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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 : 슬럿워크

여러분은 ‘집회’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민중가요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주먹을 불끈 쥐며 ‘투쟁하라’, ‘싸우자’를 외치는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사실 집회라고 해서 모두 어렵고 강경한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집회는 다양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멕시코의 한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동물학대와 모피생산을 반대하기 위해서 온 몸에 가짜피를 바르고 모피를 입고 있는 퍼포먼스 집회를 한 바 있어요. 그리고 한 프랑스단체에서는 노숙자문제의 심각성을 경각시키기 위하여 노숙자들을 위한 집으로써 텐트를 마련함으로써 텐트집회를 펼치기도 했지요. 뿐만 아니라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촛불시위’ 역시도 평화적이면서 독특한 집회라고 할 수 있겠네요.

<독특한 퍼포먼스로 눈길을 끌고 있는 멕시코의 한 동물보호단체>

<이젠 보편적 집회문화로 떠오른 촛불시위>

그런데 여기에 조금 더 파격적인 집회가 있습니다. 바로 슬럿워크(Slutwalk)입니다. 슬럿워크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지난 1월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요크대학의 ‘안전교육’강연에서 마이클 생귀네티라는 경찰관이 “여자들이 성폭행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매춘부(슬럿·Slut)처럼 옷을 입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학생들은 성폭행을 당한 것을 피해자들의 옷차림에 원인을 묻는 사회를 비판하고자 집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집회를 하기로 하진 않았지요. “내가 매춘부처럼 옷을 입어도, 그 누구도 내 몸을 범할 권리는 없다”라는 메시지를 직접 표명하기 위하여 모두가 야한 차림을 한 채로 행진을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슬럿워크입니다.

지난 4월 캐나다 토론토에는 3천 여명이 모여 슬럿워크를 진행했고 여세를 몰아 슬럿워크는 국경을 초월했습니다. 7월 초까지 보스톤, 시애틀, 런던, 시드니, 멕시코시티까지 세계 60여 개 도시로 집회가 이어졌습니다.

<슬럿워크의 시초가 된 캐나다 토론토의 슬럿워크>

그리고 지난 16일, 우리나라에서도 슬럿워크의 바람을 타고 말았습니다. 지난 5월 즈음 트위터에 캐나다의 슬럿워크를 소개하는 맨션이 떴습니다. 리트윗이 계속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진행해보자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습니다. 유독 이 시기에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이 많았기 때문인데요.

현대차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성희롱하고 이에 항의하자 해고시킨 사건, 성폭력을 당한 노래방 도우미가 재판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껴 자살하는 사건, 그리고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등이 있었지요. 그 중 고려대 의대생 성추생사건은 슬럿워크의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고려대측이 가해학생들에게 어떠한 징계도 내리지 않자 고려대 졸업생들이 나서서 성추행 가해자들의 출교를 요구하는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합니다. 그 중 한 여성이 슬럿워크 차림새로 1인시위에 나타났습니다.

<고대 앞에서 슬럿워크 차림으로 일인시위를 진행 중인 한 고려대 졸업생>

이처럼 성폭력 사건뿐만 아니라 이 사건들에 있어서 남성중심적인 사고가 팽배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사람들은 트위터에서 슬럿워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주최측은 슬럿워크라는 생소한 외국어를 ‘잡년행진’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그리고 “내몸이야! 손대지마!”, “벗어라, 던져라, 잡년이 걷는다!” 등의 구호를 만들어 외쳤습니다. 이날 일정은 고려대 앞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려대 성추행 사건에 항의하는 의미의 슬럿워킹을 했구요. 이어 원표공원에서 아바(ABBA)의 댄싱퀸(Dancing Queen)을 플래시몹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배우 ‘레드걸’은 이날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파격적이면서도 여성 인권 증진에 힘을 실은 집회였습니다. 각종 행사가 끝이 나자 이들은 덕수궁까지 행진을 했습니다. 말그대로 ‘잡년행진’이 시작된 것입니다.

<벗어라, 던져라, 잡년이 걷는다!>

<이렇게 입어도 저 안싸요!>

<덕수궁 앞에서 댄싱퀸에 맞춰 플래시몹을 선보이고 있네요>

계속되는 폭우 속에서도 잡년들은 지칠 줄 몰랐습니다. 행진은 이어 홍대로 향했습니다.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 며칠 후면 내 생일 등 가수들과 함께 뒷풀이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공연자 가운데 초청되거나 고용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들도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었지요.

여기서 신기한 점은 한국에서 진행된 이번 슬럿워크가 바로 주관단체도 없이 개개인이 모여서 진행했다는 점이에요. 단지 뜻을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모여서 집회를 진행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이번 집회는 표면적으로만 드러나는 여성인권문제가 아니라 사회 깊숙이 뿌리 박힌 문제를 인식하고 이슈로 떠오르게 했어요. 그 방식도 아주 독특하고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날 뒷풀이에 참여한 가수 지현은 한 매체에서 “한국판 슬럿워크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퇴근 후에 새롭게 만들어가는 운동 방식”이라고 인터뷰한 바 있습니다. 이제 집회는 소수 활동가들만의 무대가 아닙니다. 바로 평범한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앞으로 집회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퍼포먼스로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고 쉬운 이미지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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