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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전은 있었지만 예멘 난민 신청자 더 지원해야

아놀드 팡(Arnold Fang)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동아시아의 인기 휴양지인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가을이 찾아왔다. 갓 수확된 제주 특산물 감귤이 시장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시기와 맞물려, 올해 초 제주도에 들어왔던 예멘인 수백 명에 대한 난민 지위 신청 결과 역시 나오고 있다.

예멘인 550명이 올해 모국인 예멘의 처참한 내전을 피해 제주도에 도착했다. 본래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었던 제주의 무비자 입국 제도를 이용해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저 안전한 피난처를 찾으러 온 이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가 예상보다 훨씬 힘겨운 일임을 체감하고 있다.

부정적인 여론

제주도 사회는 넘쳐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 익숙해져 있고, 이미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온 난민 신청자들도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수백 명의 예멘인이 들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에 온 예멘인들의 강렬한 사연은 호기심 많은 한국 언론의 취재 의욕을 자극했다.

알부카티(Albukhati) 역시 그런 사연을 지닌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가족들의 압박으로 강제 결혼에 내몰려야 했던 예멘 여성들이 유럽과 미국에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단체를 공동 설립했다. 가족들의 주선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은 예멘에서 매우 수익성이 좋은 사업으로, 특히 중개인들이 이 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이러한 활동으로 권력자들에게도 밉보이게 된 알부카티는 결국 예멘 밖으로 망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알부카티는 말레이시아에서 3년을 보낸 후 2018년 5월 제주도에 들어왔다.

알부카티와 마찬가지로 많은 예멘인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한국인들의 난민에 대한 공포를 더욱 부추기는 데만 이용됐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인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도 있고,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좋은 직업군에 종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이전까지 난민과 접한 경험이 거의 없는 일부 한국인들은 이들의 고통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가짜” 난민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난민을 환영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한국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멘인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생김새도, 종교도 다르다. 중국인들과는 달리 아주 머나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 아닌가.” 알부카티가 말했다.

언론의 왜곡 보도로 한국에서는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고, 이는 예멘인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정부 청원에 70만 명이 서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일부는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며 외국인 혐오 정서를 표출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예멘을 떠나야 했던 알부카티는 2018년 5월 제주도에 들어왔다.

섬에 갇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대중의 요구에 응답했다. 지난 6월, 정부는 제주도 무비자 입국 가능 국가에서 예멘을 제외하고, 제주도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들이 한국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금지했다. 이는 유엔난민협약을 위반하는 조치였다.

가명을 요구한 캄란은 “예멘인은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결정에 깜짝 놀랐다. 이곳의 물가는 상당히 비싸다. 관광지이기 때문에 일자리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제주 현지인들이 모두 난민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지만, 예멘인들은 제주에 갇혀 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눈에 띄는 집단이 됐다. 사실 제주 현지인들의 태도는 오히려 적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멘 난민 신청자 다수가 소지금이 전혀 없는 상태로 노숙을 시작하자, 지역의 시민사회와 종교단체, 외국인 강사들이 모여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연합을 결성하고 난민들에게 식량과 보금자리, 한국어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예멘인들이 재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나날이 어려워지면서, 한국 정부는 법적 예외조항을 마련해 난민 신청자가 6개월간 체류하지 않아도 구직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이들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어업 계열과 같이 한국인들이 꺼리는 일자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멘 북부에서 산간 지역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인 만큼, 예멘인들에게 어업은 생경한 개념이었다. 캄란은 “다들 고기 잡는 법을 모른다. 어업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일이 맞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일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인기 있는 관광 명소다

인정받지 못한 난민 지위

올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예멘인 481명 중 362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80명은 아직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편, 30명 이상은 난민 신청이 거절됐다.

“인도적 체류” 허가가 있으면 예멘인들은 제주 이외에도 한국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이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며, 한국이 당사국인 1951년 난민협약에 명시된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은 것도 아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예멘인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를 겪게 된다.
먼저, “인도적 체류” 허가만으로는 가족을 한국에 데려올 수 없다.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 중 대다수가 남성인데, 결국 이들의 아내와 아이들은 예멘에 남아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편, 아버지와 만나지 못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허가만으로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학위과정을 마치지 못한 예멘인들은 앞으로도 학위를 획득할 수 없게 된다. 한국에서는 물론 앞으로 예멘에 돌아가서도 장래 직업 전망에 큰 걸림돌이 되는 문제다.
마지막으로, “인도적 체류” 허가는 예멘 내전이 끝날 때까지 매년 갱신해야 한다. 전쟁이 끝나면 체류 허가를 갱신할 수 없으며, 예멘인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언제 한국을 떠나야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예멘인 수백 명은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캄란은 “지금 예멘에 안전한 지역은 없다.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돌아가도 안전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전쟁이 끝나도 여전히 살인과 암살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

예멘인들에게 제주도는 자유와 희망의 섬이었다. 한국 사회의 일부 집단은 여전히 편견을 갖고 있지만, 제주도 주민은 대부분 예멘인들을 친구로 받아들였다.

“어떤 한국인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청원에 서명했지만, 그때는 우리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와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한국인들은 우리가 본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걸 깨닫고 있다. 우리를 끌어안고 청원에 서명한 것을 사과하는 사람도 있다.” 알부카티는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역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빼앗기고 가족들이 헤어져야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한국인이 세계 곳곳으로 피난을 떠났다. 캄란은 “제주도의 노년 세대가 젊은 세대보다 우리의 상황을 훨씬 잘 이해해주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지역사회와의 잦은 소통과 더 큰 이해가 예멘인들이 한국 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열쇠라고 믿는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무장 분쟁은 여전히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세계인들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가장 도움이 절실한 시기에 자국민이 받았던 보호와 지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Steps forward but South Korea must go further to support Yemeni asylum-seekers

Autumn has arrived in the beautiful island of Jeju, a popular holiday destination for people across East Asia. As harvests of its famous mandarin oranges hit the street markets, hundreds of Yemenis who arrived in Jeju earlier this year are receiving the results of their applications for refugee status.

Fleeing the devastating conflict in their home country, some 550 Yemenis have arrived in Jeju this year. Most have done so under the visa-free entry programme originally designed to attract more tourists to the island. Only seeking safety, they have found starting a new life in Korea far harder than they imagined.

Negative publicity
The community in Jeju is used to foreigners roaming around, and there are asylum seekers from other countries such as China. Hundreds of Yemenis arriving over a short period of time, however, is a new experience.

Yemenis have come to the country with powerful stories to tell, stories that a curious South Korean media has been eager to report.

One such person is Albukhati (only identified by his surname), who co-founded an organization assisting ethnic Yemeni women from Europe and the US who had been pushed into forced marriages in Yemen by their families. These marriages are a lucrative business, particularly for the brokers who arrange them.

Albukhati’s work made him some powerful enemies, and he was forced to seek asylum outside Yemen. He arrived in Jeju in May 2018 after spending three years in Malaysia.

Many other Yemenis like Albukahti have given interviews to Korean media but found their stories used to stoke fear of refugees among the local population. As some of the Yemenis arriving in Jeju were relatively well educated and might have had good career prospects at home before the conflict broke out, some Koreans who had little prior contact with refugees cannot readily understand their suffering and might consider them “fake”.

“I don’t blame any Koreans for not welcoming refugees. People do not have enough information about Yemenis. We look different, we have a different religion. We are not like the Chinese, we are from a faraway country,” said Albukahti.

Twisted reporting has contributed to a climate in South Korea that resulted in 700,000 people signing a petition demanding that the government reject the asylum seekers as refugees. Meanwhile, others have taken similar xenophobic sentiments to the streets.

Confined to the island
The South Korean government responded to public opinion. In June, it removed Yemen from the list of visa-free countries in Jeju. It also banned people who applied for refugee status in Jeju from moving to other parts of Korea, a move that violates the UN refugee convention.

“I was surprised about the decision that Yemenis could not travel out of Jeju. The cost of living here is high. It is a tourist destination and there is not a variety of jobs,” recounted Kamran, who refused to be identified by his real name.

The fact that Yemenis are confined to Jeju made them even more conspicuous as a group, although not all locals have been hostile. Far from it, in fact. As many Yemenis ran out of money and began sleeping on the streets, local civil society, religious groups, and expatriate teachers joined together to form the Jeju People’s Coalition for Refugee Rights, providing food, shelter and Korean language education for the asylum seekers.

As it became harder and harder for the Yemenis to financially sustain their lives, the government made an exception to the law and allowed people seeking asylum to look for employment before the usual six-month minimum residency period. This was partly to enable them to survive without depending on handouts, but also because there were jobs, especially in the fishing industry, that Koreans were unwilling to take.

But with most of the new arrivals coming from the north of Yemen, where they worked on farms and lived in mountains, fishing was something of an alien concept. “They don’t know how to fish. It is not easy for them to adapt. Even though they got the jobs, they don’t stay very long, as the jobs were not suitable for them.” said Kamran.

Denied refugee status
Of the Yemenis that have applied for refugee status this year, 362 out of 481 have been given “humanitarian stay” permits. Some 80 others are still waiting for their results, while more than 30 applications have been rejected.

While enabling them to move on from Jeju and find work in other parts of Korea, a “humanitarian stay” permit also means that the government has neither accepted them as refugees nor recognized their rights as spelled out in the 1951 Refugee Convention, to which South Korea is a party.

The lack of recognition as a refugee presents the Yemenis with a number of new problems.

First, the “humanitarian stay” permit does not allow Yemenis to bring their families to South Korea. With the Yemeni population in Jeju predominantly male, this means that wives and children will have to remain in Yemen and stay separated from their husbands and fathers until the war ends.

The permit also excludes Yemenis from receiving higher education. This means anyone who has not completed their degrees will not be able to do so – a major obstacle to their career prospects both in South Korea and upon their return to Yemen.

Finally, the “humanitarian stay” permit needs to be renewed every year until the war in Yemen ends. When that day comes, permits will not be renewed and Yemenis will have to return to home. This uncertainty over when they will be asked to leave South Korea leaves hundreds in a precarious position.

“There are no safe areas in Yemen at the moment. The end of the war does not necessarily mean that it is safe to go back. There may still be killings and assassinations in the post-conflict phase,” said Kamran.

Lessons from history
For the Yemenis, Jeju was an island of hope and freedom. While facing prejudice from certain sectors of Korean society, many in Jeju have taken to them as friends.

“Some Koreans I met actually signed the petition against us, but they said they did it because they did not know us enough. After meeting up and socializing with us, they realize we are different from what they thought. Some would even hug us and apologize for signing the petition,” said Albukahti.

The Korean Peninsula is a place where war has taken lives and torn families apart. During the Korean War, many Koreans sought safety in other parts of the world. As Kamran remarked, “It seems that the old people in Jeju understand our situation more than the younger ones.” He believes that contact and greater understanding with the local community is key to the Yemenis’ integration into Korean society.

History often repeats itself. While armed conflicts continue to shatter lives, people across the world, including Koreans, must learn from the past and remember the care and assistance provided to their own countrymen and women during their hours of greatest n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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