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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2년 004호 ‘시론’에 실린 글로서  무단 전재 및 동의 없는 재배포를 금합니다.

 

나는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난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인권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랬고 인권활동을 시작하고 난 후에도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나의 소신을 의심해 본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일만큼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가 왜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수 백 가지 이유를 들며 밤을 새면서라도 설명할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참혹하고 비극적인 범죄예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 사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보호 방안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일,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법이 정한 벌을 마치고 난 후 탈없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착하게 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토론, 갑자기 황망한 일을 당한 범죄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경제∙제도∙문화적으로 지원하는 방안, 사회전반에 만연한 폭력과 억압의 문화를 생명과 인권의 문화로 변화시키는 일 등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참담한 강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래도 ‘사형은 안된다’라고 말을 하면 “네 가족이 이런 일을 당해도 그런 편한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생각해 보았느냐?”, “피해자 인권은 왜 생각지 않느냐”고 떠드는 사람들도 가해자를 얼마나 더 강력하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엄격하고 합당한 법의 심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에 다른 입장이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일부 유력 정치인들이 사형집행의 재개를 요구하고 화학적 거세를 넘어 물리적 거세를 가능케 하는 법을 제정하겠다, 형량을 늘리자, 폐지된 보호감호제도를 부활시키겠다느니 하면서 오로지 통제와 형벌만을 강화하는 방침들만 쏟아내고 있다.

이렇게 형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참혹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점검하는 일이며, 피해자들을 위한 제도와 장치를 만드는 일이라는 주장들은 그냥 구색 맞추기로 지면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점검과 개선을 위한 대책도 없고, 피해자들의 사회복귀와 안정된 삶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지 못하면서 가장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형벌의 강화만을 주장하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범죄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무책임한 처사이다.

또 자극적인 기사에만 혈안이 되어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기사와 주장을 마구잡이로 보도하고 지나치게 상세한 개인정보를 노출시키면서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하고 있는 언론들도 깊이 반성하고 진정한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시기 경향신문이 성범죄사건에 대한 보도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발표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전 세계 140여 개국에서 사형제도가 사실상 폐지되었고, UN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친 연구 끝에 사형제도가 범죄 억지력이 없다는 것을 발표하며 전 세계의 사형폐지를 천명한 바 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이고 내년 다시 한 번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진출을 꿈꾸고 있는 대한민국은 15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서 사형집행이 가장 많은 아시아의 사형폐지 운동을 이끌고 있다.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막중한 책임과 의무 또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문화와 비뚤어진 성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전 국민적인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때다. 분노한 여론에 편승하여 마치 정의를 집행하는 양 사형집행과 강한 형벌을 주장할 때가 아니란 얘기다. 지난해 77명이 희생된 참혹한 테러 앞에서 노르웨이 정부와 국민들이 분노를 삭이고 눈물을 닦아내며 지켜낸 생명과 평화의 가치, 관용과 화해의 정신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지난 15년간 사형집행 재개의 위기 때마다 성숙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성을 가다듬고 냉정을 찾아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것은 단순히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관대하게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폭력과 죽음의 악순환은 누군가가 먼저 멈추지 않는다면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사형제도의 폐지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다.

선의가 반드시 선의로 돌아올 수는 없지만, 악의는 반드시 악의로 돌아온다. 사형제도가 폐지된다고 참혹한 범죄들이 늘어날 리가 없다. 사형제도 폐지로 대한민국의 인권수준이 한걸음 향상되면 국민의 인권의식과 인권감수성이 높아질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사회를 더 안전하고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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