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블로그

욕망하는 식탁

욕망하는 식탁 ; 호모 먹부림쿠스, 나는 왜 식탐하는가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의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송강호 배우에게 즉석 애드립 대사를 요구했던 이 장면은 여러 버전의 컷을 다양하게 찍었는데, 현장 스태프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웃어버렸던 이 대사를 정작 봉준호 감독이 최종 선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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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적으로 상대의 끼니를 챙깁니다. 보릿고개가 존재하던 ‘못 먹던 시절’에는 확실히 그것이 보편적인 인사였습니다. 지금도 딱히 할 말이 없는 머쓱한 상황이라면 밥 먹었냐고 괜히 물어보죠. ‘썸 타는’ 사이끼리 말 걸기 좋은 핑계거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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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은 때로 그걸 먹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내가 먹는 것 혹은 먹지 않는 것에 대해 누군가 비난한다면 상당히 불쾌할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흔히 터키인을 비하할 때 케밥이라는 말을 쓰지요. 이탈리아인이 프랑스인을 욕할때 “개구리나 먹는 놈들”이라고도 합니다. 일본을 비하할 때는 스시입니다. 중국음식을 먹을때 “짱개 먹자”라고도 하는건 또 어떤가요. 외국인들이 흔히 한국인들을 비하하는 일반화는 ‘개고기나 먹는 놈들’(영국 프로축구리그 EPL의 위건 구단주인 데이브 웰란은 축구선수 김보경이 카디프시티와 계약했던 것에 대해 “카디프에 (한국인이 먹을) 개는 충분히 널렸지(enough dogs in Cardiff for us all to go round)”라고 발언함 : 가디언)이지요. 박지성 선수의 소속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그를 응원한답시고 이상한 가사를 만들어 응원가를 불렀습니다.

박지성, 박지성, 네가 어디에 있어도 너의 조국은 개를 먹지. 그래도 더 최악인건 리버풀놈이 되어서 공영주택에서 쥐나 잡아 먹는거야!”

Park, Park, Wherever you may be, You eat dogs in your home country! But it could be worse, You could be a Scouse, Eating rats in your council house

한편 요즘 한국 웹사이트에서 젊은 사람들은 스스로 한국적인 어떤 것이나 한국인을 비하하거나 푸념할때 ‘김치’를 접두어로 붙여서 씁니다. 몇 년 전에는 ‘된장~’을 붙였던 자리를 요즘은 김치가 대신한 모양새입니다. 일베 이용자들이 전라도를 모욕할때 자주 쓰는 수법도 특정음식 비하입니다. 먹을 걸로 장난치면 벌 받는다는 교훈을 깨치지 못한 애들이나 하는 못된 짓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입니다.

‘먹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더럽고 치사한 ‘갑질’을 참아야 하는 것도, 때려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계속 그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장그래가 바둑을 그만두고 비정규직 인턴이 되어야 했던 것도, 우리가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전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입니다. 인간이 만약 식물처럼 태양 에너지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광합성 능력을 가졌다면 인류 문명사회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최소한 누구도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테니까요. 먹고 사는 문제는 문명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를 이루는 일입니다. <인터스텔라>가 그려낸 디스토피아의 세계의 기본적인 출발이 ‘식량이 부족한 세상’임을 잊지 마세요. 아마도 인류의 종말적인 재앙에 대한 상상 중 가장 현실적인 위협은 외계인 침공이나 혜성 충돌, 세계 3차대전이 아니라 식량부족일지도 모릅니다.

재미있게도, 요즘 한국에서는 ‘먹방’이 인기입니다. 이것은 최근 3년 정도의 현상으로, 생각해보면 불과 4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는 ‘먹방’이라는 말은 쓰지도 않았습니다. 먹방으로 뜬 이름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윤후(아빠 어디가)와 사랑이(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그렇고, 배우 하정우씨의 먹는 모습은 이미 그를 정의하는 하나의 코드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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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돌리면 또 ‘먹방’이 얼마나 흔한가요. 테이스티로드, 식신원정대 같은 맛집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식당이 소개되면, 그 집은 곧 문전성시를 이루며 초토화되어 정작 단골들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 되어버립니다. 정재형의 프랑스식 가정요리, 노 오븐 디저트, 마트당 등 먹는 프로그램들은 만들기만 하면 실패하지 않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MC인 신동엽과 성시경도 먹는 방송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는 분명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풍경입니다. 예전의 ‘먹는 방송’은 ‘6시 내고향’이나 ‘VJ특공대’ ‘생방송 투데이’ 같은 연령대도 높고 ‘힙’한 것과는 거리가 먼 프로그램들에서나 주로 먹는 장면이 나왔고, 그것이 젊은세대들에게 어떤 현상이 된다거나 화제가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요리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요리하는 레시피와 조리과정을 보여줬을뿐, 먹는 모습까지 보여주지는 않았죠. 한편 유효기간이 다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은 ‘마스터 셰프 코리아’나 ‘한식대첩’ 같은 요리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통해 연장되는 모양새입니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예능프로그램 중 하나는 정말 특별할 것 없이 밥 해 먹는 프로그램인 ‘삼시세끼’이지요. (케이블 방송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7%의 시청률) 일반인들도 ‘아프리카TV’에서 먹는 방송을 하고 있으니 이정도면 먹방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이고 힙한 고찰 : ize먹어야 사는 프로그램 : GQ혼자 먹는 사람들, ‘먹방’을 봅시다 : 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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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닙니다. 젊은 세대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먹방에 직접 뛰어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이월드를 하던 시절에는 셀카는 올려도 우리가 먹는 음식을 올리지는 않았었죠. 지금 한국인이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올리는 사진은 아마도 ‘지금 내가 먹는 요리’일 것입니다. #먹스타그램 이라고도 합니다. 자신의 일상을 경쟁하듯 스스로 보여주고 과시하는 소셜네트워크 문화와 ‘핫플레이스’가 되면 반드시 가봐야하는 힙스터 문화가 결합해서 더욱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걸로 보입니다. 홍대가 상수 연남 연희 망원동으로, 압구정이 가로수길로, 이태원이 경리단길 해방촌으로,  인사동이 삼청동, 삼청동이 다시 부암동, 북촌, 서촌으로- 힙스터들은 유목민처럼 흘러다닙니다.(‘뜨는 동네’의 역설 : 한겨레, 돈이라는 이름의 골목대장 : GQ, 어느 경리단길 사장의 고백 : ize) 그리고 경쟁하듯 거기서 ‘내가 먹는 것’을 찍어서 올립니다. 남들이 먹은 것이나 혹은 남들이 아직 먹지 않은 것은 반드시 먹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 마침내 유명해지는게 아니라, 일단 유명하다고 선포하면 줄부터 서는 풍토가 지금 이곳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맛을 찾는 게 아니라,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맛, 미디어가 유명하다고 소개한 집을 경험해야만 하겠다는 태도가 지금의 맛집 신드롬을 만든 기초다. 그게 왜 어떻게 좋은건지 개인이 판단한 게 아니라, 그걸 해야 겨우 대중의 흐름에 속하고 안 하면 무리에서 뒤떨어질 것 같다는 우려가 힘을 발휘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 작은 집은 왜 자꾸 사라지는 걸까? : 장우철, GQ 2013년 4월호

경리단길에서 츄러스 하나 정도는 들어줘야 힙스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리단길에서 츄러스 하나 정도는 들어줘야 힙스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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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렇게 젊은 세대는 먹는 것에 매혹되었을까요? 끼니를 걱정하며 큰 세대도 아닌데. 혹시 이것은 어쩌면, 사회적인 욕망과 성취를 누리기가 현저하게 힘든 젊은 세대의 유일한 도피처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부연할 필요도 없이, 한국은 폐쇄적이고 보수적이고 매우 작은 사회입니다. 물리적으로 사실상 섬나라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젊은이들은 무엇 하나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대학, 취업, 결혼, 내집마련 등 생애를 관통하는 통과의례였던 과업들의 장벽은 지금 젊은 세대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너무 높아졌고 그것을 얻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은 지나치게 과다합니다. 그에 반해 놀고 즐길 것은 너무도 없죠. 항공권을 살 돈이 없다면 다른 문화를 경험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중고 자동차 하나만 있으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외국의 젊은이들과는 환경 자체가 다릅니다. 놀 것이 없으니까 어쩌다 하나 걸리면 우루루 쏠립니다. 여의도 불꽃축제나 피카츄를 보러 가서 사람구경을 더 많이 하게됩니다. 허니버터칩이나 마이보틀이 단기간에 유행이 되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입니다. 여기는 작고 쏠림이 심한, 신드롬의 사회입니다. (나는 왜 라이언 맥긴리의 전시에 가지 않는가 : 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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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버터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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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츄 이벤트의 이상

피카츄 이벤트의 이상

피카츄 이벤트의 현실 (동대문)

피카츄 이벤트의 현실 (동대문)

젊은이들이 ‘먹방’과 ‘먹스타그램’에 몰입하는 것은, 그것이 상대적으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 놀이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200만원도 되지 않는 월급으로 외제차와 아파트를 살 수는 없지만 한 끼의 근사한 저녁식사는 먹을 수 있지요. 매우 즉흥적이고 그 자리에서 즉시 얻을 수 있는 쾌락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혼자 3분 카레 먹는 것과 핫플레이스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과의 기분 차이는 지구와 토성의 거리만큼이나 멀겠지요.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래도 내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어쩌면 다른 것을 얻기 힘든 젊은이들의 자기위안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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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中

이제 먹는 것은 단순히 의식주의 한 요소, 이미 해결된 기본적인 생존조건이 아니라 현대인의 욕망이 투영된 물질가치입니다. 사회적 계급과 소득수준에 따라서 먹는 식재료의 품질이 달라집니다. 백화점 식품관에 가서 산지직송의 유기농 식자재에 매겨진 가격표를 본다면 이 말이 피부에 와닿을겁니다. 중국산 농산물은 저질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한국에는 수입조차 되지 않는 최상급의 농산물들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최상품의 중국 농산물은 중국 부자들이나 유럽의 식탁으로 갑니다.

일 년에 새로 문을 여는 치킨집은 7천 4백 개. 이중 49.2%가 3년 이내에 문을 닫습니다.(GQ 2014년 3월호) 한국의 전국 치킨집은 3만 6천개라고 합니다.(2011년 기준)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수(2011년 2월 기준 3만2737개)보다 많습니다. 올초 국내에서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 된 가금류수는 1월부터 3월까지 세 달 사이에만 1070만 마리가 넘습니다. 2011년 구제역 파동때 매몰 처분된 가축 숫자는 돼지 311만 마리, 소 15만 마리입니다. 구제역은 자연상태에서 치사율이 1%밖에 되지 않고 보름 만에 회복되는 병이지만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은 ‘예방조치’를 위해 생매장을 당합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묻힌 땅엔 기괴한 곰팡이 같은 것이 피어올랐습니다. (3년 전 구제역으로 돼지를 묻은 땅의 지금 모습:한겨레21)

한국에는 현재 농업에 종사 중인 2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있고, 이들의 대부분은 노동자가 아닌 노예나 다름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와 그 보고서캠페인을 통해 탄원할 수 있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노예가 되는 ‘삼시세끼’의 옥택연 같은 노예가 아니라, 임금도 받지 못하고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며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진짜 노예생활입니다. (‘현대판 노예’ 농촌 이주노동자 :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이러한 사실들의 종합으로, 우리의 ‘밥 한 상’은 그냥 단순히 한 끼니가 아닙니다.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삼겹살과, 오늘 내가 올린 먹스타그램과, 이주노동자가 일군 농산물과, TV에 나왔던 그 요리는 그래서 실은 내가 선택한 메뉴가 아닙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니까. 그러므로 내 식탐은 실은 내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내 먹부림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밥은 먹고 다니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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