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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숨날숨, 인권과 호흡하기 – 2강. 생명권과 사형제도

9월 20일,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사형제도에 관한 특강이 이어졌다. 최근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성범죄에 대한 처벌논의가 이뤄지면서 사형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사형제에 대한 이호중 교수의 빈틈없는 반대론을 들어보자.

사형집행에 대해 5가지 논거가 있습니다.

첫째, 사형집행이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다.

둘째, 일부 흉악범죄자만 대상으로 사형을 집행하면 예방효과가 있다.

셋째, 사형이 정의의 실현이다.(응보론)

넷째,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사형집행이 필요하다.

다섯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은 생명보호의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첫 번째 논거부터 하나하나 보도록 합시다.

 

첫째. 사형집행이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다.

“범죄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사형제도의 유무가 아닌가 아닌 사회문화적 요인, 박탈감의 문제 등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범죄유발 요인을 점검해 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논리를 직관적 범죄예방론이라고 말합니다. 즉,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는 논리인데요. 그렇다면 사형이 최고형이니까 무기징역보다 범죄예방에 효과가 커야겠죠. 그런데 전문가들의 95%가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변을 했다는 겁니다.

또 사형집행이 중단된 이후 10년(1998년-2007년)과 사형집행이 비일비재했던 10년(1988년-1997년)의 살인범죄율을 비교해 봤을 때, 사형집행이 중단된 이후의 살인범죄 증가율이 오히려 더 낮아졌습니다.

그러다 2009년부터 살인범죄 증가율이 더 증가했는데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2009년) 정부가 흉악범죄 예방을 위해 사형집행을 재개하겠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달한 이후였습니다. 사형집행이 범죄예방효과가 있었다면 정부의 이 같은 협박으로 어느 정도 예방효과가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결국 살인범죄가 다른 사회적, 문화적 요인 때문에 증가했다는 겁니다.

둘째. 일부 흉악범죄자만 대상으로 사형을 집행하면 예방효과가 있다.

이 주장이 옳다면 범죄자들은 처벌수위를 고려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겠죠. 그런데 실제 2009년의 한 살인범이 검거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안 잡힐 줄 알았다” 이 말은 곧 자신이 검거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범죄자들에게는 사형이 억제효과를 지니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사이코패스가 흔히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데요, 이들은 검거된 뒤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앞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형제도는 범죄억제 효과가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사형은 정의다.(응보론)

이건 사형제를 ‘생명은 생명으로’라는 탈리오법칙으로 보는 건데요. 물론 범죄에 따른 형벌은 있어야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의 형벌이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지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형벌은 저급한 응보론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응보적 형벌’이 시민들의 요구사항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여러분께 문제로 내겠습니다. 판사와 검사,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일반범죄에 대해)어느 정도의 형벌이 적합한가’라는 조사를 했습니다. 과연 누가 가장 높은 형벌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을까요? 정답은 검사, 판사, 일반시민 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응보적 형벌이 시민의 요구라고 볼 수 있을까요?

 

“형벌은 그 사회의 인식수준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해석되는거죠.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수만명의 희생자를 낸 그 범죄자는 무기징역이 아닌 21년의 유기징역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형벌수위에 대해 정의에 어긋난 다는 비난은 없었습니다.”

 

넷째.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사형제도가 필요하다.

피해자 인권보호에서는 실제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먼저 실제피해자의 경우 그들이 범죄자에게 분노를 느끼고,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범죄자가 죽는 걸 보면 분노가 해소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냉정하게 말하면,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진 못합니다. 만약 가장을 잃었다면 무엇이 가장 걱정될 까요? 생계문제입니다. 이 고민이 해결되지 않으면 범죄자를 향한 분노만 자라나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실제피해자들의 정신적인, 일상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지원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미국에 ‘우리의 이름으로 죽이지 말라’라는 슬로건으로 사형집행을 반대하는 피해자 가족모임단체가 있습니다. 그들은 사형이 결코 치유책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잠재적 피해자 보호는 정치적인 효과를 위한 것이라는 측면이 큽니다. 이분법 적으로 피해자는 착한 놈, 가해자는 나쁜 놈의 대비구도를 통해 범죄자를 배척해서 선한 시민들간의 동질성을 강화한다는 정치적인 효과가 있죠. 이런 의도를 피해자 보호라는 타이틀로 포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은 보호해줄 가치가 없다.

사람을 가치 있는 생명과 그렇지 않는 생명으로 구분하고 짐승, 괴물이라고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것을 ‘짐승론’이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낙인찍기죠. 그런데 정작 우리는 무엇이 그들을 위험한 사람으로 만들 었는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합니다. 또한 그 사람들이 극단적인 범죄형식으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고민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Q. 짐승론이 대두된 이유는?

근본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시대로 사람들의 연대적인 사고를 해체시켰습니다. 그래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 당연하게 됐죠. 80년대 이전에는 범죄자를 사회적 환경이 낳은 환자라고 생각한 것에 반해 요즘엔 범죄자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루저’로 보는 시각으로 변했죠.

사람들은 이러한 범죄자를 낙오자, 짐승 등으로 비하시키고 이들의 존재가 내게 주는 불안을 국가가 해소해 주기를 바랍니다. 즉 사형제는 짐승의 희생으로 우리의 마음안정을 얻자는 굿판 쇼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범죄예방정책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무력화 정책처럼 가해자에게 낙인을 찍고 배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범죄를 예방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범죄자를 범죄자로 만든 사회적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완화하려는 정책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정말 힘들 일이지만요. 가끔은 정말 사소한 것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재사회화를 통해 개인에게 변화와 개선의 여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주(9월 27일) 강의 <표현의 자유와 인권 – 홍성수 교수(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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