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블로그

난민과 연대하는 새로운 방법: 커뮤니티 스폰서쉽 (Community Sponsorship)

지난 수 년 동안 네 개 대륙의 국제앰네스티 지부에서는 전례 없는 규모와 방법으로 난민 지원 활동을 진행해 왔다.

목표는?

안전한 국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난민들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어떻게?

바로 커뮤니티 스폰서쉽(Community Sponsorship)이다.

커뮤니티 스폰서쉽의 중심에는 간단하지만 급진적인 아이디어가 자리하고 있다.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시민들도 난민이 새로운 나라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지역사회 단위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활동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매우 적대적인 환경에서도 난민에 대한 담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세계 사회에 합류하게 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일반적으로 스폰서쉽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자금을 조성하고, 거처를 구하고, 어린이를 학교에 입학시키고, 의료 서비스를 받는 등의 요소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역할에 대한 책임을 정부와 합의한다. 스폰서쉽을 받는 난민들은 보통 수 개월에서 수 년 동안 안전하지 않거나, 존엄한 삶을 지속할 수 없는 곳에서 지내왔다. 이러한 난민 중 다수가 현재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 이란, 요르단, 레바논, 터키 등지에 머물고 있다.

또한 캐나다, 아르헨티나, 호주, 아일랜드, 뉴질랜드, 스페인, 미국 등지에서는 갈수록 더 많은 앰네스티 사무국이 자국에서의 커뮤니티 스폰서쉽을 지원하고 개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커뮤니티 스폰서쉽의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화를 시작하고, 가능성을 탐구하며 계획을 수립하는 등 과감하게 활동에 나서고 있는 곳들 역시 있다.

 

커뮤니티 스폰서쉽이 효과적인 이유

커뮤니티 스폰서쉽은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단체의 지원에 힘입어, 커뮤니티 스폰서들은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도 난민에 대한 담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영국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세계 각지의 스폰서와 난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커뮤니티 스폰서쉽으로 만나게 된 난민과 스펀서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존 바커, 71세, 영국 런던

우리는 매일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다. 정말 멋진 일이다.”

존 바커(71), 영국

교사 일을 하다 5년 전 퇴직한 이후, 나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고, 예전부터 난민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 아버지께서 어릴 적,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뉴질랜드로 온 피난민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햄스테드 교회의 친구들과 함께 커뮤니티 스폰서쉽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다른 교파의 교회들과 같이 커뮤니티 스폰서쉽 단체를 결성했다.

약 1년을 노력한 끝에, 우리는 라하프와 몬테르, 그리고 그들의 자녀 아실과 모하마드를 영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이들 가족은 시리아에서 피난을 떠나 요르단에 있는 난민 캠프에서 살고 있었다.

커뮤니티 스폰서쉽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퇴직한 사람이지만, 라하프와 몬테르를 도우면서 다른 사람을 지지하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제도에 동참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략을 짜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라하프와 몬테르 가족이 온 후로 나는 이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종교가 다르더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나는 이들 가족을 자주 만나며, 취업 센터에 가야 하거나 런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때, 영어를 배울 때 도와주고 있다. 몬테르에게는 정기적으로 영어를 가르쳐주고 있는데, 정말 놀라울 만큼 실력이 늘었다! 같이 런던 지하철을 타기도 한다. (어느 날은) 경치가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어서 함께 차링 크로스에 간 적이 있다. 몬테르는 강을 보자, 내 팔을 붙잡고는 ‘존, 존!’하고 말했다. 강을 건너는 게 정말 신났는지, 요르단과 레바논에 있는 친구들에게 페이스타임을 켜고는 내게 인사를 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지난 8개월 사이에 이 가족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지켜보니 정말 좋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도 매우 기쁘다. 우리는 매일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다. 정말 멋진 일이다. 행정과 서류 작업으로 끔찍한 하루를 보낸 뒤에도, 몬테르 가족의 아파트를 찾아가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준다.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돕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들은 끔찍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영국은 부유한 국가이니 이들을 돕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른 스폰서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뮤니티 스폰서쉽을 통해 내가 투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커뮤니티 스폰서쉽으로 영국에 온 난민 가족이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영국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마치 가족 같은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우리를 난민이 아닌 사람으로 대우해줬다.”

몬테르(30), 시리아

라하프(왼쪽에서 두번째) – 나는 시리아에서 나고 자랐다. 시리아에서의 생활은 행복했고 학교에 다니면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6살 때, 큰언니의 소개로 몬테르를 만났고 그와 결혼도 하게 되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시작됐다.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졌고, 땅에서는 전투가 벌어졌다. 우리는 살기 위해 시리아를 떠나 요르단으로 향했다. 처음 3년 동안은 유엔 난민 캠프에서 살았고, 이곳에서 딸이 태어났다. 그 이후 마다바로 이동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고, 그곳에서 아들 모하마드를 낳았다.

몬테르는 거리 청소부로 일자리를 구했고, 나는 가정부로 일하며 6개월간 유엔 보육 과정도 이수했다. 우리 가족은 요르단에서 6년을 살았지만, 환영 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잉글랜드로 가겠다고 신청했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우리를 지원하는 분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물론) 처음에는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영어를 할 줄도 몰랐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라 막막했다. 하지만 곧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몬테르와 나는 영어를 배우고 있다. 아이들도 즐겁게 학교 생활에 적응했고, 영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모하마드가 처음으로 말한 영어 단어는 ‘바나나’였다. 바나나를 정말 좋아하는 녀석이다!

내 목표는 영어 실력을 더 쌓아서, 유모나 학교 보조 교사가 되는 것이다. 런던 생활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를 도와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다들 우리를 정말 많이 도와주었다. 영국에서 생활하는 방법, 언어는 물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법까지 모두 알려주었다. 시리아에는 아직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돌아가기에는 안전하지 못한 곳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지원이 계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몬테르 (왼쪽에서 네 번째) – 시리아에서 우리 가족은 농장을 운영했다. 우리는 올리브 나무와 밀을 키웠는데,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는 나무나 작물 사이에 군인들이 숨을 수 없도록 모든 것을 베어버려야 했다. 우리는 요르단으로 피난을 떠났고, 캠프 생활은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일단 캠프에 들어오면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국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마치 가족 같은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우리를 난민이 아닌 사람으로 대우해줬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스폰서들이 모두 나와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모두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덕분에 행복하고 편안했다. 아이들도 매우 안심할 수 있었고, 우리가 살 집도 모두 준비된 상태였다. 우리는 스폰서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우리도 시리아의 생활 방식에 대해, 친밀한 가족이 된다는 것에 대해 알려주었다.

 

시리아 난민 이야드

에야드 자바리(에디), 30세, 시리아

 

적대적인 시선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시리아에서 왔다는 말에 사람들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에야드 자바리(30) 시리아

시리아에서 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다. 영문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이수했으며, 영어 교사로 일을 시작했다.

시리아를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결국 떠나기로 결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리아에서는 18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한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입대를 연기할 수 있지만, 석사학위까지 이수하고 나니 이제는 남은 방법이 없었다.

내가 그 동안 공부한 것을 모두 잃고, 지지하지도 않는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것은 원치 않았다. 국가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교육 제도의 일원이 되는 등 다른 방법으로 기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군대에 가는 것은 내 선택지가 아니었다.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입대 대상자였기 때문에, 국경지대에서 철저한 검문이 진행될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레바논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 동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야 했다. 레바논에서 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레바논 공항에 도착했지만, 파리에서 환승을 해야 했기 때문에 비행기에 탈 수 없었다. 시리아 여권을 가지고 있으면 파리를 경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스폰서였던 수산나가 이탈리아 로마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예약해 주셨다.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이후로는 행운의 연속이었다. 정말 멋진 스폰서를 만났고, 이분들은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직업을 구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었다. 내 스폰서인 수산나와 그 남편 파트리시오는 매우 용감한 분들이다. 내 친구 나이루즈가 이분들에게 내 사정을 알려주었고, 두 분은 일주일 만에 서류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의 관계는 늘 좋았다. 혼자 아르헨티나까지 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스폰서들은 내가 이곳에서 적응하고 다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현재 나는 쉐어하우스에 방 하나를 빌렸고, 학교에 취직도 했다. 스폰서들 덕분에 훨씬 편안하게 이곳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고, 이제는 서로가 정말 가족 같다. 언제든지 바베큐를 먹으러 찾아갈 정도로!

우리는 아주 다른 문화에서 왔지만, 서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스폰서 두 분은 모두 60살이 넘었는데도, 매일 일을 하며 활동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우리 문화와 음식, 그리고 휴식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음,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이 사회의 일원이 된 것 같다. 아르헨티나 친구들과 동료들도 많이 생겼고, 학교에서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 돈을 충분히 모은 후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아직 시리아에 있는 동생을 데려올 수 있게 말이다.

지금까지는 정말 놀라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내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이방인에게도 아주 열린 태도로 친근하게 맞아 준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적대적인 시선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시리아에서 왔다는 말에 사람들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르헨티나 커뮤니티 스폰서 수산나

수산나 구티에레즈 바론, 65세, 아르헨티나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수산나 구티에레즈 바론(65), 아르헨티나

터키 해변에서 목숨을 잃은 어린 소년[알란 쿠르디]의 유명한 사진을 봤던 때가 떠오른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고,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그 사진은 우리의 심금을 울렸고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우리의 힘으로 전쟁을 끝낼 수는 없었기에, 난민 가족들을 환영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 과정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시리아 사회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독재 체제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는 커뮤니티 스폰서쉽을 통해 많이 성장했고, 보답을 바라지 않고 행동하는 방법도 배우게 됐다.

친구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 놀라곤 한다. 나는 그런 친구들이 오히려 놀라웠다. 우리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주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내가 속한 팀 사람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함께 대화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커뮤니티 스폰서쉽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연결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이다. 내가 에디와 함께 쌓은 것처럼 말이다. 그 무엇도 이보다 중요할 순 없다

WELCOMING REFUGEES THROUGH COMMUNITY SPONSORSHIP

Over the past few years, Amnesty International offices on four continents have been working to support refugees in a way and on a scale never seen before. The goal? To increase the number of people who can start their lives in a safe country. The method? Community sponsorship.

At its heart, community sponsorship is a simple but radical idea: ordinary citizens like you can play a key role in assisting refugees to reach and settle into a new country. Not only does it allow you to work for positive change at a local level; you are also joining a global community that is helping change the conversation about people seeking asylum, even in the most hostile of environments.

How does it work? The people who do the sponsoring generally have to enter into an agreement with their government that they will raise the necessary funds, and assume responsibility for helping with logistical matters like finding accommodation, registering children in school and accessing medical care. The people who are sponsored have usually been waiting for months or years in a place where they are unsafe or they cannot live in dignity; currently many such people are living in countries like Bangladesh, Ethiopia, Iran, Jordan, Lebanon and Turkey.

More Amnesty offices are also actively engaged in support and development of community sponsorship in their respective countries, including Canada, Argentina, Australia, Ireland, New Zealand, Spain and the United States. They are also others who are boldly working within contexts where there is no current precedent: starting conversations, exploring possibilities and developing plans through which to make sponsorship a reality.

This is why community sponsorship works
Community sponsorship is bringing people together from around the world. With the support of organisations such as Amnesty International, community sponsors are also helping change the conversation about people seeking asylum, even in the most hostile of environments. From the UK to Argentina, sponsors and refugees share their stories:

– John Barker (centre), 71, from London, UK
After retiring from teaching five years ago, I was keen to find a focus. I loved working with people and I knew I wanted to do something to support refugees. Maybe it’s partly because my dad was a child evacuee from Britain in New Zealand during the Second World War. Together with my friends at Hampstead Parish Church I decided community sponsorship was the path to take. We formed a sponsorship group along with churches from other denominations.
It took us around a year to bring Rahaf, Monther and their children Aseel and Mohammad over to the UK. They had been living in a refugee camp in Jordan after fleeing Syria.
I’ve learnt a lot from community sponsorship. I am a retiring sort of person, but sponsoring Rahaf and Monther taught me to stand up for others, to think about how we can persuade people to get on board with this scheme and to develop strategies to get things done.
Since they’ve been here, they’ve taught me so much. I’ve learnt about Muslim culture and I’ve seen how it’s possible for people from all religions to be friends.
I see the family a lot and I am there for them, whether they need to go to the job centre, navigate the London transport system, or learn English. I meet Monther regularly to teach him English – and he has really made progress! We’ve also been taking the tube together. I thought I’d take him somewhere picturesque, so we went to Charing Cross. When he saw the river, he clutched my arm and said ‘John, John!’ – he was so excited about walking across the river, and he started FaceTiming his friends in Jordan and Lebanon, encouraging me to say hello!
It’s great to see how far the family have come in eight months. I feel thrilled that the kids are going to school. We’re learning about one another every day and it’s lovely. Even after a really awful day of administration and paperwork, we’ll go back to their flat and they’ll cook the most delicious meal.
It’s so important to support people who have been forced to flee their countries. People are living in terrible conditions – the UK is a wealthy country and we should be doing far more to help. Talking to other sponsors, it’s clear that you get much more out of the scheme than [what] you put in.
– Rahaf, 25, and Monther, 30, from Syria
Rahaf (second left) – I was born and brought up in Syria. Life there was lovely. I went to school and enjoyed being with my family. When I was 16, my eldest sister introduced me to Monther and we got married.
The Syrian conflict started in 2011. There was bombing from the air and fighting on the ground. We feared for our lives, so we fled Syria and went to Jordan. For the first three years, we lived in a UN refugee camp, where my daughter was born. We were then given permission to move to Madaba, where my son Mohammad was born.
Monther got a job as a street sweeper and I worked as a house maid, while completing a six-month UN course in childcare. We lived in Jordan for seven years, but we didn’t feel welcome. We applied to come to England for the safety of our children.
From the moment we arrived, we were made to feel welcome by our sponsors. Adjusting to life was difficult at first. We didn’t speak English and we couldn’t find our way around, but life is becoming easier. Monther and I are learning English. My children are happy and settled at school and starting to speak English too. The first English word Mohammad said was ‘bananas’ – he loves bananas!
My aim is to improve my English, so that I can become a nanny or a school assistant. Living in London is expensive, so we both need to make sure we can make a good life for our children.
I want to thank my sponsors from the bottom of my heart. They’ve done so much for us. They’ve taught us about the British way of life, the language, as well as how to get from one place to another. There are many people who still need help in Syria – the war isn’t over and it’s still not safe to return, so it’s important to continue supporting others.
Monther (fourth left) – In Syria my family owned a farm. We grew olive trees and wheat, but when the war started, we had to cut everything down so that no fighters could hide among the trees and vegetation. We fled to Jordan, and life was difficult in the camp. The hardest thing was that once you were in the camp, you could not leave. When we came to the UK, we were made to feel welcome, like we were part of the family. We weren’t treated like refugees; we were treated like people. When we arrived at the airport the sponsors were all there to welcome us! They gave us hugs and we felt happy and comfortable. Our kids were made to feel very comfortable and our house was all set up. We’ve learnt a lot from our sponsors, and we’ve also taught them about the Syrian way of life and what it means to be a close-knit family.

– Eyad Jaabary (Eddy), 30, from Syria
My life in Syria was completely normal. I studied English Literature, completed a Masters degree, and started teaching English.
Leaving Syria wasn’t an easy decision. There were many reasons behind my decision to leave – the key one was that I didn’t want to go into the military service. In Syria, the military service is obligatory when you turn 18. It can be delayed if you attend university, but after completing my Masters, I had exhausted all possibilities.
I didn’t want to risk forgetting everything I’d learned, just to go and fight in a war I did not believe in. I can serve my country in other ways, by teaching children or being part of the education system, but this wasn’t a possibility. I had no choice but to leave.
As I was required to do military service, I knew that thorough checks would be carried out at the border, so I had to do things I never thought I would do to make it to Lebanon, where I was due to fly to Buenos Aires, Argentina. When I arrived at the airport in Lebanon, I wasn’t allowed to get on the plane as I had to transit in Paris. I couldn’t do that with a Syrian passport, so Susana, my sponsor, helped me book a flight via Rome, Italy.
Since arriving in Argentina, I have been very lucky. I have great sponsors, who have provided me with everything I need to learn the language and look for a job. My sponsors, Susana and her husband Patricio, are very brave – it was my friend, Nairouz, who told them my story. Within a week, they’d started the paperwork.
Our relationship has been nothing but positive. Moving here by myself was challenging, but they’ve helped me adjust and regain my independence. I’m now renting a room in a shared house and I’ve found a job in a school. They’ve made the process much more relaxing and we’ve formed a family bond – I’m always going over for barbecues!
We come from very different cultures, but we’ve learnt a lot from one another. I’ve learnt about hard work – they are both over 60, they work every day and they are very active. I’ve taught them about my culture, our food and the importance of relaxation – well, I am trying to teach them about that!
I feel part of the community now – I have a lot of Argentinian friends and colleagues and I would like to continue working at the school, so I can save enough money to move to a different apartment and bring my brother over from Syria.
It’s been an incredible experience so far – and I am happy to be able to share my story. I want to thank the Argentinian community for being so open, receiving and friendly to strangers. I was expecting to be met with hostility, but when I tell people I am from Syria, they just smile.
– Susana Gutiérrez Barón, 65, from Argentina

I remember seeing the famous photograph of the young boy [Alan Kurdi] who died on the beaches of Turkey.
My husband and I looked at each other and knew we had to do something about it. Like many people around the world, the images struck a chord and encouraged us to take action. We couldn’t end the war, so we decided to dedicate ourselves to welcoming families and helping them find work.
I’ve learnt a lot from this process. When you want to help someone, you’ve got to think about what that person needs, not what you want to give. The Syrian community is different and living in a dictatorship can have a huge effect on people. I’ve grown a lot during this process and I’ve learnt to act without expecting anything in return.
Our friends are surprised at what we were doing – and it surprises me that it surprises them, as it’s so natural to us. I seriously believe that when one takes small steps to changing the world around us, amazing things can happen.
It’s important to work closely with the sponsorship team around you, to talk to them and share experiences. Community sponsorship offers possibilities to build a network and to establish a connection. But, for me, the most important connection is the human bond I’ve established with Eddy – nothing can match that.
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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