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일본군 ‘위안부’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

[일본군위안부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보도자료]

AMNESTY INTERNATIONAL
PRESS RELEASE

Japan: Appeals for compensation fall on deaf ears
일본: 무시당하고 있는 배상에 대한 호소

국제앰네스티는 오늘 일본 정부에 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 전쟁 중에 일본인 점령자들에 의해서 성적노예로 수용되었던 여성들- 즉, “위안부”들에게 가해진 범죄들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

“60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기다림: 일본군 성 노예제의 생존자들을 위한 정의”라는 제목의 포괄적 보고서에서는, “위안부”들이 겪은 처참한 대우와 수 년 동안 그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기 위해 내놓았던 변명들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 전쟁 중에 일본군에 의해 성적노예로 끌려갔던 여성들은 20만 명에 이르며, 이들은 대부분 20세 미만의 여성들이고, 12세 정도의 어린 소녀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보고서는 또한 여전히 남아있는 생존자들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정부와 국제사회에 대한 권고들을 제공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의 아시아태평양 프로그램의 프루나 센 Purna Sen 국장은 “일본정부는 성적노예라는 처참한 제도의 생존자들에 대한 총체적인 배상을 제공함으로써 60년 이상 동안 이어온 잘못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제도의 생존자들은 현재 노령이 되었고, 알려지지 않은 숫자가 일본 정부의 적절한 공적 사과나 직접적인 배상과 같은 정의를 찾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 수 년 동안 일본정부는 그들의 군 성적노예제에 대한 책임을 지속적으로 부인해 왔으며, 오직 일본 정부의 역할과 직접 관련되는 증거가 들어날 때에만 최후에 책임을 인정하곤 했다.

“전 “위안부”에 대한 사과들은 생존자들에게 부적절했고, 모호했으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더구나, 아시아 여성 기금Asian Women’s Fund은 배상에 대한 국제적 기준에 미치지 못했고, 생존자들은 이를 침묵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 인지하고 있다.”라고 푸르나 센 국장은 언급하였다.

푸르나 센은 또한, “이 문제는 현재의 인권 사안이며, 과거의 문제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파괴되어 온 삶, 정의와 배상에 대한 지속적인 부인에 대한 문제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문제에 있어서 배상은 단순히 도덕적 의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범죄, 그리고 강간, 성적노예와 같은 인류에 반하는 범죄에 가담한 어떠한 국가라도 총체적인 배상을 제공하고, 생존자들에게 다시는 이와 같은 범죄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직접적인 약속을 할 법적 의무를 지닌다.”고 언급 하였다.

일본 정부는 강간이 4차 제네바 협약에 추가되었던 1949년까지는 전쟁범죄가 아니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는 보고서를 통하여, 일본정부가 성적노예제를 실시했던 전 기간 동안의 국제 관습법 하에서, 무장분쟁 중의 강간은 범죄라는 충분한 증거들이 있음을 반박한다.

현재 79세의 대한민국 여성인 이옥선 씨는 “나는 16살 때에 중국으로 끌려갔다”고 증언하였다. 그녀는 납치되어 중국 북동쪽의 연변으로 끌려갔고, 그곳의 “위안소” 에서 성적노예의 일을 강요 당하였다.

“그 곳 소녀들의 나이는 14세에서 17세까지였고, 그들은 하루에 40명에서 50명의 군인들을 상대하도록 강요 당했다.”고 이옥선 씨는 증언하였다. “그렇게 많은 남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나는 이를 거절했으나 매질 당했다. 만약 여성이 거절을 할 경우, 그들은 칼로 여성의 몸에 상처를 냈고, 몇몇 여성은 칼에 찔려 죽었다. 어떤 소녀들은 병에 걸려서 죽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경험 이었다. 그 곳에선 충분한 음식도, 충분한 잠도 제공되지 않았고, 나는 심지어 자살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간절하게 도망치고 싶었다.” 이옥선 씨는 한국에 돌아올 수 있기까지 58년 동안 중국에 머물러야 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이 역사 속에 씌어져 다음 세대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게 되고, 우리에게는 정의가 주어지기를 원한다.”라고 필리핀의 롤라 필라 Lola Pilar 씨는 국제앰네스티의 보고서에서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일본 군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원한다.”고 하였다.

필리핀의 생존자인 롤라 아모니타 Lola Amonita 는 “나는 돈보다 정의를 원한다”. “나는 일본정부로부터 공개적인 사과를 원한다.” 고 소리 높였다.

배 경

“위안부”는 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중에 일본군에 의해 성적인 노예로 강제 당했던 필리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중국, 남북한, 일본,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그리고 다른 일본의 점령 국가와 지역 들의 젊은 여성들을 완곡하게 일컫는 용어이다.

이러한 학대행위는 전쟁 진행 중 일본군이 주둔했던 어느 곳에서나 일본 당국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위안소”에서 자행되었다.
여성들은 주로 납치나 속임을 당하여 끌려왔고, 때로 그들은 빈곤한 부모들로부터 팔려오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제도화된 강간이 무엇인지 널리 유포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전쟁 범죄를 기소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 후 설립된 극동 국제군사법정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에서 무시되었다. 단지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 네덜란드 군사법정에서만 기소 되었다. 그러나 이도 성적 노예화된 네덜란드 여성에 대해서만 이루어 졌고, 인도네시아 여성을 상대로 이루어진 유사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 하지 않았다.

굴욕과 수치를 당한 “위안부” 생존자들은, 성적노예제를 지속적으로 부인하는 일본정부에 대응하기 위해 1990년대 초 마침내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이전까지 수 십 년 동안 침묵해야 했다. 생존자들은 심각하게 정신적 상처를 입었고, 많은 이들이 결혼하지 못했으며, 계속된 강간과 상대에게 성적으로 전염된 질병들로 인해 생긴 상해들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일본정부는 1992년, 요시미 요시아키 Yoshimi Yoshiaki 교수가 일본정부의 역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증거들을 발견하기 전까지 “위안부”제도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였다; 일본정부는 그 후로 몇 차례 공식적 사과를 발표하였으나, 이것들은 생존자들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일본정부는 성적노예제의 생존자들과 지지자들의 끊임없는 캠페인과 국제적 비판에 따라 1995년 아시아 여성 기금을 설립하였으나, 생존자들은 이 기금이 일본정부가 그들에 대한 국제적인 법적 책임을 교묘히 피해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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