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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해서라구요?

“국민의 다수가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으며,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대체복무를 인정한다면 사회구성원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지난해 겨울 국제앰네스티 등이 한국 정부에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마무리하면서 108개국 시민들에게서 받은 탄원서를 국방부에 전달했는데, 그에 대해서 올해 초 국방부가 내놓은 답변 내용입니다.

국내외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요구가 있을 때마다 정부는 늘 같은 답변을 되풀이해왔습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병역거부자를 수감시키는 것은 자의적 구금에 해당하며 자유권규약을 위반한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도, 유엔 인권이사회 국가별정례인권검토(UPR)에서 복수의 국가들이 한국 정부를 향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을 때도, 한국 정부가 내놓은 답변은 늘 같았습니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국제앰네스티에 보낸 답변서에서도 병무청이 2008년, 2011년, 2014년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는데, 2008년 조사에서는 68.1%가, 2011년, 2014년에는 각각 54.1%, 58.3%가 대체복무 허용에 반대했기 때문에 대체복무제 도입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사람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걸까?”라는 의문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국제앰네스티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에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2016년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정부의 주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도표

응답자들은 대체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는 일’(72%)로 봤지만,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내지 말고 대체복무를 허용하자는 데에는 대체적으로 찬성(70%) 의견을 표했습니다.

찬성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감옥보다는 낫다’(26%), ‘국민 의무를 다해야 함’(16%), ‘다른 기회를 부여해야 함’(14%), ‘개인의 선택이나 인권문제’(12%), ‘감옥은 심하다/가혹하다’(8%) 등 양심적 병역거부자 수감에 대한 부당함이나 대체복무를 통해 의무를 수행할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주로 언급됐습니다.

이 같은 결과는 3년 전 한국갤럽이 같은 주제로 실시했던 자체 조사결과와도 일치했습니다. 2013년 11월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1,211명을 대상로 실시된 조사에서 응답자 76%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답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에는 68%가 찬성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요?

2008년 병무청 여론조사의 경우 68.1%가 대체복무제에 반대했다는데, 질문 내용을 확인해봤더니 반대 의견이 높았던 이유가 조금은 납득이 됩니다. 당시 질문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8 병무청 여론조사 질문 문항

“종교적 사유 등 병역거부자들이 군에 입대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군 입대 대신 사회봉사 등의 대체복무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병역거부자가 군에 입대해야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다른 말로 바꾸어보면 ‘병역거부자가 병역을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인데, 이는 사실 대체복무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병역거부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19대 국회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2011년, 2014년 병무청 여론조사 설문 문구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2014 병무청 여론조사 질문 문항

‘입영 및 집총거부자’들은 군 복무 대신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대체복무 허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찬성 측은 이들을 형사처벌 할 게 아니라 복무난이도가 높은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게 하는 등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이유로 대체복무 도입을 주장하고, 반대 측은 대한민국 남자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예외 없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며 남북 분단의 특수환경, 현역병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입영 및 집총거부자’의 대체복무 허용에 대하여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병무청 여론조사 질문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부제도에 대해 ‘군복무 대신 다른 형태로 복무한다’에 방점을 두고, 사실상 특정한 결론, 즉 대체복무를 반대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전해철 의원은 “왜 대체복무가 논의되고 설문조사를 하는지에 대한 이유, ‘군 입대 대신 감옥’이라는 현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마치 ‘국방의 의무 대신 사회봉사하겠다’는 것을 찬성하느냐는 의미로 읽힌다”라고 지적합니다.

국방부도 인정하듯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 제도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개선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이 논의 배경인데, 이에 대한 설명 없이 이루어지는 설문 조사가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지적인 셈입니다.

국제앰네스티가 한국갤럽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의 경우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가는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응답자 중 70%는 찬성의 뜻을 밝혔습니다. 2013년 한국갤럽 자체 조사에서도 같은 질문에 대해 68%가 찬성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2016 한국갤럽-국제앰네스티 여론조사 질문 문항

“양심적 병역거부로 매년 수백 명이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낼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자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적어도 병역거부자의 감옥행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셈입니다.

2015년 헌법재판소 앞 기자회견

사진: 2015년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사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소수자의 인권 보호 문제를 다수결의 논리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하다고 해도 정부가 나서서 여론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지, 여론을 핑계로 매년 수백 명이 감옥으로 걸어들어가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해 11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다시 한 번 한국 정부를 향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번에는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를 즉시 석방하라는 유례없이 강한 요구까지 덧붙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역거부자 수감자가 있는 한국의 상황에 국제사회의 우려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며칠 뒤면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입니다. 이번 여론조사를 계기로 더 늦기 전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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