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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동성애혐오에 보내는 목소리, 웬트워스 밀러의 커밍아웃

웬트워스 밀러는 2005년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으로 국내에 ‘석호필(극중 이름 ‘스코필드’를 한국식으로 지은 별명)’으로 대단한 인기를 얻으며 국내에 미드 열풍을 몰고 온 인물입니다. 높은 인기에 힘입어 국내의 한 대형 의류업체의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고 니콜 키드만이 출연한 <스토커>의 각본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가 게이라는 소문은 이미 <프리즌 브레이크>가 방영될 당시부터 팬들 사이에는 널리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생트페테르부르크 국제영화제 초청을 거절하며 보낸 공개서한에서 한 커밍아웃은 같은 동성애자로서 러시아의 성소수자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웬트워스 밀러의 서한은 그가 회원으로 있는 미국의 성소수자 옹호단체인 GLAAD의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그의 서한을 한국어로 의역했지만,  영어에 불편함이 덜한 분은 원문을 직접 읽어보시길 권하겠습니다. (그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MS. Averbakh [1] 귀하.

친절한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러시아를 방문했던 즐거운 기억이 있고, 러시아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2] 기꺼이 기쁘게 초대에 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게이로서, 저는 거절을 해야만합니다.

저는 동성애자를 대하고 다루는 러시아 정부의 현재 태도에 큰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전혀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양심으로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고 사랑하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조직적으로 거부 당하는 그런 나라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상황이 개선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제가 자유롭게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겠지요.

그때까지,

웬트워스 밀러

August 21, 2013

Re: St. Petersburg International Film Festival / “Guest of Honor” Invitation

Dear Ms. Averbakh:

Thank you for your kind invitation. As someone who has enjoyed visiting Russia in the past and can also claim a degree of Russian ancestry, it would make me happy to say yes.

However, as a gay man, I must decline.

I am deeply troubled by the current attitude toward and treatment of gay men and women by the Russian government. The situation is in no way acceptable, and I cannot in good conscience participate in a celebratory occasion hosted by a country where people like myself are being systematically denied their basic right to live and love openly.

Perhaps, when and if circumstances improve, I’ll be free to make a different choice.

Until then.

Wentworth Miller
Member, HRC
Member, GLAAD
Member, The ManKind Project

<프리즌 브레이크> 출연진과 함께

러시아의 동성애 혐오법안(‘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은 지난 6월 러시아 의회에서 찬성 436명, 반대 0명, 기권 1명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투표로 통과되었습니다.

7월에 푸틴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했으며, 외국인과 언론단체에도 적용됩니다.

법안은 미성년자가 접근할 수 있는 공개 장소에서 동성애자들이 행사를 열거나, 미디어를 통해 ‘비전통적 성정체성’을 주입하거나 ‘ 비전통적 성관계’를 긍정적인 것으로 묘사하거나 ‘전통적-비전통적 성관계의 가치가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동성애 혐오를 부추긴 결과, 러시아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집단폭행, 살해 등 혐오공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법은 얼핏보기에 ‘미성년자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성적인 표현물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져야한다면 이성애/동성애 구분 없이 모두 똑같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표현물이 이성애에 대한 표현물보다 미성년자에게 더 해악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성애자 성향을 가진 미성년자가 동성애 표현물을 본다고 하여 갑자기 동성애자로 바뀌지 않습니다.

또한 ‘미성년자가 접근할 수 있는 공개 장소’ 등과 같은 조항은 굉장히 자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조항입니다.  미성년자가 접근할 수 없는 ‘공개 장소’는 사실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법은 동성애를 ‘비전통적’이라며 차별적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을 조장합니다.

이러한 억압과 배제는 성소수자들을 사회적으로 고통받게 만들어 심한 경우 자살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러시아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자유권)에 비준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이 기본권 규약을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인기리에 방영 중인 미국드라마 <화이트 칼라>의 주인공인 매튜 보머(2012년 2월 커밍아웃)가 웬트워스 밀러에게 “정말 자랑스럽다(really proud)”며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설국열차>에 출연한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도 러시아의 동성애자들을 위해 붉은 광장에 섰었죠.

레이디가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오늘밤 러시아는 내 집이다. 내 집에서는 누구나 게이가 될 수 있다”고 말했었고, 마돈나 또한 러시아 공연에서 “전 세계 모든 게이들은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서 러시아 당국과 마찰을 빚은 바 있습니다.

Matthew Bomer

차별받는 러시아의 성소수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선 틸다 스윈튼 ⓒSandro Kopp

 

이처럼 러시아의 동성애혐오를 향해 보내는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이 때문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예정인 한국의 성소수자의 현실도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물론 올림픽 때문이 아닙니다. 국제적인 망신을 우려해서도 아닙니다. 그 무엇도 아닌 우리 사회에서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어쩌면 오늘도 여러번 스쳐지나갔을지 모르는 성소수자들은 러시아를 보며 결코 남일처럼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성소수자를 위한, 성소수자에 의한 보다 용기있는 목소리와 행동, 그리고 그것을 품을 수 있는 성숙한 사회 분위기를 하루 빨리 볼 수 있길 바라면서,

웬트워스 밀러, 러시아, 한국, 그리고 세계의 모든 성소수자에게 지지와 연대의 뜻을 보냅니다.

편견과 차별의 감옥을 ‘브레이크’ 할 수 있는, 그때까지.

[1] Maria Averbach, 생트페테르부르크 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film festival’s director)

[2] 그의 아버지는 아프리칸-아메리칸, 자메이칸, 잉글리쉬, 독일, 유태, 그리고 아메리카 선주민인 체로키의 혼혈이며 어머니는 러시아, 프랑스, 네덜란드, 시리아, 레바논 혼혈로 알려져있다 http://en.wikipedia.org/wiki/Wentworth_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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