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북한: 인권현안

북한 인권 현안

이것은 지난 10월 9일 핵실험에 의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주목이 집중된 것과 관련하여 북한 인권 현안에 대한 국제앰네스티의 우려사항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인권관련 정보의 접근 제한

국가 방문과 자료에 대한 접근이 계속해서 강력하게 통제된 상태로 남아있으며 이는 북한의 인권현황에 대한 조사를 제한하고 있다. 계속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북한정부는 국제앰네스티와 다른 인권감시기구들 뿐만 아니라 북한인권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유엔식량권특별보고관의 접근을 거절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5년동안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를 비롯한 유엔 부서들의 접근이 일부 허용되었다. 다른 많은 국가들(남한과 일본을 포함한)에 정착한 북한사람들, 인권단체들, 그리고 북한과 관련된 보도를 하는 기자들은 사형, 고문, 정치범구금, 비인도적 감옥 환경을 비롯한 심각한 인권침해유형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11월 17일, 유엔총회 제 3 위원회는 찬성 91, 반대 21, 기권60의 투표 결과로, 북한의 인권 위반을 비난하는 두 번째 대북인권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 결의안은 2005년 11월 채택된 이전의 결의안보다 보다 강력한 어조를 담고 있다. 또한 이 결의안은 유엔 사무총장(차기 사무총장은 반기문 전 한국 외무부 장관) 에게 북한의 인권 현황에 대한 포괄적인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악화된 식량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구의 12 퍼센트가 심각한 기아로 고통 받고 있다.” : 식량권 특별보고관 장 지글러(2006년 10월)

지속적인 북한의 식량난은 북한의 고립과 지형적 원인(국토의 70 퍼센트 이상이 산지이고 경작이 어려움)과 같은 요인들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북한 정부의 잘못판단된 정책들, 계속되는 이동의 자유 및 정보의 자유의 제한, 투명성의 결여, 자치적 감시방해와 같은 다른 주요 요인들은 식량 원조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원조가 항상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5년 12월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지원만을 받아들일 것이라 공표한 이후 북한에 대한 10년간의 비상지원을 중단했다. 북한 정부는 나아진 식량 작황과 외부에 의존하는 문화가 발생하는 것에 대한 국내적인 우려, 그리고 세계식량계획의 감시로 인한 참견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최고 46명의 국제직원의 수를 10명으로 축소하였고 시찰은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2006년 2월 세계식량계획은 190만 명의 북한 주민에 대한 15만 미터톤의 필수품 공급과 여성과 아동을 위한 비타민과 미네랄 강화식품의 국내 생산 자금 제공을 포함하여 약 1억 200만 달러 상당의 2년 지원 계획을 승인하였다. 2006년 6월부터 시작된 이 계획은 자금지원의 차이(funding gap)로 인하여 제한되고 있다 : 세계식량계획은 2006년 10월 현재 1억 200만 달러의 10 퍼센트만을 받은 상태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올해의 (2005년 11월~ 2006년 10월) 곡물부족이 90만 톤에 달할 것이며 이는 최저 요구량의 20퍼센트에 해당한다고 예상하였다. 이러한 예측은 2006년 7월과 8월북한의 심각한 홍수 피해 이전에 작성된 것이다. 홍수 이후, 북한 정부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고 보고하였으며 수만 명이 집을 잃었다고 밝혔다. 초기평가에 의하면 수해 피해로 인하여 올해 수확량은 곡물 9만 톤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와 다리, 철도망과 같은 경제기반시설의 심각하고 광범위한 피해 역시 보고되었다.

2006년 6월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감행한 이후, 가장 규모가 큰 원조 국가 중의 하나인 남한은 쌀 부족 보충을 위하여 북한이 의존하고 있던 100만 톤 이상의 식량 지원을 급격하게 줄였다. 남한은 8월의 심각한 홍수 피해 이후 북한이 도움을 요청하자 식량 지원 축소를 완화시켰다. 그러나 지난해 긴급구호 목적으로 50만 톤을 지원했던 것과는 달리 5만 톤만을 지원하였다. 10월의 북한 핵실험 이후 남한은 식량 지원을 중단하였으며 중국 역시 지원 규모를 60퍼센트 감축할 것으로 보인다. 2005년 말 북한 정부의 식량 배분 활동이 일부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은 배급량을 전혀 받지 못했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2006년 봄 평양 주민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정부는 기아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배급량을 공급하기 위한 사무실을 설치했어야만 했다. 2005년 말 국제 사회의 인도적 원조의 축소와 함께 공공 배분 체계의 재 부과는 중국으로의 북한 주민 이동 및 기근과 같은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2005년 7월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를 위한 유엔 협약은 지난 10년에 걸쳐 북한에 악영향 미친 기근과 자연재해가 여성을 인신매매, 그리고 성매매와 같은 다른 형태의 착취에 노출시킬 수 있음에 우려를 표하였다. 특히 농촌 지역의 주 가족부양자인 여성이나 젊은 여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아동 영양실조

지속적인 국제 지원 이후 아동의 영양실조는 다소 개선되었다. 2004년 10월에 수행된 조사에 따르면 북한 아동의 영양실조 비율은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감소하였으나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실정이다. 2005년 3월 조사 결과의 발표와 함께 유엔 기구들은 개선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목표설정이 잘 된 충분한 국제적인 지원이 유지되어야만 한다고 언급하였다. 아동과 모성의 영양 상태에 대한 북한 정부 부서와 국제연합아동기금(유니세프), 그리고 세계식량계획의 2004년 10월 합동 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발육부진(연령대비 성장미달) 아동들의 비율은 42 퍼센트에서 37 퍼센트로 감소하였다. 심각한 영양실조와 체중미달(신장대비 체중미달)은 9퍼센트에서 7퍼센트로 감소하였다. 6세 이하 아동의 저체중(연령대비 체중미달) 비율은 21퍼센트에서 23퍼센트로 증가하였다; 1세에서 2세 사이(영양 상태에 가장 취약한 집단)의 저체중 비율은 25퍼센트에서 21퍼센트로 감소하였다. 약 1/3 가량의 북한 어머니들이 영양실조와 빈혈을 가지고 있었다. 아동 영양실조 비율은 지역에 따라 유의미하게 달랐다. 더욱 심각한 식량난을 보이는 북부 지방에서의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비옥한 남부 지방, 특히 평양에서 비율이 가장 낮았다. 2004년 6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변함없이 높은 영유아 사망률과 영양실조율, 아동의 발육부진, 상대적으로 높은 모성 사망률과 관련하여 우려를 표하였다. 또한 깨끗한 식수의 부족과 열악한 공중위생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였다.

사형

사형은 교수형이나 총살형을 의미한다. 2003년 3월 북한 정부는 범죄자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것을 중단 할 것임을 공표하였다. 2005년 새로운 조사 자료에 의하면 정치 수용소의 정치 반대자들과 식량 절도와 같은 경제사범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손정남(48)은 국가를 “배반”하고, 남한과 정보를 교류하고, 2002년부터 남한에서 거주하고 있는 그의 남동생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명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2006년 4월 현재 유엔의 정보에 따르면, 그는 평양의 국가안전국 지하실에 구금되어 있으며 “끔찍한 고문으로 인하여 사실상 죽은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손정남은 1997년 그의 아내, 아들, 동생과 함께 탈북 하였으며 북한에서는 중범죄로 간주되는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2001년 4월 그는 중국 당국에 의하여 북한으로 강제송환 되었고 함경북도 지역 수용소에서 3년 동안 구금되었다. 2004년 5월 석방된 손정남은 북한으로 돌아가기 전 중국에서 동생을 만났다. 그러나 이 사실은 북한 당국에 밀고 되었고 그는 2006년 1월 체포되었다. 분명 그는 그의 동생에게 자신의 가족에 대해 그리고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하였다.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70여명의 북한 주민에 대한 공개 처형이 2005년 1월 이루어졌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있었다. 또한 보도에 의하면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혹은 비밀 교회 활동을 한 이유로 기소된 사람들 역시 사형에 처해졌다고 보도되었다. 두 사람을 총살로 공개 처형하는 비디오 자료가 발견되었다. 처형은 3월 1일 북동부 도시 회령에서 인신매매와 허가를 받지 않은 중국 방문을 도운 혐의로 11명을 공개 재판한 뒤에 이루어졌다고 보도되었다. 또한 이 자료는 3월 2일 인근 도시 유선에서 발생한 공개 처형 장면이라고 하였다.

표현의 자유

북한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반대도 허용되지 않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노동당의 통치적 입장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심각한 처벌에 받게 되고 많은 경우 그들의 가족까지도 처벌 받는다고 한다. 2006년 10월, 국경 없는 기자회는 다섯 번째 연간 세계 언론 자유지수에서 북한을 언론 자유 최악의 위반 국가로 평가하였다. 북한의 국내 뉴스 매체는 엄격하게 검열되고 국제 방송 매체에 대한 접근도 제한된다.

보도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부터 적어도 40명의 기자들이 고위 당국자의 이름을 잘못 기입한 것과 같은 실수로 인하여 “재교육”을 받아왔다. 특히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공영방송인 조선중앙방송을 비롯한 북한의 모든 언론은 김정일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놓여있다. 보도에 따르면 각각의 기자들은 실수 없이 김일성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 김정일의 위대함을 나타낼 수 있도록 사상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언론 또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적 부패를 넘어서는 북한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선전해야하는 책임을 갖는다.

철자 오류는 큰 대가를 치룰 수도 있다 : 국경 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다수의 북한 기자들이 단순한 철자 오류를 이유로 “혁명 수용소”로 보내진다. 경찰의 라디오 감시에도 불구하고 (모든 라디오 방송은 일단 승인을 받게 되면 공식 라디오 주파수에만 맞춰진다) 점점 더 많은 라디오 방송들이 중국 국경으로 진출하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남한의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다.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듣는 사람은 처벌을 받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어떠한 비공식적인 집회나 조직도 “집단적인 교란”으로 간주되며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의하여 보장된다고는 하나 사실상 뚜렷하게 제한되어있다. 공식적 혹은 개인적인 종교 활동에 연루된 사람들이 구금, 고문, 사형과 같은 심각한 억압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있으며 기독교 신자들은 매우 가혹한 환경의 노동수용소에 격리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고문, 가혹한 처우, 감옥 환경

일부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그리고 가끔은 임의적인 구금과 고문, 사형이 계속되고 있다. 처벌은 나이, 성, 송환된 경험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고되었다. 여성과 아동은 강제수용소에서의 2주간의 구류와 같이 형벌이 가볍지만, 노동 수용소에서서 몇 달간 격리되는 것과 같은 장기적인 형벌 또한 일반적이다.

송환의 결과로 가장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은 임신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의 강요된 낙태로 인하여 고통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남한 사람이나 선교사들과 접촉했음을 자백하는 경우도 가혹한 처우를 받는다고 한다. 당국은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감자들이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정식적인 절차를 통한 사형과 고된 노동의 장기적 형벌을 여전히 시행하고 있다. 죽음에 이른 수감자들은 석방되며 흔히 석방 일주일 만에 사망하기도 한다. 미확인 보도에 의하면 고문과 가혹한 처우는 강제수용소, 감옥, 노동수용소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은 명백하게 굉장히 가혹하다.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북한 주민들은 강제수용소나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성이 운영하는 경찰서에 구금되고 심문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심문을 받는 동안 구타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수감자가 외부와 접촉한 것이 발각되면 각목과 쇠막대로 구타당한다. 구타를 하고 난 이후에는 수감자의 몸에 찬 물을 끼얹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심지어 겨울에도 자행된다고 한다. 일부 수감자들은 몸이 묶인 채로 다량의 물을 강제적으로 먹어야 하는 ‘물고문’에 처해지기도 한다는 보도가 있다. 장기적인 식량 부족은 포화상태의 강제수용소와 감옥의 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국제앰네스티에서 수집한 증언들에 따르면, 강제수용소의 가장 큰 문제는 기근이나 식량난에 따른 음식부족이다. 이러한 증언들에 따르면 구금되어 있는 동안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사망하고 있다. 식량부족은 또한 정치범 노동 지구나 통제 관리 지역의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을 초래하고있다. 2004년 6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청소년에 대한 제도적 폭력, 특히 수용소나 사회기관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보고서에 우려를 표하였다. 난민 1990년대 북한의 경제 붕괴와 기근, 그리고 이후의 식량 부족으로 인하여 수만 명의 사람들이 중국 혹은 다른 나라의 비호를 요구했다. 국제 위기 감시 기구의 최근 평가에 따르면 중국에 있는 북한인의 총 수는 10만 명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9천 명 정도만이 남한으로 와서 정착하였다. 그리고 소수만이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일본, 유럽, 미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되었다. 중국은 북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2002년 12월부터 계속되어 온 단속에 이어 작물과 기반시설이 피해를 입은 북한의 여름 수해 이후 새로운 철조망이 단동의 압록강을 따라 중국에 의해 세워졌다.

중국 쪽에서 공고한 표지판에는 ‘국경을 불법적으로 통과한 이웃 국가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거처를 제공하고 정착을 돕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라고 쓰여 있다. 탈북한 북한인들에 대한 중국의 공식적 정책은 1960년의 탈주범상호송환조약과 1986년의 국경지역업무조약에 기반 한다. 중국 당국은 탈북자들을 불법 경제 이민자로 분류하며 양자간 협정에 따라 그들을 강제송환 시키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국제보호나 유엔 고위층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

중국에서 강제적으로 북송되는 많은 탈북자들로 인해 북한 정부는 형법을 수정하고 형벌을 경감시키게 되었다. 1990년 형법전은 불법 국경 횡단과 체제 전복 목적의 횡단을 구분하였었다. 2004년 개정법에서는 일반 횡단과 상습 횡단을 구분하고 있다. 이 개정법에 따르면 무단으로 국경을 상습 횡단 하는 것은 노동 수용소에서 2년간 구금될 수 있는 범법 행위이다. (1999년에는 3년 구금) 항복, 충성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 기밀 자료를 넘겨주는 것과 같은 반역죄는 5년이나 혹은 보다 심각한 사건의 경우 10년 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많은 수감자들은 노동 교육 수용소에서 지역 강제수용소로 이동할 때 탈출 기회를 엿보거나 혹은 석방된 후 중국으로 되돌아간다. 북한으로 송환된 사람들의 40퍼센트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중개인과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몇 년 간 국경 지역의 보안을 강화하였다. 2005년 공개 처형을 담은 밀반입 비디오 자료는 인신매매와 불법 국경 횡단 혐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06년 2월, 북부 국경 지역 회령에서 300여명의 사람들이 탈북을 계획하거나 남한 혹은 중국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5월에는 비호신청자로 위장한 217명의 북한 첩보 요원들이 대규모 정보 수집 작전의 일환으로 중국에 배치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중국은 계속해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에 알리지 않은 채로 탈북자들을 체포하고 강제적으로 그들을 북송하고 있다. 북한사람들의 이동과 피신에 연루된 선교사들과 구조 활동가, 중개인 또한 표적이 되고 있다. 중국과 남한의 감시자들은 최근 중국 북동 선양지역의 단속은 2008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정화’ 캠페인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수년간 중국에 거주해온 북한인들은 올림픽이 그들의 남한으로의 피난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언급했었다. 매주 약 150에서 300명의 북한인들이 중국에서 강제적으로 북송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04년 6월, 중국 국경 마을의 길에서 생활하는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보고와 관련하여 우려를 표하였다. 또한 북한 정부가 북한으로 되돌아가거나 추방된 아동(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희생자가 아닌 범법자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담은 보고에 대해 깊이 우려하였다. 이광수씨는 아내와 두 아들, 친구와 함께 배를 타고 동해안 국경지역을 건너(강원지역) 2006년 3월 남한에 도착하였다. 남한에서 그는 북한에 남아있는 그의 가족들과 아내와 친구의 가족들에 대해 청원하였다. 8월에 그는 그의 가족들이 (총 19명) 실종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2006년 3월(그가 북한을 떠난 이후)과 8월 초 사이에 실종되었다. 또한 그는 그들 가족의 ‘북한 정부와 북한인들에 대한 밀고’ 혐의를 다루는 회의가 북한 당국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North Korea: Human rights concerns
Press release, 11/24/2006

In light of increased attention on North Korea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or DPRK) following its nuclear test on 9 October, this is a summary of Amnesty International’s concerns in the country.

Restricted access to human rights information Information and access to the country continues to remain tightly restricted, hampering investigation of the human rights situation.

Despite repeated requests, the government continued to deny access to the UN Special Rapporteur on the Human Rights Situation in North Korea and the UN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 to Food as well as to Amnesty International and other independent human rights monitors. However, over the past five years it has given access to UN bodies including the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

Reports from these bodies, from North Koreans who are now settled in many countries (including South Korea and Japan), human rights NGOs, and journalist contacts suggest a serious pattern of human rights violations, including executions, torture, detention of political prisoners and inhumane prison conditions.

On 17 November, the Third Committee of the UN General Assembly adopted its second resolution condemning North Korea’s record on human rights with a vote of 91 in favour of the resolution, 21 against and 60 abstentions. The resolution contains tougher language than the earlier resolution adopted in November 2005. It also requests the UN Secretary General (the SG designate is Ban Ki-moon, former
South Korean Foreign Minister) to submit a comprehensive report on the human rights situation in North Korea.

Worsening food crisis
“12 per cent of the population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suffered from severe hunger”: Jean Ziegler, Special Rapporteur on Right to Food (October 2006).

The persistent food crisis in North Korea seems to be due to factors including North Korea’s isolation and its geography (more than 70 per cent of the country is mountainous and difficult to cultivate). Other important factors include misconceived policies by the North Korea government and continued government restrictions on freedom of movement and information, lack of transparency and hampering of
independent monitoring, which has meant that food aid may not always reach those most in need.

The World Food Programme (WFP) ended ten years of emergency assistance to North Korea in December 2005 after the North Korean government declared it would in future only accept assistance that addressed medium and long-term needs. The government cited better harvests and domestic concerns about the emergence of a dependency culture and the “intrusiveness” of the WFP’s monitoring. This decision led to a reduction in the number of international staff from a peak of 46 to just ten and a sharp reduction in the number of monitoring visits. In February 2006 the WFP approved a two-year plan valued at $102 million including the supply of 150,000 metric tons of commodities to 1.9 million North Koreans and funding domestic production of vitamin and mineral-enriched food for women and children. Implementation of this plan, which started in June 2006, has been hampered by funding gaps; the WFP had only received ten per cent of the $102 million required as of October 2006.

The UN’s Food and Agriculture Organisation projected the cereal deficit for the current marketing year (November 2005-October 2006) at 900,000 tons, less than 20 per cent of the minimum required. This projection was made before severe flooding hit the country in July and August 2006.

Following the floods, the North Korean government reported hundreds of people dead or missing and said tens of thousands had been made homeless. Preliminary estimates indicate the loss to this year’s harvest due to the floods to be in the range of 90,000 tons of cereals. Severe and widespread damage to infrastructure, including roads, bridges and rail networks, was also reported.

After North Korea conducted missile tests in July 2006, South Korea – one of the biggest aid donors – sharply reduced food donations, on which North Korea depended to make up a shortfall of more than 1 million tons of rice. South Korea relented when North Korea pleaded for help after severe flooding in August. But it sent only half of the 100,000 tons it had said it would send in “emergency” aid –
compared with 500,000 tons last year. Following North Korea’s nuclear test in October South Korea suspended food aid and China is also believed to have cut its aid by about 60 per cent.

There was some government distribution activity in late 2005, but many did not receive rations at all. In Pyongyang, according to recent reports, people did not have enough to eat in spring of 2006. The government had to set up offices to distribute survival-sized rations to those on the verge of starvation. The re- imposition of the public distribution system in late 2005, combined with the curtailment of international humanitarian relief efforts and the summer floods, could result in a tragic return to famine and a new exodus to China.

In July 2005 the UN Committee for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Violence against Women expressed concern that the famine and natural disasters that have affected the country in the past decade could make women vulnerable to trafficking and other forms of exploitation, such as prostitution. It raised particular concern about women from rural areas, on women who are the main providers of the household and on young girls.

Child malnutrition
There have been some improvements in child malnutrition following continued international aid. Malnutrition rates among children in North Korea declined in the period of 2002-2004 but remain relatively high, according to a survey conducted in October 2004. Announcing the findings in March 2005, UN agencies said that substantial, well-targeted international assistance must be sustained to build on the gains.

A 2004 survey on child and maternal nutrition by North Korean government departments in collaboration with UNICEF and the World Food Programme in October 2004 found that:

the proportion of young children chronically malnourished, or stunted (height-for- age), has fallen from 42 percent (in 2002 when the last survey was held) to 37 percent; acute malnutrition, or wasting (weight-for-height), has declined from 9 percent (in 2002) to 7 percent;
the proportion of children under six found to be underweight (weight-for-age) increased from 21 percent to 23 percent; the rate among 1-2 year olds – the most nutritionally vulnerable group – fell from 25 percent to 21 percent. approximately one third of North Korean mothers are malnourished and anaemic.

Childhood malnutrition rates varied significantly by region, with the highest levels recorded in the more food-insecure Northern provinces and the lowest in the relatively fertile and better-off south, especially Pyongyang.

The UN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 expressed concern in June 2004 about persistently high rates of infant and child mortality, high rates of malnourishment and stunting in children, and relatively high maternal mortality rates. It also expressed serious concern about lack of access to clean drinking water and poor sanitation.

Executions
Executions are by hanging or firing-squad. In March 2003 the government announced that it would refrain from executing criminals in public. There were renewed reports in 2005 of executions of political opponents in political prisons, and of executions of people charged with economic crimes, such as stealing food:

Son Jong-nam (48) was reportedly sentenced to be executed on charges of ‘betraying’ his country, sharing information with South Korea and receiving financial assistance from his brother who is a North Korean settled in South Korea since 2002. As of April 2006, he was reportedly imprisoned in the basement of the National Security Agency in Pyongyang and was ‘practically dead from horrible torture’, according to UN sources. Son Jong-nam had left North Korea in 1997 with his wife, son and brother and had become a Christian – deemed to be a serious crime in North Korea. He was forcibly returned by Chinese authorities to North Korea in April 2001 and imprisoned for three years in the Hamgyung-buk do prison camp. He was released in May 2004 and met his brother in China before returning to North Korea; but authorities were tipped off that he had met his brother and he was arrested in January 2006. He had apparently talked about his family and what North Koreans thought of Kim Jong-il to his brother. There were unconfirmed reports of public executions of some 70 North Koreans in January 2005 after they were forcibly returned from China. Those accused of proselytising or practising in underground churches have also been reportedly executed. Video footage emerged showing two people being shot in a public execution. The execution reportedly took place on 1 March in Hoeryang, a north-eastern city, after a public trial of 11 people charged with trafficking in people and aiding unauthorized visits to China. The footage also showed an execution which reportedly took place on 2 March in the nearby city of Yuson.

Freedom of expression
Opposition of any kind is not tolerated. According to reports, any person who expresses an opinion contrary to the position of the ruling Korean Workers’ Party faces severe punishment and so do their families in many cases.

In October 2006, the fifth annual Reporters Sans Frontiers Worldwide Press Freedom Index listed North Korea as the worst violator of press freedom. The domestic news media is strictly censored and access to international media broadcasts is restricted. According to reports, at least 40 journalists since the mid-1990s have been “re-educated” for errors such as misspelling a senior official’s name. The entire North Korean press is under the direct control of Kim Jong-il, particularly the Rodong Shinmun (The Worker’s Newspaper), the Korean Central News Agency, and the national television JoongAng Bang Song. Each journalist is reportedly indoctrinated so as to be able to render, without mistakes, the grandeur of the late president Kim Il-sung and of his son Kim Jong-il. The press is also responsible for demonstrating the superiority of North Korean socialism over bourgeois and imperialist corruption. A typing error can be very expensive: dozens of North Korean journalists are sent to “revolutionary” camps for a simple spelling mistake, according to Reporters Sans Frontiers. Despite police campaigns to check radios (every radio, once sealed up, can only be tuned to official radio frequencies) a growing number of radios do enter by the Chinese border, allowing some people to listen to broadcasts from South Korean radio. Those who listened to foreign radio stations risked being punished.

Any unauthorized assembly or association is regarded as a “collective disturbance”, liable to punishment. Religious freedom, although guaranteed by the constitution, is in practice sharply curtailed. There are reports of severe repression of people involved in public and private religious activities, through imprisonment, torture and executions. Many Christians are reportedly being held in labour camps, where conditions were reported to be extremely harsh.

Torture, ill-treatment and prison conditions
Despite some changes in the law, the political and sometimes arbitrary use of imprisonment, torture and capital punishment continues. Punishments reportedly tend to depend on the age, gender and experiences of repatriated North Koreans. Women and children have received sentences as light as two weeks in a detention centre, but longer sentences of several months in labour camps are also common. The consequences of repatriation are reportedly most severe for pregnant women, who suffer forced abortions under poor medical conditions, and those who confess to meeting with South Koreans or missionaries. Summary executions and long sentences of hard labour are still enforced, though authorities are apparently wary of prisoners falling ill and dying on their watch. Those who seem close to death are released, often only to die the next week.

Unconfirmed reports suggest that torture and ill-treatment are widespread in detention centres, prisons and labour camps. Conditions are apparently very harsh. North Koreans forcibly repatriated from China were detained and interrogated in detention centres or police stations operated by the National Security Agency or the People’s Safety Agency.

Beatings are reportedly common during interrogation. If prisoners are caught communicating, they are beaten with wooden sticks or iron bars. After the beating, cold water is reportedly poured over the prisoners’ bodies, even in the middle of winter. Some prisoners are reportedly subjected to “water torture”, where they are tied up and forced to drink large quantities of water.

Long-term food shortages have been a significant factor in the worsening conditions in overcrowded detention centres and prisons. According to testimonies collected by Amnesty International, the main problem in detention centres is the lack of food, which is attributed to the famine or food crisis. According to these testimonies, people have died of hunger while in detention. Food shortages also resulted in deaths from malnutrition in political penal labour colonies or “control and management places” (kwalliso).

In June 2004, the UN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 expressed concern at reports of institutional violence against juveniles, especially in detention and in social institutions.

Refugees
North Korea’s economic collapse and famine in the 1990s and subsequent food shortages have prompted tens of thousands to seek refuge in China and beyond. Recent estimates by the International Crisis Group suggest that the total number of North Koreans in China is likely to be something up to 100,000; of this, only a little over 9,000 have reached and settled in South Korea; a small number of North
Koreans have reached Japan, Europe and the U.S, where many have been granted refugee status.

China does not want a steady stream of North Korean border crossers to become a flood. In addition to crackdowns (which have continued since December 2002), a new barbed-wire fence is being built by China along the Yalu River in Dandong after summer floods damaged crops and infrastructure in North Korea. Signs posted on the Chinese side read: “It is forbidden to financially help, harbour, or aid in the settlement of people from the neighbouring country who have crossed the border illegally”. The 1960 “Escaped Criminals Reciprocal Extradition Treaty” along with the 1986 “Border Area Affairs Agreement” guides official Chinese policy towards the North Korean border-crossers. The classification of North Korean border-crossers as illegal economic migrants by Chinese authorities subjects them to forcible repatriation under these bilateral agreements and denies them international protection or access by the UN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UNHCR).

The large numbers of North Korean border-crossers being forcibly repatriated back from China have caused the North Korean government to ease sentences and change the penal code. The 1999 version distinguished between “unlawful border crossing” and crossing “with the intent to overturn the Republic”. The 2004 revision further distinguishes between “crossing” and “frequent crossings”. According to the latter version, “frequent crossing” of the border without permission is a criminal act punishable by up to two years in labour camps (three years in the 1999 version). Acts of treason, such as “surrendering, changing allegiance, [and] handing over
confidential information”, are punishable by five to ten years of hard labour, or ten years to life in more serious cases.

Many prisoners take advantage of the opportunity to escape when transferring from labour training camps to provincial detention centres or return to China after they are released. As many as 40 per cent of those repatriated to North Korea re-enter China.

North Korea has reportedly tightened security on the border in the past couple of years, targeting brokers and North Koreans planning to leave the country. Smuggled video footage of public executions in 2005 involved charges of trafficking in people and illegal border crossing. In February 2006, 300 people were reportedly arrested in the Northern border town of Hoeryong for planning to leave North
Korea or having connections in South Korea or China. In May, 217 North Korean agents posing as asylum seekers were rumoured to have been deployed to China as part of a large information-gathering operation. China continues to arrest and forcibly repatriate North Koreans without referring them to the UNHCR. It also targets the missionaries, aid workers and brokers involved in sheltering or transporting North Koreans. Observers in China and South Korea attribute current crackdowns near Shenyang city in north east China to a “clean up” campaign in preparation for the 2008 Olympics. North Koreans who had lived in China for several years cited pre-Olympic measures as a motivating factor for their recent flight to South Korea. An estimated 150-300 North Koreans are reportedly forcibly repatriated from China every week.

The CRC expressed concern in June 2004 at reports of North Korean street children in Chinese border towns. It was also deeply concerned at reports that children (and their families) returning or deported back to North Korea were considered by the North Korea government not as victims but as perpetrators of a crime.

Mr Lee Kwang-soo arrived in South Korea by boat in March 2006 having crossed the sea border along the East Coast (Kangwon Province) with his wife, his two children and a friend. Once in South Korea he made enquiries about his own family back in North Korea as well as those of his friend and his wife. In August he discovered that the family members (19 in total) were missing. He has no knowledge of their whereabouts; they disappeared sometime between March (after he left North Korea) and early August 2006. He also heard that a meeting had been organized by North Korean officials specifically focusing on their families’ “betrayal to the state and the people of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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