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블로그

[12월 기획] 특별한 변화, 앰네스티 50년의 역사 ③

앰네스티의 첫 촛불을 밝히고, 평생 비전과 용기로 불의에 맞서온 피터 베넨슨은 2005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인권활동은 전세계 감옥과 고문실 그리고 죽음의 수용소에 인권의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이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감옥에서 풀려났고 형기가 줄어들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사형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한 사람의 용기에서 시작된 국제앰네스티는 반세기를 지나 2011년 현재 전세계 150개국 이상에서 300만 명의 회원 및 지지자 그리고 활동가들과 함께 인권실태조사와 캠페인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 국제앰네스티는 인권분야에 있어 누구나 알고 있는 보통명사가 되었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영향력 있는 인권단체가 되었다.

지난 50년 동안 앰네스티는 고문을 국제적으로 없애 왔고, 전쟁범죄를 저지른 지도자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게 했다. 또한 국제형사재판소를 설립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고 학대와 잔혹행위를 증명해왔을 뿐 아니라 정의를 위해 혁신과 투지로 활동하며 억압받고 잊혀진 사람들에게 그들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 연대해 왔다. 앰네스티는 인권을 침해하는 독재자들과 맞서 50년 동안 싸웠다. 이를 통해 앰네스티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뭉치면 특별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금 이 역사적인 순간, 우리가 걸어온 변화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조망하고자 한다.

새로운 시작, 새천년의 촛불을 밝히다 (2002~2011년)

1990년대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의 다가올 새천년에 대해 희망적인 전망을 내보였다. 특히, 2000년을 맞으며 유엔은 회원국 만장일치로 새천년개발목표를 통과시키면서 2015년까지 전세계가 함께 빈곤을 퇴치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이러한 희망적 전망은 두려움으로 바뀌어 갔다. 자유시장 경제와 국제금융의 자유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일부 몇몇에게는 더 큰 자유와 부를 안겨 주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빈곤과 절망을 키워 놓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반면 이러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변화의 맞은편에서 인권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자리매김한다. 인권은 인지되는 수준을 넘어 세계 전역에서 변화의 구호와 주장이 되었고, 인권의 목록은 각국의 헌법과 법률 및 국제적인 인권조약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다듬어지고 규정으로 명문화됐다. 인권운동은 그 힘과 참여 인원이 모두 증가했으며, 인권의식도 그 어느 때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러한 희망과 공포의 2000년대를 거치면서 앰네스티는 전세계 150개국 이상에서 300만 명의 회원 및 지지자 그리고 활동가들과 함께 인권실태조사와 캠페인을 수행하는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영향력 있는 인권단체가 되었다.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는 20여 년간 입국이 거부되던 나라들에 대한 조사활동이 가능해졌고, 빈곤과 인권침해의 악순환에 대한 캠페인을 통해 그간 인권 침해자로 인식되지 않았던 기업에 대한 활동으로도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또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난민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캠페인도 더욱 강화하게 된다.

2002년과 2003년은 앰네스티 조사활동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2002년 수년간 국제적 로비와 압력으로 요청한 결과 처음으로 미얀마 입국이 허가되었고, 19년만에 처음으로 수단 입국이 허가되었다. 또한 2003년에는 20년간 입국이 허용되지 않았던 이라크에 대한 첫 번째 조사활동이 착수되었다. 조사팀은 실종된 사람들의 친척들의 삶에 대한 감동적인 인터뷰를 담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자신이 22년간 수감되었던 감옥을 다시 방문했다.>

<1998년 넬슨 만델라가 국제앰네스티 양심대사상을 수상하고 있다.>

50년간 앰네스티는 세 차례에 걸쳐 전세계적인 고문반대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테러 사건 이후“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법구금과 고문의 문제가 다시 전세계적인 화두가 된다. 이에 2005년에는 테러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인권’을 중점적으로 고려하라는 내용의 “정의로운 방법으로 테러에 맞서라(Counter Terror with Justice)”라는 캠페인을 실시한다. 특히 2007년에는 쿠바 관타나모만 미군기지에 5년간의 불법구금 종식과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위한 글로벌 캠페인을 진행하고,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취임 첫 100일 동안 해야 할 “관타나모 수용소 불법구금 중단”을 포함한 17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2009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폐쇄 및 CIA 비밀 구금프로젝트 중단 행정 명령에 서명한다.

90년대 이후 앰네스티는 수많은 분쟁지역을 조사하고 모니터링 했다. 그 결과 쟁을 악화시키고, 막을 수 있는 분쟁을 장기화시키는 것은 분명 무기라는 것을 앰네스티는 확인했다. 그래서 2003년 국제앰네스티와 옥스팜, 국제소형무기행동네트워크 3개 단체는 국제 무기거래조약의 제정을 위한 캠페인인 무기거래통제캠페인(Control Arms Campaign)을 출범시켰다. 처음 캠페인이 시작될 때 많은 사람들은 실현 불가능한 캠페인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캠페인 시작 3년 만에 무기거래조약의 제정을 위한 큰 수확을 거두게 된다. 2006년 12월, 61차 유엔총회에서는“무기거래조약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획기적인 결의안이 채택된 것이다. 이 결의안은 총 192개의 엔 회원국 중 153개국의 찬성표를 이끌어냈다. 이제는 어느 국가도 무기거래조약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못한다. 사실 그 어느 국가도, 심지어는 이 결의안에 반대표를 행사한 미국조차도 무기거래가 통제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공통의 기준이 필요함을 원칙적으로 부인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국제앰네스티의 강점이 발휘되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다. 광범위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작성된 보고서를 바탕으로, 우리의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이에 따른 명확한 요구사항을 가지고 이들 국가의 도덕적 책임감에 호소할 때 아무도 인권의 보호와 증진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앰네스티는 2004년부터 그 동안의 여성관련 캠페인을 확대한 전세계적인 “여성폭력추방캠페인(Stop violence against women)”을 시작한다. 그 첫 단계로 무력분쟁 속 여성에 집중한다. 현장조사를 통해 수단에서의 대규모 강간, 납치 그리고 살인의 심각성을 폭로했다. 이후 2006년에는 가정폭력에, 2008에는 소녀들의 교육에 집중한다. 이뿐 아니라 앰네스티는 미국의 선주민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여 각국 정부에 여성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그들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아이린 칸 사무총장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인 길원옥 할머니(왼쪽), 살리 셰티 사무총장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오른쪽)>

2009년 앰네스티는 역사적으로 기록될 만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그 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난 50년간 앰네스티는 억압에 대항하고 정치적 권리를 외치는 시민들의 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위해 캠페인을 벌여왔다. 하지만 현실상황을 볼 때 아직도 전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먹고, 자고, 쉬고, 배우고 일하며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빈곤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앰네스티는 세계인권선언에서 밝혔던 인간의 존엄함이 어느 한 부분의 인권만 개선된다고 해서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래서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함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도 증진하는 활동을 펼치겠다는 (((나는 존엄하다)))캠페인을 2009년 시작한다. 이 캠페인은 배제와 박탈, 불안, 강요된 침묵의 상황에서 빈곤한 사람들의 권리침해문제를 알리고 이들이 빈곤의 덫에서 빠져 나와 스스로의 존엄함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또한 이 캠페인은 빈곤과 인권침해의 악순환적인 상황 중에서도 슬럼과 산모사망, 기업의 책무성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2009년 시에라리온과 미국에서 피할 수 있는 산모사망의 상황을 전세계에 알렸다. 특히 시에라리온의 경우 당국의 무료 산모보건서비스를 도입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 니제르 델타지역과 인도 오리사 지역의 기업의 책무성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결과 인도 오리사 지역의 경우 선주민의 권리와 기업책무성 간의 상징적인 승리로 인도 정부는 인도 오리사 지역에서 보크사이트를 채굴하려 했던 베단타 기업의 계획을 취소시켰다.

<2011년 2월 12일 중동·북아프리카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 런던 트라팔가 광장, 앰네스티 스웨덴지부 회원들이 벌인 니카라과의 낙태 금지 정책에 반대하는 탄원 서명 활동, 1983년 앰네스티 덴마크지부의 양심수를 위한 주간(왼쪽부터 차례대로)>

 

국제앰네스티 현황

지부와 구조들 국제앰네스티는 총 68개의 지부, 구조, 구조 전 조직(pre-structures)이라고 하는국가별 사무실 및 지역별 국제사무국(International Secretariat)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프리카 베닌, 부르키나 파소, 코트디부아르, 가나, 케냐, 말리, 모리셔스, 세네갈,시에라리온, 남아프리카 공화국, 토고, 우간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알제리, 이스라엘, 모로코, 레바논, 튀니지
미주 지역 아르헨티나, 버뮤다, 캐나다, 칠레, 멕시코, 파라과이, 페루, 푸에르토리코,우르과이, 미국, 베네수엘라
아시아-태평양 호주, 홍콩, 일본,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몽골, 네팔, 뉴질랜드, 필리핀, 대만, 태국
유럽 오스트리아, 벨기에, 크로아티아, 체코 공화국, 덴마크, 페로제도, 프랑스,핀란드, 독일, 그리스, 헝가리,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몰도바,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러시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스웨덴,스위스, 터키, 영국, 우크라이나

 

 

새로운 50년의 촛불을 밝히다

50년이 지난 지금 앰네스티는 많은 승리를 이뤄냈다. 1961년부터 반세기 동안 전세계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인권보고서와 공문서가 약 1만 7천여 개가 출간되었다. 1961년부터 매년 발간되는 연례보고서는 25개 이상의 언어로 작성되어 각국 장관들과 국가원수들을 포함한 전세계 다양한 관계자들에게 보내진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 앰네스티는 수많은 감사편지를 받았다. 한 가지 사례를 들자면, 1998년에 석방된 나이지라아 신문편집자인 크리스 안야우(Chris Anyanwu)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감사편지를 보냈다. “카드와 봉투들이 바닥을 가득 메웠을 때 조그만 감옥에 앉아서 제가 받은 느낌을 표현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 후부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끝까지 나의 신념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 각자는 카드 한 장을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카드들은 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것처럼 거대한 압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전 양심수들 또는 고문 희생자들이 보내온 감사편지들로 앰네스티 캐비넷은 가득 차고 있다. 또한 현재 고문은 국제협약에 의해 금지되었으며 매년 많은 국가들이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해 최악의 반인류적 범죄들은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아직도 세계에는 3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전쟁터에서 총을 들고 싸우고 있고, 고문은 금지되었으나 81개가 넘는 국가에서 비밀리에 고문을 사용하고, 54개가 넘는 국가에서 불공정한 재판이 행해지고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관습, 문화, 종교에 의해 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또한 너무나 많은 정부들이 정부관계자들이 자행하는 양심수에 대한 잘못된 구금, 살인 또는 실종사건에 대해 면책을 주고 있다.

<2001년 세계인권선언일>

이렇게 인권침해가 아직도 현실인 상황에서 앞으로 앰네스티의 운동이 성공하려면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냉전과 같은 분명한 상황은 이미 지나갔다. 국제적 역학관계는 계속 변하고 있다. 사회 내에서 저항과 사회발전의 과정도 또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오늘날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던 저항운동들도 이제는 밖으로 나와 새로운 정부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대중적 시위는 로비, 법적대응, 마케팅과 같은 다양한 방식의 도움을 받고 있다. 대중의 행동은 어떤 사회에서는 더 이상 유효한 수단이 되지 않고 있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가장 중심적인 것이 되고 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그것을 이용하고 그것의 가능성을 아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앰네스티는 반드시 우리의 지역공동체, 사회단체, 정 부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방법들을 이해하고 개발해야 한다.

그동안 앰네스티는 인권의 기준으로 국제사회를 변화시켜왔다. 특히 국제인권질서를 변화시켜왔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사회구조와 대항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개인의 연대, 개인 간의 공감이 바탕이 되었다. 이것이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과 지지자들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앰네스티의 신념이 앰네스티의 활동을 50년 동안 유지하고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여전히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천천히 변화될지 모르지만 앰네스티의 활동은 전세계 곳곳에서 인권을 향상시키고 변화시키고 있다. 앰네스티의 운동이 성공하려면 앞에서 언급했던 사회구조와 대항하고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전통적인 그룹형태를 뛰어넘어 개인의 연대와 공감을 어떻게 앰네스티의 가치로 강화해 갈 것이냐가 앰네스티의 새로운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국제앰네스티의 열렬한 지지자인 U2의 2010-2011년 360도 투어>

이러한 개인 간의 연대를 바탕으로 앰네스티는 인권침해 문제에 있어 사람들의 무관심을 분노로, 분노를 행동으로, 그리고 행동을 변화로 이끌어 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가진 작은 힘을 모아 큰 힘으로 만들어 불의라는 높은 벽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다. 함께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그 길에 동참하도록 저잣거리에 서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선동가인 것이다.

앰네스티 50주년을 맞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특별한 변화들을 돌아보면 앰네스티는 단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변화해 왔다. 앞으로의 50년 역시 세상을 변화시키고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앰네스티가 더 이상 필요 없고, 존재할 이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는 것은 불가능할까? 피터 베넨슨은 앰네스티를 처음 만들던 당시 앰네스티가 사라지는 날을 상상했다.

“마지막 양심수가 풀려나고, 마지막 고문실이 폐쇄되고, 유엔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권이 실재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우리의 일도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피터 베넨슨

 양심수였던 사람들과 국제앰네스티의 개입, 그리고 노벨 평화상

1974 노벨평화상 숀 맥브라이드(Sean Mc Bride),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
1975 노벨평화상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 양심수
1977 노벨평화상 국제앰네스티
1980 노벨평화상 아돌프 에스키벨(Adolfo Perez Esquivel), 양심수
1986 노벨문학상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1965년 국제앰네스티의 지원을 받음
1991 노벨평화상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양심수
1992 노벨평화상 리고베르따 멘추(Rigoberta Menchu), 1993 국제앰네스티의 지원을 받음
1993 노벨평화상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2000 노벨평화상 김대중, 양심수
2004 노벨평화상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 양심수
2006 노벨문학상 오르한 파묵(Orhan Pamuk), 양심수
2010 노벨평화상 류 샤오보(Liu Xiaobo), 양심수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2011년 002호 <표지이야기>코너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홍콩: 경찰의 폭력을 즉각 조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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