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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다 말 좀 해주시오. 내 그것만 바라고 있습니다”

“잘못했다 말 좀 해주시오. 내 그것만 바라고 있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1991년 8월 14일, 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위안부’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명백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피해자 할머니들이 바라셨던 것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그러나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22년이 흐르도록 사죄의 말은 들을 수 없었다. 1992년 1월 시작된 수요시위는 기네스북 최장기 집회로 기록되며 매 주 그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2013년 8월 14일은 제 1087회 수요시위 날이자 제 1회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대의 발걸음을 더했다. 보통 수요시위 때는 평화비 중심으로 사람들이 산발적으로 몰려 시위를 진행하지만, 이날은 평소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고 일렬로 앉아야 했다. 자리가 모자라서 단을 세우고 그 위에 빽빽하게 올라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여학생들의 머리에 달려 있던 노란 나비 머리핀과 발언자들의 말이 끝날 때마다 수많은 인파가 호응하며 흔드는 나비모양 부채가 연신 일렁댔다.

지난 8월 14일,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자 1087회 수요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모였다. ⓒ 국제앰네스티

 

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담긴 영상을 시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 하상숙 할머니의 발언이 진행되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지난 7월 30일 미국 글렌데일시 공원에 세워질 평화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다녀 오셨다. 할머니는 “일본이 사죄하는 그 날 까지 나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평화비를 세울 것”이라고 외치셨다. 할머니의 연세가 무색할 만큼 카랑카랑하고 힘있는 목소리였다.

이어 중국 위안소로 끌려 가셨다가 수치심에 귀국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살아 오셨다는 하상숙 할머니의 발언이 이어졌다. 할머니께서는 감정이 북받치시는지 말씀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셨다. 한숨과 눈물 섞인 목소리로, 할머니는 더듬 더듬 말씀하셨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뿐인데, 그것을 죽기 전까지 듣지 못하면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수요시위에 참여한 하상숙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니마 나마다무씨 ⓒ 국제앰네스티

 

  이날은 특별히 제 1회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기념하여 멀리 콩고에서 여성운동가 니마 나마다무(Neema Namadamu)씨도 오셨다. 나마다무씨는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이용하지만, 3일이라는 긴 여정도 마다 않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연대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나마다무씨는 연단에 올라 일본 정부를 강하게 규탄하며 할머니들께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정대협에서 마련한 ‘나비기금’의 지원을 통해 콩고에서 강간 피해 여성들을 위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나비기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blog.daum.net/hanagajoah/561 참고)

  그러나 일본 대사관은 매주 수요일마다 그랬듯이 블라인드를 내려 창문을 모두 가린 채 침묵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일본식 꽃 이름을 붙였고, 그 이름을 위안소 문마다 붙여 놓았다.”

-호주의 ‘위안부’ 피해자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

 

 일본은 한국에서만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것이 아니었다.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으며 여기에는 네덜란드 국적의 여성들도 있었다. 최근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상처입은 꽃 」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8인의 수기가 담긴 책이며 오는 9월 일본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들의 수기집인 ‘상처입은 꽃’ 표지 ⓒ 연합뉴스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는 인간의 존엄성을 찾을 수 없었던 당시의 기억을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살았다. 할머니는 ‘위안부’ 생활을 딸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살아오셨으며, 꽃 이름으로 불리던 ‘위안소’에서의 생활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힘들어 언제나 꽃 선물을 거부했다. 그러나 치욕의 역사를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한국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오헤른 할머니는 이용수 할머니, 김군자 할머니와 함께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위안부’ 경험을 증언하면서 이 문제를 국제 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2007년 미 하원 청문회에 참석한 김군자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 ⓒ 한겨레

‘위안부’문제가 국제적으로 공론화 된 후,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대만, 미국, 호주, 독일 등지에서도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번 2013년 8월 14일 제 1회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에는 일본, 대만, 캐나다, 필리핀, 미국, 독일,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한국 총 9개 나라 16개 도시에서 시위가 진행되었다. ⓒ정대협

“무력갈등 속에서 여성들은 정부와 비 정부 세력 모두로부터 모든 종류의 신체적, 성적, 정신적 폭력을 당한다. 이는 살해, 불법적 살인, 고문과 기타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처우 및 처벌, 납치, 시체 절단과 불구화, 여성 전투원 강제 동원, 강간, 성 노예제, 성적 착취, 강제 실종과 강제 불임 등을 포함한다.”

-모든 형태의 여성폭력에 관한 유엔 사무총장의 2006년 보고서

 

그런데, 여성을 성적으로 도구화하고 그 존엄을 짓밟는 행위가 과연 일본만의 특수한 도덕적 문제일까.

전시 여성폭력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전 당시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만연했다. 내전이 끝난 후에도, 전시 상황에서의 피해자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그러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은 국내외적으로 보상도 거의 받지 못하였다.

  콜롬비아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콜롬비아 무력갈등 상황 가운데 여성과 소녀들이 군인, 무장세력 등에게 강간과 고문을 당했지만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 받았다.

  콩고 역시 내전 중에 있으며 특히 군인들 및 무장세력들이 자행하는 소녀들에 대한 강간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번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집회에 참여한 콩고의 여성운동가 니마 나마다무씨는 콩고 부카부(Bukavu)에 위치한 병원 의사로부터 5,6월 두 달 동안에만 1살 반에서 9살에 이르는 12명의 소녀들이 강간을 당한 채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처음에 나마다무씨의 글을 읽으며 눈을 의심했다. 한 살 반? 그러나 콩고에서 이러한 영아들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만 검색해도 확인 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위안소’ 설치부터 영아 강간까지. 대체 이런 끔찍하고 엽기적인 일들은 왜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전시 여성폭력의 근원에는 ‘국가 비상사태인 전쟁상황에서 여성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다’는 인식이 있다.

 

“제가 자랑스러울 것 하나 없는 과거사를 들추고 나선 게 돈 몇 푼 더 받기 위해서였겠습니까? 일본에서 국민기금을 모아 올 정도로 성의를 보였으면 대충 마무리 지을 만한데 뭘 자꾸 버티느냐는 식의 일본 쪽 시각을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금이지 위로금이 아닙니다.”

-‘위안부’ 피해 최초 증언자, 故 김학순 할머니

 

‘위안부’ 피해 최초 증언자 故 김학순 할머니 ⓒ 정대협

 

  전쟁 중 인권을 끔찍하게 유린당하고 인간으로서, 특히 여성으로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의 기억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 사과를 받기 위해 22년을 싸워 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세월을 싸워야 하는 것일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제 57분이 생존해 계시고(이 글을 쓰는 사이 또 한 분의 ‘위안부’ 피해자이신 최선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이제 생존자는 56명이다.) 평균 연령은 84세이다. 일본 정부는 너무 오랜 세월을 끌었다. 국가에 책임이 없다는 변명으로 발뺌할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위안부’를 운영하여 여성을 성적으로 도구화하고 여성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심각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죄해야 할 것이다. 이 본질을 잊은 채 강제성 존재 여부에만 집착한다면, 일본은 인권의식이 빈곤한 국가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얽힌 매듭을 풀어야 할 때이다.

 

수요일마다 빈틈없이 블라인드를 친 일본 대사관 창문 너머에도, 눈으로 보진 못할지언정 귀로는 할머니들의 음성을 듣고 있을 사람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가랑비에 옷 젖듯, 연약한 나비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키듯, 매주 수요일의 집회가 쌓여 전시 여성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본의 인식을, 나아가 전 세계인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육성 증언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 

 

*참고자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겨레, 1996년 8월 15일 故 김학순 할머니 인터뷰 기사, “원하는 건 일본 공식사죄뿐”

-Australian Story, “The Forgotten Ones”

제 1회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기념 국제심포지엄 자료집 중

-세계 전시여성폭력의 현황과 여성연대의 과제-캐서린 바라클러프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캠페이너

-콩고 내전 강간 피해여성들의 상황과 국제사회의 지원 현황-니마 나마다무 Synergy of Congolese Women’s Association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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