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인터뷰

Interview : 은수미 전 국회의원

6월 26일
UN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

고문 피해생존자
은수미 전 국회의원

은수미 전 국회의원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1992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심수였습니다.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 의해 고문을 당한 은 전 의원은 1993년 강릉교도소에서 복역중 가슴 통증을 호소하여 협심증 진단을 받고 추가적인 검사가 요구되었지만 교정 당국이 이를 불허했습니다. 이후 은수미 전 의원은 고문 후유증과 수감생활 중 건강악화로 폐렴, 폐결핵, 후두염, 장 종양 등의 여러가지 심각한 질병을 앓게 됩니다. 1995년 4월, 장 종양 제거 수술을 했지만 심장 부정맥과 폐 질환 치료도 필요해 큰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해야 한다고 의사가 권고 했지만 교도소로 돌려보내졌습니다.

이에 국제앰네스티는 당시 31살이었던 은수미 전 의원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폭력 행위 없이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인 은수미가 즉각 석방되어야 한다는 긴급행동(Urgent Action)을 발행해 법무부 장관 앞으로 탄원했습니다.

이러한 22년 전의 기억을 가지고, 은수미 전 의원을 만나 최근의 활동, 고문과 수감 생활, 시민과 직접 접촉하며 느끼는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995년 7월 발행된 은수미의 치료를 요구하는 ‘Medical Concern’을 여전히 국제앰네스티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4년간의 의정생활이 끝나고 그 후 1년, 그리고 얼마 전의 정권교체라는 기점이 있었는데 그 사이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달라진 점을 체감하는 게 있나요?

촛불집회 시기에 강연 요청이 너무나 많아서 힘들었어요. 보통 10~15건 사이로 들어오는데 11월에는 강연 요청이 24건이 들어와서 자르느라고 힘들었어요. 강연 주제로 가장 많이 들어오는 것은 인권이에요. 인권, 노동권, 청년실업, 여성차별, 이런 사회적 약자의 질문들. 그 다음이 정부, 정책. 정권교체 이후 크게 체감하는 건 없지만 다만 시민들을 만나면 느낌이 너무 달라요. 우선 웃어요, 잘 웃어요. 그리고 질문이 바뀌었어요. 촛불집회 전에는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신은 왜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라는 항의성 질문이 많았다면, 촛불집회가 진행될 때는 조울증처럼, 토요일에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다가 월요일만 되면 절망감에 빠지는 거에요, ‘아무 것도 안 바뀔 거야’라고. “광장 조울증”. 실제로 바뀔까요, 라는 이 조바심. 그 6개월 동안 시민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알아요. 그 이후, 바뀌고 난 후에는 “우리는 뭘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들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강연에서 ‘한경오’ 사태, 혹은 혐오발언, 문자폭탄, 시민 참여에 관한 질문들,그리고 더 미래지향적인 질문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일 년 사이에 정말 시민의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자신감도 생겼고, 당당해졌고.

 

강연을 많이 하고 계시네요. 그중 인권에 대한 강연은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시는지요?

기본권에 대한 생각을 자주 물어요. 예를 들어서 청년들한테는 민주공화국이 ‘시민의 나라’라는걸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혹은 ‘시민으로서 언제 존중 받아본 적이 있어요?’라는 질문. 제가 설문조사도 해봤는데, 대학생 10명 중 8명은 “그런 것은 느껴본 적 없다”라고 하고요, 느껴본 사람은 “투표할때요, 광화문에서 촛불 들었을 때요.”

시민(civic), 인권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떤 식으로 경험되고, 일터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있는지 이런 걸 비교를 하고, 이 간극을 시민이 참여해서 어떻게 개선할 건지에 대한 얘기들. 항상 청소년, 청년들을 만날 때는 제가 이렇게 얘기를 해요. “여러분이 대한민국입니다. 여러분들이 건강해야 대한민국이 건강하고, 여러분이 웃어야 대한민국이 웃고, 여러분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우주에서 하나뿐인, 아주 유니크하고 아주 소중한 존재이고, 죽을 때까지 존엄할 권리가 있습니다.” 반복해서 말해요.

근데,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우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아요.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을 해봐요. 등수 묻는건 별로 안 좋은거지만 “1등하는 친구보다 쓸모없단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러면 울어요. 다들 그 생각 하잖아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웠지만 귀천 있죠. 아버지가 부끄러울 때가 있었나요, 하면 울어요. 그럴 때 울음이 나온다거나 그럴 때 이건 “불공평해” “부당해” 저는 이렇게 생각하라고 얘기해요. 헌법은 국가가 여러분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시이고, 헌법은 한마디로 당신이 1등이든 꼴등이든, 어디서 태어났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존엄할 권리가 있고, 또 그걸 국가가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것. 만약 내가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거나 ‘나는 10등을 해서 8등 한 친구보다 못 해’라던가, ‘나는 시급 6470원 알바비를 포기 할 수 없어서 촛불광장에도 못 나가’요, 이럴 때 이게 비겁한 동시에 억울한 마음이 들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라고 얘기해요. 그런 얘기를 같이 하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저는 이런 인권교육을 유치원때부터 죽을때까지 가르쳐주고싶어요. (인권교육의 기회가 없는 것이) 제가 다 억울해요.

 

“헌법은 국가가 국민에게 바치는 사랑의 시”라는 표현은 정말 근사합니다. 의원님의 표현인가요?

네,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헌법 1조부터 37조까지만, 기본권 조항까지만 반드시 읽으라고 해요. 한 번 생각해보라고. 이런걸 서로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지면, 존중 받으면 바뀔거라고 생각해요. 매번 ‘쓸모가 있다/없다’ 얘기만 듣잖아요. “스펙이 있어야 네가 되지.” 이런 얘기나 듣고. 너 자체로, 그냥 타고난 그 모습 그대로 존중 받아본 경험이 없다는 게. 그런 사람 만나기 정말 힘들어요. 그럼 친구들이 역으로 저한테 물어요. ‘그럼 강사님은 언제 그러시는데요?’ 나는 내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해요. 감옥에서 싸우고, 요구하고 그럴 때 쉽지 않았는데, 그 힘들고 피하고 싶을 때마다 “네 권리야.” 이렇게 생각해 왔고, 저도 잘못한 것도 많고 시행착오도 많이 했지만 이렇게 꽤나 당당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시민이니까,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나 스스로 나의 권리를, 나의 존엄을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앞으로는 내가 나의 미래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꿈과 사람들, 인권과 존엄을 지켜주도록 정말 많이 노력하고 싶고, 그래서 정치를 한다고 얘기하죠.

 

‘정치인’ 은수미에 대하여

정치는 약자를 위한 매 순간의 결단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냐면, 우리가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살면서 한번쯤은 약자잖아요. 어릴 때는 항상 약자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이혼, 산재, 사고, 세월호 유가족, 아이가 아프거나, 내 아이가 동성애자라 차별을 받는 등 온갖 문제들이 생겨요. 그럴 때마다 필요한 게 정치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정치란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살게 하면 되는 거고, 시민이 될 수 없는 약자들을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치인은 인권 감수성이 매우 풍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나의 정치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정치가 있지만. 이제 그런 정치를 실제 현실화 시키는 방법이 뭘까가 고민인 거에요.

청년들이 저한테 ‘그때가 더 어려웠어요, 지금이 더 어려웠어요?’ 라고 물어볼 때 지금이 더 어렵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그때는 고문이 존재하긴 했지만 선/악이 분명한 거에요. “쟤가 악이야”라고 얘기할 수 있었어요. 나는 선한 존재로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게 버텨낼 힘이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고,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려야만 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알 수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 정당성이 무너지고, 자존감이 사라지는, 아주 심각한 폭력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 더 힘들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저 악인을 무너뜨리면 선한 무엇인가가 될거야’라는 아주 뚜렷하고 분명한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실 사람들이 왜 자살하냐면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절망해서 자살해요. 나한테 그 다음이 없는걸. 심지어 피해자들 내에서도 벌어지는 걸. 일상적으로 서로가 물고 뜯는 이것,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언제 벗어날 수 있는지도 모르는 것. 그러면 갑작스럽게 삶의 끈을 딱 놔요. 전 그게 훨씬 더 무섭다고 생각해요.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 제가 정말 강조하고 항상 쓰는 개념인데, 악은 특별한 악마가 아니라 우리들 사이에서 그냥 평범하게 악이 생겨버릴 수도 있어요. 한나 아렌트가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나치는 특별한 악마가 아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악이다.” 지금이 그런 악이 만들어지는 때 아닌가요. 예를 들어서, 세월호 사태에 추모하는 가족이나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들한테 “시체팔이”라고 얘기하는 것.

총선을 하는 데 세월호 뱃지도 계속 달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아마 제가 세월호 뱃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고 다닌 거의 유일한 의원이었을 거에요. 한 번은 어느 모임이 있었는데, 목사님이 여섯분이 앉아계셨는데, 제가 세월호 뱃지를 달고 악수를 청했는데 손을 한 분이 치고 나서 모두 거부하셨어요. 어떤 운동 모임에 가면 어떤 한 팀이 갑자기 큰 소리로 “네 아들이 죽었냐 딸이 죽었냐, 네 부모 삼년상 치를래? ‘시체팔이’하는 사람들이 노란 리본 떼지 않으면 절대로 네 손을 잡지 않을 거다.” 그렇게 얘기해요. 그 분들은 설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듣고 민의 중에 하나라고, 서로 알아서 판단 하시겠지만 그냥 가슴이 아프죠.

그런 사람들이 특별히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무시하고 싶고, 귀찮고, 세월호 추모 다 좋은데 장사에는 방해되는, 그런 불평등한 사람들이 여유가 없는 거에요. 이 사회가 오히려 훨씬 더 폭력적인거에요. 그래서 저는 (본인이 고문 당했던 시대보다) 지금이 더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거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정치할 생각 없어요. 정치를 계속 해야되는가 말아야되는가를 세월호를 겪으면서 2014년부터 1년 6개월 정도 고민을 했어요.

정치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저는 소박한 시민으로 불평등에 대한 정책적 기여를 전문가로 할 수 있어서 굳이 나 같은 사람이 정치까지 해야 되나. 어쨌든 결론은 안개처럼 스며들어있는 폭력적인 상황을 참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것에 대해 회피를 하면 내가 굉장히 불행하겠구나, 그래서 굉장히 힘들고 피곤하고, 어떨 땐 절망스럽더라도 같이 절망하는 게 낫고, 같이 불행한 게 낫다. 제가 피해서 혼자 불행한 것 보다야 해결하지 못해도 함께 불행한 것이 더 나아. 그렇게 결심했기 때문에 정치해요.

 

고문과 수감 생활 당시에 앰네스티를 어떻게 인지하셨는지요?

국제앰네스티에 대해 굉장히 감사함을 느껴요. 제가 국회의원 4년을 하는 동안 항상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떠드는 것 같았어요. 필리버스터때를 생각해보면, 본회의장에서 인권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새누리당 의원이 일어나가지고 “야, 그럼 월북해” 이러거든요. (네, 월북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건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고 대답했어요) 당시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시민들에게 굉장히 고마웠고, 다른 목소리를 듣고 싶은 거에요.

(마찬가지로) 고문 당하고 감옥에 있을 때, 혼자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느낌. 살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했는지 고문을 당하는데 지하 1층인데도 비가 오는지 안오는지 알았어요. 죽어라고 고문을 하고 나서 아침저녁으로 의사가 와서 쉬게 하는데 그때 “비가 오나요?”라고 물어보면 놀라요. 고문을 해도 안되니까 지하 2층으로 옮겼어요. 무서웠던게 아무것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거에요. 완벽한 혼자. 고문 수사관은 21명이었고 1개조 7명씩 3개조로 돌아가요. 고문 수사관들은 나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지만 나도 그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거든요. 그냥 고문 도구로 보여요. 그 사람들은 내가 가축으로 보이고. 완전히 인간관계 자체가 삭제되어있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인간으로 있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인간은커녕 자연에 대한 감응조차도 없어요. ‘그냥 이렇게 죽겠구나’라는 느낌. 환한 방이었는데 완벽한 암흑에 있는 것 같은 느낌. 한동안 트라우마 때문에 꿈을 꿨는데, 꿈 속에서도 언제나 어둠으로 기억을 해요. 24시간 불을 켜두는 정말 환한 방이었는데. 감옥에 간 후로는 물론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있지만 그래도 외부와 단절됐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감옥에 편지들이 오니까 굉장히 고맙고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내가 혼자가 아닌가봐’ 라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나갈 수 있다/없다의 문제가 아니에요. 뭔가 혼자가 아닌 듯한. 큰 고마움을 가지고 나왔는데 제대로 감사표현을 하지도 못하고..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내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마음을 아끼지 않고 노력을 하는 것이 갚고 있는 것이라고.

 

고문 트라우마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 관하여

대학교 3학년까지밖에 안 다녔으니까, 35살에 직장도 없고 학위도 없고, 운전면허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여성으로 세상에 나왔어요. 사회에서 저의 트라우마를 이해 못하니까 정신이 이상할거란 취급을 받을 것 같아 굉장히 걱정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두렵고 무서운게 지극히 정상인데. 강하게 포장하면서 살아왔고, 그리고 사회가 ‘내가 이 정도로 고문 받고 나왔으면 변화되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아진게 없는 거에요.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치유를 하고 이런 시간이 없고, 전 오히려 저보다 더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 스스로 치유받는 것 같아요.

일상적 고문이 가능한 사회라 함은, 그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고문이라는 형식의 인권유린을 정부가 시민에게 일상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에 정말 해로운 거에요. 요즘은 예를 들면 성희롱, 성폭력 등에 인권 감수성이 커졌잖아요. 예전에는 정부가 그걸 해버렸기 때문에 전반적 인권 감수성이 없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고문을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일종의 트라우마 사회에요. 위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고문을 하고, 그 아래에는 희롱, 폭력이 있는거죠. 이 밑바닥부터 사회 전반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그래서 저는 고문과 트라우마가 악순환이 되는 것이 되게 끔찍해요. 그리고 그건 안 지워져요. 특히 치유센터가 없잖아요. 전 지금도 아쉬운 게, 단지 고문만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학교폭력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것을 당한 사람들이 트라우마에 빠지는데 이것을 치유할만한 제도가 존재하지 않아요. 세월호도 특별법을 통해 트라우마 지원센터가 만들어지겠지만, 아직 매우 부족하고.. 또 이런 일을 통해 공동체가 파괴되잖아요. 예를 들어 쌍용차, 삼성 백혈병, 이런 것들이 한편으로는 인권과 존엄을 찾는 과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유린되는 과정이에요. 천막농성하는 사람들도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가의 품에 안겨서, ‘네 잘못이 아니야’하는. 고문과 사회적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방법이 개인이 강해지는 것, 혹은 몇몇이 모여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 외에는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가슴이 아파요.

 

최근 국제앰네스티 사무실로 한 여성 수감자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본인의 바이섹슈얼 정체성 때문에 여성들과 함께 지내야하는 생활이 무척 고통스러워 교도소측에 커밍아웃을 하고 독방을 쓰도록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힘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즘도 이러한데 하물며 20년 전에는 더 상황이 열악했을 것 같습니다. 고문 외에 수감생활 중 특별히 더 힘들었던 점이 있었나요?

우선 우리나라 감옥은 남성 위주 시스템이에요. 수용 시설 자체가 남성 수감자를 대상으로 하고 제가 있을 때 여성 수감자는 방이 세 개 밖에 없었어요. 92-97년 사이였으니까 얼마 안된거죠. 제 독방 하나, 그리고 두 개가 더 있었는데 그 4평짜리에 20명씩 들어올 때가 있어요. 화장실은 재래식이고 세면대가 없어요. 씻을 시간은 아침에 한 방당 3분을 줘요. (1인당 3분이 아니라 방 전체에 3분) 3분내에 뭘 하든 다 끝내야해요. 수도꼭지도 없고, 샴푸도 없고 그냥 빨래비누 묻혀서.. 근데 아줌마들은 그때 팬티를 빨아야 하는거에요. 일주일에 한 번만 빨래를 하기 때문에. 여자들은 그게 굉장히 예민해요. 팬티가 많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아줌마들이 세수는 못해도 팬티는 빨아야 돼. 그럼 그 3분 내에 팬티를 빨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와요. 근데 거기서 팬티를 빠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요. 그러면 한달에 한, 두 번 정도 검방(방을 검사하는 일)이란 걸 해요. 당연히 그러면 빨래는 어디에 널겠어요. 방에다 널 수 밖에 없잖아요. (교도소측에서도) 다 알아요 근데 군기를 잡으려고 그러는거죠. 검방을 쫙 해. 그러면 50-60대 여성, 70대 할머니들이 빨래를 한 걸 들키는거에요. 그 사람들을 팬티를 머리 위로 들고 복도에서 무릎 꿇게 했어요.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단 한 번도 자기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권이란게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냥 가축인거에요. 아, 가축이란 게 이런 느낌인 거구나. 개, 돼지의 인격 속에 내가 들어가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교도관들에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범죄자니까, 범죄자는 인간이 아닌거에요. 인간 취급을 안했어요. 그것이 어떤 범죄건 간에. 가벼운 절도든, 살인이든, 간통이든 똑같아요. 더 가슴 아팠던 것은 청소년 아이들이 걸려서 들어와요. 중학생들이 많았어요. 가출 여학생들이 본드를 하면 구금할 시설이 없으니까. 한 번은 교도관들이 영 안 됐다고 생각했는지, 저한테 제 방에 같이 있게 하자고. 그래서 아이들이랑 지내면서 한자 공부, 영어 공부를 시키면서 아이들 얘기를 들었어요. “학교 선생님들이 저를 싫어해요”, “부모님이 저를 싫어해요”, “나가면 갈 곳이 없어요.” 15살, 16살이잖아요. 나가서 어디를 가겠어요. 성매매, 이런데죠, 뻔하잖아요. 근데 데리고 있어보면요, 애들이 정말 맑아요. 종이 한 장 차이거든요. (복역했던) 4년 6개월 동안 이런 아이들이 수없이 들어왔다 나갔어요.

제가 있을 때도 수감자 중 양성애자도 있었어요. 완전히 벌레 취급 당했어요. 이 같은, 쥐 같은. 아무도 그 사람과 같이 먹으려고 하지 않았고, 전염병처럼 생각했어요. 아예 접근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하도 “꼴페미”에 “동성애 지지자”란 얘기를 들으면서 저도 정치인이고, 표를 얻어야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얘기는 못하지만,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군형법에 대해서도.. (한숨) 어떻게 법에 “항문”이란 표현이 들어가 있나.. 워낙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있잖아요. 교회 다니시는 분들 부정적인 생각도 있어서, 정치적으로는 천천히 바꿔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계속 관심을 가져야겠지요.

 

노동 문제 전문가시니만큼 노동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거 같습니다. 노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많은 현안들이 있습니다. 세계 최악의 수준인 산재비율, 노조조직률, 노동시간, 청년실업, 노인빈곤, 남녀 고용 및 임금 격차, 여성 경력단절, 비정규직 문제 등이 삶을 위협하는 가운데 지난해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의 죽음은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날 것의 노동’이 아닌, 인권의 관점에서 이 문제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국회의원에게 보내는) 문자가 참여가 아니라 ‘폭탄’이 될 때가 있어요. 심한 막말이나, 특히 ‘맘충’부터 시작해서 ‘급식충’.. 심지어는 “지하철 임신부 배려석이 차별”이라고.. 남성 청년들이 할 때가 있는데요. 딱 20대가 그러는 거에요. 가슴 아픈게 이 친구들을 통계를 통해 나타난걸 보면 20대 남성이 고용률이 지난 약 20년간, 76%에서 61%로 15%가 떨어졌어요. 근데 남성 30대는 93%에요. 확 회복돼요. 어쨌든 20대가 추락을 경험했어요. 아주 심각해요. 그런데 여성은 어떠냐면 58%에서 63%로 늘었지만 30대가 되면 도로 58%에요. 그러니까 결국 93대 58인거에요. 근데 어쨌든 이 추락을 경험한 20대 남성들이 소리를 지르는거에요. “나에 대해 아무것도 케어해주는 게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들에게 30대가 되면 93%가 된다고 얘기해봤자 소용이 없어요. 어떻게 보면 그렇게 소리지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대 남성들의 일자리 상당수가 예전보다 나빠진 것이 맞거든요. 그래서 그걸 바꿔야 되지만 여성들은 간신히 발버둥쳐서 63%가 됐는데, 30대가 되면 다시 58%가 되는 것도 현실이라는 얘기는 하루종일 해도 소용이 없어요. 아쉬운 것은 정상적인 논의, 합리적인 토론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성희롱을 당하면서 분투를 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해볼 수 있기를 원하고 문재인 정부가 정상적인 토론과 참여를 만들어내는 정부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같이 개선하고 시작할 수 있게.

삼성 백혈병 유가족 중 한 분과 얘기하는데 그 분이 갑자기 그러시는거에요. 그 분들은 오랫동안 백혈병 문제를 얘기하면서 자기 산재만 보지 않아요. 한국의 산재 현실을 다 봐요. 정규직 노동자는 당연히 5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 휴가를 가야해요. 당연하죠. 그건 권리에요.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이 휴가를 못가서 5월 1일날 31명이 다치거나 죽었고, 그 중 6명은 압사를 당했잖아요. 그 사고를 위로부터 찍은 사진을 봤어요. 사람이 정말 압사가 된. 한 삼성 백혈병 유가족이 말하기를,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6명, 일년에 약 2200명이 (산재로) 죽어요. “하루 한날, 한 시에 죽었으면” 좋겠대요. 어차피 죽을거, 매년 죽어야 할 거면 “한날 한시에 한꺼번에 죽으면 사람들이 관심이라도 가져주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산재로 죽지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사람들이 또 여기에 너무 익숙해요. 적어도 “차라리 한꺼번에 죽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얘기는 나오지 않게 만들어야죠. 중단을 시켜야 되죠. 어디서부터라도, 그것이 어느 현장이 됐든, (중단될 수 있다는) 뚜렷한 신호를 보내야해요. 매번 7척의 배가 바다에 가라 앉는 셈이에요. 한 척이라도 가라앉지 않는 배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해요. 이 신호가 무엇일까, 고민스러워요. 정부나 저 같은 정치인이 행동을 해야해요.

 

얼마 전 축산 이주노동자의 비극적 죽음처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착취와 죽음 등 그 안에서의 상대적 소수자의 문제는 더더욱 소외되고 문제로서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걱정스러워요. 왜 인권공유가 아닌 위험공유인가. 물론 현실은 위험공유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위험공유와 인권공유는 다른 과정이에요. ‘위험하다, 위험을 공유하고 이것을 개선시키자’고 나서는 과정과 ‘모든 권리는 모두의 권리여야 해’라는 인권을 공유하면서 위험을 제거하는 과정은 굉장히 다릅니다. 한국은 위험을 공유하죠. 절망을 공유해요. 그 속에서 희망을 위한 노력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그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한 ‘범퍼(희생자)’를 필요로 해요. 이 인권공유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위험공유로 ‘범퍼’를, 희생자를 찾는 걸로 나갈건지를 좌우하는 건 정치에요.

여기서 정치의 역할이 정말 큰데요, 정치가 과감하고 대담하게 인권공유쪽으로, 성소수자 문제나 노동 문제까지도, 내 표도 계산하지만, 최대한 포기하지 않고 가는 정치가 해낼 수 있으면 위험공유가 인권공유가 되요. 그러지 않고 정치가 용기를 잃어버리면 사람들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위험하면 ‘나만 아니면 좋겠어’ 이렇게 생각해요. 여지가 없는 거에요. 용감한 정치. 용감하고 인권감수성이 풍부한 정치가 필요한 때에요.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고, 제가 스피커로서 약하다는 게 가끔은 아쉬워요.

 

한국지부 입장에서는, 고문 피해 생존자이자 앰네스티 양심수로서 故 김대중 대통령과 故 김근태 의원이 있었고 이제 은수미 의원님이 있습니다. 탄원 활동을 하는 앰네스티 회원들의 입장에서는, 인권침해를 당하던 양심수들이 잘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뭉클함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런 당사자 중 한 명으로서, 일면식도 없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위해 탄원 활동을 하고 있는 앰네스티 회원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세요.

전 어렸을 때부터 SF를 좋아해서 인류 미래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항상 고민해왔어요. 저는 인류 미래가 유토피아라고 믿어요. 앰네스티를 통해서 받은 편지들, 우리가 함께 했던 기억 때문에. 미래가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우리는 인류애를 위해서, 함께 살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선언을 한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심지어 그 끝이 디스토피아일지라도, 전 행동할겁니다. 마지막까지, 인류 미래를 위해서. 인간애를 위해서, 인권을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 중에 하나가 앰네스티. 제가 앰네스티에 이렇게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서 너무 너무 행복해요. 사실은 꼭 이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편지를 받으면서 정말 놀라웠어요. (저를) 모르잖아요. 근데 그 긴 편지들이 와요. 크리스마스 전에 매번 카드가 오면 그 카드들을 다 널어 놨었어요 감옥에서. 일년 내내 널어두는 거에요. 그 다음 크리스마스가 오면 다시 바꾸고. 네 번의 겨울을 그렇게 반복했어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러면서 사람에 대해서 사랑하고, 사람에 대해서 용서하고.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나에 대해서 용서하기는 힘들었어요. 나도 좀 복잡한 속내가 있지 않았겠어요? 고문을 한 사람, 고문을 당한 사람, 동료를 판 사람, 입을 연 사람.. 나도 입을 연 사람에 해당이 되니까 가장 마지막까지 자신을 용서하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전 묵비권을 죽을 때까지 행사할거다, 라고 결심을 하고 들어가서 제가 가장 오랫동안 버틴건 맞아요. 며칠을 버텼다더라. 그게 최장기록이었대요. 근데 어쨌든 입을 연 건 맞거든. 어떻게 입을 열었느냐면, 내 친구들이 진술한 것에 대해서 yes, no만 하는 걸로. 그게 용서가 안 됐었어요. 근데 (편지를 받은 이후로) 그거까지 용서가 되더라고요. 우리는 약하지만, 이렇게 서로 연결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러면서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런. “수미야 너도 참 약간 그런 사람이지만, 이렇게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의 일원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해준. 그래서 디스토피아든, 유토피아든 나는 인권을 위해 살아갈 거고, 그리고 이왕 그렇게 살아갈 거면 유토피아라고 믿자. 내가 그걸 확인하게 된 구체적 계기, 앰네스티에요. 개인은 매우 약하지만 우리는 매우 강하고, 우리는 매우 아름답다라는 걸 확인하게 해준 계기. 앰네스티죠.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UN 고문방지협약이 채택된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 세계 75%의 국가에서 고문이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아직도 고문이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비율이 1/3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테러를 막기 위해서 고문은 필요악’ 같은 생각이죠. 고문을 해도 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주신다면.

고문은 테러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누가 테러를 일으켰다면, 그 전에 다른 테러가 있었을거에요. 그런 상황 속에서 탄생한게 고문이라고. “당신이 테러를 막고 싶으면 고문을 중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어요. 물론, 고문과 테러 모두 중단되어야 하지만 어쨌든 저는 고문을 멈추지 않으면- 그것이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고문도, 간접적으로 가해지는 고문도 굉장히 많아요. 혐오, 비하, 막말.. 사람을 나랑 틀리게 보는 것, 그 모든 것이 폭력과 테러로 보여요. 우리부터 놓자고, 우리가 우리 안의 악을 없애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 저도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해요. 저는 고문 후유증이 100%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직간접적인 어떠한 폭력을 당한 사람도 거기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요.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죠. 당신의 아이와, 당신의 가족과, 이웃, 당신 자신을 사랑한다면 고문을 멈추세요.


은수미에게 미쿠냥이란?
문재인을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미쿠냥이라도 좋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다시는 안 할 거에요!)


은수미에게 댄스유세란?
사람들은 그게 자아실현이라고 하는데.. 자아실현 맞아요.


은수미에게 필리버스터란?
지구인과 ET가 만난 느낌. 지구인과 외계인이 처음 손가락을 마주했을 때. “처음으로 만났다”

10시간 18분 동안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했던 은수미 의원


은수미에게 앰네스티란?

감옥에 냉난방이 안됐었어요. 추울 때 껴안는 유단포. (보온 물주머니, ゆたんぽ) 그거에요. 추운 겨울, 다 얼었을 때 꼬옥 안고 있는, 따뜻해져요. 그걸로 겨울을 버텼어요. 그런거에요.

자메이카: 경찰의 살인을 묵인하지 않고 맞서 싸우다 / 샤켈리아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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