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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기획] 앰네스티 역대 언론상 수상작 ②살인피해자의 인권과 살인범의 인권

▷ 제11회 수상작  <SBS 스페셜 –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

▷ 제12회 수상작 <세계일보 – 헌법 30조를 아십니까?>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사형제에 반대하는 영화였습니다만, 사형수로 등장했던 숀 팬이 사형을 당하는 걸로 끝이 납니다.

주목할 장면은 마지막 사형 집행 장면입니다. 사형수의 집행 장면과 사형수가 저질렀던 범죄 장면이 서로 교차되는데, 이 영화를 감독했던 팀 로빈슨은 이 장면의 의도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형 장면에서 사형수의 범죄를 되새기는 장면을 넣은 것은, 이렇게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관용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관객에게 묻는 의미였다고요.

여러분은 사형제를 왜 옹호하십니까? 혹은 왜 반대하십니까?

가장 논란이 되는 건 아동 범죄, 잔인한 살인 같은 흉악 범죄를 마주했을 때입니다. 이러한 범죄 앞에 사형제를 옹호하는 논리의 가장 큰 축은 사형제가 지닌 응징의 측면입니다. 사형제 옹호와 폐지, 두 주장을 가르는 가장 큰 물음은 “잔인한 범죄자를 살려둘 가치가 있는가?”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가해자의 인권이 피해자 인권과 배치된다는 생각을 근저에 두고 있습니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가해자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입니다.

앰네스티 언론상 11회 수상작 SBS 스페셜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와 12회 수상작인 세계일보의 <헌법 30조를 아십니까?> 보도는 이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도였습니다. 두 수상작의 공통점은 “사형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SBS 스페셜 <용서, 그 먼 길의 끝…>는 사형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 가족이 살인범을 용서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휴먼 다큐멘터리에 가깝습니다. 다큐에 묘사된 피해자 가족의 고통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들의 상처는 응징으로도 용서를 통해서도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이 다큐가 말하는 유일한 진실인 것 같습니다. 희생자 가족에게 용서는 너무 멀고, 복수나 응징은 또 다른 지옥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다큐가 담고 있는 희생자들의 커다란 고통이 외려 사형제의 부조리함을 설득하고, 사형제논의를 풀어갈 지점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복수 수단으로서 사형’에 대한 회의가 그것입니다.

<용서, 그 길의 끝…>에 등장하는 살인 피해자 가족은 살인범을 용서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살인범에 대한 온정 때문이 아닙니다. 가해자를 증오하고 있을 때 지옥처럼 황폐한 자신의 마음 때문입니다.

<연쇄 살인 사건으로 부인과 자식 둘을 잃은 고정원 씨.>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인범을 용서하려 하지만, 용서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2007년 고정원 씨가 연설을 했던 사형폐지국가 선포식. 당시 앰네스티의 사형폐지 퍼포먼스.>

고정원 씨는 치유에 도움을 받기 위해 미국 살인 피해자들의 가족 모임인 ‘희망 여행’에 참가합니다. ‘희망여행’은 미국에서 사형폐지 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알고 싶었다. 자신이 택한 용서의 길이 맞는 것인지, 그렇다면 여전히 고통스러운 현실은 무엇 때문인지를.”

막연하게 살인범을 용서하고 자신을 치유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고정원 씨가 그곳에서 확신하게 되는 진실은 이것입니다. 미국의 살인 피해자 가족들이 사형폐지 운동을 시작하게 된 발로는 휴머니즘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살인으로 딸을 잃고, 사형으로 아들을 잃은 씨씨 할머니를 만납니다.

<씨씨 할머니 역시, 복수가 치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폭탄 테러로 12년 전 딸을 잃은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용서한다고 분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용서는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복수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

가해자를 용서하려 해도 괴롭고, 증오해도 괴로워하는 희생자 가족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형이 희생자 가족의 복수를 대신해 줄 수 있는가? 그 응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자 대안인가?’ 이 다큐는 사형제를 유지하는 근거가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인본주의적 배경에 있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설명합니다. 사형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본질적인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형은 범죄에 대한 사회의 분노를 단기간에 잠재워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응징이나 복수를 통해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 사형제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근거가 피해자의 인권 존중이 아니라면 사형은 최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이 다큐의 메시지일 것입니다.

<헌법 30조> 보도는 헌법 30조가 보장하고 있는 범죄 피해자의 인권에 대한 기사입니다. 특기할 점은, 범죄피해자들의 인권을 조명하는 관점이 피해자 구제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져야 할 책임에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기사는 피해자들이 사법 처리 과정에서 국가의 무관심이 빚어내는 폭력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받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합니다. 살인으로 가장을 잃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피해자 가족들의 모습이나 범죄때문에 발생한 재산 손실을 수습하기 위해 직접 소송에 나서야 하는 사연, 가족의 시신을 직접 거두고 사건 현장을 수습해야 했던 사연은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이 보도는 헌법에 범죄 피해자 구제 의무가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이 거의 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피해자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보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헌법 30조…>는 ‘피해자 인권 VS 살인범의 인권’이라는 대립적인 프레임이 주를 이루는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 처벌만이 국가가 피해자 인권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처가 아님을 일깨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형에 관한 논의는 흉악범의 인권이냐 피해자 인권이냐라는 양자택일의 프레임에서 이뤄집니다. 이 구도에서는 사형제 폐지론이 마치 살인범의 인권만 옹호하는 것처럼 느껴지죠. 사형에 관한 논의가 때로 감정적으로 치닫고, 사형 외에 다른 대안에 대해서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이유도 이 이분법적인 프레임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SBS <용서, 그 길의 끝…>과 세계일보 <헌법 30조…> 보도가 던졌던 문제 제기는, 흉악범의 기본권 보장이 곧 피해자 권리 침해는 아님을 일깨운 것이었습니다. 특히 <용서, 그 먼 길의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는 살인범의 인권이 아닌, 피해자 입장에 더 깊이 들어갔을 때 사형제 폐지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사형제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도록 이처럼 새로운 관점의 언론 보도가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수상작 원본 링크

SBS 스페셜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 (2007.12.23)

세계일보 <헌법 30조를 아십니까?> (2008.12.15)

 

이은나래/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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