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블로그

여행에서 발견하는 인권 : 포스코 인도 오디사 프로젝트

가난한 인도에 필요한 개발, 그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 인도 포스코 프로젝트 반대 활동가들을 만나고 –

생각해보라. 어느 휴일, 새벽 4시에 갑자기 수백 명의 경찰이 몰려와서 당신을 둘러싼다. 그리고 당신의 농장을 내어줄 것을 확인하는 서명용지를 들이내민다. 겁에 질린 당신은 마지못해 사인한다. 당신의 눈앞에서 경찰들은 당신의 농장을 부숴버렸다. 막으려는 주민들은 가차없이 끌려나온다. 눈물이 흐른다. 앞길은 막막하다. 그리고 나서 정부와 경찰, 포스코는 “토지 수용 작업은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발표한다.

나는 이 현장에 없었다. 어느 기사를 보고 쫓겨나는 사람은 어떨까 상상해본 것이다.

 

인도경찰이 토지강제수용에 저항하는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 2월 3일부터 재개된 강제수용과정에서 여성과 아동을 포함한 50여명이 부상을 입었고 그 중 세명은 중상이라 한다. 사진제공 : 국제민주연대

인도를 지난 수개월 여행하면서 숱하게 마주쳤던 인도의 경찰들은 기다란 총을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누군가 잘못하는 것을 눈 앞에서 보면 일단 손으로, 막대기로 때리곤 했던 경우도 잦았다. 고빈드뿌르라는 내가 가보지 못한 마을에서 경찰이 총을 들고 갔는지, 막대기로 사람들을 때렸는지는 나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인도의 주민이라면 그런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한국에서 난 집회에 참여했다가 15명 정도의 방패를 든 경찰에 둘러싸인 적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꽁꽁 둘러싸 ‘결박’했는데 그 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무력함을 느꼈다. 그 때의 기분을 살려 상상해볼 뿐이다.

그 마을에 가보지는 못했다. 지난 10월, 포스코 프로젝트 지역에서 가까운 오디샤주의 부바네스바르를 방문해서 포스코프로젝트 반대활동가들을 만났을 때 그 마을에 가고 싶다고 몇 번 부탁했었다. 마을의 풍경을 보고 싶었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이들의 모습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인도정부가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 지역에 접근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한국의 다른 활동가들도 갔다가 붙잡혀서 나온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한 활동가가 함께 택시를 전세내 타고 몰래 갔다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함께 논의한 끝에 포기하기로 했다. 비용은 둘째치고 무엇보다 위험했고, 경찰에 붙잡힐 경우 나 자신에게는 물론 프로젝트에 저항하는 주민들에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며칠간을 머물고 도시를 떠났다. 그 때 내겐 절박함이 없었다. 당시엔 공사가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지리한, 폭풍전야의 기다림의 시기였다. 환경재판부의 판결로 인해 공사가 어려울거라고 생각하는 활동가도 있었다. 그래서 난 수개월동안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미뤄뒀다. 하지만 다시 상황은 급박해졌다. 사람들이 다쳤다. 내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던 활동가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이대로 두면, 그들의 이야기가 묻힐 것 같았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외침이 전해질거라 생각해 내게 이야기하고 호소하고 부탁했던 사람들의 간절함이 이제야 이 글을 쓰게 했다.

꼴까따의 시위 진압 경찰. 인도에 처음 간 날 숙소 근처의 중심가에서 본 경찰들이다. 사진 속 경찰들은 곤봉과 방패정도만 들고 있지만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장총을 든 경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길거리에서, 경찰서에서 용의자들 구타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경찰폭력에 대한 불감증도 인도의 인권문제중 하나일 것이다. ⓒ김성민

지난 5개월의 인도여행을 둘러보며 숱한 가난을 목격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난이 도처에 있었다. 물론 번창하는 인도의 빌딩들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인도의 경제는 어찌됐든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활기가 넘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겐 일이 없었고, 그래서 그들에겐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어떤 동기도 희망도 없어 보였다. 그럴 때 마다 인도에도 개발이 필요한게 아닐까, 인도에도 발전이 필요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은 쉽게 들었다. 외국의 자본과 기술이 들어오면 인도에도 산업이 발전하고 일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거듭 하게 됐다. 먹고 살만한 나라인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비교적 쉽게 돈을 벌고 인도로 여행을 오는 내가 이들의 개발에 쉽게 반대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인도에 처음 들어갔을 때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들의 가난일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발을 딛은 도시는 인도에서도 빈부격차가 크기로 유명한 꼴까따(캘커타). 너무 더럽고 냄새도 지독해 가까이 가기도 싫은 쓰레기로 차있는 강물에서 어떤 노인이 몸을 담그고 무언가 돈이 될게 없을까 찾고 있는 모습이다. 이 밖에도 인도의 가난한 모습은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가난에 대한 동정과 연민은 때로는 무분별한 개발과 인권침해를 정당화시키기도 한다. ⓒ김성민

더군다나 작년, 2012년은 잘나가던 인도경제가 추락한 때였다. 물가는 오르고 무역적자는 심해지고 인도 돈의 가치는 떨어졌다. 역대 최대로 화폐가치가 떨어져 여행하는 내 입장에서는 환전할 때 마다 미안할 정도였다. 외국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인도경제의 침체는 계속될거라 했다. 2014년에는 인도의 총선거가 있다. 인도 정부로서는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도 위험해진다. 뭔가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다. 자꾸 공사가 지연되면 투자를 하려던 기업들도 발을 뺄 우려가 있다. 한국정부에게도 급하다. 포스코의 프로젝트는 한국이 외국에 투자하는 사업중 가장 투자액이 큰 사업이다. 새로운 정부도 출범한다. 그래서 지난 1월에 한국의 지식경제부 장관이 직접 인도에 가서 포스코 프로젝트가 빨리 진행되게 해달라고 압박을 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올해 2월 3일, 급작스런 강제토지수용이 시작된 것이다. 2011년 12월에 벌어진 충돌로 주민 한 명이 죽은 이후로 일 년이 넘었다. 주민들의 동의가 적절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고 환경적인 영향에 대해서 더 조사해야 한다는 환경재판소의 판결이 작년 3월에 있었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경찰이 기습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뭉쳐서 인간사슬을 만들어 저항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민 50여명이 다쳤다. 여성들과 노인, 아동들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이때 델리에서 신문을 보고 소식을 접했다. 이어서 만났던 활동가들이 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세계적으로 비난 여론이 일었고 단체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인도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도 긴급행동을 시작했다. 저항 때문인지 비판 때문인지 4일만에 토지수용이 다시 중단됐다.

델리에서 본 포스코 소식. 인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TIMES OF INDIA> 2월 5일자 전국면 상단 탑이었다. 한동안 잠잠했기에 나는 이 기사를 보고 화들짝 놀랐고 며칠간 계속해서 신문을 사 봤다. 계속해서 신문엔 비중있게 보도 됐다. 인도에서 이 문제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인도에서 이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가 나올땐 항상 남한의 철강 기업 포스코라고 설명된다.

하지만 토지수용작업은 곧 재개됐다. 인도의 경제상황, 인도 정부의 정치적 입장, 포스코라는 기업의 이익, 한국 정부의 이익이라는 거대한 압력 때문이다. 인도 포스코 대표가 주정부와 경찰을 방문해 협조를 요청한 결과이기도 하다. 가난한 인도를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를 고민스럽게 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래서, 찬성하냐고 반대하냐고. 인도가 저리 가난한데 어찌 개발을 반대할 수 있냐고. 주민들의 사정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지 않겠냐고. 하지만 찬성과 반대를 정하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을까.

오디샤의 주도 부바네스바르의 상징물인 링가라즈 사원. 힌두교 신자가 아닌 자는 들어갈 수 없고 다만 옆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들여다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렇듯 그들의 신앙과 종교가 보호되는데 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은 쉽다. 이 사원을 중심으로 수십개의 신전들이 있고 많은 힌두교신자들이 이 도시를 찾는다. ⓒ 김성민

부바네스와르라는 도시를 찾은건 10월말이었다. 포스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오디샤 주의 주도이다. 오디샤주는 인도의 동쪽 해안에 자리잡은 곳이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찾지는 않아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에게 이곳은 유명한 성지중에 하나이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중 하나도 이곳에 있다. 부바네스와르의 상징물은 아마도 링가라즈라는 거대한 신전일텐데 이 사원을 중심으로 수십개의 유서깊은 사원들이 마을 곳곳에 있다. 이 도시의 중심가의 빌딩에 다른 유명한 기업들의 사무실과 함게 포스코의 사무실도 자리잡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한국의 기업 포스코를 알고 있었다.

 

부바네스바르의 중심지에 있는 포스코의 사무실을 찾았다. 관계자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사무실은 썰렁했고 관계자들은 출장중이어서 만날 수 없었다. 사무실 앞에는 이런 저런 사진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인 이 사진의 왼쪽에 있는건 오디샤주의 유명한 신전인 꼬나르크의 태양신 사원에 있는 조각물이다. 이 사진을 보고 문득 포스코도 인도의 문화와 정서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김성민

포스코 반대 투쟁 연합이라는 뜻의 PPSS, 현지어로는 포스코 쁘라띠로드 상그람 사미티라는 말의 줄임말, 그 대표인 아바이 사후를 이 도시에서 만났다. 그는 7년동안 그 운동의 리더였다. 2011년엔 체포돼서 감옥에 있었다. 그때 국제앰네스티에서는 그를 위한 탄원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곧 풀려났지만 이내 곧 다양한 누명을 쓴 수배자가 됐다. 마을을 나오려면 몰래 나와야 했다. 그런 그를 만날 수 있던건 운이 좋아서였다. 만나서 얘기를 나눠본 그는 오랜 투쟁의 리더였지만 한편으로는 권위적인 모습의 아저씨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마을의 상황을 잘 전달할 줄 알았다. 경찰에 의해 봉쇄된 마을 주민들의 열악한 상황을 호소했다. 운동에 가담하는 상당수가 누명을 쓰고 있어서 마을 밖으로 못나온다 했다. 아파도 치료를 받기가 어렵고 약도 절실하다 했다. 그는 포스코가 주민들과 대화하기보다는 정치권과만 얘기한다 했다. 현지에선 포스코가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정당의 선거자금을 댔다는 소문을 얘기해줬다. 인도의 기자들 수십명을 한국에 초대해서 대접하기도 했다고 했다. 포스코에 환경허가를 내준 장관이 최근 엄청난 부패에 연루된 뉴스를 알려주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말한 것을 한국인들에게 전달해달라고 했다. 내게 점잔을 빼며 이런 얘기를 해줬던 그가 며칠전 강제토지수용에 항의하기 위해 단식농성을 시작했단 기사를 봤다. 다행히도 4일만에 경찰의 철수와 함께 마쳤지만.

PPSS의 대표인 아바이 사후. 그는 2011년 부당한 죄목으로 수감돼 앰네스티의 탄원대상이 되기도 했다. 수배중인 그를 운좋게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편지는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다 수감된 최성희 활동가가 옥중에서 손으로 써 보낸 편지이다. 인터뷰 영상을 캡쳐했다. ⓒ 김성민

그 도시에서 나는 또 다른 활동가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프라풀라 사만트라. 록 샨티 아비얀이라는, 번역하면 민중평화캠페인이라는 단체의 의장이다. 그는 2010년에 생긴 인도 환경 재판소에 포스코프로젝트를 제소한 사람이다. 재판소는 그의 청원을 받아들여 포스코프로젝트가 주민들의 동의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으며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판결을 내렸다. 환경재판소라는건 한국에 없기에 그 판결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물었을 때 그는 매우 강력해서 포스코가 다시 토지수용을 실시할수 없을거라고 확신하며 얘기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제철소와 광산이 가져올 수 있는 여러 가지 환경문제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의 책상엔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에 관련된 논문들이 쌓여 있었다. 제철소가 가져오는 영향이 단순히 숲을 파괴하는데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 얘기했다.

 

프라풀라 사만트라 의장. 환경재판소에 포스코프로젝트의 부당성을 제소한 활동가이다. 한국에서 찾아왔다는 얘기에 무척 반가워했다. 열변을 토하는 그의 뒤로 간디의 물레 사진이 보인다. 그는 비폭력주의자이며 생태주의자를 추구하는 간디주의자였다. 긴 시간동안 포스코 프로젝트의 여러 민주주의적, 환경적 문제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김성민

뻘산이라는 활동가를  여러 번 만났다. 그는 내가 다른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게 열심히 도와줬다. 그는 PPSS의 대변인이었고 인터넷은 당연히 없고 경찰들에 의해 봉쇄돼있어서 외부와 소통이 쉽지 않은 마을사람들의 소식을 외부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무실이 따로 없고 집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정성스레 모아놓은 문서뭉치를 뒤져 한국에서 온 편지를 보여줬다. 하나는 강정마을에서 활동하시는 최성희 활동가가 옥중에서 직접 써서 보낸 편지(링크:http://bit.ly/WhTPst)였다. 그러고 보니 포스코 프로젝트는 강정마을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대화하기보다는 경찰력을 써서 쫓아낸다. 그러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박노자씨의 글이었다. 한국의 언론에 쓴 글을 어떤 뜻있는 분이 번역해서 보내신 것이었다.(http://yunheepathos.tistory.com/198)

이 편지들을 보여주며 펄산은 한국에서 사람들이 많이 응원해주고 있어서 큰 힘이된다며 고마워했고 한국사람들이 더 많이 움직여서 이런 일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많은 한국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찬성하는 경우도 많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쉽지 않다. 노력하겠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포스코 프로젝트 저항 연합(PPSS)의 대변인인 펄샨씨. 그의 집은 부바네스바르의 기차역에서 가깝다. 여러번 그의 집을 방문해 한국에서 온 편지도 보고 이런 저런 얘기도 듣고 여러가지 도움을 받았었다.

이 밖에도 나는 여행중에 종종 인도인들과 포스코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기차에서, 버스에서 짤막짤막. 신문을 보고 뉴스를 보는 인도사람들은 오디샤에서 멀리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 찬성하기도 했고 반대하기도 했었다. 인도의 개발을 위해서 진행돼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또 그만큼 쫓겨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사람도 있었다. 부바네스와르에서 자그마치 35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코치라는 남쪽 도시에서도 쫓겨나는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여러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도, 많은 글들과 기사를 읽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찬성이냐 반대냐를 정할 수 없었다. 어느 한쪽을 결정하기에 아는게 너무 없었다. 나는 쫓겨나는 그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하지만 단 한명의 주민이라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포기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를 만나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위해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가 너무도 쉽게, 혹은 잘 몰라서 찬성과 반대를 결정하기엔 이들의 삶은 무겁다. 기업이나 국가의 이익만큼이나 나는 한사람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인권이라 배웠다.

부바네스바르에 있는 포스코 사무실이 있는 포츈타워의 모습. 위는 기사에 첨부된 포스코 반대집회 사진, 아래는 내가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여러가지 질문을 준비해 사무실을 찾았지만 관광객에 불과한 나로썬 얻을 수 있는게 없었다. 포스코 프로젝트의 많은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한 접근은 너무도 어려워서 손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찬성과 반대 사이는 넓다. 우리는 그들과 연결돼 있다. 우리가 선출한 정부의 관료가 가서 그들을 몰아내달라고 하고 있다.포스코의 많은 투자자들중에는, 그러니까 포스코의 이익을 나눠가지는 곳 중에는 국민연금이나 KT, 포항공대도 들어있다.그리고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도 있다. 내가 가보지도 못한 인도의 시골 사람들의 삶과 나는 그렇게 연결돼 있다. 비단 한국인으로써만이 아니다. 기업과 국가의 이익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도처에서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서 쫓겨난다. 누군가 날 억지로 쫓아낼 때, 그것이 다수의 이익이라 하며 날 몰아낼 때 나를 지켜주는 것이 인권이고 이를 통한 연대다.

공사가 진행되고 제철소가 세워진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번 세워진 공장은 끊임없이 지역 사람들과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 같은 오디샤 주에 있는 베단타 제철소나, 보팔이라는 도시에서 있었던 최악의 가스 유출사건들이 그러한 예다. 우리가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

포스코 홈페이지에 소개된 포스코의 경영방침이다. 그림에도 있듯이 포스코는 인간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하며 윤리경영을 한다고 홍보하는 기업이다. 신문이나 티비에서 그런 내용의 포스코 광고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포스코도 보다 나은 기업이 되기 위해서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겠지만 해외에서 자사의 이름을 걸고 이뤄지는 일들에 대해서 보다 책임감을 갖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려 한다면 이러한 기업방침은 진정성을 보여주기 힘들것이다. 출처 : 포스코 홈페이지

우리 모두가 인도로 갈 수 없다. 인도로 가도 그들을 볼 수 없다. 만난다 해도 말도 다르다.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난 정부에게, 포스코라는 기업에게, 한국의 언론에게 계속 물을 것이다. 계속 요구할 것이다. 그쪽 상황이 어떠냐고, 그 사람들의 삶은 어떻냐고.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연결돼 있냐고. 계속해서 묻고 내가 알도록 요구하는 것은 내가 가진 또 하나의 권리다.

 


* 글을 마무리 한  며칠 후 포스코 프로젝트 예정지의 한 마을에서 폭탄이 터져 포스코 프로젝트 반대 활동가 4명이 죽었다. 이 폭발사고에 대해서도 경찰측은 반대활동가들이 폭탄을 제조하다가 사고가 난것이라 하고 반대활동측에선 포스코 프로젝트 찬성측 용역들이 경찰의 암묵적인 묵인하에 저지른 짓이라고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내게 비폭력 운동에 대해서 몇번이고 강조하던 활동가들이 폭탄을 제조했을 거라고 잘 믿어지진 않는다.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도 전에 주정부측은 토지 강제 수용을 재개했고 일부 여성 주민들은 세미누드시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왜 그렇게 급할까. 얼른 밀어붙여야 반대를 누를 수 있다는 어떤 성급함이 아닐까 걱정된다. 무엇이 이렇게 극단으로 몰아가는지, 잠시 멈추고 살펴보자고 우리는 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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