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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을 빌려드립니다

지난 학기 마음 졸이며 수강신청을 했던 강의가 있다. 담당 교수님이 여성인권운동 분야에서 유명하신 분이라 국제회의나 세미나로 너무 바쁘신 나머지 이번 학기에 강좌개설이 가능할까라며 염려했던 과목이었다. 다행히 강좌가 열렸고 토론식 수업이 진행되기에 딱 알맞은 수강인원과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소식에 무척 기대가 되었다.

처음 몇 주는 세계인권선언과 유엔여성차별철폐 협약문을 비롯한 다양한 선언문들을 다루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여성인권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참수형을 당한 ’올랭 드 구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유의 나라 프랑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라며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고, 경제권과 정치참여권, 건강권 등 삶의 모든 분야와 관련된 여성인권침해 사례들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토론하였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게 되는 부당한 대우에 분노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함께 알아보았다.

ⓒSurrogate Motherhood

이 수업은 세계여성인권과 관련된 주제를 정해 연구하고 여성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15쪽 분량의 과제가 있다. 주제를 두고 고민하다 룸메이트 언니와의 대화에서 나온 대리모 산업에 관해 써보기로 했다. 대리모는 크게 수정란을 착상시킬 자궁을 빌려주는 대리모(Gestational surrogacy)와 자신의 난자와 자궁을 함께 빌려주어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가지는 대리모(Traditional surrogacy)로 나뉜다.

현재 대리모를 금지하고 있는 곳은 캐나다, 영국, 이스라엘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 이른다. 하지만 내가 고른 인도의 경우, 대리모를 금지하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간편한 행정절차와 법률 제도 덕분에 불임부부와 동성커플을 포함, 아이를 갖기 원하는 이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선진국의 대리모 비용에 비해 거대한 시장규모에 따른 선택의 기회와 더불어 더 저렴한 비용으로 대리모를 구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인도 대리모 산업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부추긴 원인이 되었다.

그럼, 인도의 여성들은 어떤 이유로 대리모가 되려는 것일까? 인도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아 문맹이거나 초등교육과 같은 낮은 학력에 머무르는 여성들의 숫자가 많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 여성의 직업분포는 주로 가정부나, 보모와 같은 제한적인 직업 군에 속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듯 노동량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는 반면 대리모가 되어 벌어들일 수 있는 보수는 보통 $15,000~$20,000에 이른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기에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이 삶을 선택하게 된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도움이 되려, 아이들의 학비마련을 위해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리모가 된 50대 아주머니의 경우였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 대리모라는, 또는 대리모였다는 사실을 가족에게도 숨기는 경우가 많았다. 안타깝지만 이게 바로 인도의 대리모들이 마주해야 할 또 다른 현실이다.

 

“모든 일은 시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이루어져요. 우린 8시에 일어나 차를 마시고, 약을 먹어요 그리고 다시 잠들죠. 그리고 정오쯤 일어나 점심을 먹고 나머지 시간은 쉬어요. 그게 우리 일과의 전부에요. 방문객은 오로지 낮에만 허용 되요.” 불임 클리닉에서 대리모로 일하고 있는 여인의 인터뷰 내용이다. 거의 24시간을 클리닉에 갇혀 출산 예정일까지 정해진 일정대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시장규모에 비해 정부차원의 적절한 규제나 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정부에서조차 얼마나 많은 대리모가 있고, 그녀들이 낳은 아이들이 몇 명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 대리모 산업에 관해 조사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대리모를 통해 태어나는 아이들은 매년 25,000명 정도이며 이것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이 숫자의 반 이상은 전부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대리모를 요청해 태어나는 아이들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급격히 성장한 인도의 대리모 산업은 여성인권과 관련된 문제점을 함께 키워왔다. 대부분의 대리모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서 불공정 계약을 맺거나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는 브로커들도 많았고, 건강에 위협이 될 정도로 아픈 대리모들에게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적절한 의료조치를 취하지 않는 불임 클리닉도 있었다. 또 다른 경우는 대리모를 신청한 부부가 이혼을 하는 바람에 그들로부터 사례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대리모 뱃 속 아이의 거취상태도 정해지지 않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상황도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살아있는 인큐베이터 수준으로 다뤄지는 수많은 대리모들을 보면서 과연 이들에게 인권은 존재하는가? 라는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인도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리모의 인권보호 및 정부차원의 규제를 위한 법적 제도를 만들자는 논의를 질질 끌어오다 2008년에서야 대리모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법안 마련계획에 착수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회에서는 법안발의 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이를 법적으로 강력히 규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대리모의 삶을 선택한 이들의 생존을 막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러던 중 SEWA(Self Employed Women’s Association)라는 여성자립경제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경제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대리모의 삶을 선택해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이 단체는 1972년에 설립되어 가난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방직기술과 물건제작기술 등을 가르쳐 직접만든 제품을 판매해 수입을 얻는 방법으로 소규모 사업을 통해 여성의 경제적인 자립을 돕고 있다. 규모는 점점 성장해 현재는 노동조합, 육아지원, 법률지원과 더불어 여성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자체 은행까지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SEWA(Self Employed Women’s Association)

카스트 제도와 함께 오래 전부터 내려온 여성 경시 풍조로 인해 인도의 여성인권은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며 누려온 많은 것들이 이들에게는 꿈조차 꾸어보지 못하는 높은 현실에 불과하다. 그런 이들을 위해 기술교육과 함께 경제적 자립을 돕고 법률 자문과 같은 여러 혜택을 제공하여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초를 마련해주는데 도움을 주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와 비슷한 단체는 인도의 대도시 캘커타에도 존재했다. FREESET이라고 하는 단체로 집창촌 여성들에게 셔츠와 가방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몸을 파는 일이 아닌 기술 습득을 통한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있다. 이 지역의 집창촌 여성들은 FREESET의 도움으로 자립하고 경제적 능력을 갖춘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FREESET

여성이 가진 잠재력을 활용하여 지역경제를 일으킨 경우는 인도의 이웃나라인 방글라데시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미소금융으로(Micro Credit) 유명한 그라민 은행이 소규모 자본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여성이 가진 장점을 활용한 것이었다. 그라민 은행의 설명에 따르면 여성은 사업으로 벌어들인 자본을 교육과 가정경제향상에 재투자 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은행의 주 고객을 여성으로 정했다고 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은행에서 사업자금을 대출받는 것이 많이 어려운 방글라데시의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여, 철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규모 대출로 사업기반을 잡아 원금회수 실패에 대한 위험성을 낮추는 한편 여성의 경제력을 키워나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그라민 은행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났고 방글라데시의 여성인권 또한 향상될 수 있었다.

ⓒGrameen Bank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절망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인도의 여성들에게 빛을 선물하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절망하며 힘들어 하기보다는, 바꿔나갈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조금씩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과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나쁜 일 보다, 좋은 일은 결과를 얻기까지 조금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듯 하다. 지난 세월, 한국의 여성인권도 눈에 띄는 성장을 보였다. 그 당시엔 얼마나 암울했을까, 삶의 부조리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을까? 하지만 분노에서 그치지 않고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활동하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삶의 많은 부분들에 변화가 있었듯 오늘도 어둠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촛불이 되기 위해. 우리가 이렇게 힘을 모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모으고 사회의 부조리함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 이게 바로 앞이 뚜렷이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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