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The invisibles’와 미디어 액티비즘

동트는 새벽녘 나는 달리고 있어요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어느 하늘 아래를 말이죠

태양이여, 부디 나를 들키게 하지 말아다오

이민국에 신고되지 않도록

어디로 가는 걸까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난 희망을 찾아 가고 있어요

혼자서 외로이, 사막을 헤매며 도망쳐 가고 있어요

 

 

‘돈 데보이’는 스페인어로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뜻입니다. 언뜻 사랑 노래인 것 같지만 실은 멕시코 이주노동자들의 애환을 가사로 쓴 노래입니다. 미국으로 가는 국경선에서 경계를 넘어 미국으로 입국하기도 어렵고, 자칫하면 단속에 걸려 본국으로 송환되는 상황…그곳에서 이제 우린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구슬프게 노래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돈 데보이’는 모든 이주자들(migrant)과 이산자들(diaspora)의 숙명과 같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멕시코의 ‘아메리칸 드림’도 한국의 그것만큼 역사가 오래 되었나 봅니다. 어쩌면 멕시코인들에게 미국 이민이란 한국인들의 아메리칸 드림보다는, 저 옛날 식민 치하의 한국인들이 생존을 위해서 타향살이를 택했던 상황과 더 비슷할 겁니다. 멕시코는 오랜 시간 동안 민주화 과정을 거쳐 정치적 상황을 개선했습니다. 그러나 멕시코의 사회 경제적 여건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OECD 가입국이면서도 극심한 빈부 격차와 빈곤 문제는 멕시코의 고질적인 사회문제이며, 멕시코 민중의 삶을 힘겹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으로의 이민이 멕시코인들에게는 여전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자 꿈입니다.

앰네스티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유

<<The invisibles>의 이주 노동자들이 탄 ‘죽음의 열차’>

이주노동자들의 불법 이민이 험난할 거라는 건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국제앰네스티는 멕시코 이주민들의 상황을 조사하던 중 이들이 처한 현실이 이민자들의 일반적인 어려움, 즉 넉넉지 못한 경제사정이나 입국의 장애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앰네스티는 2009년 멕시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보고서를 냅니다. 보고서에는 내전 중인 지역에서나 벌어질 것만 같은 충격적인 인권 침해 상황들이 고발되어 있습니다. 멕시코‘갱’ 조직은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은데, 이들 멕시코 범죄 집단이 국경지대에 숨어 있다가 가난하고 힘 없는 이주노동자들을 공격해왔던 것입니다. 갱 집단의 공격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멕시코인들 뿐 아니라, 온두라스, 페루 등지에서 멕시코를 통과하여 미국으로 가려는 수많은 이주민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폭력, 납치, 살해, 성폭력, 고문…이런 단어들의 나열로는 이주민들의 고통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가슴 아픈 사연이 많습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와 미국 정부는 끔찍한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없었습니다. 오히려 멕시코 정부는 갱 조직의 압력이 두려워 이를 방조한다는 혐의까지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앰네스티는 멕시코 이주민들에게 즉각적인 조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깊은 공감을 얻고 이를 통해 멕시코 정부를 압박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바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가 멕시코 이주민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이를 캠페인과 연결시킨다는 계획이었죠.

미디어 액티비즘과 참여

멕시코 이주민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주안점은 작품의 완결성이나 앰네스티 홍보가 아니었습니다. 멕시코 이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신속한 조치를 멕시코 정부에 촉구한다는 현실적인 목표가 있었습니다. 앰네스티가 진행해 왔던 온라인 탄원이나 모바일 액션의 짧은 글은 상황을 제대로 담기에 부족한 그릇이었고,보고서는 모든 사람이 읽기에는 너무 방대했죠. 반면, 다큐멘터리는 이주민들 각자의 사연을 사실적이면서 과장되지 않게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특히, 카메라를 통해 이주민들의 말을 직접 듣고 표정을 읽을 때 그들의 절박한 상황에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 보고서에서 이주민들은 통계와 수치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러나 다큐에서는 모든 이주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누군가의 딸이자 어머니, 내 이웃과 같은 구체적인 인물로 다가옵니다. <The invisibles>는 이주민들을 개별적이며 구체적인 인간으로 조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즉, 사람들의 참여는 공감과 감정이입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에 근거하여,영상 매체가 지닌 파급력을 최대한 활용했던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실제 액티비즘에도 뚜렷한 성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멕시코 이주민을 위한 캠페인 활동과 연계되어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미디어 도구를 활용하는 것을 ‘미디어 액티비즘’이라 합니다. <The invisibles>는 앰네스티의 첫 번째 미디어 액티비즘 시도였지요.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재발견

<The invisibles>를 보다 보면 내내 듣기 좋은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멕시코 출신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목소리입니다. 베르날이 인상적인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체 게바라’역을 맡았을 때입니다. 거기서 베르날은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체 게바라를 구현해냈습니다. 작은 체구에 소년 같은 얼굴을 한 청년 ‘Che’랄까요?

꽃미남 스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혁명가 체 게바라를 그토록 잘 표현해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베르날은 예전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배우였습니다. 특히 자신의 조국 멕시코에 대한 애정으로 동료 배우 디에고 루나와 함께 <Embulant>라는 재단을 만들어, 멕시코의 열악한 지역에 조국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을 보급하고 상영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직접 영화사를 설립해 멕시코 사회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철저하게 그의 직업과 영화적 재능을 이용해 사회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가 아닌 자신의 사생활에서 봉사 활동을 실천했다면,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직업적 틀 내에서 사회 참여에 동참한 셈입니다. 베르날은 2010년,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이주민들의 인권에 기여한 공로로 인권상(WOLA 인권상)을 받았습니다. 또, ‘2010 GFMD 이주와 개발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The invisibles>의 첫 시사에 앞서 이 영화의 감독이자 활동가 자격으로 연설하기도 했습니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경우처럼, 미디어를 잘 아는 사람의 참여와 협력도 미디어 액티비즘을 추구하는 괜찮은 방법일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에 다큐멘터리를 전파하고픈 열망 그 이상의 무엇으로 서로 연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 이웃들의 악몽과 꿈을 마주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돌려 주고 싶다는 긴급한 열망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 상을 이주민을 돕는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저 자신도 이민자로서 그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WOLA 인권상’ 수상소감 중에서

미디어 액티비즘이 나아갈 방향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미디어 액티비즘, 그로 인한 홍보 효과, 참여 유발…더 많은 사람에게 진실을 알리고, 그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들입니다. 미디어 액티비즘뿐 아니라 앰네스티 활동들의 주요 내용이자, 존재 이유죠.

그러나 모든 권리 회복 운동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고발과 참여입니다. 미디어 액티비즘의 지향점도 여기 있습니다. 지금은 카메라의 객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손에 자신의 문제를 고발하는 카메라를 쥐어주는 것,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나 앰네스티의 이름이 아니라 멕시코 이주민의 이름으로 기록을 남기도록 돕는 것 말입니다.

지난 9월 3일~4일 이틀간 열렸던 제6회 이주민영화제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 이주민영화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였던 <내 인생 한국에서>의 감독 임론로시아디(Imron Rosyadi) 씨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소회를 밝혔습니다.

“내가 만들어서 진짜 좋아요, 감동입니다. 이건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한국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생각이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제 영화로 만들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직접 영화를 제작해서 정말로 좋았다는 이주민 감독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주민 감독들이 직접 만든 영화들을 감상하는 동안, 자신의 상황을 떳떳이 밝히고 일하는 시간을 쪼개 영화를 만든 의지와 열정에 진심으로 탄복하게 되었습니다.

<The invisibles>의 말미에 발견할 수 있는 건, 멕시코 이주 노동자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들 고유의 존엄함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이주민들을 계속 인터뷰했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도 이주민들에 대한 깊은 감명을 표현합니다. 이주민들은 인권에 관한 어떤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명확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그들의 이주를 향한 힘과 의지에 감명받았다고 말입니다.

<DMZ 다큐영화제>

<The invisibles>가 오는 22일과 25일, DMZ 다큐영화제에서 다시 상영됩니다. <The invisibles>는 고발을 상징하는 ‘현장 속의 카메라’(Witness Zone) 섹션에 초대받았습니다. 영화제는 함께 상영하는 영화들에 따라 영화가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지난 이주민영화제에서는 이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라는 영화제의 맥락 때문인지 다큐 속 인물들의 내면적 힘이라든가 용기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지요. DMZ 다큐영화제에서 <The invisibles>는 콜롬비아 내전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고발한 애니메이션과 함께 상영될 예정입니다.

 

* 초대권이 배부될 예정이니 현실 고발 영화와 이주민들의 현실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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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ae

자메이카: 경찰의 살인을 묵인하지 않고 맞서 싸우다 / 샤켈리아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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