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뉴스

시리아 사태, “거리에서 불타고 있는 것은 내 아들이었다”

잠자던 도중 세 아들이 군인들에게 끌려나가고 한 시간만에, 어머니는 거리에서 아들들이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Amnesty International

시리아의 이들리브 지방을 방문했다 최근 돌아온 도나텔라 로베라(Donatella Rovera) 국제앰네스티 위기대응 선임고문은 시리아 정부의 참혹한 폭력진압 현장을 목격한 이들과 만나 생생한 진술을 전해 들었다.

“군인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더니 아들을 끌고 갔어요. 잠시 후에 창문 밖을 내다보니, 군인들이 손이 등 뒤로 묶인 청년 여덟 명을 벽을 보게 하고 세우고는 총으로 쏴 버렸어요. 그리고는 시신을 트럭에 쌓아놓고 떠나더군요.

그 청년들이 모두 죽었는지, 부상만 당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때만 해도 그 중 한 명이 내 아들일 줄은 몰랐죠.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학교에 널려 있는 시신들 속에서 아들의 시신을 발견한 거예요.”

그 날 살해당한 또 다른 청년의 유족은 이렇게 증언했다.

“보안군 사람들이 우리가 지내고 있던 친척 집으로 와서는 신분증을 확인했어요. 문제는 전혀 없었죠. 수배 중인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군인 중 한 명이 친척의 휴대폰을 보더니 혁명가요가 들어있는 걸 발견하고는, 친척을 밖으로 끌고 나갔어요. … 이웃사람이 말해주기를 군인들이 친척에게 총을 쏘고 근처 집으로 끌고 갔다고 하더군요. 그 집으로 가 보니 친척은 심하게 다친 상태였어요.

귀와 목에 총을 맞았지만 아직 숨은 쉬고 있었어요. 이웃사람들과 함께 그를 차로 옮기고, 이웃 세 명이 함께 야전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일반 병원은 이미 군대와 경찰에 부상당한 사람들을 받지 않은 지 오래다) 가던 도중 군인들에 붙들려 모두 살해당하고 말았어요.

나중에 한 학교에서 그들의 시신을 발견했어요. 친척의 시신만 빼고요. 친척은 총에 맞고 방치됐던 그 집으로 다시 끌려와 있더군요. 끝에 머리에 총을 한 발 더 쏴서 숨을 끊었나 봐요.”

이상의 내용은 지난 4월 16일, 시리아 이들리브시(Idlib)에서 시리아 정부 치안군이 자행한 즉결처형의 피해자 유족과 목격자들이 진술한 내용이다. 이들은 실명을 비롯해 신상을 유추할 수 있는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면담하고 진술할 것에 동의했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을 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그들과 가족들이 보복을 당할 위험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진술할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 유족과 목격자들은 ‘겁에 질렸다’는 표현으로는 지나치게 부족할 정도였다. 직접 만나본 그들은 말 그대로 공포에 떨고 있었다.

한달 반 전(3월 10~14일경) 중무장한 정부군이 이들리브시를 급습한 과정에서 아내와 아이를 총격에 잃은 남자는 이렇게 딱 잘라 말한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아직 다른 아이들이 있어요.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누가 아이들을 돌보겠어요?”

군인들에게 끌려간 아들이 같은 날 숨진 채로 발견된 노령의 어머니는 몇 주 전 보안군에 체포된 다른 아들의 생사도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이미 아들 하나를 잃었는데 남은 아들까지 군인들에게 잃고 싶지 않아요.”

지난 3월 11일 집을 수색, 약탈당하고 방화까지 당한 한 여성은 그때의 습격을 당국에 신고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그 사건이 ‘무장단체’가 저지른 일이었을 때뿐이라고 한다.

“이웃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치는 치안군 사람들을 봤다고 했어요. 백주대낮에, 사방에 탱크며 군인이며 경찰들이 깔려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무장단체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어요? 그래서 신고도 하지 않았죠.”

이들리브에서 지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유엔 사찰단이 도착했다.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대부분 사찰단이 와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찰단과 아주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안전하게 면담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몹시 불안해하고 좌절했다.

지금과 같은 군대 주둔 규모와 감시 수준으로는 보통 사람들이 비밀리에 사찰단에 접근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게 이들이 걱정하는 점이었다. 실제로 이들리브에서 지낸 며칠 동안만 해도 사방이 제복과 사복 군인, 경찰들로 넘쳐났고 대공기관총을 실은 트럭들이 시장과 도심 전역에 배치돼 있었다. 도시 곳곳에는
검문소가 없는 곳이 없었다.

4월 27일 아침, 제복 군인과 ‘샤비하(shabiha)’로 알려진 친정부 무장단체로 구성된 대규모의 군대가 대형 트럭에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봤다. 그 중 수백 명은 도심 지역인 다빗(Dabbit) 구역에서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유엔 사찰단이 온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금요예배 이후 시위를 여는 것은 보나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다빗에 있는 한 집을 나서는데 유엔 수송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저들이 교통체증에 시달리게 될 일은 전혀 없었다. 거리는 완전히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리브 주변 마을 곳곳에는 얼마 전 정부군의 급습이 할퀴고 간 상처가 완연하다. 집 수백 채가 불타 없어졌고, 어디서나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어쩔 도리가 없을 만큼 열세에 놓여 있던 반군이 정부군의 탱크 수백 대가 마을로 들이닥치는 걸 막으려는 헛된 노력으로 불을 질렀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반군이든, 전혀 전쟁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든 자택이나 친척 집에서 체포돼 즉결처형을 당했다.

사라케브(Saraqeb) 마을에서 만난 한 여성은 3월 26일 오후, 군인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15살 난 아들과 이웃집에 있던 21세의 남동생을 끌고 갔다고 전했다.

“제발 내 아들을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빌었어요. 아직 어린아이라고, TV에서 해 주는 만화영화나 보는 아이라고요. 온 몸을 던져 막아보려고 했지만 군인들은 날 위협하고는 아들을 끌고 가 버렸어요. 그리고 옆집에 있던 남동생도 함께 끌고 가더군요. 그날 저녁, 거리에 널린 다른 시신들 속에서 아들과 남동생의
시신이 발견됐어요.”

타프타나즈(Taftanaz) 마을에서는 4월 4일, 정부군이 마을을 급습했을 때 집에서 살해당한 80세 노인 두 명의 유족들을 만났다.

숨진 노인 중 한 명은 집에서 불에 타 목숨을 잃었다. 그의 아내는 그 참상을 이렇게 전했다. “저는 길 건너 친척 집에서 지내고 있었고 남편은 집에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가 보니 집은 불타 없어지고 남편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더라고요. 밖에 있던 군인들에게 남편을 어디로 데려갔냐고 물었어요. 군인들에게 체포를 당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한 군인이 ‘집에 들어가서 찾아 보라’고 하더군요. 돌아와보니 남편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어요.”

사르민(Sarmin) 마을에서는 아들 세 명을 모두 잃은 어머니를 만났다. 세 아들은 3월 23일 이른 아침 집에서 끌려나가 건물 밖에서 불태워져 목숨을 잃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던 이른 아침에 군대가 들이닥치고는, 집에 있던 아들 세 명을 모두 끌고 갔어요. 제가 밖으로 따라 나가지도 못하게 했죠.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마다 집 안으로 밀쳐 버렸어요. 몇 시간이 지난 뒤에 겨우 밖으로 나와 보니, 거리에서 아들들이 불에 타고 있었어요. 군인들이 세 명을 포개 놓고 그 위에 오토바이를 올려 놓고는 불을 붙인 거에요. 총격이 너무 심해서 저녁까지는 시신 근처에 가지도 못했어요.”

가족을 잃은 것만으로도 모자라, 유족들은 집과 생계 수단 없이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집과 상점이 불타거나 파괴되어 없어진 사람들, 짊어진 옷가지만이 가진 것의 전부인 사람들은 친척과 친구들의 도움에만 의존하고 있다.

폐허 속에서 뭐라도 건지거나 고쳐 써 보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쳐 쓰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이렇게나 많은 집과 상점은 물론 야전병원이나 약국 등의 의료시설까지 불태운 것이 보복과 집단 처벌 의도가 뒤섞인 듯한 고의행위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초법적 처형, 주거지역을 대상으로 한 총격과 포격, 이들리브 지역의 집과 상점 및 기타 건물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 등은 반정부시위가 일어났거나 반군이 주둔했던 시리아의 다른 지방에서 정부군이 저질렀던 폭력행위와 같은 유형이다.

정부군과 치안군, 민간 지도층과 명령 하부구조 구성원들은 이러한 인권침해가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명령대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으로는 그들이 법정에 회부되는 데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시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여러 나라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 글은 2012년 5월 4일 《가디언(Guardian)》지에 게재됐습니다.

영어 전문 보기

Inside Syria’s crackdown: ‘I found my boys burning in the street’

4 May 2012

Amnesty International’s senior crisis adviser Donatella Rovera has recently returned from Syria’s Idlib province, where she spoke to witnesses to the country’s brutal crackdown “Soldiers came to our home and took my son. Later, as I was peering out of the window I saw soldiers line up eight young men standing facing the wall with their hands tied at the back and shoot them. Then they put the bodies in the back of a pick-up truck and left.

I don’t know if the men were all dead or injured. At that point I did not know that one of the men was my son. His body was found with other bodies at a school not too far from our home.”

A relative of another man, who was also killed that day told me: “Members of the military security came to the house of our relatives, where we were staying and asked for our ID and did not find any problem; we were not wanted.

“Then one of the soldiers looked at my relative’s cell phone and found a pro-revolution song. They took him outside … A neighbour told me the soldiers had shot him and then taken him to a nearby house; I went there and found him injured.

“He had been shot in the ear and neck but was still breathing. Some neighbours helped to carry him to the car and three of them took him to a field hospital (normal hospitals have long been out of bounds to people injured by the army/security forces) but on the way there they were stopped by soldiers and were killed.

“Their bodies were later found at a school, except the body of my relative who had been taken back to the house where he had previously been left for dead. They had finished him off with an additional shot to the head.”

These are the accounts of relatives of victims and witnesses of extrajudicial executions carried out by the Syrian government’s security forces in the city of Idlib on 16 April. They only agreed to meet me and speak on condition that their names and any details that could identify them would not be published.

Others, whom I was able to reach after much chasing, said they could not speak as the danger of retaliation against them and their families is too great.
To say that families of victims and eyewitnesses are scared is an understatement. Those I met were literally terrified.

A man whose wife and child were shot during the army’s heavy-handed incursion into Idlib city a month and a half ago (10 to 14 March) simply said: “I don’t care about myself, but I have other children; if something happens to me who will look after them?”

An elderly woman whose son was taken from home by soldiers and then found dead later that day told me she has no news of another of her sons who was arrested by military security weeks ago. “I’ve already lost one son; I don’t want them to kill the other too,” she said.

A woman whose house was burned, looted and ransacked on 11 March told me that the only possibility for reporting the attack to the authorities was for her to say it had been carried out by “armed groups”.

“The neighbours saw it was military security members who attacked my house. It was the middle of the day and there were tanks and soldiers and security forces members everywhere in the area; how on earth could this have been the doing of armed groups? So I did not lodge a complaint.”

I got to Idlib a few days before the arrival of the UN observers. Most people I spoke to were sceptical that their presence would make any difference. Others were very keen to speak to the observers but were desperately worried and frustrated that they would not have the opportunity to do so safely.

They feared that with the current level of military presence and surveillance there is just no way for ordinary people to approach the observers in confidence. Indeed, during the few days I spent in the city the place was swarming with uniformed and plain-clothes army and security personnel; pick-up trucks with anti-aircraft machine guns were stationed all over the market area and elsewhere in the centre of town, and there were checkpoints all over the city.

On Friday morning, I saw a very large contingent of uniformed soldiers and pro-government armed gangs known as shabiha being transported in open-back lorries and a couple of hundred of them being unloaded in the Dabbit district, in the centre of town.

People still did not know the UN observers were coming to town but commented that any post-Friday prayer demonstration was clearly out of the question. As I was leaving a house in Dabbit a UN convoy was passing by; they were certainly not going to be held up by any traffic jam; the streets were completely empty.

In several villages and towns around Idlib the scars of the recent army incursions are very visible. Hundreds of houses have been burned down and everywhere I met families whose relatives were killed.

Many were killed in exchanges of fire, in what seemed rather futile attempts by hopelessly outgunned armed opposition fighters to prevent scores of army tanks from entering the towns and villages. Others, both opposition fighters and people not involved in any fighting, were extra-judicially executed after they were arrested at their homes and those of their relatives.

In Saraqeb, a woman told me that in the afternoon of 26 March soldiers came to her home and took her 15-year-old son and then her 21-year-old brother from the neighbour’s house next door.

“I begged them not to take my boy, I told them that he is just a child, he still watched cartoons on TV; I tried to shield him with my body but they threatened me and took him away. And they also took my brother from the next door house. In the evening their bodies were found in the street, with others who had also been killed.”

In Taftanaz I met the families of two 80-year-old men who were killed in their homes during the army incursion into the town on 4 April.

One was burned in his home. His wife told me: “I had been staying with relatives across the street and my husband was at home. When I went back home I found it burned down but did not find my husband. I went out and asked the soldiers outside where they had taken him. I thought they had arrested him. A soldier replied ‘Go back in and look for him’. I went back and found his remains in a pile of ash.”

In Sarmin I met the mother of three young men who were taken from their home in the early morning of 23 March and burned outside the building: “The army came early in the morning, we were all asleep. They took all my three sons who were at home and did not let me follow them outside; every time I tried to go out they pushed me back.

“When I was able to go outside, after a couple of hours, I found my boys burning in the street. They had been piled on top of each other and had motorbikes piled on top of them and set on fire. I could not approach their bodies until evening because there was so much shooting.”

In addition to the human loss, families are having to cope with the loss of their homes and livelihood. Those whose homes and businesses have been burned down or destroyed and who have been left with nothing other than the clothes on their back are relying on the charity of relatives and friends.

Some are trying to repair or salvage what they can from their wrecked properties but many are beyond repair. There is no doubt that the burning down of so many homes and businesses – and including medical facilities such as field hospitals and pharmacies – was deliberate, seemingly a combination of revenge and collective punishment.

The extra-judicial executions, the shooting and shelling of residential areas, and the deliberate destruction of homes, businesses and other properties in the Idlib area, are consistent with the pattern of violations inflicted by Syrian forces on the population in other parts of Syria where there have been opposition protests and/or armed opposition.

Soldiers, members of the security forces, and the civilian leadership up and down the chain of command should know that such abuses constitute crimes against humanity and the claim that “I was just carrying out orders” will not keep them from being brought to justice – either in Syria or in other countries around the world.

This blog was published in the Guardian on 4 Ma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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