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인터뷰

‘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방법

평범한 한 사람의 행동으로 시작된 국제앰네스티가 50주년을 맞은 2011년 한국사회는 공포와 불안이 만연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정부는 ‘경제회복’과 ‘안보’를 앞세워 공포와 불안을 조장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공포와 불안이 만연한 한국사회의 돌파구를 ‘인권’에서 찾고자 합니다. 지난 50년 동안 평범한 우리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변화를 만들어 왔듯이 불안한 지금 이 시대에도 인권에 근거한 소통과 참여로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많은 기업임원들을 상담한 치유전문가이자, 심리분석과 사회적 통찰이 깃든 글쓰기의 칼럼니스트로 알려져 있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국가보안법’ 피해자들과 고문피해자 등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활동을 했고, 최근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심리 상담을 하며 피해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정혜신 박사를 만나 우리사회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이 처방하는 ‘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방법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이하 앰) : 최근에 박사님께서 <홀가분>이란 책을 쓰셨잖아요? 또 <홀가분>이란 카페도 운영하고 계시고. ‘홀가분’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정혜신 박사(이하 정): 정신분석의 최종목표는 홀가분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심리상담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을 얻거나 깨닫는 것 보다는 홀가분해지는 데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우리말 중 일상적인 감정단어가 430여 개 정도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7할이 불쾌를 표현하는 단어이고, 3할이 쾌를 표현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그 쾌의 감정단어 중에 사람들이 가장 최고의 쾌라고 뽑은 단어가 ‘홀가분’이라는 언어분석 결과도 있습니다. 언어분석의 결과나 정신분석의 결과로 보아도 ‘홀가분’은 우리가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고 치유가 되는 상태이기 때문이거든요.

앰 – 우리나라에서 남성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일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IMF 이후 남성들의 심리상태 등의 분야 등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이유가 있으셨는지요?

정 – 사실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성입니다. 주부, 젊은 여성들이 많이 오는데, 여성들이 주로 관계나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많고, 남성들은 그런 것쯤은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서 잘 안 오는데 실제로 그들의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 건 아니죠. 남성들은 개인적으로 정신과를 찾아오지 않고 주로 회사 안에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 직장으로 가서 그런 분들을 많이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활동을 시작하다 보니까 남자들의 속마음을 많이 들여다 보는 사람으로 보여지게 됐습니다.

또, 어느 날 제가 진료실에 찾아오는 주부, 노인, 젊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중년의 남자들의 마음에 굉장히 깊이 공감하고 그 사람들의 말이 유독 마음에 와 닿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된 거죠. 제가 일생 동안 남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은 우울증을 가지고 계셨던 아버지에 대해 어린 딸로서 느꼈던 기억과 경험, 상처가 장성해서 정신과 의사가 된 후에도 연결된 것 같다고 느껴져요.

 – 최근에 들어서는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을 보듬는 정신과 의사로서 인식되고 있는데요. 그런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정 – 제가 낮에는 마인드프리즘이라는 회사에서 대기업의 임원들, CEO들을 만나 심리분석을 합니다. 또 다른 한편에서 저의 일은, 80년대 고문 피해자들을 심리 상담하는 일을 3년째 하고 있습니다. 서울 봉은사의 방 한 칸에서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매주 토요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심리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요. 보도 통해서 아시겠지만, 우리는 그저 ‘2년 전에 굉장히 과격한 시위가 있었고, 진압이 됐고, 구조조정 과정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해고 당했다’ 이렇게 알고 넘어갔는데, 해고 노동자들 중에 15명이 자살을 하거나 젊은 남자들이 돌연사를 했습니다. 그 가족들의 자살까지 합하면 죽음을 당한 사람이 20명이 넘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곳이 평택이지요. 이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 굉장히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방사능에 피폭되면 피폭의 순간은 잠깐이지만 이미 일생 동안 짊어져야 할 고통들이 생겨나는 것처럼, 쌍용차 역시 정신적인, 물리적인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이 그 후에 계속 죽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을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제가 먼저 찾아갔고, 매주 토요일은 그분들 심리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 직접 만나보시면 그분들 상태가 어떤가요? 언론을 통해서 접한 사람들은 ‘그렇지, 해고는 심각한 문제지, 또 해고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게 되면 심리적 상흔이 남겠지’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잘 와닿진 않거든요.

정 –상담을 통해서 지금 그분들을 한 12주째 만나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죠. 진압을 할 때 헬리콥터가 저공비행을 하면서 해산시키려고 하거나, 헬리콥터 위에서 최루액을 떨어뜨렸죠. 또, 거기서 ‘테이저 총’이라고 하는 진압장비를 사용하고, 새총 같은 데다 쇠 볼트를 넣어서 사람들을 향해서 쏘거나 해서 살상을 가능하게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 이후부터 비행기가 지나가거나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 폭력을 당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잠을 못 자고 두통이 오기 시작하고, 가슴에 통증이 오는 거죠. 조그만 소리에도 헬리콥터 소리가 연상이 되면서 진정이 안 되죠. 그들 중 상당수는 알코올 중독 상태이고, 고통 속에서 일상에 너무 시달리다 보니 일을 할 수도 없고 아이를 돌볼 수도 없는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아이들이 방치되면서 생기는 아이들의 문제도 있어요. 그러면서 내가 부모로서도 참 한심하고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겁니다. 제가 한 집단에 7명을 상담하는 데요, 7명 중 5명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심한 사람들만 상담하는 것이 아니고, 그중에 먼저 상담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거든요. 지금 숨어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감안한다면 상당히 비참하고 참담한 상황이죠.

 – 쌍용차 같은 경우는 아주 강한 사례라고 할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폭력이 빈번하잖아요. 그런 식의 폭력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다 조금씩은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는 건가요? 예를 들면 철거 현장이나 파업 현장들이요.

정 –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근본적인 기재가 뭐냐면, 내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느낌, 즉 바닥까지 가는 경험입니다. 삶이 물리적으로 짓밟혀도 그렇고요, 심리적으로 극단적인 모멸감을 느껴도 그렇습니다. 철거 현장에서든, 쌍용차 파업 현장에서든, 제가 만나는 80년대 고문 피해자들이 겪은 고문 현장에서든, 그런 심리의 가장 근원은 내가 물건만도 못한 존재 취급을 받는다는 경험입니다. 그런 경험은 인간의 정신을 붕괴시키죠. 그렇게 바닥까지 가서 내 존재를 느낀 사람은 이후 정상적으로 수습되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앰 – 고문 피해자의 경우 이제 30년이 지났잖아요? 그런 분들은 상황이 어떤가요?

정 – 상황이 똑같아요. 어떤 것이냐 하면, 고문을 당했던 그 현장에서 삶이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거예요. 일상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그 현장을 심리적으로 배회하고 있죠. 30년 전에 고문을 당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천 명이 넘게 모인 장소에서도 자기를 고문한 사람의 목소리는 구분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감각, 내 삶의 모든 촉수가 그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계속 억울하고요.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싶을 만큼 분노가 있고요. 그러면서 자해를 하거나 자살을 하는 겁니다.

 – 사람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은 그의 인간성을 몰살하는 행위겠네요.

정- 국제앰네스티 캠페인에서 ‘나는 존엄하다’고 했는데, 그 전제가 깨지면 사람은 살 수가 없습니다. ‘존엄성’은 사람이 생존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죠. 저에게 상담을 받는 80년대 고문 피해자 중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진짜 지금까지 가족에게도,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얘기가 있다고. 물고문, 성고문 등 끔찍한 고통을 겪는 중에 수사관이 조금 쉬었다 하자면서, 그분에게 노래를 부르라 그랬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그분이 노래를 불렀대요. 그분은 그 모멸감 때문에 가장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이죠. ‘나는 죽어 마땅한 존재다, 노래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굴복했다.’ 하는 모멸감이 물고문, 전기고문보다 끔찍했던 것입니다. 한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것, 그런 것은 사람을 살 수 없게 만듭니다.

 – 그렇다면 이런 분들에게 치유라는 게 가능할까요?

정 – 네. 막막하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그분들도 이런 상담을 통해서 치유해야 된다 생각하고 상담실까지 이끌려 나오는 데 참 어려웠어요. 내 삶이 다 파괴되었는데, 이제 와서 지난 얘기를 한들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셨죠. 정말 우리들 생각으로는 그럴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이분들이 가족에게도 수치스러워서 얘기를 한 적이 없었고, 혼자서도 떠올리기조차 싫어했었는데, 상담소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많은 변화들이 있었어요. 처음 10주 동안 최초로 6명이 상담을 했는데, 한 번에 2~3시간 되는 상담을 했는데, 치유 과정을 거쳐서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래서 이분들이 동료들을 찾아 데려오기 시작했어요. 숨어 사는 동료들을요. 처음에는 다들 거부하고 어려워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지금 3년을 이어져 왔고요.

앰네스티 활동 중에 모르는 사람에게 구명 편지 쓰는 활동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만나는 분들 중에서도 그런 편지를 받았던 분들이 있어요. 얼마 전에 제가 ‘무죄 파티’에 갔었어요. 간첩으로 몰려서 가족들 중 몇 명은 사형집행도 당하는 등 끔찍한 일을 겪은 분들이었는데, 얼마 전에 재심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으셨어요. 그분이 앰네스티 이야기를 늘 하셨어요. ‘내가 민주화 투사도 아니고 촌 무지렁이인데, 이런 나를 위해서 어느 나라에서 편지가 오기 시작하고 시위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경험을 잊지를 못한다’고. 이제 무죄 판결을 받으신 분들이 3년 동안 10명이 넘으셨어요. 이분들이 보상금의 일부를 출연을 해서 재단을 만드셨어요. 그게 ‘진실의 힘’이라는 재단이고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치유를 해야 된다, 또 하나는 우리가 사형수 입장에서 고통을 받았을 때 알지 못하는 누군가 도움을 줬듯이, 우리도 먼 나라의 누군가 고문을 받고 있다면 도움을 줘야 한다고 해서 만드신 겁니다. 얼마 전부터는 고문 피해자들이 쌍용차 피해 노동자들 상담 과정에 와서 참여하고 계세요. 이분들은 타인의 고통에 너무 민감한 분들이에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이 울고 하다가, 그 아이들의 치유 문제도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시고, ‘진실의 힘’ 고문 피해자 선생님들이 쌍용차 아이들의 치유를 위한 성금을 내셔서 그들을 돕기 시작했어요. 피해자인데 치유자 역할을 하고 계신 거죠. 이분들 마음이 치유가 되면서 놀라운 변화가 있었던 겁니다.

앰 – 요즘 들어 한국 사회가 무척 잔인하다, 폭력적이다라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 보통 사람들이 남에게 던지는 말들이 굉장히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느껴지는 때가 많고요, 또 한 가지는 사회 구조적으로, 고문이라든가 성폭행이라든가 하는 문제처럼 가해자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직장에서도, 직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도 스스로 쓸모 없다는 느낌을 사회가 지속적으로 주는 것 같아요. 사회구조적인 면,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두 가지 레벨에서 폭력이 계속 느껴지는데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지 궁금합니다.

정- 네. 폭력적이죠. 우리 사회에 많은 것들이 필요한데, 저는 그중에서도 치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 받는, 내가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존재가 되는 가운데 도처에 상처받는 사람이 넘쳐난다는 느낌이 들어요. 부하 상사 간에, 친구 간에,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예요. 가해자가 없죠. 왜냐하면 상처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심지어는 더 잘 되라는 의도에서 한 행동이거든요. 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과도한 가치 부여를 하는 과정 중에 ‘사람’에 주목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잘 안 보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주목하지 않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몇 가지 실마리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실상은 사람에 대해서 잘 집중하지 않고요, 사람에 대해서 잘 집중하지 않다 보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을 많이 겪는 것 같아요. 자기가 사람을 보지 않아서 생긴 일인데, ‘쟤가 저럴 줄 몰랐다’는 식으로 사람에 대한 일반론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고요. 자꾸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 또 다른 기준, 잣대들을 외부적으로 자꾸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을 더 모르겠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 한국사회가 60살 가까이 된 하나의 인격체라고 본다면 우리가 이런 걸 진단해볼 수 있을까요? 정신적 현상이라든가, 병리적 증상으로요.

정- 사회적으로 우리 부모 세대는 전국민이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 환자라고 볼 수 있죠. 사람이 도처에 죽어 나가고 가족 중에 몇몇이 죽는 걸 보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거든요. 정상적일 수 없죠. 그런 심리적 상처가 한 번도 다뤄지거나 보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물리적인 것에 집중하면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정상적이기가 참 어렵다고 느껴요. 최근에 제 주변 사람들 보면, 국민 불안 시대라고 할 만큼 전체가 병들어 있다는 느낌을 일상적으로 받아요. 제가 지금 어디가 아주 아픈 분들을 돌보고 있지 않은데도, 그냥 친구나 이웃이나 친척이나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너무 일상화 돼 있어요. 요즘엔 빈자나 부자나 예외가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여자들이 억압을 많이 받아서 우울증의 대명사였는데 요즘엔 남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정신건강과 관련한 지표가 있는데, 동양권이 억압이 많아서 안 좋거든요. 그 중에서도 일본이 가장 안 좋았었는데요, 한 10년 전부터는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가 1위입니다. 지구상에서도, 동양권,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만으로 스트레스성 질환의 고위험 그룹에 우리가 속한다고 볼 수 있죠. 우리가 이런 것에 무감각해져 있고 마비가 되어 있죠.

앰 – 전 세계 주요 국민들의 마음상태랄까 이런 것들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이 가장 세속적인 사회였대요. 어찌면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잘 살아갈 것 같은 사람들인데, 뭐가 이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가는 걸까요?

정- 현실적이어서 더 잘 대처할 것 같은데 왜 그럴까, 비유를 하나 해볼게요. 2차 대전 때 아우슈비츠에서도 그렇고 월남전과 관련한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들이 있는데요, 아우슈비츠에서 포로들에게 일주일에 물 한 통 주는 정도로 최소량의 식수를 주고 강도 높은 노동을 하게 했어요. 일주일에 한 통 식수를 주면 그 적은 물로도 반은 마시고, 반은 얼굴을 씻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다 먹어도 시원찮을 양이지만, 자기 자신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생존율을 보면 반을 남겨서 자기 존엄에 투자를 했던 사람들의 생존율이 더 높다는 겁니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현실적인 기반을 닦으면 삶도 그 기반 위에서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은 그렇게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데, 자기 존엄성을 지키는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 그것이 물리적 생존에 더 영향을 미쳐요.

앰 –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박사님께 다 가서 상담을 받기는 힘든 일이고요.

정 – ‘나’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존엄하다’ 그랬잖아요? 존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존엄의 방법론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요, 저는 존엄의 방법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나에 대해서 집중하시라고 더 얘기하고 싶어요. 나를 잘 보지 않으면 나를 존엄하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존엄의 방법론으로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더 고통스럽냐? 그렇게 생각하진 않고요, 그럼 성공 못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냐?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성공’이란 것은 개인의 삶의 질과 본질적으로 관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흔히 성공하면 잘 사는 데 유리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적 성공이란 때로 자기 억압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억압한 심리적인 대가는 삶에서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거든요. 사람은 여러 가지 심리적 역할과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때 건강해요. 예를 들어서, 고은태 선생님이 앰네스티에서는 집행위원, 학교에서는 교수, 집에서는 아빠, 남편 이렇게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이런 것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한 인간으로서 균형 잡히고 삶이 행복할 수 있는데요.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하는 정체성을 갖는 경우에, 예를 들어 장관이나 대통령, 학교 총장 등의 직업을 갖게 되면, 나를 한 직업적 정체성과 과도하게 동일시하게 되죠. 대통령으로서 그 사람의 삶이 다 지배되겠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착각이 일어날 수 있고요. 한 인간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여러 가지 다른 기능들을 잃어버리고 그 심리적 대가를 고스란히 치러야 한다는 거죠.

 – 그런데 나를 들여다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 나를 보시려면 내 느낌이나 분노를 잘 들여다 봐야 돼요. ‘화’라는 건 내 경계를 무엇인가가 침범했을 때 심리적인 자기 방어를 위해서 나오는 감정적 리액션이에요. 나를 알기 위해서는 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나의 감정을 아는 것입니다. 내 신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내 스승의 신념일 수 있고, 내 가치관도 내 부모의 것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의 감정을 보면 훨씬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을 잘 알 수 있죠. 그래서 면벽하고 명상하지 마시고요, 자기 감정을 잘 들여다 보세요. 신문을 보다가도 ‘아, 내가 이런 일에는 이렇게 분노하는구나.’ 하는 거, 이게 나를 아는 거죠. 어떤 종류의 사람을 유난히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고요, 내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죠.

앰 – 존엄 이전에 존엄하기 위한 기본선, 아무리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도 사람이 돈도 벌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도 필요한데, 그것 자체가 해결이 안 되서 힘겨워 하는 젊은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참 답답하고 답이 없는 문제긴 한데, 어떤 조언을 하실 수 있을까요?

정- 아까 ‘화’ 얘기랑 연결을 해서 말씀드릴게요. 저는 직장을 다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그걸 극복하고 잘 다니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둘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가 좀 간과하고 있어요. 보통 이렇잖아요? 이력서를 100군데 넣었는데 연락이 오는 데가 없으면 나중에 ‘나는 무가치한 존재야,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요. 그러니까 가해자는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만 속출하는 상황인 거예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이걸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해요. 그런데 가해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그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쉽게 찾으려 해요. 내가 못나고, 내가 무능해서 이런 것이고 결국은 내 탓으로 되는 거죠.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고 무너지게 되고, 그렇게 자기 규정을 한 채로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남들이 보기에도 저 사람이 무능해서 저렇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분노하고 내 문제가 아닌 것에 대해서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굉장히 치열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청년들이 겪는 자기에 대한 규정은 거의 99%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지 개인 문제가 아닌데 이런 해석의 오류는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 대해서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앰 – 그런 사회 구조적인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어떤 걸 할 수 있을까요?

정 – 각성된 개인들이 모여서 소리를 내면 들리지 않을까요? 각성된 개인이란 자신에게 부당한 해석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 분명히 화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개인이에요. 우리 사회에 폭력이 일상화되는 이유가 분노하지 않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앰 –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를 보면서 저에게 던져진 가장 큰 질문은 ‘어쩌면 이렇게 사회가 무관심할까’라는 것이었어요. 박사님 얘기를 들으니 그것도 우리가 분노할 줄 모르는 것,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앰네스티 회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 제가 우리사회에 치유가 많이 필요하다고 했는데요, 저는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은 고통을 같이 드러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상대가 되어준다면 누구보다 뛰어난 치유자가 될 수 있고, 우리 모두 그럴 수 있는 기본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에 쌍용차 관련해서 ‘박혜경과 레몬트리 공작단’이라는 자원활동가들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활동을 해요. 그 친구들이 진심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데, 그중에 한 아이가 버스를 못 타요. 그 아이한테 버스라는 건, 아빠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경찰 특공대들이 탄 버스예요. 레몬트리 공작단과 동물원으로 소풍을 갔는데, 그 아이는 버스를 못 타서 못 갔어요. 그런데 8주차 되는 때 남산공원을 가려고 버스를 대절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자원봉사자에게 자기를 안아서 버스를 보여달라고 했대요. 그래서 그 친구가 아이를 안아서 버스 두 칸을 올라가서 버스 내부를 보여준 거죠. 아이가 한참 버스를 보더래요. 봉사자는 그냥 놀아준 건데, 애정을 가지고 놀아준 건데, 2년 동안 버스를 못 타던 아이가 버스 두 칸 올라가서 버스를 한참 동안 지켜본, 그런 훌륭한 치유를 할 수 있었던 거예요. 물론 정신과 의사들이 그 아이를 데려다가 놀이치료다 뭐다 해서 치료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게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는 모두다 진심과, 애정과, 깊은 공감이 있으면 정신과 의사보다 더 훌륭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여러분 안에 치유적 요소들을, 앰네스티를 통해서 자극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2011년 6월 26일에 있었던 50주년 기념 특별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2011년 002호 소식지 ‘앰네스티가 만난사람’ 코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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