘나는 왜 부잣집 아들로 안 태어나서’ ‘나는 왜 외국에 어학연수를 못 다녀와서’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돌린단 말이에요. 그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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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이성애자 커플도 자신들의 사랑에 운명성을 부여합니다. 동성애 커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지만, 이성애 커플과 같으면서도 또 다른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동성연애의 일반론에 대해 들려주세요.

한국의 동성애 운동이 여태까지는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똑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했던 과정이었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이성애랑 똑같아요” 본질적으로 같죠. 사랑이라는 점에서. 그렇지만 형태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생각이 다르듯이 정말 달라요.

지금은 ‘우리는 이렇게 달라요. 달라서 좋아요. 달라서 행복해요’ 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성애자들은 이성애자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부분 이성애자인 줄 알기 때문에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연애가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동성애자보다 적습니다. 그런데 연애의 조건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외모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만나봤는데 너무 다르면, 취향이 너무 다르면 못 사귀잖아요. 좋아할 수는 있지만, 사귈 수는 없잖아요. 우리도 똑같거든요. 그런데 이성애자들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 사람이 어떤 취향이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외모는 끌려도 안 사귀죠. 그렇지만 동성애자들의 경우에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사랑할 수가 없잖아요. 저희는 특정한 공간으로 가야 합니다. 자기들이 동성애자라고 드러내는 공간.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공간. 공개된 단체나 커뮤니티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나마 그 안에서 일상생활을 하니까 좀 이성애자와 가까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 단체가 아닌, 단체에 안 나오는 사람이 거의 90% 이상일 테니까.

만약 누군가 진짜 좋아하는 상대를 만난다면 이성애자들보다 훨씬 행복감이 충만할 겁니다. 이성애자들도 그런 신화가 있는데 (상대적으로 소수들끼리인) 동성애자한테는 더 크겠죠. ‘내가 너 같은 사람을 만나다니 나는 너무 행운이야’ 이렇기 때문에 훨씬 행복감이 많아요. 사귀고 있는 친구를 자기 친구들한테 소개하는 것은 이성애자들한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잖아요. 하지만 동성애자는 “친구한테 나를 소개한다고? 어머 너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라는 식으로 별거 아닌 일에 우리는 행복감을 많이 느낍니다. 동성연애는 이성연애와는 사랑한다는 면에서는 본질적으로 같지만 사랑의 방식 같은 것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있는데 누가 볼까봐 떨어져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안타까움도 있지만 반대로 어떤 행복감도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사랑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라도 사랑해서 얼마나 좋으니?’ 이런 것이지요. 그리고 동성애자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게 아니거든요. 게이와 레즈비언이 다르고 트렌스젠더는 또 다르지요. 그래서 이제는 동성애자 혹은 성소수자 LGBT 각각이 자기들의 다른 점도 이제는 많이 이야기해야 될 것 같습니다.

 

외국이나 국내나 게이는 수면 위로 많이 나왔지만 상대적으로 레즈비언은 그렇지 않습니다.

외국도 마찬가지인 이유가 기본적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레즈비언들이 훨씬 커밍아웃하기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뉴욕도 게이 커플의 평균 소득 수준이 이성애 커플보다도 월등히 높아요. 남자와 남자잖아요. 사회적으로 평균 소득이 여자가 남자보다 낮잖아요. 그러면 레즈비언 커플은 이성애자 커플보다도 낮겠죠. 그러니까 게이들은 돈이 많으니까 소비를 더 할 수밖에 없는 어떤 환경에 있는 거에요. 레즈비언들은 소비를 하고 싶어도 돈이 적으니까 이성애자 커플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테면 게이 업소가 훨씬 많고 레즈비언 업소가 적고.

그리고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보다 일차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가 쉽지가 않잖아요. 만약 게이바에 여자가 온다? 여자가 와서 난동을 부려본들 여긴 남자들이니까 금방 제압을 할 수가 있겠죠. 근데 레즈비언바에 남자가 온다? 어려운 문제겠죠. 게다가 호모포비아들 중에는 치료해준다는 명목으로 성폭행하는 사례가 정말 무수히 많거든요. 남성이 남성을 성폭행하는 경우도 있고, 혐오한다고 하면서도 성폭행을 하는 거에요. 모욕을 주기 위해서 성폭력을 하는 거죠. 여성에게 가해지는 그런 성폭력이 진짜 많거든요. ‘네가 남자 맛을 몰라서 레즈비언으로 사는 거기 때문에 내가 고쳐주겠어’ 이런 것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남성을 못 들어오게 하는 거죠.

근데 그런 폐쇄성을 가지고 또 혐오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희들 스스로도 사람들에게 열려있지 못하면서 뭘 받아들여달라 그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모르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 그런 것들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걸 통해서 그 사회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도 연대해야 하는 것처럼 게이와 레즈비언도 연대는 해야 하는데 그 연대가 쉽지는 않아요. 왜냐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 다른 것을 스스로 많이 인정하고 함께하는 것이 쉽진 않습니다. 저희 단체도 처음에는 게이와 레즈비언이 같이 만들었어요. 근데 1년 만에 헤어졌습니다. ‘우리 단체로 같이 있으니까 더 나빠진다. 근데 굳이 같이 있으면서 나빠질 필요는 없겠다. 그래서 필요할 때 연대하자.’ 연대할 수 있는 일들이 많죠. 예를 들면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던가. 이렇게 같이 해야만 되는 일들은 같이 하지만 일상 속에서 괜히 부딪칠 필요는 없겠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레즈비언 중에서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많거든요. 당연하겠죠, 여성의 권리를 더 많이 주장해야 하니까. 그런 사람이 보기에는 게이들은 너무 이상한 거에요. 너무 소비적이고 너무 자신을 많이 꾸미고. ‘나는 스킨도 바른 적이 없는데 쟤네는 화장품을 일곱 가지나 쓴단 말이야?’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을 상품화하는 것 같은데 게이들은 좋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거죠. 너무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까 오히려 부딪치는 경우들이 많았었어요. 요즘은 필요할 때 연대하고 평소에는 그냥 각자 존중하고 신경 쓰지 않습니다.

 

성소수자가 만약 ‘나에게 커밍아웃을 해온다면’

누구나 다 커밍아웃을 하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솔직해지고 싶으니까.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숨기게 되면, 그 자체가 상처가 되니까요. “왜 여자친구 안 사귀어”에 뭐라고 대답하느냐는 거죠. 거짓말을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다못해 그런 작은 것도 상처란 말이죠.

동성애자에게는 커밍아웃을 할 때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금까지의 이 좋은 관계가 다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누군가 만약 나에게 와서  “나 사실 동성애자야” 라고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나를 믿는 거에요. 내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것 같으면 말을 하지 않지요. 이 사람을 정말 믿는 것입니다. 최소한 수십 번은 망설이다가 고백하는 겁니다.

그것은 자기고백이지, ‘대쉬’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쉬’라고 착각을 해요. 그랬다면 커밍아웃이 아니라 사랑고백을 했겠지요. 그냥 동성애자라고 자기정체성을 털어놓는 건데 그걸 대쉬라고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동성애자가 나를 좋아할까봐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은 동성애자끼리 만나기 굉장히 쉽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굳이 이성애자를 짝사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외모가 좋고 마음이 잘 통하고 끌려도, 이 사람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그러니까 별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변의 성소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너무 100%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해 안 되는 게 당연합니다. 이성애자인데 어떻게 동성애자를 이해하나요. 그냥 그런 존재라고 인정하면 되는 겁니다. ‘얘는 왜 남자를 좋아할까’ ‘남자가 왜 남자를 좋아할까’ 라고 너무 깊게 고민하시면 당연히 이해가 안되죠.

저희도 이성애자가 이해가 안 되요. 멀쩡하게 괜찮은 남자 두고 별로인 여자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되요. 예를 들면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조정석)랑 사귀면 되는데 왜 수지랑 그러려고 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어요. 납뜩이가 얼마나 괜찮은 남자인가요? 말도 잘 통하고, 항상 옆에 있어주고. 그냥 ‘아, 재훈이는 수지를 좋아하는구나. 내가 정석이가 끌리듯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있는 현상이니까 그냥 인정해주세요. 그 사람이 내가 가진 어떤 것과 비슷하게 그냥 누굴 좋아하는구나 라고. 그 현상 안에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해 안되니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특별히 동성애자니까 뭔가 내가 도와줘야 되나? 이건 좋지 않습니다. 제가 밝은 퀴어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예전에 <후회하지 않아>를 제작했을 때 그걸 본 많은 이성애자들이 ‘아 그래 힘들구나’ 라는 반응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동성애자라서 불편한 거지 불행한 건 아니거든요. 그럴 거까진 없어요. 동성애자가 불편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드는 배려 정도가 중요하지 그 사람을 위해 특별히 뭔가 도움을 준다는 것은 도리어 더 불편할 수 있고 오히려 더 가까워지기 어렵습니다.

 

주변에 동성애자 친구가 있다면, 저는 그 친구들한테 연인이 아닌 동성애자 친구가 꼭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이성애자도 연인 말고 이성인 친구가 필요하잖아요. 동성애자도 동성애자 친구가 꼭 필요해요. 그 친구가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많은 동성애자들이 연인은 찾지만 친구를 찾는 경우는 드뭅니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인권단체 나오는 것도 방법이고 그게 부담스럽다면 취미 동호회도 많아요. 동성애자도 등산하는 애들, 수영하는 애들, 농구하는 애들, 축구하는 게이들 다 각자 취미 모임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자기 영역을 넓히는 게 삶을 윤택하게 하고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감독님 본인에게 특별한 퀴어영화는 어떤 것인가요?

<밀크>. 앞으로 스스로를 긍정하면서 어떻게 살겠다 그런 결심을 했을 때 밀크라는 영화를 보면서 더 많이 확고해졌습니다. 앞으로 나의 삶은 이런 방향으로 더 많이 노력하면서 살아야 되겠구나. 그게 어떻게 보면 의무감일 수도 있는건데, 저는 의무감이라고만 생각하진 않고 그것이 주는 행복감이 되게 크거든요. 예를 들면 드러내고 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아주 공개적으로 사는 것이 주는 불편함이 있지만 저의 삶을 통해서 변화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받는 행복감도 분명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밀크>가 퀴어 영화 중에 인생의 영화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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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영화를 만들게 될 텐데, 퀴어 영화를 만듦으로써 갖는 특별한 지향점이 있는지

없습니다. 저는 제가 동성애자니까 퀴어영화를 더 잘 만들겠다, 그래서 만드는 거에요. 내가 잘할 것 같으니까. 또 내 이야기를 다루는 게 내 입장에서 쉽고, 재미있고, 그래서 하는 것이라 퀴어 영화를 통해서 어떤 목표를 이루겠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그저 모르면서 혐오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우리를 그냥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내는 차원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지금까지 너무 멜로 중심으로 해와서 앞으로 코미디라거나 호러라거나 좀 다양한 장르의 퀴어 영화를 해볼 생각입니다.

 

배우 웬트워스 밀러는 러시아의 심각한 동성애 혐오에 우려를 드러내며 연대 메시지를 보내는 의미에서 커밍아웃을 한 바 있습니다. 여전히 동성애자이거나 성소수자를 옹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심하게는 사형을 당하거나 괴롭힘 당하는 사람들이 세계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낸다면

저희(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도 국제적 연대 차원에서 서명을 보내는 일 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 어려운 환경이지만 사회는 결코 뒤로 가지는 않잖아요. 어떤 반동적인 상황으로 잠깐 뒤로 가긴 하지만 계속 앞으로 가고 있잖아요. 그걸 믿고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웬트워스 밀러

앰네스티 회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몇 년 전까지는 앰네스티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것을 접하면서 앰네스티를 좀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앰네스티가 지금처럼 많은 활동을 하면 저처럼 잘 몰랐다가 자기 일을 근거로 해서 앰네스티를 알게 되는 분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활동해주시면 너무 고마울 것 같고요. 앰네스티가 활동하는 것 자체가 어떤 활동이든 간에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적인 차원에서도 더 나은 사회로 가는 데에 기여하는 어떤 방법이 될 거니까. 지금보다 더 많이, 아니면 지금처럼 열심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드립니다. 특히나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 바꿨을 때 정말 이건 우리가 했으면 도리어 안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앰네스티는 객관적인 공신력을 갖고 있는 기관이잖아요. UN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기관이고 여러 가지 공신력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쉽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앰네스티가 해 줄 수 있는 다른 역할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역할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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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3년 004호 ‘앰네스티가 만난 사람’에 실린 글로서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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