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인터뷰

난민, 다시 찾은 평범한 일상

노르웨이 오슬로의 한적한 지역, 볕이 잘 드는 집에서 음악가인 셰리한(Sherihan)과 화가인 헤난(Hennan)이 재정착할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아들 첫 돌에 노르웨이로 오라는 선물 같은 전화를 받았어요. 우리는 노르웨이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노르웨이에서는 어린이가 가장 우선이고 그다음이 여성 그리고 개, 남자는 맨 마지막이더라고요!”

-셰리한과 헤난

©Amnesty-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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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빵 조각

사실 이렇게 행복한 모습은 이들이 시리아 알레포에서 겪었던 현실과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다.
“알레포에서의 삶은 평범했어요. 직장에 다니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좋은 차도 사고, 아이를 키울만한 넓은 집도 얻고 싶어 저축도 하고 있었죠. 누구나 그렇듯 저희도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날, 빵을 사러 가는 길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을 보게 되었어요. 자신이 무장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빵을 머리에 이고 가던 사람이었죠. 그 사람의 시신 주변에 피로 붉게 물든 빵 조각들이 흩어져있었고, 한 여자가 그걸 줍고 있었어요. 아마 집에 배고픈 아이들이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어요.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어 교외로 피신했어요. 춥고, 먹을 것도 없고, 수도나 전기는 아예 사용할 수 없었어요. 그때 저는 임신 중이었지만,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앞날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터키에서의 힘겨운 시간

“아들 카라만(Kahraman)이 태어나고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아이가 우리의 행동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갔는데, 의사는 카라만에게 시각장애가 있다고 진단했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다른 의사를 만나보기 위해 알레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거리를 가로질렀어요. 알레포에서 만난 의사는 카라만에게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다고 했고, 우리는 터키로 떠났어요. 그런데 터키 생활은 시리아에서 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요. 작은 아파트에서 다른 세 가족과 함께 지내야 했고, 카라만은 치료를 받을 수 없었죠. 그때가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어요.”

이후 이들 가족은 유엔난민기구(UNHCR)에 난민으로 등록되었고, 재정착 조건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Amnesty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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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자유가 존재하는 곳

그로부터 두 달 후, 셰리한 가족은 마침내 노르웨이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헤난이 그린 작품과 그들의 일상사진이 담긴 노트북 그리고 셰리한의 플루트 등 가장 중요한 소지품 몇 가지만 챙겨 노르웨이로 향했다.
“2014년 9월 23일, 오슬로 땅을 처음 밟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가슴이 얼마나 벅찼는지, 우리가 드디어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이었어요! 노르웨이는 시리아와 많이 달라요. 날씨는 생각보다 훨씬 춥지만, 우리가 정말 자유가 존재하는 곳에 와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어요. 도서관에서 쿠르드족[1] 문학을 발견했거든요.”

가족들은 이제 막 노르웨이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셰리한과 헤난은 노르웨이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두 살이 된 카라만은 좋지 않은 시력 때문에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집에서는 능숙하게 돌아다닌다.

“노르웨이 친구들은 우리보고 왜 모스크에 가지 않았는지 묻지도 않고, 맥주 한두 잔 마셨다고 뭐라고 하지도 않아요. 절대 함부로 판단하지 않죠. 대신 자전거 헬멧에 집착해요! 한 친구는 제가 헬멧을 안 쓴다고 계속 잔소리를 한다니까요. 우리는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길 바라고 있어요.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원치 않는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어요.”

©Amnesty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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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한 가족처럼 세계에서 부유하기로 손꼽히는 국가에 재정착한 난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2011년 시리아 반정부시위가 시작된 이후, 시리아를 떠난 난민은 440만 명 이상으로, 이 중 95%가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 불과 5개 국가에 수용되어 있다. 이들 국가 역시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고, 국제사회는 이들 5개국과 난민을 지원하는 인도주의 단체에 충분한 자원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은 난민들에게 필수적인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며, 유럽은 난민들이 안전하고 합법적인 경로로 이동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

재정착

 

[1] 쿠르드족은 소수민족으로서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거주하고 있는 국가에 동화되기보다 분리되는 것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해당 국가와 대립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시리아에서는 쿠르드족 문학을 접하기 어렵다.

※ 이 글은 노르웨이 지부의 이나 스트룀(Ina Strøm)의 ‘Safe at Las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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