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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백혈병의 재림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2년 004호 문화공간에 실린 글으로서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삼성 백혈병의 재림

김슷캇(청년좌파)

 

1970년대 대만에 진출한 미국기업 RCA는 현지 노동자들을 대거 채용했다. 노동자들에게 RCA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20년 후, 공장주변 2km의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된 사실이 밝혀졌다. 트리클로로에틸렌과 염화비닐은 식수 기준치 200배, 사염화에틸렌의 경우 1000배가 검출되었다. 오염된 지하수는 공장 기숙사에 거주하던 노동자들의 식수였다. 1,395명의 노동자가 암 진단을 받았고 226명이 사망했다. 그동안 관리자들은 외부에서 생수를 공급해 마셨다. 1998년, RCA는 대만에서 철수했고 대만 환경보호국은 이 지역을 대만의 첫 번째 영구오염구역으로 선포했다.

1985년 IBM 연구소의 노동자가 IBM 본사 의료팀에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동료 10명 중 8명에게 암이 발병했다는 내용과 함께, 의심이 되는 원인들을 기재해서. 회사의 답변은 “문제없다” 였다. 20년 후, 뉴욕 주 엔디콧 지역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지역은 1979년 IBM공장이 470여 거주지에 달하는 영역을 오염시킨 곳이었다.

일 관계로 반도체 산업 관련 기업들을 들락거리며 취재를 하던 때가 있었다. 반도체∙LCD 공정에 필요한 감광제니 식각액이니 하는 생소한 재료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외우느라 머리가 아프던 시기였는데, 그 때 들었던 설명에는 저런 이야기들은 없었다. IBM과 RCA의 노동자들도 그런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이런 게 소위 말하는 1급 기업비밀인 모양이다.

 

강남역 근처에서 살던 2010년, 퇴근길에 삼성본관 앞에 열리는 백혈병 노동자 추모제를 보곤 했다. 항상 걸려있는 사진은 황유미, 이숙영. 같은 라인에서 2인 1조 교대근무로 일하다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백혈병으로 죽은 두 사람이다. 이들의 전임자는 유산과 몸의 이상으로 공장을 떠났었고, 같은 라인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황민웅 씨도 백혈병으로 죽었다. 이곳에서는 두 사람의 유족을 언제나 볼 수 있었다.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황민웅 씨의 배우자 정애정 씨.

2012년 4월, 두 권의 신간 만화책에서 그 두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황상기 씨가 주인공인 <사람냄새>(김수박 저)와, 정애정 씨가 주인공인 <먼지 없는 방>(김성희 저). <삼성 백혈병의 진실>이라는 세트로 함께 나온 책이다. <사람냄새>와 <먼지 없는 방>이라는 제목은 두 주인공의 깨달음에서 연유한다.

황상기 씨는 딸이 백혈병에 걸린 후 산재를 신청하려 하지만, 삼성 측은 그런 황상기 씨를 가로막는다. 그들은 황유미 씨가 백혈병에 걸린 것은 회사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아주 우연한, 개인적인 질병일 뿐이라고. 그러면서 산재를 신청하지 말라고 협박한다. “삼성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면서. “치료비를 보태줄 테니 사표를 쓰라” 고.

백지사표를 받아간 그들은 “사표를 썼으니 우리 직원이 아닌데 우리에게 무슨 책임이 있냐”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황상기 씨는 2007년 3월,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자신이 몰던 차 뒷좌석에서 딸이 죽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2007년 6월, 그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다. 담당 직원은 위조된 삼성의 자료대로 황유미 씨가 웨이퍼 세척 라인에서 별로 일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죽은 딸과 자신을 대하는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에게서, 그는 응당 나야 할 ‘사람 냄새’를 맡지 못했다.

정애정 씨는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 전에 삼성에 취직했다. 그가 들어간 곳은 먼지 한 톨도 허용되지 않는 ‘클린룸’이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고,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20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민웅 씨를 만나고, 결혼하게 된다. 그의 삶이 바뀐 것은 황 씨가 백혈병으로 죽으면서다. 삼성을 떠난 이후에야 알게 된 백혈병과 반도체 공장의 관계, 계속해서 나타나는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 그는 그제야 ‘먼지 없는 방’의 진실을 깨닫는다.

 

“우린 사람에게도 깨끗한 건지 묻지 않았던 거야.”

마치 괴담 같은 이야기지만 이것은 있어왔던 일이고 앞으로도 있을 일이다. 70년대 대만에서, 80년대 IBM에서, 21세기 한국에서, 그리고 앞으로의 어딘가에서. 이 시대의 산업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죽음을 필요로 한다.

<삼성 백혈병의 진실>은 우여곡절 끝에 등장한 책이다. 삼성 백혈병을 다룬 공중파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이 하나하나 삼성의 압력으로 불방 되었고, 이 책도 언론사들의 광고 거부로 출판 직후부터 홍보출구가 막혔다. 방해작업도 여전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네이버 뉴스 검색에서 ‘사람냄새 삼성“이라는 키워드로 가장 위에 뜨는 뉴스는 “디지털 삼성전자, ‘사람냄새’를 심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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