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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집회, 못다 한 이야기

“집회 신고하려고 왔는데요.”

1월 25일 기대만큼이나 걱정을 안고 종로경찰서에 들어섰다. 민원실 경관은 신고서를 짧게 검토하더니 전화를 걸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다른 집회신고가 바로 처리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단순한’ 신고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양이다. 5분정도 기다리니 담당으로 보이는 정보관이 내려왔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이네요? 여긴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지역인데,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은 어떠세요?”

민원이 많다고는 했지만, 경관도 우리도 뻔히 알고 있었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은 청와대로부터 집회∙시위가 소위 ‘허용’되는 가장 인접한 지역으로 2014년 이후로는 모든 집회와 행진이 금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종합청사 앞 어떤 지점에서 기자회견이 자주 열리는지, 발전차는 어디에 주차하면 되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그의 말을 잘랐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꼭 열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이렇게 신고하시면 95% 이상 금지통고 나갑니다.”

친절했던 경관은 ‘금지통고’라는 말을 뱉고 무신경하게 집회신고 접수증을 끊어주었다. 이제 48시간을 기다리면 집회가 가능할지 아닌지 경찰서로부터 답변이 도착한다.

금지근거: 교통소통을 위한 금지∙제한

예상대로 ‘금지통고’가 내려졌다.

“일 평균 교통소통량이 전국 주요도로 중 상위권에 해당되며…(중략) 시민들의 교통 불편이 명백하며…(중략) 주거권 평온권 침해 우려가 있습니다.”

hologram_graph2_final교통소통량에 대한 불명확한 설명 후에 시민들의 ‘불편’은 명확하다는 주장이 붙어있었다. 주거권, 평온권이 무슨 이유에서 집회를 할 수 있는 권리보다 앞서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삶의 끝자락까지 몰려 거리로 나온 사람들, 누구도 자신들의 처지에 관심을 갖지 않는 현실에 항변하며 마지막으로 소리라도 내보고자 했는데, 생존권보다 교통소통과 생활평온침해가 명목상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정부를 대면하는 순간 얼마나 황망했을까.

금지통고가 나온 이상 이번에는 서울시의 답변을 기다려야 했다. 광화문광장을 고집한 데에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꼭 열어야 할 이유’와 같은 이유가 작용했다. ‘최후의 보루’에서 유령들의 집회는 가능할지 가늠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1월28일 드디어 서울시로부터 광화문광장을 사용해도 좋다는 공문이 도착했다. 그날 저녁 졸였던 가슴을 펴고 호기롭게 ‘광화문에서 유령이 되실 분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사흘 만에 183명의 신청자가 몰려 계획했던 것보다 서둘러 참가 모집을 마감하고 스튜디오 촬영 일정을 하루 더 늘려야만 했다.

집회냐, 문화제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로.다.

우리가 이번 유령집회를 통해 얻은 중요한 수확 중 하나는 집회 및 시위를 바라보는 경찰의 시각과 모호한 기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처음 유령집회 소식을 접하고는 “홀로그램으로 띄우는 영상 내용이 문화제인지, 집회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행사의 형식이나 성격을 떠나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 때는 규제의 대상으로 보고 그 단서를 찾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다. 특히 영상의 내용을 보고 판단하겠다 함은 모든 영상이 사전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찰의 입장을 보여준 것이다.

유령집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1월 22일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직접 나섰다. “순수 문화제 형식으로 할 경우 문제가 안 되지만 그걸 넘어서 구호 제창 등의 집단 의사를 표현하면 그 자체를 집회·시위로 보고 제재하겠다”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경찰청을 취재한 기자에 따르면 경찰은 구체적으로 동일 구호 3회 제창 시 제재를 가하겠다고 했다. 동일 구호 2회 제창 후 다른 구호를 외친다면 이는 집회가 아니라는 말인가.

집시법 제2조

“시위”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威力) 또는 기세(氣勢)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制壓)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문화제

문화를 주제로 한 축제(출처: 위키백과)

‘문화제’는 형식적 명칭일 뿐 그 자체가 예술행위가 될 수도 있고, 예배가 될 수도 있고, 레포츠가 될 수도 있고, 집회가 될 수 있다.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응원도 할 수 있으며, 영상을 보고 그 취지에 공감하면 따라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지만 ‘구호 제창’은 불법이며 이는 제재를 받아야 할 행위라는 경찰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시민에게 보장된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모호한 기준으로 규제하려는 의지만 드러낼 뿐이다.

유령집회가 끝난 후에는 출장을 다녀온 강신명 경찰청장이 직접 “다수인이 모였고 법적으로 플래카드나 피켓같은 홀로그램으로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집회성이 있다고 본다”며 확실한 뒤끝을 보여줬다.

경찰톡

경찰, 초유의 신생 집회에 대응 ‘딜레마’, 경향신문 2월2일자

경찰 “홀로그램 시위도 구호 외치면 ‘집회’…불법엔 강경대응”, 머니투데이 2월22일자

경찰청장의 반격 “홀로그램 문화제는 피켓 사용 집회 성격”, 매일경제 2월29일자

 “집시법 25개 조항 중 집회보장 관련 조항은 4개뿐”

헌법 21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관계법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총 25개 조항 중 집회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조항은 단 4개뿐이다. 집시법 자체가 집회∙시위를 규제하고 금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보장과 보호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간 대규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했던 대상은 명확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통치권자가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집회∙시위를 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임에도,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청와대 인근은 불가침의 영역이었고 늘 광화문광장 북측 끝에서 차벽과 물대포로 집회참가자들의 행진이 차단됐다.

서울시내 주요도로라 할지라도, 국가 주요시설이 위치한 곳이라도, 교통소통량이 높은 도로라 할지라도, 최고 통치권자가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원하는 장소에서 집회를 열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유령들이 아닌 사람들의 외침이 들리는 진짜 집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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