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블로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장래희망을 한 번도 제대로 적어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커서 나는 감옥에 가야 하는데,
이걸 적어낸다고 뭐가 달라질까.
‘감옥’이라고 쓸 수도 없는 건데…

세상이 익숙해졌다고 해서, 그것을 겪어 내야 하는 이들의 고통 역시 무뎌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송인호는 “태어난 순간부터 범죄자”였다고 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친구들과 선생님은 끊임없이 송인호에게 ‘너 크면 감옥 간다면서……’라고 질문 아닌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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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크면 감옥 간다면서……’

꼭 작년 이맘때였다. 병역거부자의 날인 5월 15일 발표될 앰네스티 보고서 『감옥이 되어버린 삶: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들고 고민에 빠졌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의 수는 점점 쌓여가는 데 마치 공식처럼 되어버린 이미 익숙해진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어줄까 고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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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들이 반드시 만나야 하는 1심 재판부에 보내는 보고서와 법률의견서 ©국제앰네스티

그리고 보고서 발표를 이틀 앞두고 우린 280개의 우편물 꾸러미를 만들었다. 봉투 안에는 발표할 앰네스티의 보고서와 국제앰네스티가 퀘이커교 세계자문위원회, 국제법률가위원회, 국제화해단체,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과 함께 만들어 이미 2014년에 한국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법률의견서를 담았다. 이미 공식이 되어버린 1년 6월 형을 받기 위해 병역거부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 1심 단독재판부, 우린 그 주소 하나하나를 출력해 봉투에 붙였다.

우편물 작업을 하던 중 기적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광주에서 3명의 병역거부자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2007년 이후 8년 만이었다. 5월 보고서를 발표한 후에도 광주와 수원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무죄를 선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7월 9일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조항인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위헌소원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반가운 소식은 다른 곳에서 왔다. 유엔 자유권 위원회는 11월 한국 정부에 자유권 관련 실태에 대한 권고를 내리며 한국 정부에 처음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전원을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병역거부가 권리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국제사회는 이미 병역거부를 권리로 받아들이고 확립해가는 긴 여정의 끝에 와 있는 것 같다.

긴 여정의 끝자락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으로 명문화된 법조항에 따라 병역거부를 인정한 건 1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영국은 1916년 1월 병역법에 양심을 이유로 한 경우 병역을 면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제정하고 시행했다. 일부 군 장교들이 징집병들 사이에 병역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배치하면 군의 사기와 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서다. 스탈린 아래서 적용이 중단되긴 했지만, 1919년 1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서명한 칙령에 따라 소련에서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군복무를 면제해 주었던 것도 흥미롭다.

2015년 발표된『감옥이 되어버린 삶: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보고서 ©국제앰네스티

독일은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 제4조 제3항에 병역거부에 대한 권리를 명시적으로 선언했다. 1949년과 2006년 사이 유엔 회원국 중 45개 국가가 명시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대체복무제도를 만드는 방식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법 또는 헌법을 제정했다. 이스라엘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헌법상 또는 국내법상 인정하고 있진 않지만, 국방부는 군 내부 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소수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병역을 면제해왔다. 대만은 2000년 1월 대체복무법을 시행했다.

앰네스티가 헌법재판소에 법률의견서를 제출하기 위해 조사했던 2013년을 기준으로 193개 유엔 회원국들 중 69개 국가가 법적으로 또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병역거부를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숫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병역거부권을 받아들이지 않는 21개국에는 군대가 없고, 67개국은 자원입대제도를 선택하고 있어, 병역거부가 문제되지 않는 국가가 사실상 88개국이다.

이제 36개국이 남는다. 여기에는 징병 관련 조항이 예비용도로 남아 있는 페루나 또는 북한과 같이 아예 기록이 되지 않는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2013년을 기준으로 36개 국 중 에리트레아, 한국, 싱가포르, 터키, 투르크메니스탄이 병역거부자를 수감한 기록을 갖고 있었다.

병역거부자처벌은“자의적 구금”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2006년 한국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병역을 면제받을 권리를 인정받는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국내법을 동 규약 제18조에 부합하도록 할 것을 권유한 이후 지금까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한국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심지어 2014년 자유권위원회는 대한민국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구금한 것은 규약 제18조 외에 규약 제9조 “자의적 구금” 금지 규정까지 위반한 것이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권고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헌법재판소는 지난 7월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조항인 병역법 제 88조 1항에 대한 위헌소원 공개변론을 열었다. 2004년과 2011년에도 두 차례에 걸친 합헌 결정 이후 세 번째다. 새벽부터 공개변론을 듣기 위해 긴 줄이 이어졌다.

2011년 합헌 결정 이후 약 2천 명이 군대 대신 감옥으로 향했다. 군대와 감옥이라는 두 가지 밖에 없는 선택지에서 감옥으로 향할 수밖에 없어서다. 작년 5월 보고서가 발표될 당시 항소를 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송인호 역시 6월 결국 감옥으로 향했다. 지금 현재도 감옥에서는 ‘자의적’으로 구금된 최소 537명의 송인호가 간절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은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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