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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이 2014년에게 –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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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입니다. 이 해에 태어난 알만한 이름으로는 수지, 손나은, 크리스탈, 설리, 손연재, 저스틴 비버, 다코타 패닝 등이 있습니다. 이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2014년 지금이니 20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인지요.

Brazilian players run to join their teammates as I

1994년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미국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지오가 눈물 흘리는 사이 브라질이 우승했고, 권투선수 조지 포먼은 45세의 나이로 최고령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삼성전자는 256메가 D램을 세계최초로 개발했고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그때는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김광석의 마지막 정규앨범이 나온 해였고,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음반을 둘러싼 괴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아이들은 멀쩡한 테이프를 헤집었지요.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아담 리바인은 마룬5의 전신이 되는 Kara’s Flowers를 결성합니다. 박경리가 25년간의 집필 끝에 대하소설 <토지>를 완간했으며 런던과 파리를 잇는 해저터널이 개통되었습니다. 김일성은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17일 남겨두고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한편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대통령에 당선되어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완전폐지를 선언했습니다. 좀 더 낭만적인 사람은 영화 <중경삼림>에 쓰여서 거리에 숱하게 울려퍼졌던 ‘캘리포니아 드리밍’으로 1994년을 기억할 겁니다.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1994년을 이루는 이런 요소들 중에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취사선택 했다면, <논픽션 다이어리>는 정반대의 방식을 취해 90년대를 호출합니다. 바로 ‘지존파 사건’과 성수대교 붕괴,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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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에는 유난히도 대형 인명사고가 잦았습니다. 서해 훼리호 사고,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충주호 유람선 화재,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도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밀집된 고도성장을 겪은 90년대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난 상징적인 사건으로 자주 다뤄져 왔습니다. 다른 사고와는 달리, 관계된 사람들이 책임을 다했다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사고였기 때문입니다. 인허가 과정의 비리와 관리감독 태만 및 안전점검 소홀, 원칙의 무시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했더라면’ 원천봉쇄가 가능했던 사고란 점에서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한국사회가 처음으로 실패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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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논픽션 다이어리>는 특이하게도, 여기에 ‘지존파 사건’을 나란히 놓아봅니다. 압구정동 야타족과 오렌지족 등 ‘돈 있고 빽 있는’ 부유층을 죽이기 위해 살인을 시작했다는 지존파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이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와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의아하지만, 영화가 선택한 방법은 나름의 충분한 논리와 설득력을 가집니다. 그 방법이란 국가가 이들 사건의 책임자들을 다루는 ‘형벌’의 방법과 수위를 비교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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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가 살인을 한 이유와 삼풍백화점이 붕괴조짐을 알면서도 끝까지 영업을 계속했던 사이에는 똑같은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영화는 지존파의 살인과 삼풍백화점 참사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돈 때문에 타인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지요.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회칼이 날아가 사람에 꽂혔다는 목격담이나 토막난 사체 등에 대한 증언은 이것이 지존파가 벌인 일과 다를 게 없다는 아주 노골적인 편집입니다) 실제로 삼풍백화점은 처음에 주거용 부지여서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없었지만 서초구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지급하고 용도를 변경했습니다. 건물이 다 지어질 무렵에는 욕심이 더 났는지 종합상가에서 백화점으로 구조변경을 하면서 건물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있었던 벽이 사라지거나 기둥에 추가하중이 가해지고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위해 구멍을 뚫는 등 설계에 없던 마구잡이 용도변경이 이루어졌습니다. 비용부담이 크다며 꼭 써야하는 건축자재를 사용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건물이 붕괴된 당일에는 오전부터 붕괴조짐이 계속 관측되어서 임원진은 대책회의를 가집니다. 건설사 소장이 당장 영업을 중단하고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붕괴되던 순간까지 백화점 영업은 계속되었습니다. 붕괴 조짐이 처음 보고된 것은 오전 9시였고, 붕괴 시간은 오후 5시 57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그들에게 있었던 셈이지만, 최대한의 이윤창출을 위해 삼풍백화점의 영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500여명의 사람이 건물 잔해에 깔렸고 그 중에 502명이 죽었습니다. 물론 경영진들은 붕괴 17분 전 긴급대피를 한 뒤였지요.

돈을 위해(목적) 사람을 죽였다(결과)는 인과관계는 지존파와 삼풍백화점 책임자들이 같지만, 지존파는 전원 사형에 처해진 반면 삼풍백화점 회장과 사장이 받은 형량은 징역 7년여에 불과합니다. 뇌물을 받은 서울시 공무원 등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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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전두환,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는 왜 유죄야”라고 카메라를 향해 외치던 지존파 두목 김기환의 말을 그대로 한 번 따라가봅니다.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을 가진 전두환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그나마도 2년 만에 사면 받아 전직 대통령의 지위를 되찾습니다. 범죄자의 궤변이 역설적으로 무안한 현실의 정곡을 찌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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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다이어리>는 제목 그대로 논픽션(non-fiction)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영화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살인의 추억>의 논픽션 버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특정 개인을 범인으로 만들려고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결국 살인을 방조하고 막지 못한 진짜 악(惡)은 그 시대, 그 사회라고 말하는 영화입니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가 사형을 당할 만큼 나쁘다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을 무너트리고 5.18 광주학살을 주도한 사람들과 그들을 방조한 국가와 사회는 그렇지 않냐고 묻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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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메시가 고개 숙인 사이 독일이 우승했고, 김연아는 금메달 연기를 해놓고도 석연찮은 판정논란 끝에 은메달을 땄습니다. 한국은 OECD 10년 연속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달성했습니다. 질병이나 자살로 숨진 쌍용차 해고노동자는 현재까지 25명입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지존파에 사형이 집행된 1995년, 그 해에 태어나 올해 대학교에 입학해 신입생 환영회에 간 학생들이 체육관이 무너져 숨졌고, 그로부터 두 달 뒤에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20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인지요. 하지만 그 사이 무엇이 변했나요. 우리는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20년 뒤에, <논픽션 다이어리2>를 볼 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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