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13기 인턴에게서 듣는 앰네스티 이야기

인턴 생활은 짧았지만, 그 여운은 길기만 합니다. 

2012년 12월 28일, 4개월간의 인턴십프로그램을 마치고 5명의 인턴 중 4명의 인턴이 수료식을 가졌습니다. 

캠페인팀의 안정아 인턴, 커뮤니케이션팀의 권아람, 한지윤 인턴, 모금팀의 최태양 인턴이 바로 그 주인공들인데요.

인턴생활이 끝난 지금, 그들에게 ‘앰네스티 인턴’이라는 경험은 과연 어떠한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되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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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네스티 인턴이 되려면 우선 회원이어야 하고, 인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고, 국제단체다 보니 원어민 수준의 영어가 요구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회원도 아니였던 제가 인턴이 되었고, 인권에 대한 지식은 미리 공부했던 것보다 앰네스티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더 많았어요. 그리고 영어는 제가 걱정한 만큼은 다행이도 아니였고요.(그러니 인턴공고가 뜨면 무조건 도전해보세요!) 또 저는 모금팀 인턴이라 숫자만 보고, 계산하는 일만 할 줄 알았는데 정말 다양한 일을 했어요. 오히려 글쓰는 일이 많았고, 번역도 하고, 기업체 조사, 웹상에 모금함을 개설하면서 디자인을 하는 등 하루하루 다른 일을 해서 그런지 지루할 겨를이 없었어요. 

처음엔 솔직히, 일만 시킬 줄 알았어요. 인턴이 끝난 지금에서 돌아보면 기존의 업무 외에 인권에 대해공부하고, 이야기 해볼 수 있는 시간도 꽤 있었던 것 같아요. 매주 국장 및 캠페이너들과 함께 금주의 뉴스들을 ‘인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했었고, 관심 인권이슈에 관해 직접 발제하고 토론하는 시간도 있었죠. 점심시간에 둘러앉아 의료민영화를 다룬 독립다큐 ‘White Jungle’을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도 나네요.

번역이 주 업무라 면접 때 영어테스트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없어서 좋으면서도 놀랐어요. 후에 제가 맡은 번역업무에서 필요한 것은 물론 영어실력도 중요하지만 국어능력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또 하나는, 기업과 NGO를 비교하는게 어불성설이긴하지만 다른 기업에서 인턴을 할 때에는 팩스 복사 스캔전문 복합기, 전화응답기이자 각종 심부름을 하는 셔틀이었어요. 그래서 소속감은 사실 크지 못했어요. 한편으로 앰네스티도 NGO이지만, 인턴의 역할에서 허드렛일의 비중이 크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앰네스티에서는 제가 하는 일들이 국제인권뉴스로, 긴급행동(UA)사례지로 만들어지고, 회의에 참여하고, 캠페인 컨텐츠를 다루는 일련의 업무들이어서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한 성취감과 소속감이 생겼죠.

전 무엇보다도 예상과는 달랐던 앰네스티 사무국 내의 분위기가 가장 인상이 깊어요. 학교생활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대부분 상하관계나 위계질서가 뚜렷이 있었던 반면 앰네스티 안에서는 평등한 관계형성이 중요시되어있었어요. 반면 앰네스티에서는 서로 존중해주면서도 친밀한 느낌, 배타적이지 않고 평등한 관계 속에서 일을 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사회생활을 거의 처음 해본 저로써는 매우 생소하면서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경험으로 남았어요.

국원과 13기 인턴이 함께한 인권이슈 100분 토론 ⓒAmnesty International

 

저는 커뮤니케이션팀 액티비즘 담당 인턴이어서 하반기에 있었던 <집, 인권을 만나다>액션패키지와 편지쓰기마라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액션패키지는 회원들이 직접 인권운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사업이어서 처음 기획할 때부터 어떤 방식으로 회원들을 참여시킬 것인지, 어떤 틀로 나갈 것인지 고민과 회의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실제로 회의에서 이야기했던 아이디어들이 구체적으로 정리되고 액션패키지가 만들어졌을 때, 참 신기하고 흐뭇했어요. 회원들의 인권운동의 참여를 위해 A부터 Z까지 고심하고 액션패키지를 만드는 과정을 보며 앰네스티는 회원들의 인권운동으로 만들어 지는 회원조직, 캠페인 조직이구나를 몸소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액션패키지로 액션을 하는 회원들의 사진과 참여를 보며 뿌듯한 마음도 생겼어요.

모금이 100% 달성됐을 때요! 네이버 포털사이트에 가면 앰네스티에서 개설한 모금함을 보실 수 있어요. 제가 인턴으로 일하면서 2개의 모금함을 열었는데, 그 중 하나가 정말 단기간에 목표금액을 다 채운 거예요. 정말 무한 감사가 밀려오더라고요. 그리고 모금함에 많은 분들이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시는데, 그거 읽으면서 하루하루 감동받은 것도 기억에 남아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분노하고, 목소리 높이고,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나날이 소름 돋는다니까요!
저는 캠페인팀에서 긴급탄원사례 관리 및 번역업무를 담당했었는데요. 업무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몇가지 있는데, 가장 당황했던 적은 캄보디아 캠페인을 마무리 하면서 탄원엽서랑 연대메시지를 캄보디아로 보냈을 때예요. 캄보디아로 보낸 택배가 현지에 도착할때 즈음에서야 잘못 알려진 주소로 보낸 사실을 알게 되었죠. 때마침 캄보디아는 당시 명절이라 일주일 정도를 손을 못쓰고 있었어요. 결국 수령하시는 분이 직접 우체국에서 픽업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커뮤니케이션팀의 홍보지원인턴이었어요. 간사님따라 인권활동가 5분의 인터뷰를 졸졸 쫓아다니고, 언론상 준비를 위해 100통 이상의 전화를 돌리고, 인권교육 시간에 실시간으로 멘션을 내보내느라 허덕였던 것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SNS 모니터링’이죠. 매일 아침 출근해서 하나의 인권이슈를 둘러싼 SNS 유저들의 수백, 수천가지의 생각들을 줄기차게 훑어봤었어요. 앰네스티 계정으로 내보낸 포스트나 멘션에 대한 반응이 오는 것도 정말 흥미로웠어요. (그 반응이 육두문자 가득한 지저분한 멘션이었더라도 말이죠.)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과 내가 같은 가치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신기하지 않나요?

‘호칭파괴!’ 간사님, 국장님, 팀장님, OO씨 이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서로 별명이나 이름을 부르기도 하시는게 처음에는 ‘동갑인가?’했는데, 아니더라구요. 이름이나 별명을 나열하긴 곤란하지만.. 덕분인지 다들 무국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수직적이지 않은 사무국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전 앰네스티만의 출근 분위기가 특이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출근시각 9시를 전후로 사무실 내에서 “안녕하세요”하는 인사소리가 끊이질 않았었거든요. 출근하는 인턴도 인사, 먼저 와 앉아있던 팀장도 인사. ‘서로  인사’하는 사무국내 분위기가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것이 참 신기했던 것 같아요. 모두들 탕비실에 둘러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같이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한 달에 두 세 번씩은 있었던 생일파티와 각종 경조사들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한 명 한 명의 생일과 경조사를 챙기고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자리가 정말 즐겁고 풍성한 자리였던 것 같아요.

개인의 개성과 사상, 식성 모든 것이 존중받고 고려된다는 점! 보통 단체라면 이렇게는 못할 텐데 앰네스티는 해요! 예를 들어 앰네스티 안에 채식하는 분들이 몇몇 계세요. 그래서 회식할 때나 간식 살 때 메뉴선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인 복.장.자.유. 앰네스티 사무실에 가보면 정~말 편하게 혹은 개성 넘치게 입고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인지 오피스룩으로 가득한 회사 사무실과는 달리 몸가짐이 편하니까 좋은 기분과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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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2012 레터나잇 ⓒAmnesty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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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전에는 단지 후원회원으로서 ‘내가 후원을 하면 안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변화를 만드나보다’ 했습니다. 회원이었지만 앰네스티의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인턴을 하면서 시작한 긴급행동(Urgent Action: UA) 네트워크 활동을 통해서 ‘내가 쓴 편지 한 통이 기적같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구나’, ‘평범한 사람들이 정말 변화를 만드는 구나’를 직접 겪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앰네스티 활동 뿐만 아니라 마음이 동하는 여러 탄원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앰네스티 인턴을 하기 전에는 인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막연히 구호 쪽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빈곤과 관련해서도 항상 구호적인 관점에서, 굶고 있는 사람들, 전쟁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시혜적인 측면으로 어떻게 식료품을 잘 전달하면 그들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곧 이러한 측면에서 한계를 느꼈어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관심이 있고 돕고 있지만 구호만으로는 빈곤이 해결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고민하는 중에 앰네스티 인턴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인권에 대해서 배우고 알게 되었어요.

인권에 대해 알게 되면서 빈곤의 문제에 있어서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구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또한 같이 가야 하는 것이 바로 구조적인 문제해결이라는 것을 좀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이 빈곤하다는 이유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교육도 받지 못하고 기본적인 권리들을 누리지 못하는 그 자체가 인권을 침해 받는 상태이고 이를 위해서는 구호뿐만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주고 연대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문제를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함께 고민하고 국가가 그를 위한 제도들을 만들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같이 가야 하는구나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비록 이러한 과정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 없이는 한시적인 도움 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한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앰네스티에서 인턴을 하면서 한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합정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4개월간 많은 씨앗들을 안고 나온 것 같아요. 숱한 인권침해 사례를 접하면서도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당하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지 않나’하는 마음 한켠의 생각들이 많이 깨졌고, 인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깊은 강 아래 쌓이는 모래마냥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한 회의도 ‘쌓이고 쌓이다보면 어느새 거부할 수 없는 육지가 만들어진다’는 확신으로 바뀌었어요. 이렇게 가지고 나온 씨앗들이 열매 맺히는 인생을 사는 것, 그것이 앰네스티 인턴을 통해 제가 가지게 된 꿈입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들이 많이 부딪히고 깨지고, 재형성되는 과정을 거쳤어요. (물론 아직 갈등 중인 문제들도 있지만요^^) 우리 사회에 합의를 보지 못한 많은 문제들이 있잖아요. 사형제 폐지라던가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간 혼인 등등. 예전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굉장히 감정적으로 반응했어요. 가령 ‘사람을 죽인 자가 무슨 인권이냐’‘누구는 가고 싶어서 군대가나’라는 식으로 말이죠. 사실 이런 사고가 고민도 적게 하고,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쉬워요. 그런데 이런 방식의 사고는 사회를 고여있게 한다는 걸 느꼈어요. 발전된 사회를 판단하는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이곳에서 한 사람이 얼마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느냐’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렵고 까탈스럽고, ‘이렇게까지 생각하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냐!’ 라는 말이 나오더라도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야 그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런 부분에서 앰네스티 인턴생활은 제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우선순위로 둬야하는 지를 고민하고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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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8일 ‘인턴의 밤’이 끝나고, 갈상돈 사무국장과 13기 인턴들 ⓒAmnesty International

 

자메이카: 경찰의 살인을 묵인하지 않고 맞서 싸우다 / 샤켈리아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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