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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과 29만원 할아버지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과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항쟁을 전후해 ‘신군부’가 행한 일련의 행위는 내란죄로서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

– 2012년 6월 15일,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 시절 대표적 공안 사건인 ‘학림사건’ 피해자들에 31년만에 무죄를 확정 판결하며.

 

80년 5월.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서른살이 되었다. 80년에 태어난 이종욱, 손시헌, 김상현, 이택근, 정성훈, 봉중근, 송승준은 각 팀의 베테랑이 되었다. 그 사이 한 번의 올림픽과 한 번의 월드컵이 있었고, 5월 어느날만큼은 절대 지지 않는다던 해태 타이거즈가 사라진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다. 여드름이 송송했던 앳된 선수는 국보급 투수를 거쳐 감독이 되었으며 누구도 멈출 수 없을 것 같던 바람도 멈췄다.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많은 일들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치 않는게 있다면 전재산이 29만원뿐인 어떤 남자가 받는 ‘극진한 대우’와 ‘유명세’이리라.

그 남자는 참 대단한 남자. 전재산이 29만원뿐인데도 매년 8억 5천만원이 드는 철통경호를 받는 수완 좋은 남자. 그가 탄 차가 도로에 나서면 경찰들이 교차로마다 배치되어 빨간불이나 교통정체에 걸리지 않도록 각별히 배려 받는 남자. 반란수괴, 내란수괴, 상관살해, 특가법상 뇌물 등 중죄를 지어놓고도 현역 장성들과 육사생도 후배들의 사열 경례를 받을 정도로 신망이 두터운 남자. 거느렸던 아랫사람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자기 사람 잘 챙기는 의리 있는 남자. 국내 최대의 출판사를 운영하는 아들을 키워내 지식산업에 공헌한 문화적인 남자. 연예인 며느리를 둔 ‘셀렙스러운’ 남자. 고급호텔에서 손녀딸 결혼식을 치뤄주는 자상한 남자. 평화의 댐을 건설해 국가안보와 치수사업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선견지명 밝은 남자. 국가보훈처 소유의 골프장에서 권총을 소지한 무장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골프 치는 ‘위엄 쩌는’ 남자. 이러한 소식들로 여전히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기 있는 남자. 너란 남자, 그런 남자, 전두환이라는 남자, 대단한 남자.

이 남자는 정말 경이로울 정도다. 그렇게 많은 죄를 범하고 사람을 죽여놓고도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먹고 잘사는걸 보면 천운도 저런 천운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자들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했는데 이 남자는 끝까지 이렇게 잘먹고 잘살다 갈 모양이다.

고등학생 때, 5.18에 관련된 사진들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충격을 기억한다. 대검에 찔린 임산부가 처참히 숨져있는 사진이었다. 교과서에서는 도무지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었다. 내게 있어서 5.18의 충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내가 아는 정의는 죄를 지은 자에게 마땅한 벌을 주는 것이 정의다. 피해자가 따뜻한 위로와 명예회복을 받는 것이 정의다. 그런데, 5.18과 전두환에 있어서 정의가 마땅히 서 있는가?

경남 합천에 전두환 기념공원이 세워지고, 평화의 댐을 방문한 전두환이 ‘각하’ 소리를 들으며 감사인사를 받고, ‘쓰리스타’를 달고 있는 현역 중장을 비롯한 영관급 군인들이 내란죄를 저지른 그에게 관등성명을 외치며 경례를 하는 사이에 5.18 기념일은 처참하다 할 정도의 홀대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4년째 기념식에 불참했으며, 작년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은 기념식에서 불리지 못했다.(그나마 올해도 제창이 아닌 연주곡으로 대신되었다) 대신 권해진 곡은 ‘방아타령’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자유와 민주화에서 가장 큰 방점을 찍고 있는 5.18 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한 행사에서조차 ‘금지곡’이 등장하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그 사이 정치인들은 선거철에만 기념묘역에 들려 사진이나 한 장 찍고 갈 뿐이고, 5.18이 한국 민주화에서 가지는 중요한 의미와 비중이 제대로 평가 받고 대우받지 못하는 동안에 5.18을 두고 종북좌빨이나 홍어라는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흉악한 리플들이 달리기도 한다. 가장 쓰라린건 이 모든 일을 지켜봐야 하는 피해자 유족들의 마음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확한 희생자 수는 아무도 모른다. 생사여부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유족들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가해자는 온갖 전관예우와 특혜를 다 받으며 떵떵거리고 잘살고 있는 것이다.

올해의 5.18 기념일도 한 달이 지나간다. 이렇게 또 한 번의 5월 18일이 지나간다. 아무것도 사과 받지도, 위로 받지도, 치유 받지도 못한 채. 정의란 무엇인가. 5월 18일에는 절대 지지 않는다던 해태 타이거즈도 사라진 마당에 야구공 던지는 샌델 교수를 붙들고라도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에 과연 정의가 있느냐고. 표현의 자유와 결사집회의 자유가 현존하는 것이냐고.

자유. 그 얼마나 뜨거운 이름인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라고 장난칠 수 있는 것도, 무소불위의 권력자을 쥐새끼라고 욕할 수 있는 것도, 자유를 자유로서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지난 날의 그 엄청난 희생과 고통 위에 놓여져 있는 것임을.

더 읽을 자료

가슴에 꽃으로 피어라 : 네이버캐스트

광주, 아무것도 치유되지 않았다 : 허지웅

5월 18일의 기록 : 허지웅

5.18 단체의 ‘전두환 사열’ 비판 발표 : 광주in

전두환, 이번엔 골프장에서 양주파티 : 경향

‘전두환 각하’… ‘평화의 댐’에서 생긴 일 : 오마이뉴스

전두환, 골프장 다니며 경찰 8명 경호 받아 : 뉴시스

고등학교에 전두환 자료실이라니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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