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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기획] 특별한 변화, 앰네스티 50년의 역사 ②

2011년 국제앰네스티 50주년을 맞으며, 억압과 불의에 맞서온 앰네스티 50년의 역사는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이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불의에 맞서 행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앰네스티 50년의 역사이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20년의 역사 속에서 앰네스티가 만들어낸 특별한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앰네스티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전망해 본다.

음악, 인권의 촛불을 밝히다(1982~1991년)

앰네스티의 세 번째 십 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의 시대가 끝나는 변화의 시기였다. 정치적 격변 속에 앰네스티는 많은 국가에서 다른 형태의 억압이 자행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앰네스티의 수임사항을 확장하게 된다. 이러한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앰네스티는 계속적으로 성장했고, 1990년까지 150개국에서 70만명의 회원과 활동가들이 앰네스티 운동에 함께 했다. 한편 음악콘서트, 인권교육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인권운동의 대중인식을 확대한다.

1970년대 앰네스티는 남미에서 군사정권들이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기 위해 고문을 상습적으로 쓰던 시절 고문폐지를 위한 국제조약을 강화하고 고문을 종식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리고 80년대 정치적인 억압이 감옥에서 비사법적 처형과 실종의 형태로 옮겨가자 앰네스티는 이 새로운 형태의 인권유린에 적절히 대응했다. 이러한 대응으로 1982년 각국 정부에 강제실종된 수 천명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밝히도록 촉구하는 국제적인 캠페인을 진행했고, 1983년에는 정부에 의해 자행되는 정치적 살인에 대한 특별 보고서를 발표했다.

1984년 고문 종식을 위한 12가지 계획이 포함된 두 번째 전 세계적인 고문반대 캠페인을 실시한다. 그 결과 유엔은 세계인권선언 35주년이 되는 1984년 ‘고문이나 기타 잔혹한,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에 관한 협약(고문방지협약)’을 채택한다. 1972년 세계적인 고문철폐캠페인을 시작한 이후 12년 만에 세상을 변화시킨 값진 성과였다. 이로 인해 결의안과 선언으로서의 고문철폐가 아닌 국제인권 법 기준으로서 고문철폐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부르카 형제(왼쪽), 러시아에서의 회원 확장(오른쪽)>

국제앰네스티는 또한 대중의 인권에 대한 의식을 증진시키기 위해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대중 이벤트를 시작한다. 1986년 미국지부는 U2와 스팅 등이 참여한 ‘Conspiracy of Hope’ 락 콘서트를 개최했다. 1986년 6번의 콘서트를 열었는데 이를 통해 앰네스티 25주년을 맞으며 인권활동에 대한 인식을 증진시키는 좋은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8년 세계인권선언 40주년을 기념하는 ‘Human Rights Now’ 전세계 콘서트 투어가 런던에서 시작됐다. 런던, 파리 등 주요 유럽도시들로부터 북미와 남미 아시아에 걸쳐 15개 국가 19개 도시에서 열렸으며 세계인권의 날에 방송된 콘서트는 약 100만 명이 시청할 정도로 대규모의 행사였다. 이러한 활동은 대중에게 앰네스티의 활동과 인권의식증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직접적인 결과로 많은 나라에서 앰네스티 회원이 급속하게 늘어 나는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동안 앰네스티는 양심수 구명활동을 시작으로 고문철폐, 사형제도 폐지, 강제실종을 종식하는 데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1985년 헬싱키에서 개최된 국제대의원 총회에서는 난민을 위한 활동까지 영역을 확대하기로 결정했고, 1987년에는 활동범위에 수감자도 아니고, 정치적이거나 혹은 비정치적 피해자로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고의적인 죽음도 활동범위에 포함시켰다. 창립 30주년을 맞는 1991년 업무의 영역을 추가로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수임사항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국제대의원총회에서 앰네스티는 세계인권선언에 언급된 모든 권리를 증진시키겠다는 약속을 새로운 수임사항으로 채택한다. 인질극과 같은 무장저항단체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 활동하고, 성적 지향을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도 양심수로 고려하는 것도 수임사항에 포함되었다.

<런던 의회광장에서 벌어진 앰네스티 철야 침묵 시위>

앰네스티는 암담하고, 너무나 명백하지만 은폐되어 온 인권침해의 현장을 떠난 적이 없다. 앰네스티는 변화하는 세계 속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오늘날 앰네스티가 인권문제와 인권투쟁을 사회무대의 중앙으로 성공적으로 끌어내고 이를 지속시킨 원동력은 이렇게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역사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1961년 앰네스티 활동이 시작될 때 사람들은 앰네스티와 같은 단체의 아이디어 자체를 비웃기도 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적·경제적 힘을 갖지 못한 무명인사들이 모여 무지막지한 정부의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정중한 편지를 써 보냄으로써 그와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를 회의적으로 보았다. 그 생각 자체가 유치하고 낭만적이며 감상적인 우매한 짓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앰네스티는 ‘우리시대의 미친 짓 중의 하나’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시대의 미친 짓이 인권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된 것이다.

앰네스티 지지 유명인사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 애니 레녹스(Annie Lennox),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Asian Dub Foundation), 보노(Bono),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달라이 라마(Dalai Lama),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Archbishop Desmond Tutu), 아웅산 수치(Daw Aung San Suu Kyi),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존 클리즈(John Cleese), 믹 재거(Mick Jagger),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퍼프 데디(Puff Daddy), 김대중(Kim Dae-Jung), 라디오헤드(Radiohead), 스팅(Sting), 토니 블레어(Tony Blair), 트레이시 채프먼(Tracey Chapman), 유투(U2),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요코 오노(Yoko Ono), 유쑨두(Youssou N’Dour),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

 

 

<김대중, 아웅산 수치, 퍼프 디디(Puff Diddy)>

앰네스티 캠페인, 인권변화의 촛불을 밝히다 (1992~2001년)

앰네스티는 하나의 캠페인으로 시작되었다. 앰네스티의 국제적 운동을 시작시킨 “사면을 위한 탄원 1961(Appeal for Amnesty 1961)”은 단순한 언론보도나 연구물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을 움직여서 행동하게 하고 변화를 위해 쓰여진 것이었다. 그 이후로 캠페인 활동을 통한 변화를 달성하는 것은 앰네스티의 임무가 되었다. 90년대 들어 앰네스티는 전세계적인 글로벌 캠페인을 폭넓게 전개한다. “정치적 살인과 실종, 초법적 처형” 캠페인, “인권은 곧 여성의 권리” 캠페인,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캠페인 그리고 “소년병” 캠페인 등 다양하고 폭넓은 캠페인이 이전 30년보다 더욱 활발히 국제적으로 전개된다. 1990년까지 70만 명이었던 전세계 회원은 1992년 100만 명에서 1999년에는 180만 명을 넘어서게 되고 수백 수천의 기부자와 지지자도 지부활동에 함께 하게 된다.

90년대 이후 앰네스티 캠페인 활동의 주요한 특징은 이전과 달리 감옥 밖에서 인권이 유린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이 많았다는 것이다. 무력분쟁 속에서 살해되는 사람들, 가문과 지역사회에 의해 살해되거나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여성들, 거리에서 폭압적인 정치의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그래서 앰네스티는 이 시기부터 전쟁범죄 그리고 여성의 인권침해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1993년 정치적 살인과 실종, 비사법적 처형에 관한 글로벌 캠페인인 “거짓 뒤의 삶(The Lives Behind the Lies)”이 전개되고, 1994년에는 여성에 관한 국제 캠페인인 “인권은 곧 여성의 권리(Human Rights are women’s rights)”가 펼쳐지게 되면서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 세계여성대회에서는 “인권이 곧 여성의 권리”라는 결의안이 채택된다. 그리고 1996년에는 가나지부 회원들이 여성할례에 대한 앰네스티 첫 워크숍을 개최한 후 7개 아프리카 국가로부터 파견된 앰네스티 조사단이 여성할례에 대한 조사를 착수한다.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앰네스티 영국지부 회원들(왼쪽), 새천년개발목표 시행을 촉구하는 플래시몹 시위(오른쪽)>

이 밖에도 1996년에는 인권침해실태 폭로에 있어 의료 종사자들의 역할에 대한 캠페인인 “변화를 위한 처방(Prescription for Change)”이 진행되고, 1997년에는 전세계 난민 인권보호를 주요 캠페인으로 전개한다. 그리고 1999년에는 30만 소년병 문제에 대한 앰네스티의 캠페인이 전세계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앰네스티는 여러 국제적 비정부기구들과 함께 “소년병 동원근절을 위한 연합”을 설립했다. 이 연합 조직의 캠페인은 2000년 5월 유엔 총회에서 무력분쟁상황에서의 아동문제와 관련해 아동권리협약선택의정서가 채택되도록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앰네스티와 국제사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한가지 이정표를 세운다. 앰네스티는 제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 재판 이후 헤이그에서 처음으로 열린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전쟁범죄 재판을 주목한다. 그 이유는 세계의 다양한 지역

에서 활동해 온 앰네스티의 경험에 따르면 인권침해를 지속시키는 단일 요소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바로 불처벌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1996년 이후 앰네스티는 수년에 걸쳐 800개 이상의 비정부기구와 연대하여 집단살해, 비인도적 범죄 및 전쟁범죄에 대한 사법권을 가진 공정하고 독립적인 국제형사재판소의 설치를 위한 캠페인을 전개한다. 1997년에는 당시 사무총장이던 피에르 사네(Pierre Sane)가 최초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러한 앰네스티의 문제의식을 제기하게 된다. 그 결과 1998년 유엔총회에서는 120개 국가가 상설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의 법적 근간이 된 “로마조약(The Rome Statute)”를 채택하고, 2003년에는 드디어 네델란드 헤이그에 국제형사재판소가 설립된다.

1998년은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앰네스티는 “일어나 서명하라!(Get Up, Sign Up!)” 캠페인을 통해 세계인권선언을 지지하는 1,300만 명의 서명을 모아 당시 코피아난(Kofi Annan)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세계적 예술가들과 함께 1998년 세계인권의 날을 기념하는 콘서트를 파리에서 개최한다. 이번 콘서트에는 라디오헤드(Radiohead),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Asian Dub Foundation),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등이 출연하고 달라이 라마(Dalai Lama)와 국제적인 인권활동가들이 특별 출연했다.

<국제앰네스티 전시회(왼쪽), 피터 베넨슨 추모 행사(오른쪽)>

2001년 국제대의원총회에서는 앰네스티 활동의 원칙에 있어 큰 변화를 결정한다. 이 결정으로 앰네스티는 40주년을 맞으면서 인권침해의 범위를 이전보다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수임사항의 인권침해 유형에 대한 정의를 앰네스티 비전, 임무, 핵심가치에 대한 광범위한 진술로 대체한다. 그러면서 인권의 불가분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미션을 채택하여 그 동안 자유권 영역에만 한정되었던 앰네스티 활동을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대한 영역으로 넓히고, 그 범위를 더욱 확대하게 되었다. 이렇듯 앰네스티의 수임사항은 40여 년 동안 새롭게 제기되는 인권문제들에 직면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새로운 수임사항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대한 구별을 없앰으로써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분성을 앰네스티의 가치로 천명하게 된다.

아직도 앰네스티가 촛불을 밝히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이 촛불은 우리를 위해 불타는 것이 아니라, 감옥으로부터 우리가 구출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불타는 것이다. 이들은 구금 중 죽임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납치되고 실종된 이들이다. 촛불은 바로 이들을 위한 것이다.” –피터 베넨슨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2011년 001, 002호 <표지이야기>코너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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