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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은 무엇을 말하는가 – 장준하, 그 죽음의 미스터리 : 제15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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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경기도에 소재한 야산에서 한 남자가 죽었다. 사인은 실족사. 그의 죽음을 본 유일한 목격자는 ‘절벽을 건너려고 소나무를 붙잡다 떨어졌다’고 증언했다. 그의 시신은 깊은 골짝 밑 널찍한 바위 위에서 발견됐다. 함몰된 두개골과 골절된 엉덩이뼈. 정황상 실족이 분명했다. 부검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내 시신은 매장됐고, 사건은 일단락 된 듯 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지금, 그의 죽음에 다시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추락해 숨졌다는 그 남자. 다름아닌 장준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유신을 가장 강렬하게 비판했던 그. 범민주세력을 대통합하고자 앞장섰던 ‘재야의 대통령’, 그가 비밀리에 진행하던 야권의 거사를 3일 앞둔 날, 인근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추락사했을 경우 두개골의 전형적인 모습(좌), 최근 개묘된 장준하 두개골에서 발견된 6cm 지름의 골절(우) ⓒSBS

 

“추락했다면, 사실은 목뼈가 부러져야 해요.

골반과 머리, 딱 두군데만 골절이 온다는 것은 아주 비상식이죠”

– ‘ㅇ’병원 신경외과 김기용 과장

“몸통이 위를 보면서 약간 우측으로 돌아서 떨어지는 상태에서,

바닥에 볼록 튀어나온 바위에 부딪힌 경우, 이런 함몰이 생길 수 있어요”

– 윤일규 순천향대 신경외과 교수

“추락하면서 자기를 보호하려 했던 부상이 보이지 않아요.

이 사람은 추락할 때 의식이 없었거나, 죽었거나, 독극물에 중독됐다면 수평으로 추락했을 겁니다”

– 캘리포니아주립대 법의인류학과 에릭 바틀링크 교수

그의 사인을 둘러싼 법의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과거, 누군가는 ‘정치적 음모에 의한 타살’임을, 다른 누군가는 ‘조사결과 실족에 의한 추락사’임을 확증한 이 사건. 진실공방은 곧 이념논쟁으로 옮아갔고, 故 장준하 선생은 그렇게 조금씩 잊혀져갔다.  

 

故장준하 선생 인체모델링 후 낙하실험 결과 ‘머리에만 최소 3번 이상 충격’ – 2004, 홍익대 최형언 교수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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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날, 중앙정보부 요원이 현장에 굉장히 많이 방문했어요.

그런데 그날 밤 9시 이후의 보고문이 전부 없어요”

– 고상만 전 의문사진상규명 위원회 조사관

1975 사건 발생 직후

”나무 윗부분을 잡으셔가지고 어떻게 잘못 뛰셨는지 기억이 안나고

제가 여기서 보았을 때 나무가 휘는 것은 봤습니다”

1998 포천경찰서 재조사 중

“저는 장준하씨가 추락할 때 소나무를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2004 의문사위 조사 중

“소나무가 휜 것을 본적이 없고, 휜 소나무가 있다는 말을 지금까지 한 적이 없습니다”

2012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 중

“그러니까 다 종결된 거 아니에요. 난 거기에 답변할 그런 의무없어…

(중략) 누구에게도 난 당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생님을 잘 못 모셨다는 양심의 가책이 있지만, 제가 어찌할 수가 없었어요” 

 – 1975~2012 목격자 김용환씨 진술

“목격자가 있었다면 당연히 실황조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와 같은 업무를 한 적이 없고

목격자라는 이가 그 시각에 이동지서에 들른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 이 모씨, 당시 포천이동지서 경찰관, 2004년 의문사위 진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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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살인가, 타살인가, 혹은 단순사고인가를 확인하는 것은 수사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다. 여느 추락사한 사체와는 다른 형태의 골절, 산에서 떨어졌음에도 찰과상하나 없었다는 점, 추락현장을 목격한 증인의 진술번복, 정보원 기록이 사라진 점 등에 대해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의구심을 던지는 상황이었다면 더 집요하고, 공개적으로 수사과정의 전말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 인물이 국가권력이 비대했던 그 시절, 야권에서 왕성히 활동했던 이였다면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누구도 제대로 나서지 못했다. 일부에서 최근 재조사를 요청해보았지만 ‘관계자 출석요구 · 현지 조사 등에 필요한 법적권한을 가진 기관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상태다. 어떤 이의 죽음을 재조사하자는 것에 이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치부해버리는 이 현실에, 누가 누굴 탓할 수 있으랴. 우리 사회 내에서 ‘진상 규명 불능’은 곧 ‘이미 종결된 사건’, ‘침묵해야 하는 사건’이었으니. ‘이런 꼬리표를 단 채,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묻혀있는 사건이 과연 이뿐일까’하는 생각이 씁쓸함만 남긴다.

 

“돌아가신지 37년이나 됐는데…. 자기(증인 김용환)가 확실하게, 정직하게 얘기해주면

‘아, 이제 됐다’ 싶을텐데.

그 사람은 언제나 마음 아프게 살 것 아니예요. 안 그러겠어요?

자나깨나 늘 마음이 아플거란 말이야. 그런데 왜 그런…”

– 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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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는 말이 없다. 강산이 서너번 바뀔만큼 시간이 흘렀고, 요즘 아이들은 ‘장준하’라는 이름에 그저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진실은 찾을수도, 찾을 필요도 없을 것만 같은 사회,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 한가지 뿐’이라는 어느 소설의 문구처럼, 진실을 알 수 없는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을 이야기 해야한다, 아니 시도라도 해야한다. 그것이 너무도 쉽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고인을 비롯한 앞선 세대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제15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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