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블로그

병역거부, 끝이 없는 고난: 백종건 변호사 이야기

백종건 변호사가 15개월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지난 5월 출소했다. 그가 저지른 ‘범죄’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였다. 한국은 아직까지 순수 민간 대체복무가 허용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에서 매년 수감되는 병역거부자는 수백 명 규모로, 이들 중 대부분은 젊은 청년들이다. 한국은 전 세계 다른 나라에 수감된 병역거부자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고 있다. 대부분은 종교나 평화주의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한다.

변호사 자격 박탈로까지 이어졌던 부당한 유죄판결로 백종건 변호사가 겪어야 했던,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가 겪어야 할 어려움은 무엇일까? 또, 그럼에도 그가 변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백종건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 시민으로서 제 의무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고, 모든 형태의 군사주의에 반대해요. 그건 제가 받아 온 신앙 교육 안에 깊이 새겨져 있는 가치에요. 한국에서는 병역거부자들은 집총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없거든요. 그래서 대개는 사상, 양심, 종교나 신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백종건 변호사의 모습

사법연수원 시절 백종건 변호사의 모습

아직까지 상황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병역거부자들은 살인자, 성범죄자 등과 같이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제 신앙은 제게 매우 부당한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저에겐 징역 18개월이 선고됐고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 등록을 취소했죠. 지금 저는 작은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전처럼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할 수 없어서 지금은 마음으로만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이 전과자를 뽑지 않아서 많은 병역거부자들은 사실상 이중으로 처벌받는 셈이나 다름없어요.

2008년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어요. ‘어차피 변호사 등록이 취소될 텐데 그걸 알면서 왜 시험을 준비하느냐’고들 물었죠. 저는 단지 저 때문에만 변호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제가 아끼는 다른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답하곤 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제가 있던 서울남부구치소로 병역거부자들이 계속 들어왔어요. 그걸 보는 게 참 괴로웠어요. 그래도 병역거부자들은 꾸준히 들어왔죠. 정부가 민간 대체복무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계속 외면한다면 제 조카와 동생도 저처럼 감옥에 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한국 정부에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정부는 우리의 절규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최근 하급심 판사들이 무죄 판결로 병역거부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 문제가 부각되고 있고 이 같은 판결이 정부에게 압박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종건 변호사가 7살 때 모습

백종건 변호사가 7살 때 모습. 그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혔다.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가족 중 세 명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감되었다.

한국의 병역제도가 제 가족과 다른 병역거부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을 보자니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출소했던 5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고 변화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상황은 바뀐 것이 없어요. 지금도 병역거부자들은 한 명, 한 명 살인자, 성범죄자 등과 같이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병역제도가 제 가족과 다른 병역거부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을 보자니 가슴이 아픕니다. 한국에서 병역거부자들은 오래도록 범법자 취급을 당해왔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물러서지 않는 것이 저에게 중요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제 변호사 자격을 회복시켜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재등록 신청도 했습니다. 작은 승리일지 몰라도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 제 역할을 다하려면 이런 작은 일들부터 시작해야겠죠.

The torment goes on – story of a South Korean conscientious objector

South Korean lawyer Baek Jong-keon was released from jail in May this year after serving 15 months behind bars. His crime? He refused compulsory military service because of his religious beliefs. South Korea is one of the very few countries around the world that does not offer a genuinely civilian alternative to compulsory military service

South Korea imprisons more people for their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than the rest of the world put together, with hundreds of mostly young men imprisoned every year. Most object to military service on religious or pacifist grounds.

Here Baek tells of the devastating and potentially long lasting consequences of his unjust conviction, which led to him being stripped of his license to practice law, and why he continues to campaign for change.

While I recognize my duty as a South Korean citizen, I am also a Jehovah’s Witness and I object to any form of militarism. It’s a value deeply ingrained in our religious teachings. Without a “legitimate” reason to refuse to bear arms conscientious objectors in South Korea are often jailed for exercising their right to freedom of thought, conscience, religion or belief.

The situation is not improving for conscientious objectors. One by one, they have been sent off to prison with murderers, rapists and other criminals.

Inevitably, my religious devotion has led to a very unjust outcome. I was sentenced to 18-months in prison and the Korean Bar Association suspended my professional license as a lawyer for five years. I currently work in a small law firm as an assistant and offer moral support to other conscientious objectors, as I am unable to defend them in court like before. Many conscientious objectors are punished twice as government-linked organizations and many private companies refuse to hire applicants with criminal records.

When I was preparing for my bar exam in 2008, people around me were baffled. “Why are you trying in the first place while knowing that your license will be eventually suspended?” they asked. I would tell them that I wanted to become a lawyer not just for myself, but to also defend my fellow conscientious objectors for whom I care dearly.

Torment

While I was imprisoned, it was agonizing to see new conscientious objectors joining me at Seoul Nambu Correctional Centre, but they kept coming. It pains me to know that my cousin and a younger brother will face the same fate if the South Korean government continues to turn a blind eye to our rightful demand for a civilian alternative to military service.

On multiple occasions, the UN Human Rights Committee has called on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o recognize our right to be exempted from military service. While President Moon has vowed to provide an alternative military service system, the government, to this date, remains indifferent to our cries. However, lower court judges are siding with us with rulings that are made in favor of conscientious objectors. These rulings are giving prominence to the issue and hopefully they will press the government to react.

My heart wrenches as the military service system continues to torment my family.

In May, as I was leaving Seoul Nambu Correctional Centre, President Moon Jae-in had taken office and I was more hopeful for change. But to this day, the situation is not improving for conscientious objectors. One by one, they have been sent off to prison with murderers, rapists and other criminals.

My heart wrenches as the military service system continues to torment my family and other conscientious objectors. Conscientious objectors have long been treated as outlaws in South Korea. Hence it is important for me to stand my ground. I have reapplied to the Korean Bar Association for my professional license, in the hope they will reinstate it. It will be a tiny victory, but to do my part in influencing the public opinion and changing minds, I must take these small steps.

노르웨이, 아프간으로 송환을 중단하라
온라인액션 참여하기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 싸웁니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