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블로그 인터뷰

일상이 된 마약 – 북한의 마약 문제

북한과 마약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이하 ‘한국지부’는 최근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을 다루며 북한 주민의 마약 사용 및 중독 실태에도 주목해 왔다. 최신 북한인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2년 넘게 이뤄진 탈북인과의 심층 면접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된 주제는 바로 ‘마약’이었다.

한국지부는 북한 내 마약 사용 실태를 보다 상세히 들여다 보기 위해 이번 블로그 글을 준비했다. 마침, 북한 마약 문제를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이 최근 발표된 바 있다. 해당 논문은 『북한 마약 문제 연구 : 국가주도형 초국가적 조직범죄 특성을 중심으로』이다. 저자는 북한 국제범죄 전문가이자 북한인권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관형 박사이다.

10월 초 한국지부는 논문의 저자를 직접 만나 북한 주민의 마약 사용 실태와 함께 그것이 인권적 측면에서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 가진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 전문가 대담 아래에는 한국지부가 최근 탈북인 심층면접을 통해 수집한 북한 내 마약 사용 실태 관련 증언도 살펴볼 수 있다.


북한 마약 문제 분석

이관형 박사
    이관형 박사

  • -정책학 박사(북한학 전공)
  • -現 (사)엔케이워치 사무국장
  • -前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 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장
  • -前 (사)북한인권정보센터 연구위원
  • -前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연구원

북한 마약의 역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 지부, 이관형 박사 → 박사

지부: 북한의 마약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줄 수 있나요?

박사: 북한 당국 주도의 마약류 생산과 밀매 문제는 1945년 8월 광복 직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에게 마약류는 전술적 도구로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과거로 더 되돌려 보면, 북한의 마약 시초는 이보다 더 앞선 일제 강점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1930년대부터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일본이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겠죠. 당시 일본은 식민지에서 여러 자원을 수탈했는데, 그 중에 ‘양귀비’[1]도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중국 내 점령지역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양귀비를 대대적으로 재배해 ‘아편’[2]을 채취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당시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아편이 비상 의약품으로서의 ‘의료적’ 역할뿐만 아니라 경제적 가치가 큰 ‘재화’이기도 했습니다.

지부: 해방 이후에도 한반도에서 아편 생산이 계속되었나요?

박사: 광복 후 북한 당국은 의료용 아편을 직접 생산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인민위원회 농림부 특별상품과가 주도해 함경도, 양강도 산간지역에서 아편을 생산했고 ‘신의주제약공장’에서는 ‘모르핀’[3]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높은 제조 기술을 요구하는 고순도 ‘헤로인’[4]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가 연루된 마약 유통

지부: 북한 당국이 마약 생산과 거래에 직접적으로 관여해왔다고 보시나요?

박사: 그렇습니다. 북한에 있어 마약은 그 자체가 곧 국가의 재화입니다. 북한은 이른바 ‘유일적영도체계’, 즉 수령의 명령에 의해 군, 국가, 인민이 움직이는 하향식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약 생산과 수출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수령을 비롯한 지도부의 승인에 의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비밀리에 마약을 취급했기에 이 시기만 하더라도 민간인 사이에서 마약이 널리 퍼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1950년대부터도 일반 민가에서는 집집마다 양귀비를 조금씩 심곤 했지요. 그것은 당시 남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소규모가 아닌, 대규모의 고품질 마약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이 이뤄져야 했습니다. 북한 내 민간인들이 마약 생산 기술을 습득한 것은 1980년대 이후 국가가 주도적으로 고순도 마약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과는 별개로, 북한이 마약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계기가 있습니다. 바로 1970년대 해외에 있는 북한 공관과 외교관을 활용해서 마약 밀매를 시도했던 일련의 사건들이죠.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이 시기부터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국가 주도형 마약 거래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드러난 북한 마약 관련 사건 및 정보를 종합해 볼 때, 1980년대 이전까지는 북한 당국이 국내에서 마약을 대량으로 생산해 이를 밀수출했다기 보다는 제3국 등지에서 생산된 마약을 다른 나라에 이윤을 붙여 중계 무역 형태로 판매하는 식으로 돈을 벌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북한 내부, 즉 일반인 사이에 돌아다니던 마약은 치료용으로 종종 쓰이던 소규모의 아편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거의 없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는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에 출판된 ‘조선말대사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조선말대사전을 살펴보면 마약과 관련한 단어는 거의 볼 수 없는데, 이는 당시에만 해도 북한 내에서 마약 문제가 크게 이슈화 되어 다뤄졌던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죠.


함흥시에 위치한 흥남제약공장 내부

함흥시에 위치한 흥남제약공장 내부

본격적인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

지부: 그러면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북한 당국이 마약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나요?

박사: 그렇습니다. 북한 내부의 마약 확산은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경제 상황은 나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는데요. 김정일의 경우 1974년 2월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명된 후에도 무리한 치적 사업을 이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장기적으로 경제침체의 길을 걷게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죠. 경제가 어려워짐과 동시에 필요한 돈은 더 늘어만 갔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국에게는 자금을 마련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바로 무기와 마약 판매였습니다.

무기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부피가 크죠. 이에 비해 마약은 부피가 작아 은닉이 쉽고 저비용으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사업이었습니다. 이 시기 여러 정황상 북한 당국은 그동안 해외에서 벌여온 중계 형식의 마약 밀무역을 넘어, 자신들이 마약 생산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더 큰 규모로 돈을 벌려고 결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북한에서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국가가 주도해 생산한 마약의 대부분은 외국으로 수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외국으로 마약을 수출하기 위해 활용된 주요 중간 거점은 러시아와 중국이었는데요. 주중북한대사관과 주러북한대사관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민간영역, 즉 북한 내 암시장에서도 국가가 생산한 마약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지부: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은 주로 어디서 이뤄졌나요?

박사: 당시 북한에서 국가 주도로 마약을 생산하던 시설 중 대표적인 곳으로는 ‘흥남제약공장’, ‘순천제약공장’, ‘상원만년제약공장’을 들 수 있습니다. 마약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프라가 갖춰져야 해요. 보안 유지에 용이한 지형을 갖춰야 하며 전기도 필요하죠. 생산에 들어가는 물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흥남구역이 있는 함흥시, 그리고 순천시 같은 경우에는 화학 및 제약 인프라가 많이 조성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거니와 과학자들이 많이 사는 도시이기도 했어요. 상원만년제약공장 같은 경우는 원래는 평양시에 속했으나 지금은 황해북도에 속하는, 평양과 인접한 곳이죠. 이들 공장 모두 외부에는 제약공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공장 내 마약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시설을 보유했다는 증거가 속속 발견되었습니다. 이 외에 군(軍) 소유의 시설도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시설은 지하 갱도에 있어 위성으로도 소재 파악이 어렵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국가 주도형 마약 생산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감시해왔습니다. 북한 당국은 마약을 생산하던 시설 가동을 한동안 멈추는 식으로 마약 생산 활동을 숨기고자 했죠. 일시적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그곳에서 마약을 생산하던 기술자 중 일부는 민간으로 나왔고, 자신들이 직접 마약을 생산해 팔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마약을 생산하던 과학자, 기술자가 민간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마약을 생산하게 된 것이죠.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이 일반인 사이에서의 급속한 마약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결국 오게 된 것이죠. 북한 당국이 자초한 부메랑 효과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2020년 여름 수해 피해 지역에 도착한 의약품을 받고 기뻐하는 북한 주민들

2020년 여름 수해 피해 지역에 도착한 의약품을 받고 기뻐하는 북한 주민들

마약의 확산

지부: 그렇다면 일반인 사이에서 마약 사용이 눈에 띄게 증가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박사: 주민들 사이에 마약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입니다.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에서는 사회시설, 생산시설 할 것 없이 국가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시설 가동이 멈췄습니다. 제약회사도 마찬가지였죠. 질병이 창궐하고 병자가 늘어나면서 항생제와 치료제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국가에서 제공하던 보건의료 서비스가 멈춘 상황에서 필수 의약품을 구할 방도는 없었습니다. 이 시기 마약이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반 사람들은 마약이 정확히 무엇이고, 마약의 부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 거의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아편은 오래 전부터 치료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기에 그나마 조금 알고 있는 수준이었죠. 하지만 그마저도 배탈, 설사, 고열 같은 게 있을 때 효능이 좋다는 내용 정도였고 그것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떠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민간에 아편 말고도 새로운 마약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필로폰’으로, 북한에서는 ‘빙두’, ‘아이스’ 등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5]과 헤로인이 그것이었습니다. 민간에서의 헤로인 유통은 2000년대 초반 근절되었지만, 메스암페타민은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 나갔습니다.

지부: 이 시기 주민 사이에 확산된 마약은 당국이 생산한 시설에서 나온 것이라 봐도 되나요?

박사: 그렇습니다. 북한 당국이 마약을 관리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간에 마약에 풀리면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죠. 만약 마약을 몰래 빼돌리다가 발각될 경우 극형에 처해질 정도로 처벌이 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통제에 능한 북한이라고 해도 모든 영역에서 100% 수준까지는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 당시 국가가 비밀리에 운영하던 마약 생산 시설에서 일하는 일부 노동자 및 간부는 생산된 메스암페타민 중 일부를 뒤로 빼돌렸습니다. 이렇게 빼돌려진 메스암페타민은 개인 밀수업자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북한 내부에도 메스암페타민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수출용으로만 생산하던 매스암페타민이 어느 순간 내수용으로 돌아서게 된 것이죠.

일단 마약이 퍼지게 되면 그 누구도 이를 되돌리기 힘듭니다. 특히, 북한의 경우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 내 의약품 공급 체계가 사실상 붕괴된 상태에서 마약의 심각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마약을 무분별하게 접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이게 만병 통치약이라더라!’, ‘이거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라는 식의 소문이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마약은 사회 곳곳으로 광범위하게 침투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나라의 경제사정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병원을 가도 약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장마당에 나가도 항생제 같은 기본적인 약조차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인 상황에서 마약 사용의 증가는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이었습니다.


실패한 마약 통제

지부: 북한 당국은 내부의 마약 유통을 강력하게 제재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렇게 마약이 확산되었나요?

박사: 그 당시만 해도 마약 사용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시행되고 있었으나 마약의 심각성이나 해로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국은 포고령을 통해 대중에게 ‘마약을 생산하거나 유통하면 처형한다’는 식으로 경고를 했지만, 그 이상의 정보, 예를 들어 마약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학적 위험성과 같은 내용은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약의 해악에 관해 잘 알지 못했고, 이러한 인식은 곧 마약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죠. 물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지만, 이미 마약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이를 알고도 마약을 끊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지부: 당국의 마약 문제 해결 의지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나요?

박사: 북한 주민의 마약 사용 증가에는 간부들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북한에서는 마약 통제를 담당하는 관료집단부터 마약이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현재 북한은 마약을 생산하는 민간 생산자를 포함하여 사법 당국자, 당 간부 등 권력을 쥔 핵심 간부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한 배에 올라타 있는, 모두 다 같은 부패고리에 엮여 있는 상황입니다. 국가의 방침이 어떻든 이를 실행하는 중간 간부층 모두가 부패해 있다 보니 실제 민간 영역에서의 마약 통제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지요. 검찰소, 국가보위부, 사회안전부 같은 법기관에서 일하는 법일꾼 모두가 다 같은 줄에 엮여 있으니까요.

지부: 가끔 마약 유통에 관여된 자를 처벌했다는 소식이 나오기도 하던데요?

박사: 이따금 강력한 통제가 필요한 시점에 보여주기 식으로 조그마한 잔챙이 수준의 말단 생산자나 판매자, 또는 중독자를 잡아들이는 수준입니다. 이제는 북한 간부들도 마약의 생산과 유통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마약상을 쉽게 건들일 수 없는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이들이 결국 자신들, 그리고 권력층과 밀접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죠. 국가 정책상으로 마약을 강력하게 통제한다고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국가 관리들이 이를 제대로 따르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어요. 그들 역시 생산과 유통 과정에 밀접하게 관여하고, 마약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도부 입장에서도 이 간부들이 없으면 당과 국가를 통제할 수 없기에 모두를 해임, 출당, 철직할 수도 없습니다.

지부: 현재 북한 인구 중 어느 정도가 일상적으로 마약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는지요?

박사: 북한 인구 중 정확히 어느 정도가 마약을 접했는지에 관해 상세히 다룬 연구는 아직까지 나온 적 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제대로 된 통계를 발표하지 않는 한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수치를 얘기할 수 없죠. 하지만 제가 연구 중에 만난 여러 탈북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다음과 같아요. “머저리, 미물이 아닌 이상, 전당 전군 전민이 다 한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마약을 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약을 누구나 접할 수 있다고는 해도 그 가격이 결코 저렴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북한 주민은 가난한데 무슨 돈이 있어서 마약을 할 수 있겠냐고 의문을 가지기도 하죠. 마약류 통제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이뤄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약은 북한 주민만 하는게 아닌, 제3세계, 중남미나 아프리카 빈국의 저소득 계층에 속한 사람들도 하고 있죠. 북한과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의 사람들도 마약류 중독에 심각하게 빠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자신이 마약 소매상이 되든 범죄를 자행해서라도 마약을 구입합니다.


마약으로 인한 피해

지부: 통제를 벗어난 마약의 급속한 확산으로 주민들이 마주한 피해도 심각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박사: 그렇습니다. 마약의 해악으로는 무엇보다 건강의 악화를 들 수 있는데요. 먼저, 아편의 경우 과다 투여하면 경련, 혼수, 호흡장애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메스암페타민의 경우 과다 투여하면 정신적으로는 폭력성이 증가할 수 있고, 신체적으로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등이 발생할 확률이 높지요. 또한, 이를 장기간 복용할 경우 체중 감소를 비롯해 칼슘 흡수가 잘 안되면서 뼈가 부식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메스암페타민 중독자들은 보통 뼈가 잘 부러지고 치아를 잃기 쉽습니다.

사회적 측면에서 마약은 노동 생산성을 심각하게 저해합니다. 노동자의 건강이 마약으로 인해 부실해짐에 따라 노동력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인데요. 메스암페타민 같은 경우는 각성제로 분류되기에 잠을 안 오게 하는 등 순간적인 노동 효율을 올리는 데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중독으로 인해 정신과 체력의 저하가 발생하면서 인간 자체가 망가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결국,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의 노동 생산성을 현저히 악화시키는 것이죠.

또한, 가족의 해체와 범죄 증가도 말할 수 있어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는데요. 최근에는 마약으로 인해 가족 해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번 마약에 중독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약을 구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절도, 강도, 인신매매 등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요. 결국, 마약이 퍼진 사회는 점점 파탄의 길을 걷게 될 수밖에 없어요.


2003년 호주로 헤로인을 밀반입하려다 호주 당국에 나포된 북한 화물선 봉수호

2003년 호주로 헤로인을 밀반입하려다 호주 당국에 나포된 북한 화물선 봉수호

당국의 행보

지부: 무엇보다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박사: 북한에서 마약관리법이 채택된 것은 2003년도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북한 내부에 마약 문제가 심각해지다 보니까 북한 당국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마약 관리와 관련한 법을 제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마약관리법 제정은 내부 통제의 기능도 물론 있겠지만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의미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3년 4월 북한 선박 ‘봉수호’가 호주에 헤로인 150kg을 들이다가 호주 군경 합동 단속에 적발된 적이 있는데요. (관련 기사)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크게 망신을 당합니다. 사건 발생 얼마 후인 2003년 8월 북한은 마약관리법을 채택했고, 2005년도에 5월에 마약관리법을 수정 보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06년 봉수호 선원 대부분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평결을 받고 풀려나기는 했는데요. 2007년 북한은 ‘마약에 관한 단일협약’, ‘향정신약품에 관한 협약’, ‘마약 및 향정신성물질의 불법거래방지에 관한 국제연합협약’ 등 국제 협약에 연달아 가입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북한이 이렇게 마약 관리와 관련한 입법을 추진하고 국제 협약 가입 행보를 보인 이유는 위와 같이 마약 관련 중대 범죄에 북한 당국이 연루되었다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이것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면서 심각한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지부: 북한도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군요.

박사: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최소한 국제사회의 표준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형식상이라도 보여주고자 합니다. 2007년 위에 언급한 세 가지의 마약 관련 국제 협약에 가입한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한데요. 당국은 자신들이 마약 관련 범죄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부: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최근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을 더 이상 하고 있지 않다고 봐도 될까요?

박사: 공개 자료들을 살펴보면 2014년 이후 북한 당국이 마약 거래와 직접 관련되어 적발된 사건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북한이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과 밀매를 중단했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을 완전히 중단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겪으며 과거보다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하는데 더욱 능숙해졌기 때문에 최근의 국가 주도의 마약 생산 또한 외부에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계속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3국에 생산 시설을 만들어 기술자들만 파견하면 과거와 같이 직접 밀매를 자행할 때보다 더 보안성을 높일 수 있죠. 제3국에서의 생산 시설 설치와 밀매 가능성에 대해서는 1999년 한국의 정보 당국에 의해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습니다.[6] 그리고 아직 한국에서는 방영이 되지 않았지만 2020년 10월 11일 BBC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The Mole: Infiltrating North Korea』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요.

강력한 국제사회의 제재 아래 현재 북한이 외화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 되지 않습니다. 마약은 그 중에서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마약 소비자 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그 수요 또한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북한이 저질러 온 국제 범죄의 이력을 감안하면, 커져가는 마약 시장에서, 더욱이 재정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여타의 수출품도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자발적으로 글로벌 마약 시장에서 발을 뺄 수 있을까?’라는 합리적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과 의무

지부: 그렇다면 북한이 마약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보는지요?

박사: 마약 문제 대처와 관련하여,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강경한 태도와 적극적인 의지와는 달리, 실제 주민들의 삶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모습은 과연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그동안 북한 당국은 자국에 마약 중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주민에게는 마약과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을 넘어 정보에 접근할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고요. 잔혹함으로 잘 알려진 공개 처형만이 북한 주민의 생명권과 관련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당국이 마약 문제에 대해 보여온 태도 역시 넓은 의미에서 북한 주민의 간접적 살인을 방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 당국이 마약 생산을 주도했고, 이와 관련한 생산 기술과 생산물이 민간에 퍼지게 되면서 일반 주민들이 마약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국가에 의해 촉발된 것이기에 국가가 자국민의 안전에 책임을 져야 할 문제로 봐야 합니다.

지부: 북한 당국이 마약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박사: 당국은 마약의 위해성에 대해서 대중에게 상세히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국가 자체적으로도 마약을 엄격히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대중이 마약의 위험성을 알고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조성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약 문제에 접근할 때 대중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지부: 국제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박사: 안타깝게도, 북한의 마약 문제는 아직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공론화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UNODC)’가 있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습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에는 ‘마약위원회(Commission on Narcotic Drugs, CND)’도 있는데요. 이곳에서는 1990년대에 수 차례에 걸쳐 북한 마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언급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별도의 언급이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북한의 이웃국가, 혹은 북한에 관심을 가지는 국가라도 나서서 북한 내 마약 사용 실태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 국무부가 매년 발간하는 ‘국제마약통제전략보고서(International Narcotics Control Strategy Report, INCSR)’가 있는데요. 그나마 이 보고서는 북한 주민의 마약 중독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 당국 주도의 마약 범죄뿐 아니라 마약에 노출된 북한 주민이 마주하고 있는 인권 상황에 대해서 조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한국지부가 수집한 마약 사용 실태 관련 탈북인 증언

현재 한국에 정착한 탈북인 집단을 북한 인구의 전형적인 표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들을 대략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국지부가 만난 대부분의 탈북인은 북한 주민 다수가 마약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상태라는 사실에 동의했다.

한국지부가 탈북인 심층 면접을 통해 수집한 증언에서는 북한 내 마약 문제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탈북인 증언 중 북한 내 마약 사용 실태와 관련한 진술을 일부 발췌한 내용이다.

열에 여덟은 다 한다. 주변에서도 많이 했다. 양강도 쪽은 아편을 많이 쓴다. 함북도 쪽에서는 빙두를 많이 한다. 보안원들이 단속을 많이 하긴 한다. 그런데 약 효과가 좋으니까 계속 쓴다. 한국은 그것보다 훨씬 효과 좋은 약이 많겠지만 북한은 아편이 최고의 약이다. 치료용으로 제일이다. 진통도 금방 없어진다. 북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편만 있으면 뭐든지 다 고칠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산이 깊다. 산에서 해가 잘 들지만 사람들이 잘 안가는 쪽에 양귀비 꽃밭을 만든다. 그렇게 직접 아편을 만들곤 했다. 팔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직장이라는 것이 다녀도 월급을 주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너무 막 산다. 이런 것을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탈북인 A

마약이 너무 일반화되었다. 일반화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해보면, 마약을 안 하는 사람이 도리어 ‘시대에 뒤떨어진’, 밀리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이겠나? 그만큼 마약 구하기도 쉽고, 판매자도 많고, 하는 사람도 많다. 마약으로 돈을 버는 게 쉽다. 밑천이 없어도 물주 있는 곳에 가서 조금씩 외상 떼어 다가 소분해서 팔고 그러면 돈을 쉽게 번다.

마약 하는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법관들 자체가 마약을 더 하니까. 형식적으로 처벌을 한다는 규정은 있다. 북한에서는 마약을 판매한다고 하면, 그 사람 집에 가서 마약을 할 수 있고 하니까 오히려 그 사람과 더 친해지려고 한다.

탈북인 B

2010년대 초까지는 평양 상원이나 함흥 지역에서 마약을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몇 년 전인가? 상원에서 만든 마약이 시중에 막 판매되고 그러니까 나라에서 상원 약 공장을 없애 버렸다. 그런데 명칭은 없어졌으나 비밀리에 지하에서 계속 마약을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당 간부들에게 공급된다고 하더라.

함흥에서 개인이 마약을 많이 만들다 보니 무산 사람들도 모조 마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약의 질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중국에서 북한에 마약을 요구하지 않더라. 그게 2016년도쯤이었다. 그 이후로는 중국으로 마약을 전혀 팔지 못했다. 중국에서 가품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원하지 않으니까.

탈북인 C

혜산에서는 빙두를 많이 했다. 빈곤한 사람들은 빙두를 할 생각을 잘 하지 못하지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했다. 그런 집에서는 그냥 일반적으로 빙두를 하곤 한다. 그럭저럭 산다는 집에 친한 지인이 오면 빙두를 같이 하는 것이다. 빙두가 진짜 약은 약이다. 뇌출혈이 와서 혀랑 입이 막 돌아갔을 때 빙두를 쓰면 바로 돌아오고 그런다. 빙두를 너무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헤딩 왔다’는 말을 쓴다. 그런 사람들은 분별없이 나댄다.

아편 같은 것은 보통 집에서 밭을 뚜지고 사는 사람들이면 다 기른다. 북한에 약이 없다 보니 아편을 만병통치약으로 본다.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 치고 아편을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아편을 많이 해서 중독된 사람은 제 시간에 하지 않으면 발작이 오곤 한다. 막 쓰러지고 그런다. 아편은 중독이 정말 심하다. 빙두는 사람을 각성시킨다면, 아편은 사람을 녹초가 되게 만든다.

탈북인 D

일반적으로 한 70~80%가 다 마약을 한다. 애들이 하기도 한다. 그런 애들은 자기가 어디 가서 마약을 사는 것은 아니고 부모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게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궁금하니까 그냥 하곤 한다. 빙두는 불을 붙여 태워서 흡연하는 것이다. 빙두를 태울 때 쓰는 기구를 공구라고 하는데 그 공구를 어디에 치워 놓는지를 자식은 알 것이지 않나? 그래서 부모들이 나간 다음에 자식들이 몰래 불을 붙이든 뭐든 본 거를 따라 하고 그런다. 애들도 할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나라에서는 강력하게 하지 말라고 하기는 한다. 그런데 이것도 돈 없으면 교화소 가고, 돈 있으면 몇 백g씩 심하게 팔아먹고 그런 사람이라도 그냥 단련대 두어 달 갔다 나오는 수준이다. 아예 무죄로 안 보낼 수는 없으니까.

탈북인 E

북한의 마약은 막지 못한다. 사람들이 생활이 힘들다 보니 마약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북한은 마약을 일종의 약제로 본다. 감기 걸렸을 때도 아편 먹고, 어디 다쳤을 때도 마약 하고 그런다. 일을 힘들게 했을 때도 마약을 사용한다.

아파트 한 동이 한 개 인민반이다. 한 동은 30세대이다. 내가 속한 인민반은 30세대였는데 그 중 4~5세대가 마약을 팔았다. 30세대 중 마약을 파는 집이 4~5세대면, 사용자는 얼마나 많다는 말이겠는가? 일반적으로 마약은 다 쓴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법관들은 더 하다. 법관들은 말할 여지도 없이 마약을 더 많이 사용한다.

탈북인 F

보천군 같은 경우에는 아편을 많이 했다. 거의 모든 집에서 아편을 채취하는데 강하게 단속을 하니까 몰래몰래 개인 밭 가운데 숨겨서 양귀비를 재배하곤 한다. 많이는 못 심는다. 그러다가 단속되면 다 뺏기고 처벌도 받는다. 걸리면 단련대에 보내지는데 재배한 양귀비 양에 따라 개월수가 정해진다. 보통 한 집에서 20~30대본(本), 많이 심는다는 집은 50대 정도 심었다. 각자가 재배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걸로는 다 충당이 안되니까 아편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공개적으로 거래하면 누군가 담당보위원에게 일러 바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 통해서 가만히 사고 판다.

나라에서는 불법이니까 하지 말라고는 하는데 마약의 부작용 같은 거에 관한 교육은 안 한다. 물론, 사람들도 마약이 몸에 나쁘다는 것은 다 안다. 그렇게 중독되어서 집, 재산 다 팔고 죽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당장 어디가 아픈 상황인데 약이 없으면 마약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괜찮아 지니까 또 한다. 처음에는 아파서 아편을 맞기 시작하지만 맞다 보면 중독이 온다.

탈북인 G

1. 아편을 만들기 위한 성분을 얻을 수 있는 식물

2. 진통, 진정 효과가 있는 역사 깊은 마약으로 모르핀, 헤로인 등의 원료

3. 아편을 원료로 하는 마약성 진통제

4. 모르핀을 가공해 만든 마약

5. 각성 효과가 있는 중추신경흥분제로 대표적인 마약 중 하나

6. 국가정보원(1999), “북한, 정권차원에서 외화벌이 수단으로 마약을 본격 생산,” 『계간 한국마약범죄』, 1999년 5월호, 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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