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달라도 너무 다른 14기 인턴들이 모였다!

지난 2월 망원정에 오른 14기 인턴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의 어느 날, 얼마 남지 않은 마감 기한에 맞춰 기말 과제를 마무리 하느라 하품을 연거푸 내뱉던 어느 겨울 저녁이었습니다. 창틀 넘어 하얀 함박눈이 내리고 있는 몹시도 아름다운 바깥 풍경을 보며 신난 망아지 마냥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고 싶다는 소망이 가득했습니다. 그 날 우연히 메일을 확인하다 앰네스티 인턴 모집공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앰네스티’가 뭔지 잘 모르지만 ‘인권보호’ 라는 단어 하나에 숨죽이고 있었던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권보호’라는 하나의 가치 아래 삶의 가치관, 꿈, 식성, 좋아하는 노래 취향도 모두 다른 여섯 명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14기 인턴’이란 이름으로 만났습니다. 모금팀의 조소연 인턴, 사업지원팀의 이홍구 인턴, 캠페인팀의 이송, 민지홍 인턴, 커뮤니케이션 팀의 문지숙, 윤경빈 인턴이 총 6개월 간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느꼈던 일들을 나누려합니다.

# 1. 인턴을 시작하기 전에 앰네스티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요?

지숙

고등학교 때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적이 있어요(강동원을 죽이다니!)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해도 국가와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너무나 폭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 후 운명적으로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F2F 캠페이너를 만나게 되었죠. 마침 사형제도 포스터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고민 끝에 앰네스티 회원으로 가입했어요. 학업을 핑계로 지속적인 참여는 어려웠지만, 한동안 친구들에게 앰네스티를 알리고 사형제도 폐지 서명을 모으는 활동을 했어요. 저에게 앰네스티의 캠페인은 딱딱하고 어렵지만,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함께 지켜주는 곳이에요.

홍구

전 사무국에 인턴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앰네스티를 알고 있었어요. 예전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 교육을 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활동으로 앰네스티 편지쓰기 마라톤 행사에 같이 참여를 했거든요. 다만 당시에나 인턴으로 일하기 전에는 앰네스티를 양심수 석방을 위한 탄원을 진행하는 단체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리고 앰네스티는 ‘회원으로 이루어진 단체’라는 말을 인턴 생활을 한지 몇 달이 지나서야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어요,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단체하고는 다른 앰네스티만의 고유한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홍

솔직히 저에게 앰네스티란 막연하게 대단한 단체라는 인상이 가장 컸어요. 제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그런 단체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이 곳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고, 6개월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을 무사히 잘 마치게 되었네요! 행복해요!

사실 별 생각 없었어요. 앰네스티 트위터에 나와있던 인턴모집 공고에 나와있듯이 ‘인권이란 단어에 마음이 뛰어서’ 지원했어요. 때 마침 지원기간이 시험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매우 초조했던 기억만 가득해요. 서류전형 합격 소식을 듣고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사무실로 들어오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소연

앰네스티에 대해서는 제가 회원이기도 했고, 학교 내에 있는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기도 해서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국제적인 단체이기에 엄청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와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어요. 사무국에서 일을 하면서 앰네스티는 회원이 만들어가는 조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또 영어에 대한 부담감도 굉장히 컸어요. 제가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긴장했었는데 그렇게 겁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수준급의 실력보다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경빈

사실 앰네스티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단지 당시에 앰네스티 해외지부에서 하는 캠페인들을 보면서 제가 갖고 있던 신념과 일치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앰네스티 회원이 되어 활동들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인턴에 지원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눈이 많이 내리던 날 기말 과제를 하다 우연히 메일을 확인했는데 인턴모집공고가 보이더라구요. 여성인권이랑 난민 등 관심가는 주제를 앰네스티에서 어떻게 다루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어요. 실제로 직접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게 될까 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2.인턴으로 일하며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반면에 아쉬웠던 일들이 있었다면?

지숙

지난 3월 진행된 액션패키지 <무기거래조약, YES YOU MUST!>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기획부터 평가까지 참여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거든요. 액션키트를 제작하면서 조립과 포장을 위해 단순 수작업도 많이 하고, 영상도 만들고, 홍보 컨텐츠 작성도 수없이 했어요. 최종 완성된 액션패키지를 처음 받아보았을 때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설레는 마음으로 액션패키지를 신청해주신 분들께 발송하고, 얼마 후 서명엽서와 인증샷을 보내주셨을 때 그 동안 들인 노력을 보상받는 것 같았죠. 무엇보다 역사적인 무기거래조약 체결로 사람들이 직접 변화를 경험할 수 있어 감동적이었어요. 세계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는 자신이 대견해 혼자 흡족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돌아보니 민망하지만요.

홍구

3월에 있었던 정기총회가 기억에 정말 많이 남았어요. 거버넌스와 사업지원 쪽 업무를 돕다 보니 가장 큰 업무가 정기총회 TF에 참여해 개최를 돕는 일이었거든요. 처음 들어와서 몇 달간 준비했던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무척 뿌듯했어요. 사실 제가 거버넌스 인턴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거버넌스가 무엇인지, 정기총회가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은 희박한 편이었어요. 그런데 정기총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것들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지홍

지난 5월 캄보디아 강제퇴거와 관련해서 방한한 주거 활동가와 주민이 4박 5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공항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한국에서 배운 경험으로 더욱 실효성 있는 활동을 하고, 그것으로 우리 삶을 바꿔갈 수 있겠다.” 사실 이 분들이 방한하기 전부터 캠페인 코디네이팅을 맡게 되어 가장 고민했던 점은 ‘어떻게 하면 앰네스티 회원들이 이 분들한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였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 분들이 한국에 있는 많은 활동가들과 연대를 하며 얻어가신 것이 많다고 느꼈어요. 그 때 저는 국제적인 연대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어요. 비록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마음으로 서로 통하는 부분이 더 많다고 느꼈어요.

뿌듯했던 순간은 너무 많아요. 특히, 광화문 KT앞에서 ATT체결을 바라며 촛불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이 순간을 함께 했다는 생각에 정말 가슴이 벅차고 설렜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한 달 남짓 무기거래조약과 관련한 캠페인 활동을 진행하던 중에 4월 초 유엔에서 무기거래조약이 체결되었어요. 무기거래 조약과 관련한 동영상을 번역하는데 이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무기거래조약만으로 자신의 일생을 바친 앰네스티의 브라이언 우드 팀장과 YES WE DID IT THANK YOU라는 문구를 봤을 때, 진짜 감동이었어요.

소연

해피빈 모금함이 추천 모금함으로 선정되었을 때 ‘모금팀 인턴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앰네스티에 도움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열었던 두 개의 모금함이 모두 추천 모금함으로 선정되었던 걸 생각하니 지금도 흐뭇해지네요. 기부해 주신 분들이 남긴 댓 글을 하나하나 읽으며 힘을 얻었답니다. 하지만 댓글 중에서는 국외보다 국내이슈에 집중했어야 했다던지, 인신공격성의 글도 함께 있어 조금 속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때마다 앰네스티가 나아갈 방향이라든지 이념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어요.

경빈

사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빈곤이나 전쟁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기엔 쉬워도 이를 없애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래서 탄원편지를 쓰거나, 캠페인을 할 때마다 빨리 문제가 해결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그게 빨리 되지 않는 점이 조금 답답하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끈질기게 노력하고 관심을 가지고 집중했을 때 결국엔 이뤄내고 마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무기거래조약이 체결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비록 느리더라도 천천히 제대로 준비해 나간다면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 믿어요. 

 

#3.앰네스티에서 생활하면서 스스로 뭔가 바뀐 부분이 있나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지숙

작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서야 ‘나는 공부를 왜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지금의 공부는 미래의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스스로 답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치열하게 고민했지요. 그런 시기에 앰네스티를 만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당장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인권이라는 프레임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넓고 깊게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구체적으로는 주로 읽게 되는 책이 바뀌었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글을 쓸 때 선택하는 단어도 ‘앰네스티스럽게’ 바뀌었어요. 일을 시작하고 주변 지인들로부터 얼굴이 피었다며 부쩍 재미있고 신나 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홍구

역시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의 중요성인 것 같아요. ‘인권 운동은 내려가는 에스칼레이터를 거꾸로 올라가는 일과 같다. 우리가 인권에 있어 성취를 이루었다고 느끼고 마음을 놓는 순간 그 성취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인권이슈 톺아보기 시간에 들었던 말이에요. 인턴으로 일하면서 가끔 인권이슈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토론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비슷한 의견일 때도 있지만 사형제 문제나 여러 이슈에 대해 갈리는 의견을 내놓을 때가 많더라구요. 그러면서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나 같은 생각이 사회의 평균이다. 나처럼 생각하는 게 굉장히 일반적인 사회의 기준이다’라는 거에요. 물론 그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통념을 따라가기보다 한번 더 고민해보고 다르게 생각해 해 보는 일이 정말 중요한 거라고 느꼈어요. 그 고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지홍

옛날에는 세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슈들을 접할 때, 감정적으로만 다가갔어요. 그렇기에 이번 용산참사 현장순회나 수요시위에 참여하며 눈물도 많이 보였구요. 그러다 제가 깨달은 것은 감정적인 이입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감정적인 면이 캠페인에 몰입하는 정도에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지만, 앰네스티에서 배웠던 점은 조금 더 논리적인 사고를 갖고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사고를 기른 것이에요. 사실 저는 편지 한 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보통 시민인데 편지 한 통 쓴다고 해서 무엇이 바뀔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던 사람이었구요. 그런데 6개월 동안 보통사람의 힘이 모여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정말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도 힘이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옛날에는 보통사람의 힘을 믿지 않았다면, 지금은 조금 더 믿는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뉴스 하나, 우리의 행동 하나, 우리가 웃어넘기던 개그 하나하나에도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보는 것 하나하나가 굉장히 불편한 것이 됐어요. 내가 편하게 있던 삶과 생각의 틀을 깨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어요. 크게 변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서서히 세상에 대한 관점이 변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소연

인권적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많은 캠페인을 함께하면서 배우기도 했고, 인턴 교육 중에서도 특히 ‘인권이슈 톺아보기’를 통해 인권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했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경빈

인권에 대해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앰네스티에서 생활하면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 것 같아요. ‘아, 이렇게도 접근해 볼 수 있겠구나. 미처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구나.’ 이렇게요. 그러다 보면 말이나 행동을 비롯한 모든 것에 조심스러워 지는데 때로는 답답할 때도 있었어요.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의 조화를 이루면서 인권이슈들을 바라보는 연습을 했던 시간이라 생각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뀔 거라 믿어요. 조금 더 민감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겠죠. 부조리한 것들에 ‘왜?’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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