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인터뷰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실제 벌어지는 일이 일치하지 않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1994년과 1995년을 기억하시나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이 밝혀져 당시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지존파 사건을 소재로 국가의 본질과 사회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가 개봉 되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얼마 전에는 밴쿠버 영화제와 뉴욕필름페스티벌에까지 초청되는 등 요즘 가장 핫한 다큐멘터리로 주목받고 있는 논픽션다이어리. 사형제도폐지에 대한 논의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도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정윤석 감독을 만나 영화에 얽힌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 앰네스티매거진 2014-3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정윤석 감독 © Amnesty International Korea

지존파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요

1990년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했어요. 1995년 노동법이 개악되고, 연이어 IMF를 거치면서 비정규직 합법화가 생겨났죠. 저는 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고 교육 받았어요. 그런데 현실은 ‘최초의 비정규직 세대’가 되었죠. 게다가 80년대에 독재정권을 반대했던 윗세대 사람들은 90년대 들어 자본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지만 IMF 때문에 직장을 잃고 밀려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90년대의 양면성을 알 수 있다고 봐요. 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90년대에는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하는 양면성. 그것이 오늘을 바라보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범행동기로 선언했던 한국 최초의 범죄조직이 바로 지존파였어요. 그래서 이들을 소재로 내가 하고 싶은 90년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지금의 60~70대는 산업화를 40~50대는 민주화를 이뤄냈는데, 우리 세대는 아직 세대를 아우르는 경험이나 담론이 없어요. 이대로는 대기업 줄서기를 하거나 계급사회의 토큰을 받으려고만 노력하는 사람들이 될 겁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할 말이 없을 거 같아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나요

세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90년대에 대한 재평가입니다. 드라마 ‘응답하라1994’, 영화 ‘건축학개론’, 가수 서태지, 김건모 등 최근 문화적 복고로만 90년대가 자꾸 소비되고 추억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 역시 풍요로운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지만 한쪽으로만 쏠리다보니 정치적 동력을 잃게 된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악’이 개인에서 출발하는 것인가 혹은 시스템이 키우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고, 세 번째는 국가와 사회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사진과 신문, 뉴스영상 등 상당한 양의 자료들이 나옵니다.

2007년 10월부터 용산참사 문제가 마무리되던 2009년 12월까지 뉴스영상을 매일 녹화하고 기록했어요. 처음엔 MBC뉴스데스크만 하다가 그건 방송국 데스크에서 편집되어 나온 정보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과 기사를 포함한 모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한꺼번에 자료를 찾아도 됐겠지만 굳이 매일 기록했던 이유는 그 순간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데에 의미를 뒀기 때문이에요. 제가 미술을 전공했는데, 아무리 좋은 현대 미술이론이나 외국 철학도 한국에서는 적용이 잘 안되거든요. 몇 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음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은 촛불시위도 설명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죠. 이렇게 제가 배운 지식과 현상의 불일치가 자꾸 생기니까 이게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걸까 싶어서 아카이빙 작업을 계속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역사를 카테고리화 시키는 트레이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20년 전에 벌어졌던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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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남다른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저 역시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세월호와 이 영화를 연결하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감독으로서 무엇을 전달할 것인지 고민해봤는데요, ‘분노’는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분노는 누구든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슬픔’도 아니에요. 영화에 보면 삼풍백화점 희생자가 보고 싶어 했다는 꽃을 20년째 매주 가져오는 부모님이 나오는데요, 20년째 매주 꽃을 가져오는 부모의 마음은 제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그런 것을 감정적으로 소비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분노와 슬픔, 둘 다 아니라면 결국 그건 ‘공포’였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세월호를 보면서 고통스럽고 비통한 이유는 무언가를 상상했기 때문이에요. 배에 서서히 물이 차오르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상상하고, 거기서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하는거죠. 그래서 이 영화는 공포감, 기시감에 집중했습니다. 범죄물이나 서스펜스물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사형제도에 대해 어느 쪽 입장도 주장하고 있지 않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어떤 것을 설득할 때, 당위적인 주장 보다는 질문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도 이 방식을 선택했어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바로 사형제도 폐지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형제도를 찬성했던 내 생각이 맞는 걸까?’ 라고 고민하기 시작할 때, 새로운 판을 열 수 있거든요. 지존파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가족의 당시 진술서에 가해자를 찢어 죽이고 싶다고 써놓은 것을 읽었는데, 저는 그 마음에 공감합니다. 만약 내 가족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살해당했는데, 국가에게 처벌을 맡긴다는 것이, 사실 납득이 안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국가의 문제, 법의 문제에 질문했던 것은 민주주의는 국가 안에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처벌을 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것보다는 ‘국가의 윤리라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더 하고 싶었습니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제가 영화 속에 지존파의 화장 장면을 넣었는데요, 살해한 피해자들을 조직원들이 태운 행위와 국가가 지존파를 사형한 후 태우는 것이 결국 같은 매커니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수준이 너무 낮아요. 표현의 자유의 그 ‘자유’란 어디까지인가를 논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발전할텐데 무조건 억압만 하니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만 외치는 현실입니다.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시위할 때, 중구청에서 천막을 밀고 꽃밭으로 만들어버린 적이 있잖아요.

예술이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데, 한국사회는 아름다움이 항상 추악한 것을 감추고 미장하는데만 쓰이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참 씁쓸하더라고요. 거대한 미장이었던 4대강 사업도 그렇고요.

예술가로서 저도 언젠가는 아름다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한국사회가 계속 미장사업을 반복하니까 그걸 파헤치는데만 집중해야 하는 슬픔이 있습니다. 안그래도 차기 작품이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에요. 북한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 했다가 구속됐던 박정근씨와 ‘밤섬해적단’이라는 펑크밴드를 통해 한국사회의 엄숙주의, 경직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레드 컴플렉스를 소재로 우리에게 북한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논픽션다이어리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실제 벌어지는 일이 일치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자기 다짐 같은 영화입니다. 세월호 사건에 빗대자면 지금 시대 강령은 ‘가만히 있으라’라는 건데, 이 영화는 저에게 ‘가만히 있지 말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 만드는 일이 거울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감독들은 거울의 형태나 재질, 밝기, 조각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저는 제가 만든 거울을 통해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보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회변화를 만들려면 내 주위부터, 작은 단위로 변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사회는 무조건 큰 변화를 원해요. 다수가 희생해서 한 명의 대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편하게, 각자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변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논픽션다이어리가 사회 공공재로서 많이 기억되고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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