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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디짠 눈물, 그리고 다디단 새봄의 미소_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매월 첫째주 수요일 저녁, 작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앰네스티 수요극장>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동안 책이나 강의로 인권을 ‘공부’ 해 오셨다면, 극장에 앉아 영화 속에 숨겨진 인권의 이야기를 직접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 10월 7일 수요일 <앰네스티 수요극장>에서는 열 두번째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An, 2015)‘ 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 가운데 김진주 후원회원님께서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글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체… 이 감정은 무엇일까…’

슬픈데, 슬프지만은 않다. 눈물로 쉼표를 찍었건만, 마침표를 찍게 되지는 않는다. ‘키키 키린’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시작으로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내 감정을 정의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문득 <달콤 쌉사름한 초콜릿>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음식 소재 영화라는 공통점 때문이 아니라, 그 감각적인 제목 때문에(참고로 표준어는 ‘달콤쌉싸래한’이다). 이 제목에 담긴 의미가 ‘초콜릿처럼 삶도 사랑도 달콤함과 씁쓸함이 어우러진 것’이라면, 이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의 부제는 <짭짤달콤한 팥>쯤 되지 않을까. 짜디짠 눈물 뒤에 오는 다디단 위로(또는 희망). 영화 속 도쿠에 할머니가 “그런 게 삶이야”라고 귓속말을 건네는 듯하다.

도쿠에의 삶은 슬펐다. 적어도 세속적인 기준으로는 동정 받을 삶이다. 열예닐곱 살에 나병환자가 되어 세상과 격리된 채 60년을 살다간 도쿠에. 흔히 ‘꽃다운 나이’라지만, 꽃도 피기 전 새순이 오를 3월에 뽑혀버린 나무와 같았다. 하지만 축복받은 토양에서 자란 나무들조차 꽃과 열매의 영광을 떠나보낸 12월, 도쿠에 나무는 4월의 벚꽃나무가 된다. 세상을 떠나기 전 다른 두 나무, 센타로와 와카나에게 ‘접붙임’을 해 삶을 꽃피운 것.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네이버 영화

도쿠에가 그토록 일하길 원했고, 결국 일하게 된 도라야키 가게의 사장(사실 빚을 갚기 위해 가게관리를 떠맡은) 센타로는 웃음을 잃은 사람이다. 도쿠에와 그의 친구 요시코에게 꿈이었던 도라야키 가게 일은, 그에겐 감옥살이나 마찬가지다. 한 순간의 실수로 전과자가 되고, 빚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도라야키를 만드는 그의 삶이 즐거울 리 없다. 눈앞에 흐드러진 벚꽃의 화사함도 느낄 수 없는 센타로에게 유일한 말상대는 역시 우울한 상황에 있는 와카나라는 소녀다.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엄마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도 좌절된 와카나에게 도라야키 가게는 ‘끼니를 때우는 곳’이다.

센타로와 와카나는 원치 않는 상황에 갇힌 이들이지만, 도쿠에의 입장에서 보면 젊고 건강하다는 것만으로 이들이 부러웠을 법하다. 그러나 도쿠에는, 그리고 이 영화는 “나를 좀 봐. 너보다 훨씬 불행하잖아. 행복한 줄 알라구”라는 식의 ‘불행배틀’이나 무지막지한 충고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도쿠에에겐 즐거움인 도라야키가 센타로에겐 고역이었듯, 와카나에겐 꿈인 고교 진학을 위해 학원에 가는 친구들은 공부가 지겹다.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도쿠에는 그렇게 열린 시선을 가진 사람이기에 벚꽃의 아름다움도, 센타로의 슬픔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생이 다할 무렵, 자신이 열망하던 도라야키 만드는 일을 통해 두 사람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벚꽃 만발한 봄날 찾아왔던 도쿠에는, 가을바람과 함께 떠나며 짜디짠 눈물을 선사했다. 그렇게 도쿠에는 갔지만, 봄날도 벚꽃도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벚꽃과 함께 삶의 기쁨을 찾은 두 사람의 미소가 피어난다. 이제 센타로가 만드는 도라야키는 그렇게 짭짤한 눈물과 달콤한 기쁨이 어우러진 맛일 듯하다.


덧붙이는 글_

앰네스티와의 인연은 올해로 8년째입니다. 형편이 어려워 후원을 중단했던 기간이 있었지만요^^; 수요극장 관람은 <소수의견>, <셀마>에 이어 <앙: 단팥 인생 이야기>가 세 번째인데 다 나름 좋았어요. 앞의 두 영화가 인권문제를 정면에서 다뤘다면,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소소하고 잔잔한 이야기 속에, 부당하게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제가 초대해서 함께 본 친구도 “생각할수록 다시 보고픈 영화”라 해서 참 뿌듯했고요^^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소문보다 나빴던 건 나야. 지켜줬어야 했는데”라는 센타로의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들. 어쩌면 가해자의 극악함보다 방관자의 비겁함이 더 큰 죄는 아닐지요. 그런 저의 비겁함에 대해 극히 일부나마 속죄하는 차원에서, 앰네스티를 비롯한 8개 단체에 비록 미약하지만 후원과 활동은 계속할 것입니다.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김진주 후원회원님께서 작성해주신 리뷰입니다.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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