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뉴스

시리아: 알레포 리포트

최근 시리아 알레포에서 보안군이 장례 행진 행렬을 공격하면서 여러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Amnesty International

시리아 알레포에서 지내는 3일 동안 내가 목격했던 시위는 결국 모두 같은 식으로 끝이 났다. 정부군과 보안군, 샤비하(shabiha, 정부의 궂은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악명 높은 무장단체)가 그들은 물론 누구에게도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비폭력 시위대를 대상으로 발포를 한 것이다.

5월 25일 시내에서 진행된 시위와 장례 행진 중 최소 7명이 숨졌고 그 중 최소 2명은 어린이였으며, 수십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아미르 바라캇은 13세 소년으로, 복부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숨졌다. 목격자들은 시위대가 보안군의 총격을 피해 달아나고 있을 때 아미르는 집 근처를 걸어가고 있었을 뿐이라고 전했다.

또다른 희생자 모아즈 라바비디는 16세 소년으로,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밤마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면서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모아즈는 알레포 도심으로부터 바로 남쪽에 위치한 부스탄 알-카스르 구역의 경찰서 앞에서 가슴에 총을 맞았다. 그날 오전 바로 그 장소에서 시위를 하다 총에 맞아 숨진 시위대 4명 중 1명의 장례 행진에 참여하던 중이었다.

나는 장례 행진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행진 인파는 대부분 젊은 남성들로 이루어졌으나, 여성과 어린이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앞서 목격했던 모든 시위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손을 높이 들어 박수를 치면서 “실미야, 실미야(평화, 평화)”하고 소리치며 비무장상태임을 보여줬다. 몇 시간 전 총격에 숨진 희생자들을 기리고, 바사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약 20분 뒤 군인들과 사복차림의 샤비하가 나타났다. 치명적인 실탄을 장전한 칼라슈니코프 소총과 라이플을 들고, 시위대를 향해 거리를 좁혀 왔다.

이들은 곧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총탄을 피해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명이 죽거나 다쳤다. 모아즈 라바비디도 그 중 하나였다.

같은 날 그보다 더 이른 시간, 도심으로부터 남서쪽에 위치한 살라헤딘 구역에서 벌어졌던 또 다른 시위를 목격했다. 금요 예배가 끝나고 나면 늘 진행되는 관례적인 시위였다.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각각 다른 회교사원 두 곳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살라헤딘 로터리를 향해 행진했다. 그러나 군인과 사복 차림의 샤비하가 이들을 향해 발포하면서 행진 행렬은 로터리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했다.

시위대와 지나가던 시민들은 로터리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거리로 총탄을 피해 도망쳤다. 상점 주인들과 손님들은 가게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몸을 숨겼다. 실탄 사격은 오래지 않아 끝이 났다. 아나스 쿼레이시라는 소년 한 명이 숨진 채 쓰러져 있었고, 여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군인 몇 명과 샤비하가 아무런 표시도 없는 평범한 버스에 다시 올라타고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군인들은 도로를 따라 걸어서 경찰차 여러 대와 평범한 소형 트럭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떠났다. 군인과 샤비하가 떠난 뒤 나는 부상자를 살펴보러 갔다.

어디로? 병원은 갈 수 없었다. 시위 중에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병원에 갔다가 체포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입원 중에 바로 체포돼 구금된 사람도 꽤 있었기에 그럴 만한 일이었다. 부상자들은 그 대신 몸을 숨기고, 비밀리에 임시로 세워진 “야전 병원”에서 치료해 주는 의사와 간호사들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동정심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안에 마련해 준 이 야전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은 구금되고 고문당할 위험도 감수하고 부상자들의 목숨을 구하고 있다. 장소를 제공하는 아파트 주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야전 병원” 중 한 곳을 찾아가 부상자들을 만났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들이 무릎을 꿇고 쭈그려 앉은 채 바닥에 누운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부상자 중 한 명은 상처가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총알이 왼쪽 허벅지를 관통하면서 커다란 구멍을 낸 뒤 오른쪽 다리에 박힌 것이다. 의사들은 간신히 총알을 제거한 뒤 출혈을 막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상처를 봉합하고 있었다. 언제 발각될 지 모르는 위험 때문에, 속도를 내는 것만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치료를 받고 나면 부상자들은 최대한 빨리 병원을 떠나야 한다. 부상이 심각한 사람들은 도시 밖으로 보내지며, 일부는 시리아를 떠나 터키로 간다. 이들은 군 검문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좁은 시골길을 따라 “불법으로” 시리아를 떠난다. 시리아 국경을 합법적으로 넘으려다가는 체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체포될까 봐 겁이 나는 것은 시위대 부상자들뿐만은 아니다.

지나가다 부상을 당한 행인들 역시 위험에 처한 것은 마찬가지다. 정부군과 보안군 혹은 샤비하 무장단체에 의해 다친 사람은 시위에 참여했음이 분명하니 체포돼야 한다는 것이 시리아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후 시위 중에 아들을 잃은 가족을 만났다. 가족들은 죽은 아들이 집 근처 바깥에 서서 시위대를 구경하다가 군인들이 군중을 향해 실탄을 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총에 맞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정부 당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아들이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경찰의 진술서에 서명할 것이라고 했다.

죽은 소년의 누나는 이렇게 전했다. “내 동생은 정부군에게 목숨을 잃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항의하면 처벌을 받을 거예요. 다른 가족들까지 너무나 위험해지는 일이라 동생이 무장조직인지 테러조직인지 그런 것에 살해 당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정부가 우리 가족을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만난 또 다른 남성은 시위 도중에 정부군으로부터 복부에 총을 맞았다. 그는 당시 부상이 너무 심해 생명이 위험할 정도라 국영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부상을 입은 경위를 묻지 않는 대가로 경찰에게 뇌물을 줘야 했고, “테러리스트 조직”이 쏜 총에 맞은 것이라는 경찰의 진술서에 서명해야 했다고 한다.

다음 날, 또 다른 장례 행진이 시위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번 시위는 이례적으로 두 시간 넘게 계속돼, 시위대는 세이프 알-다울라 구역에서 마슈하드 구역을 지나 2-3km를 행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전날 시위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기 때문에 정부군과 보안군이 시위가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라는 명령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두 시간이 지나자 어김없이 군인들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기 시작했다. 공중에 총을 쏘기도 하고, 시위대를 향해 쏘기도 했다. 이처럼 건물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공중에 발포하는 것도 위험한 행위였다.

시위대 중 부상자가 발생했다. 수많은 부상자들을 치료해 줄 의료 용품을 가방에 챙겨 들고, 언제나 대기중인 용감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생긴 것이다. 부상자를 포함해 내가 만나 본 젊은이들은 모두 시위를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계속해서 시리아 사태를 외면하는 한, 의사와 간호사들은 임시 이동식 야전병원에서 보안군과 무장단체가 자행한 부당한 폭력행위로 부상 입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신변의 위험도 무릅써야 할 것이다. 이러한 끔찍한 인권침해행위가 처벌받지 않은 채 계속돼서는 안 된다.

 By 도나텔라 로베라(Donatella Rovera) 국제앰네스티 위기대응선임조사관

영어 전문 보기

Despatch from Aleppo: Victims of Syria’s brutal crackdown
31 May 2012

Every protest I observed during three days in Aleppo ended the same way: with the army, security forces and shabiha – the infamous militias who do some of the government’s dirty work – opening fire on non-violent demonstrators who posed no threats to them (or to anybody else).

On Friday 25 May at least seven people were killed, at least two of them were children, and dozens more were injured at demonstrations and funerals in the city.

Among those killed was Amir Barakat, a 13-year old schoolboy, who was fatally shot in the abdomen. Eyewitnesses told me that he was walking near his home as demonstrators were running away from the security forces who were shooting towards them.

Another victim was Mo’az Lababidi, a 16-year-old schoolboy who worked nights in a supermarket to support his mother and sisters.

After his father died three years ago he had become his family’s bread winner.

He was shot in the chest in front of the police station in the Bustan al-Qasr district, just south of the city centre, during the funeral procession for one of four demonstrators shot dead at a protest in the same area earlier that day.

A mourner who was next to him told me he died on the spot.

I observed the funeral procession from the beginning. The crowd was mostly made up of young men, but also included many women and children.

They clapped with their hands raised, as they did in all the demonstrations I watched, to show that they were unarmed, shouting “silmiya, silmiya” (“peaceful, peaceful”), chanting slogans in homage to the victims shot dead a few hours earlier and calling on President Bashar al-Assad to go.

Soldiers and plain-clothes shabiha appeared after about 20 minutes, carrying Kalashnikovs and rifles which fire deadly metal pellets, and started to close in on the demonstrators.

It did not take long before they started to shoot and people had to run for cover. Some were killed or injured; among them Mo’az Lababidi.

Earlier in the day I had observed another demonstration, in the Salaheddine district, south-west of the city centre. It was one of the traditional demonstrations that take place after Friday prayers. The crowd was mostly young.

They walked from two different mosques in the area towards the Salaheddine roundabout chanting anti-government slogans. They had barely reached the roundabout when soldiers and plain-clothes shabiha opened fire at them.

Protestors and bystanders fled for cover in the little streets off the roundabout. Shop owners and shoppers took cover as best they could inside the shops.

It was over in minutes. A boy, Anas Qureishi, lay dead and several were injured.

I watched some of the soldiers and the shabbeha get back into the bus – an ordinary unmarked bus – and leave.

Others walked off, up the road where a couple of police vehicles and an ordinary pick-up truck were waiting for them.

After the soldiers and the shabiha left the area I went to look for the wounded.

Where? Not in the hospitals, because those injured in demonstrations fear getting arrested if they go there. Their fears are justified, as many have been detained directly from their hospital beds.

Instead they have to hide and rely on doctors and nurses providing treatment in clandestine temporary “field hospitals”, located in the apartments of sympathetic people. These doctors and nurses themselves risk imprisonment and torture for providing life-saving treatment to the wounded, as do the owners of the apartments.

I found some of the wounded in one such “field hospital”. As I got there the doctors were crouched down on their knees and were treating a patient who was lying on the floor.

One of the injured had very nasty wounds; a bullet passed through his left thigh, leaving a gaping exit wound, before lodging itself in his right leg.

Doctors had managed to extract the bullet, stabilize the bleeding and were stitching the wound as fast as they could – speed is of the essence because of the risk of discovery.

Once treated, patients have to be evacuated as soon as possible – the more seriously injured are taken out of the city; some out of Syria, to Turkey.

They travel on small agricultural roads to avoid army checkpoints, and leave Syria “illegally”; they would be arrested if they tried to use the official Syrian border crossings.

The fear of being arrested does not apply only to wounded demonstrators.

Injured bystanders also are at risk because the authorities seem to reason that those wounded by the army, security forces or shabiha militias must have been demonstrating, and so must be arrested.

Later I met the family of one of the boys killed in the demonstrations. They said he had been standing outside near his home, watching the demonstrators, and was shot when soldiers began firing into and around the crowd.

They went on to say that they will sign a statement to the police that the boy was killed by “armed gangs” in order to avoid troubles with the authorities.

His sister told me: “The army killed my brother. They will punish us if we complain. It is a big risk for other family members, so we have to say that my brother was killed by an armed gang, a terrorist gang, whatever; as long as they leave us alone.”

Another young man I met, shot in the abdomen by the army during a protest, told me that he had been taken to a government hospital because his wound was lifethreatening. He then had to bribe a security officer to avoid being questioned about how he was injured, and had to sign a statement to the police saying he had been shot by a “terrorist gang”. The following day I observed another funeral procession that turned into a demonstration.

Exceptionally the demonstration lasted two full hours and the protesters were able to march 2-3 km – from the Seif al-Dawla district, through to the Mashhad district.

People speculated that perhaps the army and security forces were given orders to allow the demonstration to take place because of the large number of people killed and injured in demonstrations the previous day.

But after two hours soldiers again opened fire indiscriminately. They fired both in the air – a dangerous practice in such a densely built up area – and at the demonstrators.

Some of the demonstrators were injured; yet more work for the courageous doctors and nurses who are always on call, with their bags of medical supplies ready to treat the next lot of casualties.

The young people I met – including those who had been injured – said they have no intention of stopping their protests.

So long a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continues to look the other way, doctors and nurses will keep putting themselves at risk in their makeshift mobile field hospitals, urgently trying to save the lives of those wounded by the unwarranted violence of the security forces and their militias. Such gross violations of human rights must not be allowed to continue with imp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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